얼마전 노이에자이트님이 추리 소설을 읽는다고 격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사실 추리 소설의 시조인 에드거 알랜 포우가 다방면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 것을 보면 다른 추리 소설가 역시 일반 문학을 했더라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을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럼 추리 소설가로 명성을 날렸으면서도 다른 문학 작품을 쓴 분들을 한번 알아볼까요?
탐정소설의 대명사인 아더 코난 도일이 만들어낸 캐릭터가 셜록 홈즈만은 아니지요.고집장이에 괴팍한 성격은 같아도 비상한 두뇌로 범인을 밝혀내는 홈즈와는 달리 머리보다 몸이 앞서는 모험가 ‘챌린저 교수’가 있는데 이 챌린저 교수가 나오는 가장 대표적인 소설 <잃어버린 세계>는 공룡이 멸종하지 않고 남아있는 미지의 세계를 챌린저 교수 일행이 탐험한다는 것이 줄거리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로 알려진 소설 <주라기 공원> 등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네요. 코난 도일은 1912년 발표한 이 작품이 좋은 반응을 얻자 이후 챌린저 교수 시리즈를 계속 발표했는데 <잃어버린 세계> 이후에 나온 <안개의 땅> 등은 과학적 소재에 깊이 빠져들어 훌륭한 과학소설(SF)입니다.뭐 둘다 장르 소설이지 않냐구요^^;;;;
사실 도일은 셜록 홈즈가 나오는 추리 소설보다는 역사 소설가로 인정받기를 희망했다고 하더군요.그래서 다수의 역사 소설을 발표했으면 발표 당시에는 영국에서 큰 반향을 얻었다고 합니다.하지만 워낙 셜록 홈즈의 인기가 대단해서 역사 소설가란 그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후 도일의 역사 소설은 더 이상 읽혀지지 않게 되어 도일은 코난 도일의 아버지로 우리에게 인식됩니다.
자 그럼 또 어떤 분이 있을까요? 셜록 홈즈시대의 또다른 명탐정 좀 멍청해 보이지만 날카로운 두뇌의 소유자인 브라운 신부를 창조한 G. K. 체스터튼을 들 수 있습니다.탐정에 대한 고정관념을 사정없이 깨버리는 독특한 탐정 브라운 신부를 창조한 길버트 키스 체스터튼은 워낙 팔방미인이었던 탓에 많은 글을 남겼다고 하는데 추리 이외의 분야에서 가장 주요한 저술은 뜻밖에도 ‘기독교 선교’에 관한 책이 손꼽힌다고 합니다.
‘논쟁의 달인’으로 불렸던 그는 친구이자 논쟁에서는 적이었던 조지 버나드 쇼를 비롯해 H. G. 웰스, 버트런드 러셀 등 쟁쟁한 지성들과 설전을 벌여 이긴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는 독실한 신앙인의 입장에서 버나드 쇼와 웰스, 예이츠, 오스카 와일드 등 당대의 작가들을 싸잡아 이단자로 비판했고, 왜 그들이 이단이며 그렇다면 진짜 정통이란 무엇인지 알리고자 노력했다고 하는군요.체스터튼은 언론인으로도 이름을 남겼는데, 당시 영국이 벌인 보어전쟁에 반대한 양심적 행동과 함께 인종차별의 근거였던 우생학에 동조하지 않아 훗날 많은 존경을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추리 소설가로만 알고 있는 체스터튼의 작품은 크게 3가지로 나뉘는데 첫번째 부류는 대개 신문•잡지에 발표한 방대한 양의 사회비평인데, 이 글들은 <피고>, <12가지 유형>, <이단자들>로 엮어져 나왔고 두번째 부류는 문학비평으로 <로버트 브라우닝론(論)>에 뒤이어 <찰스 디킨스론>, <찰스 디킨스의 작품에 대한 감상과 비평>을 썼는데, 이 2권의 디킨스론은 개개의 소설에 부치는 서문 형식으로 되어있고 세번째 부류는 신학과 종교논쟁 입니다.
G. K. 체스터튼의 탁월한 신앙서적인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란 부제를 달고 있는 <오소독시>는 무신론자였다가 기독교에 귀의하게 된 그가 기독교에서도 정통신앙(오소독시)가 얼마나 중요한지 설파하는 책으로 웃음을 짓게 만드는 유머를 장기로 하는 체스터튼은 이 책에서도 특유의 유머를 활용하면서 신앙을 역설고 있지요.
가스통 르루라고 한다면 추리 소설을 전혀 읽지 않은 분이라면 당연히 그 유명한 오페라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원작 작가로만 알고 있을 겁니다.뮤지컬팬들에겐 가스통 르루가 영미권에선 <노란 방의 비밀> 하나만으로도 코난 도일이나 모리스 르블랑 못잖은 작가라고 설명해 주면 아마도 그가 추리소설도 썼냐고 의아해 할것입니다.
르루가 창조한 탐정인 앳된 기자 루르타비유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대표작 <노랑방의 비밀>은 밀실에서 일어난 사건의 비밀을 푸는 이른바 ‘밀실트릭’의 고전으로 추리소설사에서 늘 걸작으로 꼽히는데 추리 소설 팬들도 단순히 르루를 추리 소설가로 기억하고 있지만 그는 , 러일전쟁 당시 프랑스 신문의 특파원으로 지금의 인천인 제물포에서 벌어졌던 제물포해전을 취재해 르포를 썼으며 이 책은 뒤늦게 발견돼 <제물포의 영웅들>이란 이름으로 최근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바 있습니다.
추리 소설팬들한데 영국 탐정 클럽의 회장을 지내기도 했던 도로시 세이어즈는 피터 웸지경을 탄생시킨 여류 추리 작가로만 기억될것입니다.그녀는 1923년 첫 소설 <시체는 누구?>를 발표했는데 피터 윔지 경이 탐정으로 등장하는 첫 작품으로, 이 시리즈는 장.단편을 비롯해 마지막 작품 까지 향후 15년 동안이나 계속됩니다. 피터 윔지 경 시리즈(Lord Peter Wimsey)는 추리소설의 황금기(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사이의 기간)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훗날 평단의 높은 평가를 받게 되며, 그녀는 애거서 크리스티와 견줄 만한 명성을 얻게 되지요.
하지만 세이어즈는 옥스퍼드의 학위를 취득한 최초의 여성으로 이후 시, 희곡, 문학 비평, 번역, 에세이에 이르기까지 실로 넓은 영역에서 저술 활동에 매진하게 되며
, 과 같은 종교 희곡과 같은 기독교 에세이를 틈틈이 써오다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로는 오직 기독교 연구에만 매진했다. 말년에 영역한 단테의 <신곡>은 지금까지 탁월한 학문적 성취로 남기게 되지요.
그럼 영국에서 세이어즈와 쌍벽을 이루었다는 아가사 크리스티는 어떨까요?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에게도 추리소설이 아닌 작품도 있는데 국내에는 <리가타 미스터리>와 <빛이 있는 동안> 등의 단편소설집에 들어있는 심령소설이나 환상미스터리, 곧 팬터지소설들 입니다.이것들을 읽어보면 그녀의 추리 소설 못지않게 정교하게 짜여진 것을 알수 있는데 만약 그녀가 추리 소설에만 전념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해리 포터 못지 않은 걸작 판타지 소설들을 출판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자 그럼 미국으로 넘어가서 포우이후 미국 미스터리 소설계를 중흥시킨 S.S 반다인은 어떨까요? S. S. 밴 다인은 예술 여러 분야에 날카로운 감상안을 지닌 평론가로서 잘 알려진 윌라드 헌팅턴 라이트(Willard Huntington Write)의 필명으로 《로스엔젤리스 타임스》의 문예 비평 담당자가 되어 활약했으며 그 뒤로도 《타운 토픽스》, 《스마트 세트》, 《포럼》, 《인터내셔널 스튜디오》, 《뉴욕 이브닝 메일》 등에서 문예 평론과 음악 미술 평론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동시에 문화 관련 서적을 9권이나 쓰기도 했으며 1916년에는 미스터리가 아닌 유일한 리얼리즘 문학 작품을 발표하기도 하였으나 몇몇에게만 인정받았을 뿐 독자들에게 주목받지는 못했다고 하는군요
오히려 <그린 살인 사건>은 1928년 4월에 간행되어 나오자마자 한 달 만에 온 미국의 최고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세 번째 작품으로 벌어들인 반년 동안의 수입은 그가 15년에 걸쳐 문단 생활을 하며 번 수입보다 훨씬 많았다고 하지요.
이들외에도 문학가인 그레엄 그린,서머셋 모음,천주교 주교인 로널드 A.녹스등 당시대에서도 상당히 수준 높은 지식인들로서 이런 분들 모두가 추리 소설들을 쓰셨는데 아마도 국내와 달리 열린 마음으로 수준 높은 글들을 발표해서 추리 문학을 발전 시키지요.
개인적으로 만약 박경리 선생이나 황석영 선생등이 그들의 문학적 재능을 발휘하여 추리 소설을 발표했더라면 아마도 우리 나라 추리 문학계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물론 일반 순문학과는 달리 나름대로 미스터리 기법을 공부하셔야 겠지만 아마도 수준 높은 추리 소설을 쓰지 않았을까 생각되네요.
이런 국내의 문호들이 진작에 추리 소설을 발표했더라면 후학들도 아무 꺼리낌없이 추리 소설들을 병행해서 발표했을거고 국내 추리 문학계도 일본 못지않게 발전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이라도 혹 총대 메고 추리 문학에 도전하실 국내의 거장분들은 안계실까요?
by casp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