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추리작가협회보 6호에 실린 글로 저자는 '유명우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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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과 섹스
유명우 (한국추리작가협회 부회장)
‘추리소설과 섹스’라는 제목 하에서 섹스 문제에 관해서 어떤 완벽한 대안을 제시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미리 이야기해 두어야 하겠다. 문학을 포함한 모든 예술 장르에서 성(性)의 표현이 외설적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상당한 편차를 보여주어 왔다. 때문에 그 판단의 기준을 일방적으로 제시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보편타당한 기준을 설정하기란 불가능한 작업이다. 독자나 감상자에게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으려 해도 독자의 수치심이 어느 수준에서 발동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림에서 나체화가 예술성을 등에 업지 않고는 허리띠 아래를 그처럼 대담하게 묘사할 수는 없다.
예술적이라는 말의 기준은 미적(美的) 탐색의 대상이 된다는 말이다. 인체의 미적 탐색의 작업과 포르노적이라는 사이의 어디쯤에 선을 그어서 출판 검열에 심사기준이 있음직도 하지만 사실 그만큼 눈에 보이는 일이면서도 판단을 내리기에는 무척 힘든 일이라 하겠다.
그래서 아예 섹스를 터부시 하여 기피하는 방법과 적극적 탐색의 방법이 극한적으로 대립되어 오면서 사회적 관용이라는 막연한 합의에 의하여 적당한 선에서 덮어두고 있는 셈이다. 계절에 따라 좀 열어 보기도 하고 장소에 따라 활짝 개방하기도 한다. 인간 행동의 선악 미추(善惡美醜)의 판단 근거는 매우 오래된 철학적 논쟁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여기 짧은 지면에 소개하기는 적당치 않다. 다만 이러한 큰 전제 하에서 추리소설이 어떤 태도로 섹스를 다루어야 할까 하는 당면 과제에 보다 큰 관심을 집중시키고자 한다.
추리소설이라는 장르 자체는 그 발생의 동기에서부터 성장 발달의 과정 어디에서도 섹스와의 인연을 찾아볼 수는 없다. 오히려 섹스가 일종의 금기 사항처럼 되어 왔다.
금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간단히 답을 낼 수 있다. 괴기스럽고 끔찍한 사건에 대한 놀라움과 두려움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무서운 범죄의 결과를 맨 먼저 제시해서 독자와 함께 그 범죄의 동기와 방법, 나아가서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의 이야기가 소설의 중심부를 이루게 된다. 철저한 서스펜스와 스릴의 통제 하에서 독자는 꼼짝할 수가 없다.
이러한 과정 속에는 독자와 작가 사이의 공통의 약속이 성립되어야 한다. 즉 범인은 꼭 잡아야 한다는 것이며 가장 논리적이고 객관성 있게 사건을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추리적 긴장 하에서 독자는 작가가 안내하는 시골길이나 낚시터, 도시의 뒷골목이나 별장의 지하실로 따라 다녀야 한다. 단서가 됨직한 물증을 놓치지 말아야 하고 누가 범인일까라는 중심 과제에 항상 접근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한 과정은 재미있고 따뜻한 이야기가 아니다.
섹스란 인간의 보편적 행위인 동시에 개인에 따라서 특징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는 행동의 동기로 볼 수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사건 속에 내재된 의미를 분석하고 추리하는 과정에서 섹스적 요소를 완전 배제해 버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우선 피해자가 남자냐 여자냐 하는 데서부터 미모(美貌)냐, 의복이 어떤 모양으로 되어 있는가 등등의 시체의 외양적 특징 중 가장 큰 단서는 남녀의 구별이요 다음은 성적인 요소가 사건 속에 개입되어 있는지의 여부에 대한 분석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추리소설에 섹스적 요소를 배제한다는 금기사항은 대단히 막연한 것이며 파기해야 할 조항이라고 하겠다. 다만 섹스를 다루는 태도에 있어서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탐정이나 경찰이 범인 추적에 논리성과 행동성을 보여 주어야지 능숙한 섹스 솜씨나 자랑한다든가 하면 작품은 제 길로 가지 못하고 독자의 관심의 핵을 놓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적어도 살인범을 잡자는 측과 살인 행위를 은폐하고 꼬리가 잡히지 않겠다는 범인 측의 대결은 팽팽한 긴장 속에서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추리소설은 서스펜스가 충만하게 되고 다른 양념을 가미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러나 섹스가 범인 탐지의 방법으로 시용되거나 어떤 새로운 사건의 단서가 된다면 사양할 여지가 없다,
지금 우리의 추리소설이 독자의 관심 끌기 작전의 일환으로 섹스적인 취향을 과잉 삽입한다는 지적이 있다는 점에서 추리문단에 참여하고 있는 모두는 경청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추리는 추리성만으로도 충분히 독자에게 스릴과 서스펜스를 불러일으키면서 끝까지 갈 수 있는 전가의 보도를 갖고 있지 않은가.
(추리작가협회보 제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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