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추리작가협회보 5호에 실린 글로 저자는 '이상우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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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 경감의 이력서
이상우 (한국추리작가협회 회장)
“여기는 함흥 추씨 종친회인데요.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지난 여름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에서 나온 첫 마디였다.
“예? 여보세요, 누굴 찾으시는지요?”
나는 너무 어리둥절해서 되물었다.
“아이, 이상우 선생님 아니세요?”
“그렇긴 합니다만… 뭣 때문에 저에게 감사하다고…”
내가 자신 없는 대답을 하자 그는 또록또록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왜 감사하다고 하는지 추리해 보십시오. 우리는 감사패를 만들어 가지고 선생님을 찾아 뵈올려고 합니다.”
“추씨 종친회라고 하셨죠? 그렇다면 혹시 추 경감 때문에…”
“하하하. 과연 추리작가라 금방 알아 맞추시는군요. 선생님의 작품마다 등장하는 추 경감이 우리 추씨 가문을 빛내 주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추 경감이야말로 추씨 가문의 희망이라고 했다. 전국에 있는 2만여 가구의 추씨들은 내 책이 나올 때마다 서로 권유해가며 사보거나 돌려 본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추리소설은 동일한 탐정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드물다.
굳이 꼽자면 김성종의 오병호, 노 원의 하영구 경감과 맹달수 형사 등일 것이다.
내 작품은 추리소설일 경우 꽁트에서부터 장편에 이르기까지 모두 추 경감과 강 형사가 등장한다. 오래된 작품 중엔 추 경감이 아닌 허 문 탐정이나 조 경감이 나오는 것도 있었으나 그 뒤 모두 추 경감으로 고쳐버렸다.
특히 20여년전에 쓴 소년추리소설에는 허 문 탐정이 많이 등장했으나, 최근에 쓴 [안개섬의 비밀]같은 소년추리소설에는 추 경감이 등장한다.
보통 추 경감으로 쓰이는 탐정의 본명은 추병태(秋秉泰)이다. 추병태는 함흥 추씨 23대손이고 항렬자는 병(秉)이다.
필자와 동갑인 1938년생이고 고향은 평안북도 정주이다. 추 경감의 아버지는 저 유명한 시인 김소월과 친분이 두터웠으며 6.25가 나기 전 남쪽으로 내려왔다.
추병태는 충북 음성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누가 물으면 흔히 그곳을 고향이라고 한다. 고향에서 부모를 여의고 서울에 와서 유명대학의 천문기상학과를 졸업한 뒤 엉뚱하게도 경찰관 시험을 치루어 경찰공무원이 되었다.
그는 경감이 될 때까지 27~8년 동안 수사 형사로서 활약했지만 별로 명성을 날리지 못하다가 1983년 ‘화분살인사건’에서 범인을 잡아 이름이 신문에 크게 났었다.
생김새는 형사답지 않은 동안(童顔)에다 나이보다 훨씬 많은 주름살이 인상적이다. 늘 웃음을 잃지 않는 마음씨 좋은 복덕방 아저씨 같은 그는 불이 잘 켜지지 않는 고물 지포 라이터를 가지고 다닌다. 사건이 잘 풀리지 않거나 추리를 할 때에는 켜지지 않는 고물 라이터를 계속 철커덕거린다.
그는 강남의 25평짜리 서민 아파트에 부인과 나미라는 딸 하나를 데리고 산다.
그는 강 형사와 대조적인 점이 많지만, 청년 시절에 문학을 좋아해서 감상적일 때가 많다는 것은 닮은 점이다.
나는 어느 작품에 제일 먼저 추 경감을 등장시켰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또 왜 성을 추씨로 했느냐 하는 질문을 많이 받지만 뚜렷한 이유는 없다. 그냥 독자들이 외우기 쉽게 하기 위해서 희성을 썼다고 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그 뒤 추씨 종친회로부터 추씨 문중이 훌륭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특히 우리가 잘 아는 ‘명심보감’을 편저한 사람이 추적(秋迪)이라는 것도 뒤에 알았다.
추씨 종친회 외에도 추 경감에게는 가끔 독자의 편지가 온다. 왜 또 그런 실수를 했느냐는 편지가 가장 많았다. 추 경감은 최근 [악녀 두 번 살다]에서 진범을 풀어주는 실수를 했고 [악녀시대]에서는 한 발 늦어 범인을 잡지 못했었다.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나 애거서 크리스티의 푸아로 같은 명탐정은 아직도 끊임없이 독자의 편지가 날아온다고 한다.
우리나라 추리소설에 추 경감 같은 불완전 탐정 말고 진짜 명탐정이 많이 나와 추리독자를 즐겁게 해 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선배 동료 후배 작가들에게 기대해 본다.
(추리협회보 제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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