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추리작가협회보 7호에 실린 글로 저자는 '노원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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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 그녀의 성공의 비결
노 원(한국 추리작가협회 고문)
1990년은 애거서 크리스티가 탄생한 지 1백주년이 되어, 그녀에 대한 기사가 숱하게 쏟아져 나왔다. 그 많은 기사와 정보 속에서 나의 관심을 끈 것은 그녀가 성공한 비결이었다.
이 세상에 자신의 작품이 하루 1백만 부씩이나 팔리는 것을 눈앞에 보는 경이적인 경험을 한 작가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애거서 크리스티를 제외하고 말이다. 크리스티의 평전을 써서 MWA의 최우수 평론상을 받은 그웬 로빈스 여사에 의하면 크리스티의 작품은 생전에 4억부가 팔렸다고 한다. 토마 나르스자크는 그의 추리 평론집 ‘탐정소설’에서 유네스코의 통계자료를 토대로 10억 부라고 밝혔다. 그런데 올해의 신문기사를 보면 영어판이 10억부, 번역판이 10억부, 도합 20억부가 팔렸다고 한다.
크리스티는 언젠가 그녀가 죽어서 10년만 지나면 누구도 그녀의 이름은 입에 올리지 않을 것이며 그녀의 작품은 잊혀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가 죽은 지 10년이 더 지났어도(크리스티는 1976년에 사망) 미국에서만도 해마다 5백만부, 전 세계적으로 2천 5백만권의 책이 팔리고 있다. 그녀의 예언과는 달리 그녀의 이름은 잊혀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섹스 묘사도, 외설적인 구절도 없고 난폭하고 원색적인 장면도 없는 소설로 그만큼 팔린 소설도 사상 유례가 없다.
크리스티가 생전에 번 돈은 자그마치 1천 4백만 파운드나 되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대충 2백억 원쯤 된다. 여기엔 36년간 공연된 ‘쥐덫’에서 얻어지는 로열티 1백 82억원은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크리스티는 런던의 선데이 타임즈가 지적한 것처럼 ‘영국이 낳은 가장 부자인 작가’, ‘고금의 작가 중에서도 가장 돈을 많이 번 작가의 한 사람’이다.
크리스티는 문학적 충동에 의해 글을 쓴다고는 보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을 문학자로 생각하지도 않았으며, 문학적인 야심도 지니지 않았다. 그녀는 모든 프로의 세계에서 보는 것처럼 돈을 벌기 위해 썼다. 그녀는 ‘돈 때문 아닌 다른 이유로 글을 쓰는 것은 바보들뿐이다’라고 말한 새뮤얼 존슨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찰스 디킨즈도 버나드 쇼도 예외는 아니었을 거라고 하지만….
크리스티는 1920년에 발표한 처녀 장편 ‘스타일즈 장의 괴사건’을 비롯해서 1975년에 간행된 최후의 작품 ‘잠자는 살인’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평생 지속한 스타일은 순수한 수수께끼 풀이형의 추리소설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스타일에 평생 충실했으며 다른 추리작가들이 시도한 이른바 심리적인 추리소설 같은 것에 눈길을 돌린 일은 결코 없었다. 말하자면 순수 추리소설 작가로서의 외길을 걸은 것이다.
크리스티의 작품들은 단조롭고 비슷비슷하다는 혹평을 받기도 한다. 사실 등장하는 인물도 양식화되다시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성공하는 것은 매번 새롭고 깜짝 놀랄 결말을 준비한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크리스티는 마지막 장부터 쓰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말한 사람은 크리스티의 남편이었던 맥스 맬로운 교수이다.
“그리곤 첫장으로 돌아가서 차근차근 순서에 따라 썼지요.”
추리소설의 결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아닌가 싶다.
크리스티의 독자들이 묻고 싶어 하는 공통적인 질문이 하나 있다. 그것은 크리스티의 소설에 과연 현실성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 대답은 명확하다.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와 함께 현실성과는 거리가 멀다. 크리스티의 이야기는 한 마디로 동화라고 할 수 있다. 그녀의 환상의 명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어른들의 꿈의 나라를 그리고 있다. 말하자면 현실에선 일어날 법도 하지 않은 이야기이다. 무릇 퍼즐 위주의 본격 추리소설에서 현실성을 찾으려는 투정은 동화의 세계에서 현실성을 찾으려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크리스티는 그녀의 독자들이 그녀가 만든 가공의 이야기의 줄거리를 즐기기만 하면 만족했으며, 등장인물이 종이 인형처럼 움직여도, 인물 묘사에 깊이가 없어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녀가 그리려 하는 것은 인간의 범죄도 아니고 인간의 비극도 아니었다.
크리스티는 새로운 작품을 구상할 때면 긴 산책을 떠나곤 했다. 그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물론 메모용 노트를 휴대하고 말이다. 욕조에서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했다. 그녀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먼저 근본적인 트릭을, ‘저것으로 사람을 속이는 트릭을 사용하면 멋이 있을 거야’라고 하는 것을 착상해요.”
크리스티는 먼저 트릭을 착상하고 그 다음으로 줄거리를 구상했던 것이다.
크리스티가 특히 관심을 가진 것은 살인 수단이었는데, 그녀는 주로 독살이라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녀의 작품의 7할이 독살사건이다. 아무튼 수 주일이 지나면 하나의 줄거리가 형성되는데, 빨리 썼을 땐 6주간에 한 편의 장편 추리소설을 완성했다. 그러나 실제로 쓰는 작업은 즐겁게 쓰고 있을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살인적인 고역이 뒤따른다고 했다. 그리고 중도에 포기하려는 충동을 느끼지 않은 작품은 한 작품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끝까지 써내곤 했다. 영국민의 좋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여기서 내 나름대로 크리스티가 성공한 비결을 찾는다면 다음 두 가지로 집약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첫째가 많은 작품을 썼다는 사실이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크리스티는 평생 94권의 책을 썼는데, 그 중에서 추리소설이 83권으로 103개국에 번역 출판 되었다. 크리스티는 대충 한 해에 두 편의 장편 추리소설을 썼다. 크리스티 자신도 지적했지만 성공의 비결은 평범한 진리이지만 근면이라고 했다. 물론 행운도 중요한 몫을 한다고 했다. 크리스티가 83세의 노령에서조차 글을 썼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녀의 생전의 진짜 마지만 작품은 1973년, 그녀가 죽기 3년 전에 쓴 ‘운명의 뒷문’이다.
둘째로 자기 스타일을 고수했다는 점이다. 그녀는 이미 언급한대로 평생을 수수께끼 풀이의 순수 추리소설을 썼다. 현실성이 없다는 말에도, 문학성이 결핍되었다는 비판에도 개의하지 않았다. 그녀는 결코 위대한 문학자로 자처하지도 않았다.
언젠가 백년 뒤에 어떤 인물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녀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글쎄요. 추리, 스릴러 소설의 좋은 글쟁이었다는 말을 듣고 싶군요.”
(추리작가협회보 제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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