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추리작가협회보 5호에 있는 글로 저자는 '현재훈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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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추리소설의 나아갈 길
현재훈 (1933-1991 / 소설가, 한국 추리작가협회 이사)
한국추리작가협회가 결성된 것은 몇 해 전의 일로서 그만한 토양이 이 땅에 형성되었기 때문이었다. 해방 이후 모든 분야에서 좌우(左右)의 알력이 극심했는데 문학계 역시 이 부류에 휘말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좌파 문학가들은 대부분 자연 도태되거나 월북하여 이 나라에는 우파 문학가들만 남게 되었다. 이것은 정치 판도의 대세에 따라 그 영향 하에서 형성된 문단의 판도인데 이 우파 문학인들이 금과옥조로 신주처럼 내세운 것이 ‘순수’한 것만이 문학의 제재(題材)가 되어야 한다는 소위 ‘순수문학가’들의 주장이었다. 사회가 어떻게 되든지 거기에 관심을 갖는 것은 목적문학적이어서 문학의 순수성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이 완강한 순수 문학 세력 앞에서 여타의 문학은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추리문학 역시 그 계열에 속하는 문학인데 그 정도가 지나쳐서 추리문학이 마치 통속적이고 저속한 저급문학인 듯이 과장 선전된 것이었다.
그러나 대세를 막을 수 없어서 사회가 산업사회로 전환되고 민주주의 의식이 고양되면서 이 땅에 추리문학의 싹이 텄다. 추리작가협회가 결성되고 몇몇 추리작가가 출현하여 지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도 그 대세의 여파인데 여기에 추리문학 자체의 더 한층의 발전을 위하여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고 생각되는 몇 가지 점을 반추해 보고자 한다.
첫째, 추리소설이 단순한 트릭 풀이에만 그치지 말아야 하겠다는 것이다. 추리소설이 다만 교묘한 트릭의 고안과 그것의 해명만으로 사명을 다하는 것이라면 독자는 추리소설을 읽지 말고 야구 구경을 하거나 남이 두는 바둑을 관전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 편이 승부 내기의 묘미를 만끽하기에 훨씬 드릴이 있고 흥미가 진진하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이 ‘소설’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것이 문학이기 때문이며 문학인 이상 인간의 문제와 인간 집단(사회)의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는데 추리소설에서도 이것이 중시되어야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추리소설 역시 문학의 한 양식(장르)이니 거기에 고도의 문학성이 깃들어 있어야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근래에 생산된 우리의 추리소설을 보면 대부분 이 길에서 일탈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게 생각된다. 외국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추리소설이 마치 저급한 문학인 듯이 오해 받기 일쑤인 것이 이 점 때문이니 앞으로는 이런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추리작가들이 문학성 제고에 힘써 주기 바란다.
둘째는 도색성(桃色性)의 문제이다. 이것은 비단 추리소설에서 문제되는 것만은 아니지만 근래에 생산된 우리 추리소설 중 어떤 것을 보면 지나치게 도색성이 강해서 낯을 찌푸리게 되는 것이 있는 데 이 점 역시 추리소설의 품격을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서 삼가야겠다. ‘멍게 같다’느니, ‘쫄깃쫄깃하다’느니 하는 것은 문학 이전에 ‘인간의 성(性)’을 모독하는 지나친 저급파이다. 문학에 있어서 성이 금기인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인간의 성’인 한 인간화되어 있어야 하고 추(醜)해서는 안 된다. 미(美)로서의 성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문학 일반이 추구하는 것이 미이며 이 미에 의한 감동이 주된 것인 까닭에 추리문학 역시 성을 다루되 이 ‘인간의 길’에서 일탈해서는 안 되겠다. 이 점에 우리 추리작가들의 맹성이 있어야겠다. 남의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품격을 지니고 점잖아야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시각 확대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고 양질의 독자를 확보하는 데에도 정도를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셋째, 추리소설의 사회 고발성에 관한 문제이다. 추리소설이 전체주의국가나 독재국가, 특히 고대 독재국가에서서는 번성하지 못하는 까닭이 다른 문학양식보다 사회고발성이 강하기 때문인데 이 점에 있어서도 우리나라의 추리문학이 그 태동기에 놓여 있기 때문인지 그 경향이 여간 약하지 않나 생각된다. 지금 우리나라는 광범한 민중의 폭발적 요구에 의하여 민주화의 길로 접어들고 있으며 이 길은 앞으로 더욱 촉진되리라고 보는데 우리 추리작가들도 이 점에 개안하여 민주화의 역군의 대열에 서 주기 바라는 것이 필자의 열망이다.
(추리작가협회보 제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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