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소설 작가가 되는 길: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방법에 관하여 World Building
글쓴이: Karl Schroeder (1996년)
우리말 옮긴이 : 고장원
읽기 전에/ 옮긴이의 말:
다음 글은 칼 슈로더가 캐나다 토론토 Toronto의 조지 브라운 대학 George Brown College에서 과학소설과 환상소설 작법을 수년 간 강의한 경험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이다. 과학소설에서 이야기의 토대나 배경을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무척 중요하다. 과학소설의 배경설정은 일반적으로 주류소설에 비해 상당히 독특하다. 하지만 독특하다고만 해서 훌륭한 과학소설이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음 글은 과학소설 작가로서 입문하고자 하는 아마추어들이나 신인작가들에게 도움이 되리란 생각으로 번역한 것이다. 주제가 과학소설 작법과 관련된 문학론이다보니 번역에 어려움이 없지 않았다. 오역이 된 부분이나 이해하기 어렵게 표현된 부분이 있다면 죄송하게 생각한다.
* 허구 세계란 무엇인가? What a world is?
(소설이 창조해낸) 허구의 세계들은 단순히 종이 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게 매우 중요하다. 그러한 세계들은 작가가 제공하는 실마리와 안내를 받아 독자의 마음 속에 자리잡는다. 이 말은 결국 작가인 당신이 어떤 세계를 종이 위에 담으려고 아무리 애를 쓴 들, 독자가 그것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상상력으로 완성시키지 않는다면 그 세계를 설득력있게 창조하는데 실패했다는 뜻이다. (소설에서 묘사되는) 하늘의 색이 어떠할지, 새롭게 재구성된 지구의 느낌이 어떠할 지를 놓고 궁극적으로 시각화하는 이는 바로 독자이다. 작가로서 당신이 해야할 일은 독자에게 다 된 음식을 내놓는 게 아니라 그가 스스로 요리를 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당신이 그려낸 세상에 대한 당신의 느낌과 독자의 느낌이 같으란 보장은 없다는 얘기다. 그 세상을 방문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작가인 당신은 독자가 그곳으로 가도록 방향을 일러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길을 일러주자면, 일단 당신 스스로가 그곳을 방문해보아야 한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과학소설 작가들은 독자들의 형편을 감안해가면서 그 세상을 들여다보지는 못하는 것 같다.
* 등이 없는 처녀 The "backless maiden"
아서 왕 시대의 이야기 가운데 한 아름다운 처녀에게 유혹을 당하는 기사의 일화가 나온다. 희안하게도 그 처녀는 결코 그 기사 쪽으로 등을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말을 그에게 건네주고는 그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짓는다. 그러나 그녀가 불가에 다가서자, 그는 그녀의 뒷모습이 비친 그림자를 보고 그녀가 등이 없어서 그에게 등을 보이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녀는 어떤 여인의 살아 움직이는 껍질 the animate mask of a woman이었던 것이다. 이제 그는 큰 위험에 처한다.
과학소설 텍스트는 '등없는 처녀' 이야기와 다를 바 없는 형식을 취해야 한다. (즉 구구절절이 작가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독자가 유추 해석하게끔 해야 한다는 뜻;역자주)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과학소설 작가들이 저지르는 한가지 큰 실수는 작가들이 그점을 깨닫지 못한 채 글을 써내려간다는 사실이다. 지면 위의 세계보다 더 허구적인 세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한 세계는 우리가 그 단어들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내는 추론과 연상 덕분에 생명력을 얻는다. 그래서, 과학소설 작가들의 과제는 지나칠 만큼 꼼꼼하게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 스스로 이 세상 자체를 능동적으로 요모조모 뜯어볼 수 있도록 이미지들과 비유들, 그리고 시나리오들을 조합하는 일이다.
독자는 적극적인 협력자다. 우리가 적절한 힌트만 주면, 그 가공의 세계를 놀라우리 만치 세밀하게 창조해낼 것이다. 그러므로 독자가 경험하고 싶어할만한 것들을 죄다 작가가 먼저 나서서 상상할 필요는 없다. 그 빈칸을 채우는 것은 독자의 몫이니까. 단 구둣점들을 적절하게 배열하는 것은 작가의 책임이다. 그렇지 않으면 작가가 말하고 싶어하는 이야기와는 동떨어진 세계를 독자가 상상하다가 끝나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 SF작가는 반드시 과학지식을 전문적으로 갖춰야 하는가? The problem of technical expertise
과학소설 작가로 입문하는 신인들 대다수는 과학소설을 쓰려면 모든 분야의 과학지식에 통달해야 한다고 여긴다. 이에 대한 내 입장은 늘상 이렇다.
"당신이 과학소설을 쓰면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책무는 과학적으로 타당성이 없는 내용을 쓰지만 않으면 된다."
더우기 과학을 약간 왜곡시키는 방법만이 당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면 엄격한 과학의 논리로부터 웬만큼 벗어나도 좋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양자역학의 일부 특징들을 원용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그 학문 자체에 대해 알아야만 한다. 또 현대물리학을 이용한 이야기를 쓰려면 당신의 서술이 적어도 기존 과학지식과 정면 배치되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당신은 과학자가 아니다. 당신의 임무가 독자들에게 과학을 교육시키는 일이라면 차라리 에세이를 쓰는 편이 낫다. 소설은 궁극적으로 사람들에 관한 것이니까.
나는 항상 이점을 두고 논쟁을 벌인다. 상당 수의 과학소설 작가들이 내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학소설에서 지난 몇년간 가장 단명한 요소가 무엇인가? 과학소설에서 가장 변화가 극심했던 것은? 그것은 소위 '과학이론의 영원한 진리 eternal truths of scientific theory' 아닌가. 초창기 과학소설들은 에테르나 N광선 따위의 존재를 다루었는데, 그것들은 당시만 해도 실제 가능한 줄 알았다. (현대과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과학자들조차 우주공간이 에테르라는 특이물질로 채워져 있고 진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역자주) 우리는 그 당시 나온 작품들을 지금도 읽어보면 즐거움을 맛볼 수 있고 심지어는 감동을 받기조차 한다. (한 예로 웰즈의 <우주전쟁 The War of the Worlds>을 읽어보라.) 그 작품들에 나오는 과학적 설정이 아직까지 증명되지 않은 부분들이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왜 그러한가? 그것은 과학소설이란 한 시대의 과학적 진리를 입증하는데 주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야기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과학소설은 과학이 아니라 사람들을 다룬다.
작가가 묘사하는 세계는 궁극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이바지해야 한다. 반대편에서 시작했다가 (즉 가공의 세계와 기본 플롯이 서로 긴밀한 상관관계를 갖지 못한 경우) 설득력있는 세계 만들어내지 못해 고배를 마시는 작가들을 나는 왕왕 보게 된다.
* 신인작가들의 경향 What beginning writers tend to do
나는 두번째 장편소설을 쓸 때부터 메모를 시작했다. 그것도 많은 양의 메모를. 사실 내가 최종 탈고한 소설보다도 메모한 분량이 훨씬 더 많다. 나는 작품과 관련된 환경설정에 관한 내용 일체를 메모해두었다. 예를 들면, 그 세계의 경제, 기후, 역사 등등. 그리고서야 비로소 이야기를 지어내기 시작한다. 내가 어느새 나의 창의적인 에너지를 이야기 짜기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 세우기에 다 쏟아 부어 넣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은 한참 뒤에 가서다.
나는 자신이 지어낼 이야기에 맞는 우주를 창안하느라 몇년씩 보내는 작가들을 많이 알고 있다. 이것은 매우 재미있는 게임이다. 이 작가들은 자신들이 상상으로 만들어낸 세계들에 대해 거의 백과사전에 육박하는 지식체계를 갖추어 놓았기 때문에 그러한 토대 위에서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떠오르게 된다. 이것은 바람직하다. 비록 대개는 작가가 막상 하나의 단편이나 장편을 써나가다 보면 애초에 준비한 세세한 자료들을 다 활용하지 못하고 걷어내는 것들도 생기게 마련이지만, 그 세계에 관해 가정된 사실들은 이미 결정되어 있으므로 작가가 만들어내는 것은 뭐든지 그러한 사실들과 대조해 일치시키면 된다. 단편을 반쯤 써나가다 보면, 작가는 특정 중요사건이 애초에 창안해놓은 세계의 역사나 물리적/ 사회적 구조와 모순을 일으키므로 그 사건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한다. 장편의 경우에는, 작가가 모든 것에 대해 일일이 설명을 충실히 해주어야만 성에 차는 성격이라 몹시 복잡한 플롯 구조를 만들어내는 이도 있다.
작가인 당신이 작품에 만족하는 수준과 동일하게 독자에게도 만족을 주라. 독자를 만족시키는 단 한가지 방법은 당신이 쓴 단편의 내적인 일관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당신은 그 단편을 자신이 구상하는 세계상과 일치시킴으로서, 외적인 일관성까지 갖추게 된다. 이것은 역사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실주의적 장편소설에 더 좋다. 후자의 경우에는 독자에게 익숙한 외적 일관성을 작가가 무너뜨린다면 독자는 내적 일관성마저 무너진다고 여길터이니까 말이다. 과학소설은 전적으로 그것의 내적 논리의 지원을 받는다. 독자들이 너무나 친숙한 내용이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패러다임은 과학소설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러한 예로 초광속 hyperdrive 개념이 있다.)
독자는 당신이 창안한 세계를 당신 만큼 낱낱이 알고 있지는 못하며, 당신의 이야기가 지닌 힘으로 독자의 감정을 끌어내기 전까지는 당신 만큼 주의깊게 그 세계를 받아들일 수 없다. 톨킨의 환상소설 <반지의 주인 The Lord of the Rings>은 매우 복잡하고 상세한 배경을 지녔지만, 그 배경은 그 이야기 자체가 견고하기 때문에 재미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작업 할 때 단편의 아이디어들을 고무시켜주는 상상의 세계에서 시작한다. 일단 집필에 들어가면, 나는 그 가공의 세계를 이야기의 필요성에 맞게 주저없이 변화시킨다. 그 세계를 창안해내느라 얼마나 공을 들였건 간에 상관없이, 그 세계가 플롯, 등장인물 그리고 주제에 별 기여를 하지 못한다면 그 세계는 아예 폐기되어야 마땅하니까.
이에 관해 더 연구를 하고 싶다면, 다음 두 편을 예로 참고하라. 하나는 래리 니븐 Larry Niven의 <알려진 우주 Known Space>시리즈고 다른 하나는 존 버얼리 John Varley의 <침입 Invasion>시리즈다. 니븐은 그의 단편들 각각이 그의 이전 작품들과 일관성이 있게 해놓았고, 그 결과 나중에 가서는 이 우주('알려진 우주'를 말함;역자주)에서 새로운 단편들을 써낼 거리가 바닥나고 말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버얼리의 장편 <강철 해안 Steel Beach>은 부분적으로 그의 다른 단편들 몇편과 동일한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것이 내적인 일관성이 필요하게 되면 어디서나 이야기의 곁가지를 쳐나간다. 나라면 확실히 위의 두 전략 가운데 당연히 버얼리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 극적인 복합환경의 설정Creating dramatic milieus
(우리가 보기에) 가장 그럴 듯 해보이는 상상의 세계는 그 토대가 아주 극적인 곳이다. 그 세계 자체가 극적인 상황들을 연출하도록 고안되면, 당신은 몇년을 두고 그것을 창의적으로 (광산에서 보석을 파내듯이) 캐내 쓸 수 있다.
텔리비젼 시리즈 <스타 트랙 Star Trek>은 극적인 원칙에 따라 고안된 복합환경의 한 예이다. 예를 들어 무엇이든 입자로 분해하여 순식간에 목적지에 옮겨놓는 물질 전송기란 아이디어는 등장인물들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느라 소모되는 시간을 줄여 관객의 지루함을 덜어준다. 이 장치는 한 장면에서 다음 장면으로의 전환을 빠르면서도 무리없게 해준다. 홀로덱 holodeck은 우주선의 정상환경 밖에서도 모험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시리즈가 탐사선을 무대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단편들이 자연스레 시리즈로 이어질 수 있음을 반증한다.
흥미로운 아이디어들이라고 해서 모두 극적이란 법은 없으며 상상력이 풍부한 세계라고 해서 반드시 저절로 갈등을 유발하지도 않는다. 나는 '텔사 Tesla'의 과학이 적용되는 또다른 차원의 지구(평행우주 parallel Earth라고도 한다.)에 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다. (여기서 '텔사'의 과학이란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 과학과는 뭔가 다른 가상의 과학을 의미하는 듯하다.;역자주) 그 세계는 방송전파를 이용할 수 있어서 전쟁도 원격조종으로 치룬다. 아깝게도 이 아이디어들은 재미는 있지만 그 자체가 갈등을 유발하지는 못한다. 나는 이 세계를 배경으로 한 단편을 하나 썼지만, 이 단편 배후의 동인은 텔사의 과학과는 다른 것이어야만 했다. 그러고 보면 텔사 어쩌구 저쩌구 하는 설정들은 전부 불필요한 군더더기들이 아닌가. 진작부터 그렇게 쓸 일이지 왜 쓸데없는 잡념을 생각하느라 머리를 싸맸던가! 이야기 자체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배경은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다.
나는 제약이 있을 수록 글을 쓰기가 더 좋다. 예를 들어 외계인들이 지구에 와서는 지구인들이 은하계의 다른 어떤 종족들과도 달리 (뭐든지 잡아먹는) 잡식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아연실색했다고 상상해보자. 그들은 태양계를 위험지구로 판단해 외부와 격리시켜버린다. 이런 전제 조건을 밑바탕으로 해서 아이디어가 풍부한 온갖 단편들이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면 유전적으로 인간들을 재구성해서 채식주의자들로 만드는 유전공학 캠페인과 그에 대한 반응, 인구가 1조명을 넘어서자 태양계 자원을 이용하려는 시도, 태양계 변방에서의 지구인과 외계인의 우연한 만남, 태양계 격리를 분쇄하려는 시도와 이에 대한 안팎의 저항 등등... 그야말로 극적인 세계가 자연스럽게 펼쳐지지 않는가!
* 이야기가 세계를 만든다 The story makes the world
가공의 멋진 세계를 만들어 내는 일은 즐겁지만, 작가에게 반드시 유용한 활동은 아니다. 나는 내가 묘사하는 세계를 면밀하게 머리 속으로 그려보지만, 그것은 대개 내가 단편에 착수하고 나서부터다. 그리고 그 단편은 그 세계의 가능성을 제약한다. 작가로서, 나는 내 창의적인 에너지가 단편 자체를 향해 잘 맞춰져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내가 잘 표현하기만 (안내해주기만) 한다면, 독자들은 내가 그들에게 말해줄 수 있는 것보다도 더 완벽하고 밀도있는 현실감을 부여한 자신들만의 세계를 창조해낼 테니까 말이다.
궁극적으로 당신의 문학 세계가 번영하게될 유일한 곳은 바로 독자의 상상력 속이다.
번역 완료일: 98년 4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