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 전파 Pontifications
* 로버트 실버버그Robert Silverberg의 에세이집 <반사와 굴절Reflections & Refractions> (부제:과학소설, 과학 그리고 그밖의 문제들에 관한 생각)의 서문
우리말 옮긴이: 고 장원
"다리 bridge"는 라틴어로 폰스 pons라고 하고 다리를 건설하는 이를 폰티훽스 pontifex라고 한다. 폰티훽스는 또한 고대 로마 사제단의 일원을 의미하는 용어였는데, 폰티훽스들의 애초 임무에는 다리가 잘 보수되어 있는지 점검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 집단의 수석 사제는 폰티훽스 막시무스pontifex maximus라고 불리웠다. 최초의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가 자기 자신이 모든 중요한 정부 부처들의 수장으로 복수 취임함으로서 모든 권력을 손아귀에 넣었을 때, 그가 차지한 직책 가운데에는 폰티훽스 막시무스도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제국의 왕관을 쓰게된 후계자들 역시 너나 할 것 없이 그 직책을 유지했다.
마침내 제국은 멸망하고 말았지만, 로마 자체는 물론 살아남아서 카톨릭 교회의 수장인 로마 주교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고전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난 르네상스 시대에, 폰티훽스라는 옛 단어는 이 지방의 고위 성직자를 칭하는 말로 다시 쓰이기 시작했는데, 물론 여기서 고위 성직자라 함은 당시 카톨릭 교회의 로마 주교, 다시 말해서 후일의 교황을 의미했다. 이러한 용어법의 내력 탓에, "폰티프pontiff"라는 영어 단어가 교황이란 말과 동의어로 생겨났다. 19세기 초엽에는 "폰티피케이트pontificate"라는 영어 단어가 여기서 다시 갈라져나오게 되는데, 그것은 "미사를 집전하다"라는 뜻이었다. 교황 뿐 아니라 누구라도 미사를 집전할 수 있었다. 확고한 믿음과 그것을 강력하게 설파할 의지만 있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이러한 의미는 '다리 건설'이란 원래의 뜻과는 너무 동떨어져버린 셈이지만, 이것이야말로 언어가 움직이는 방식을 보여준다.
물론 오늘날에도 우리 가운데에는 그러한 미사 집전자 pontificator들이 많이 있다. 나 역시 그러한 이들 중 한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이제 나는 여러분 앞에 나의 미사(나의 개인적인 철학;역자주)가 담긴 두꺼운 분량의 책을 한권 드리려 한다.
개인적이고 시시한 농담 하나가 여기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내가 (글을 쓸) 지면이 생길 때마다 기독교 세계의 실질적인 교황이란 소리를 듣고 싶다고 피력한 1957년 이래로 나 자신이 다양한 상황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나의 이처럼 불손한 환상은 대학시절 읽은 프레더릭 롤프 Frederic Rolfe의 유명한 소설 <하드리아누스 7세Hadrian the Seventh>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다. 이 소설에는 벽지의 영국인 성직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그는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그럴싸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교황의 자리에 오르게 되고 급기야는 무시무시한 종교개혁 캠페인을 벌인다.
교황에 대한 나의 주장은 롤프의 하드리안과 비교하면 별거 아니다. 내가 로마 카톨릭 성직자가 아닌데다 사실상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점까지 감안하면 말이다. (게다가 나는 결혼까지 했다.) 그러나 나는 다음과 같은 출세과정을 마음 속에 그려보았다. 새벽에는 세례로 시작해서 성직에 투신하고 아침나절에 추기경 모임의 일원으로 빠른 승진을 한 끝에 황혼 녘에는 교황이 된다. 그 다음에 나는 사제의 금욕생활을 폐기하고 영국 성공회를 비롯한 분파주의 교파들을 한 마당 안으로 받아들이며 과학소설 작가들을 추기경으로 임명한다. 즉 유서깊은 카톨릭 교회를 완전히 거꾸로 뒤집어 놓아버리는 것이다. 아울러 나는 기꺼이 연호를 사용하는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 한동안 나는 베드로2세Peter the Second (예수의 제자 베드로에 빗대어 붙인 이름; 옮긴이주)가 되는 공상을 즐겼는데, 이는 그러한 발상의 웅장함 때문이 아니라 실제의 베드로처럼 나 역시 유태인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름을 너무 고상하게 지으면 다소 유난스런 티를 내는 것 같아, 그냥 식스투스 6세Sixtus the sixth로 정했다. 이전에도 식스투스란 이름을 지닌 교황을 다섯이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중 다섯번째 인물은 시스틴 성당Sistine Chapel[주1]을 맡고 있다.
에, 나는 단 한번도 교황이 되어본 적이 없다. 내가 쓴 단편 <바티칸에서 온 복음Good News from the Vatican>에서 로봇 교황이 식스투스 7세란 이름을 고르게 한 적은 있지만. 그리고 나는 장편 <발렌타인 경의 성Lord Valentine's Castle>에서 내가 오래 전부터 간직해온 불경스런 야망에게 나의 교황권을 넘겨 주었는데, 이 작품에서 나는 마지푸어Majipoor제국의 황제에게 폰티훽스라는 직함을 주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해온 일 가운데 하나는 포괄적이고 비유적인 면에서 볼 때 수없이 많은 일종의 미사의 집전이다. 다시 말해서 나는 내가 아주 잘 알고 있는 주제에 관한 내 의견을 멀리 그리고 널리 퍼뜨려왔다. 그 주제란 바로 과학소설이다.
과학소설 독자들은 대체로 자기들의 사상을 널리 퍼트리는데 대단히 의욕적이다. 내가 보기에 요즘에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전자매체를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유포시킨다. 하지만 인터넷이 현실화되기 오래 전에도, 실제로 1930년대 만큼이나 예전에도, SF계에는 소규모 발행부수의 개인적으로 발행되는 잡지들, 이름하여 팬진fanzines들의 네트웍이 존재했었다. 타이프라이터를 소유한 과학소설 애호가라면 누구나 자신이 선호하는 종류의 읽을거리에 관한 온갖 의견들을 거침없이 늘어놓을 수 있는 힘을 가진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특히 팬진 운동 초기에는 이러한 잡지들 가운데 일부가 수동식 조판으로 우아하게 인쇄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는 오늘날에는 거의 사라져버린 방식인 등사인쇄, 젤라틴판 복사hektography 그리고 중복오사(重複誤寫)dittography와 같은 방식으로 조잡하게 만들어졌다. 나 역시 그러한 것들 중 하나를 만들었는데, "우주선Spaceship"이란 제목으로 49년부터 55년까지 발행했다. 이것의 발행을 중단한 까닭은 내가 과학소설을 널리 전파하는 입장에서 직접적인 생산자, 즉 과학소설 전업작가로 신분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내가 과학소설 팬이었던 시절 나의 견해를 설파하고자 했던 나의 열정은 때때로 후에 가서 나를 약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예를 들면, 지금도 나는 당시 비교적 인기있던 팬진 가운데 하나인 "환상의 세계들Fantastic Worlds" 52년 가을-겨울호를 소장하고 있는데(이것은 비교적 돈을 들인 사진옵셋 인쇄방식으로 제작되었다.), 거기에는 "환상의 세계들"이란 신규 프로페셔널리즘 과학소설 잡지와 그 편집자인 하워드 브라운Howard Browne에 관한 나의 글이 실려있다. 나의 글을 이렇게 시작된다.
"하워드 브라운이 분위기와 형식 그리고 내용에서 최고의 반열에 드는 고품질 과학소설잡지를 편집해보겠다는 그의 야심과 (그 자신도 시인하고 있다시피) 이 분야에서 이미 두개의 삼류 잡지들을 편집해본 자신의 별볼일 없는 오랜 경력을 어떻게 조화시킬지가 출판업계의 가장 큰 수수께끼들 중 하나로 내내 남을 것이다."
브라운의 형편없는 편집솜씨를 이리저리 비꼰 다음, 나는 그의 새 잡지 "환상의 세계들"에 관한 논의를 계속한 끝에 이번에는 그가 정말로 가치있는 것을 만들어낸 데 대해 놀라움을나타냈다. 나는 "환상의 세계들"이 번창하기를 바란다는 아량을 보이면서 나의 작은 에세이를 끝마쳤지만, 내 언급의 주안점은 브라운이 지적인 어른들도 읽고 싶어할만한 잡지를 만들어낼 능력이 있음을 새삼 입증해낸데에 대한 놀라움에 있었기 때문에(당시 내 나이는 17세였다.), 내가 말미에 덧붙인 찬사와 바램 정도로는 내가 그에게 점수를 땃다고 보기 거의 어려울 것이다.
그 역시 가만있지 않았다. "환상의 세계들"의 같은 호에 나의 혹평에 대한 브라운의 반박이 실렸다. 그는 "하룻 강아지가 너무 기어오른다."며 자신에 대한 비판에 맞대응한 미국 중서부 어느 편집자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포문을 열었다. 조목조목 그는 이전까지의 자신의 편집자 경력에 대한 나의 온갖 힐난에 반박했다. 그런 다음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가 신형 다이제스트판으로 펴낸 처음 두 호에 대한 실버버그씨의 거의 황홀할만한 반응에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현혹될 사람이 아니죠. 편집자들에게 열성적으로 편지를 보내고 팬진을 펴내며 팬클럽에 가입하는 열성분자들은 어느 날 어떤 사람을 영웅으로 떠받들었다가 다음 날 인정사정없이 깎아내려버립니다. 어느 쪽이건 약간의 명분을 달아서 말입니다. 이러한 집단의 눈에 "환상의 세계들" 2호가 전혀 환타지나 과학소설이 아닌 긴 서스펜스 작품을 실은 게 눈에 띄는 날이면, 나는 이쪽 문단의 배신자로 욕을 있는대로 먹을 것입니다."
이렇게 계속 이어지는 브라운의 글은 통상적인 과학소설 팬이나 밥 실버버그 Bob Silverberg같은 이가 그의 잡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그가 별로 개의치않겠다고 딱부러지게 입장을 밝혔다. 그의 목표는 단순히 매달 많은 판매부수를 보장해줄 편집방향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나 역시 내 작은 글이 브라운의 주목을 끌었다는 점에 우쭐한 채로 살았다. 그가 실제로 내 말에 단 한순간이라도 상처를 입은 적이 있으리라고는 꿈도 꿔보지 않았다.
시간을 흘러 삼년후 청년이 된 나는 팬에서 작가로 변신하는 과도기에 있었는데, 이렇게 된 데에는 부분적으로는 나의 모교인 고등학교 신문에 내가 기고한 어느 과학 소설 장편에 대한 신랄한 비평의 결과였다. 즉 그 비평은 해당 장편을 출판한 출판사의 주목을 끌어 나는 그 출판사와 출판계약을 맺게 되었다. 한 작품에서 다른 작품으로 계속 거래가 이어지면서 오래지 않아 나의 단편들이 여기저기 실리게 되었다. 그 와중에 이 업계에서 함께 일하게된 사람들 가운데에는 결국 "환상의 세계들"의 편집자이자 그 자매잡지 "놀라운 이야기들Amazing Stories"의 편집자인 하워드 브라운도 있었다. 당시 나는 예전에 내가 브라운에게 퍼부었던 비난을 까맞게 잊은 채였다.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내가 그에게 원고들을 가져온 첫 순간부터 줄곧 내가 1952년에 그처럼 주제넘은 팬진 기사를 썼던 꼬마였음을 전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때를 기다리며 참았고 육개월이 지나도록 나는 그에게 계속 원고를 팔았다. 그러던 1956년 초의 어느 날, 내가 그런대로 읽을만한 최신작품을 들고 브라운의 맨해턴 사무실에 나타났을 때, 그의 책상 위에 "환상의 세계들"의 복사본이 놓여 있었다. 그는 씨익 웃더니 그것을 내게 내밀었는데, 나는 분해서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여전히 내가 그의 편집실력을 깔보고 있는지 궁금해했고 그래서 나의 작품을 그렇게 자주 사들였던 것이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젊은 혈기의 성급함에 관해 뭐라 둘러댔던 것 같은데, 그는 나의 사춘기 시절 경솔함을 너그러이 용서해주었고 이후에도 그가 편집자 생활을 하는 동안 적지 않은 수의 내 작품들을 계속 사주었다. 그다지 관대하지 않은 사람이었다면 내가 겁도 없이 그의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내쫓아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하워드는 신사였고 프로였다. 당연히 그는 나의 견해를 뜯어고치려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나보고 독선적인 호전성을 좀 누그러뜨리라고 조언해주었고 그래서 오늘날의 나처럼 부드러운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었다.
전업작가로서의 첫 십년간, 나는 과외활동으로 동료 작가들의 신작들에 관한 비평을 꽤 많이 썼다. 더 이상 팬진에 싣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한Infinity>이나 <과학소설 이야기들Science Fiction Stories> 같은 당시의 과학소설 전문잡지에 게재하기 위해서 말이다. 주류로 들어오면서 나는 일찌기 하워드에게 했던 식보다는 더 관대하게 그 작가들을 대했다. 이는 내 동료들도 나처럼 최선을 다하려 안간힘쓰는 가엾은 인간들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작품들을 비난하기보다는 칭찬해주려 했고, 심지어는 비난할 때에조차 칭찬해줄만한 구석이 도무지 없을까 하고 애써 찾아보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겉만 요란하지 알맹이 없는 내용과 혼성모방의 바로 한복판에서도 여전히 생기가 흐르고 감동을 주는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점은 미지의 누군가가 쓸 수 있고 그것도 아주 훌륭하게 쓸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다.") 결국 내 동료들의 작품을 재단하는 과정이 불편하기 짝이 없어서 1970년쯤부터는 여간해서는 작품비평을 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읽는 책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에 대해서, 문체에 대해서, 출판사들의 제반 정책에 대해서, 정치 지도자들에 대해서 그리고 사회 일반에 대해서 내가 더 이상 의견을 갖고 있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 역자주
1. 시스틴 성당은 바티칸에 있는 로마 교황이 직접 관리하는 예배당이다. 시스틴이란 말도 원래는 "로마 교황 식스투스의"란 의미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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