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박광규'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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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K. 딕(1928-82) 현실 붕괴로서의 현실
지은이: 스즈키 아키라 鈴木 晶
옮긴이: 박광규
미국의 새로운 SF 상황은 어떠한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사이버펑크일까? <뉴로맨서 Neuromancer>가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영향으로 쓰여졌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사이버펑크의 작가들이 딕(과 <블레이드 러너>)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 그들은 딕의 후계자인 셈이다. 다만 이 후계자들은 천재 딕을 능가할 수 없을 것이다.
딕은 30년간 직업 작가로 일해 왔다. 그 동안 적어도 48편의 장편 소설(이 중 34편이 생전에 출판), 100편 이상의 단편, 몇 편의 에세이, 강연, 수천 통의 편지, 그리고 1974년 봄 신비 체험에 관한 100만 단어 이상에 이르는 주석을 썼다.
폴 윌리엄스에 따르면. 미국에서 딕은 돌연한 죽음과 <블레이드 러너> 상영 이전에는 SF팬과 문학 연구자 이외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등지에서는 훨씬 전부터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여겨졌다. 영국의 뉴 웨이브 작가들, 프랑스의 '아이율 에 드망' 작가들, 그리고 일본에서는 야마노山野浩一 같은 작가가 딕을 '발견'한 것이다. 미국에서의 딕에 대한 평가는 사후에야 겨우 해외 수준에 좇아을 정도였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딕에 대한 평가는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물론 <유빅>은 '베스트 SF'라는 부류의 리스트에는 반드시 포함되지만 대체로 '팔리지 않는' 작가인 것은 사실이다. 딕 붐은 그가 죽은 뒤의 일이다.
어쨌든 딕의 인기는 최근에 갑자기 높아졌다. '일부' 사람들 사이에서는 딕에 대한 비평이 풍성해지고 '일반'에도 이제까지 SF를 읽어 본 적이 없는 독자층에까지 넓게 침투하고 있다(딕이 팔린다고 해 봐야 뻔한 것 아니냐고 자칭 정통파 SF독자들은 비웃을 것이다). 대대적으로 출판되었는데, 야마노, 야마다山田和子 그리고 당시의 편집장 S씨 덕택에(덧붙인다면 산케이 문고에 걸작 미스터리가 많이 들어 있는 것도 S씨 덕분이다) 뼈 있는 SF를 많이 낼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대부분 절판된 산리오 문고지만 딕의 작품만은 착실히 계속 출간되고 있다. B급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B급이기에) 지금 미국에서나 일본에서 컬트 영화로 되어 있다.
딕이 지금처림 광범위한 독자를 얻게 된 계기는 그의 갑작스런 죽음을 제외한다면 <블레이드 러너>와 <발리스> 3부작 때문일 것이다, 고딕 풍의 고층 빌딩 거리, 피라미드형의 거대한 건축물, 그 상공을 에어카가 날아 오른다. 거리에는 군중들이 넘쳐나고 그들 머리 위로는 산성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빌딩의 벽에는 거대한 스크린이 있어 '게이샤'같이 보이는 일본 여성이 히죽 웃으며 일본 제품을 선전하고 있다. 여러 종류의 잡다한 언어가 난무하는 인종 전시장……. 가사이 다케시笠井潔는 <블레이드 러너>에 관해 "어떤 기계나 기구라도 시간이 지나면 곧 낡고 더러워진다……. 그 오염에 대한 자각이라는 면에서 상당 정도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라고 평하였으나,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사람들은 오염의 감각을 통해서만 미래를 상상해 낼 수 있게 되고 (<코인로커 베이비즈>), <블레이드 러너>는 이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블레이드 러너>와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인 딕의 소설]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블레이드 러너>의 세계가 그대로 딕의 세계는 아니다. 츠지 다카유키가 말하듯이 <블레이드 러너> 그 자체가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뿐만 아니라 딕 SF전체에 대한 1980년대의 비평으로, 영상으로 묘사된 LA 테크노폴리스의 원숙과 퇴폐는 분명히 그 이후의 '딕 산업'이라 할 만한 딕 론(論) 자체의 원숙과 퇴폐와 합치한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와 <블레이드 러너>의 비교 연구가 활발하다고 한다.
<발리스> 3부작은 이제까지 SF를 읽은 적이 없는 독자들까지 끌어들여 한동안 어디에 가나 '발리스'라는 말이 주문처럼 들리곤 했다. 그와 때를 같이해 설화의 미학에 집착하는 SF팬이 노골적으로 거부 반응을 나타낸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뛰어난 작가가 자신이 속해 있는(주위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장르에서 밀려나는 것은 당연하지만 <발리스>에 의해 딕은 이른바 SF팬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 버렸다, <발리스>는 하나의 신학이자 '독'이다. 거기에 내재해 있는 여러 가지 '신학' 중에서 하나의 큰 열쇠는 서양 역사 내부에 연면히 이어져 온 그노시스주의이고, 그것이 상징 체계가 붕괴하고 공허한 기호만 표층에 나도는 시뮬라크라 simulacra의 시대에 지하로부터 분출하는 모습에 실로 현기증을 느낄 뿐이다.
비평이 성행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각기 분출구를 필사적으로 찾는다는 것을 뜻한다. 안드로이드, 사이버네틱스, 엔트로피, 역易, 그노시스, 융, 시뮬레이션, 그리고 물론 마약. 어느 각도에서 논하더라도 예를 들어 시뮬레이션의 주제와 그노시스주의적인 세계관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딕의 세계를 볼 수가 없다. 그와 동시에 실로 잡다한 것들이 부딪쳐 거의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플롯이 도중에 파탄을 맞는 딕의 작품을, 그에 대한 비평의 산에 매몰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딕을 씨앗으로 삼아 무엇인가를 논하려는 사람들의 손에서 딕을 구출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주요 작품
<하늘의 눈 Eye in the Sky>(1957), <고성의 사나이 The Man in the High Castle>(1962), <화성의 타임슬립 Martian Time-Slip>(1964), <파머 엘드리치의 세 개의 상흔 Three Stigma of Palmer Eldritch>(1965),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 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l968), <유빅 Ubik>(1969), <발리스 Valis>(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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