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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감상] 중국의 SF문학 붐을 보고 느끼는 단상
글쓴이: 고장원
작성일: 97/08/18
97년 8월 20일자 뉴스윅 기사를 보니 중국에서 때아닌 과학소설 붐이 일고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 과학소설은 연상한다는 것은 우리의 좁은 식견으로 보기에 전혀 연관성이 없는 이야기같지만 알고보니 의외로 중국에서의 과학소설의 역사는 길고 굵은 궤적을 그려왔다. 중국 지식인이 과학소설을 처음 접한 것은 약 백년전으로 우리와 비슷하다. 20세기 최고의 중국 문호라 할 수 있는 루쉰이 프랑스의 쥘 베른이란 작가에 매료되어 1903년 이후 그의 작품을 중국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개화기에 이해조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강철도시>란 과학소설을 <철세계>라는 이름으로 번안한 적이 있으니까 적어도 시작은 비슷한 셈이다. 하지만 그 이후 그러한 문학장르가 소개로 그치지 않고 전통으로 뿌리내렸느냐 하는 문제는 전혀 별개이다.
90년대 한국의 과학소설은 아직도 시장 탐색의 단계에 불과하고 대부분 외국의 고전이나 빅히트한 베스트셀러를 번역하는 수준이지만, 중국은 사상통제가 심한 사회에서 작가 고유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일종의 형식틀로 과학소설을 이용했으며 문화혁명 같은 모든 문화의 암흑기를 제외하고는 꾸준한 성장을 보여왔고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그 성장세가 가속되고 있다고 한다.
뉴스윅의 기사는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인간관계와 사회의 모순이 두드러져가는 중국 사회에서 과학소설이 그러한 사회현실에 대한 반영으로서 활기를 띠고 있다는데 주목하고 있지만, 미국인이 아닌 나의 촛점은 좀 더 다른데 있다.
유럽에서 태동했지만 실질적인 SF의 요람이자 본토는 미국이기에, 미국인들 눈에는 SF가 중국에서 인기끄는 현상이 하나의 신기한 뉴스거리에 불과하겠지만 중국보다 훨씬 전부터 산업화의 길을 걸어왔고 적어도 80년대 이후의 현대사회에서는 내심 중국보다 (양보다는 질적으로) 선진국민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한국인들에게는 이 기사가 단순히 신기한 정도에 그칠 수 있을까?
아무리 중국이 산업화가 되어 미래의 새로운 강대국으로 떠오를 예정이라지만 후진적인 농촌이 아직도 9할이 넘는 나라에서 과학소설이 지식인과 소시민들의 인기를 끄는 이유가 무엇일까? 반면 산업화가 이제 마무리 단계이고 첨단산업으로 산업전반이 구조조정 중인 한국에서는 왜 과학소설은 아직도 아이들이나 보는 것이란 인식이 고쳐지지 않는 것일까?
실례로 중국 최고의 과학소설 전문지 '과환세계'는 94년 이후 발행부수가 4배로 늘었다고 한다.(참고삼아 비교하면, 우리나라에는 아직 과학소설 전문 잡지가 전무하다. 계간지나 무크지조차 없는 상태다.) 95년 10종에 불과하던 중국 자체의 창작 과학소설은 올해 최소한 50종이 새로 발간될 예정이다.(아마 우리 쪽은 1년 내내 순수창작과 번역을 다 합쳐봐야 열권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중국 과학소설의 중흥은 문혁 이후 사회주의 사상 이외의 미래관을 담은 과학소설을 일체 배척하고 작가를 탄압하던 중국 당국이 경제성장을 부추기고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사회건설에 청소년들을 유도하기 위해 권장하고 나선 탓이라고 한다. 하긴 중국은 사회전체의 덩어리가 크다보니 한쪽에서는 조선족이 일자리를 구해 우리나라에 밀입국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우리보다도 먼저 그것도 자체기술로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과학 강대국이다. 더구나 중국당국은 이천년대까지 인간을 우주궤도에 진입시킨다는 마스터플랜을 가지고 있는데 과학소설 붐을 통해 그러한 비전의 시너지 효과를 노리면서 중화사상까지 강조하고자 하는 일석이조의 이득을 노리고 있다.
문제는 과학소설이 아니다. 내가 이 글을 통해 안타까워 하는 것은 중국보다 더 문화인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이 있다면 하위문화의 다양성을 길러내는데 힘을 써야 한다는 사실이다. 사실 우리나라 국민들은 국민소득에 비해 취미생활이 너무 단조롭다. 노래방, 부동산투기, 나이트, 카바레, 고스톱, 트럼프...대부분의 성인들이 이러한 조악하고 단순한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청소년기가 너무나 공부 그리고 돈이라는 단순한 생존공식에만 얽매여 살았기 때문은 아닐까.
이 땅의 젊은이들이여,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다양한 문화를 섭렵하고 다양한 생각과 결과를 쏟아내라.
이 땅의 부모들이여, 자신이 못다 이룬 한풀이를 자식에게 대물려 강요하지 말고 자식이 열린 눈으로 넓은 세계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하라. 그것이 과학소설이어도 좋고 또다른 하위문화여도 좋다.
우리 국민은 버는 것에 비해 너무 천하게 문화를 누리며 살고 있지 않은가? 국민소득만으로는 선진국이 되지 못한다.사고방식과 문화 자체가 수준이 높아지고 대화와 토론이 다양하게 교류되어야만 진정한 선진문화는 오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당국의 문화에 대한 인식의 편협함을 보여주는 사례는 일반 대중과 매일 부대끼는 광고에서도 발견된다. 97년도에는 형편이 좀 나아졌지만 광고시장 개방이 미국의 압력으로 거론되던 80년대 중반만 해도 정부 인사들의 광고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얄팍하고 자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없었는지를 보여주는 유명한 실화가 있다. 우리나라 광고시장의 전면개방을 촉구하는 미 무역대표 앞에서 우리측 정부 인사가 옆자리에 있던 부하직원에게 조용히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광고시장이란게 도대체 뭐야?"
시장을 개방하라는데 그 시장을 알지 못하니 어떻게 개방하겠는가. 당시 한국 광고시장은 1조원 돌파를 눈 앞에 두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당국자는 아무런 자료없이 200년 역사가 넘는 광고산업의 강국인 미국측 대표들을 대담하게 서슴없이 만났던 것이다. 그런 꼬락서니로 어찌 제대로 한국 광고시장을 지키겠는가.
과학소설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다져가면서 다양한 문화를 먹고 마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원히 남의 작품을 이따금씩 번역해 읽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과학소설이 번창하기에 충분한 조건들은 이미 우리나라에 골고루 갖춰져 있다. 아직 기초과학이 약하기는 하지만 전세계의 첨단 과학정보들이 이런저런 경로로 정신없이 들어오고 있고(인터넷이 그 대표주자다.)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사회가 시시각각으로 변모하고 있다. 불과 십년 전만 해도 인터넷, 팜탑 컴퓨터, 노트북, 네트웍 컴퓨터, 인트라넷, 사이버 스페이스, 인공지능 로봇, 인공지능 가정기구류, 화상통신, 인공위성으로 중계되는 텔리비젼 방송, 통신망의 비대화, 정보전쟁, 정보와 유통이 하나로 결합된 다국적 비즈니스 네트웍 등등을 누가 제대로 인식했겠는가? 엄청나게 쏟아지는 정보 더미 속에서 혹여 우리가 도태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이 들 정도로 변화무쌍한 현실을 감안하면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돌아보는 과학소설의 가치는 일정부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땅이 넓고 인간이 재산인 중국은 그렇다치더라도 일본은 어떠한가? 일본의 인터넷 사이트를 열어보면 SF부문만 해도 몇페이지 가량의 주소들이 나온다. 미국의 *월드콘*을 본따서 *카프리콘*이라는 SF대회를 연례적으로 열 정도이니 일본의 SF풍토는 우리와는 천양지차다. 미국의 경우 러시아 작가들의 영문판 번역이 소홀한데 비해, 일본에서는 러시아 과학소설 작가들에 대한 번역소개가 활발하다고 한다.
혹자는 과학소설 운운 하는 것 자체가 서양문명에 대한 사대주의 아닌가 반문할지 모른다. 교조적으로 과학소설 문물을 받아들여 잘난 척하며 주위에 떠들고 다닌다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학소설의 토대는 어디까지나 과학문명이다. 현대의 과학문명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예 포기하고 동굴로 들어갈 작정이 아니라면 과학과 과학이 뒷받침 된 산업은 극히 현실적인 문제이고, 과학소설은 그러한 문제를 인간학적인 측면에서 사색하고 검증해준다. 산업혁명의 빛과 어둠을 말할 때 흔히 떠올리는 대표적인 문학작품으로 <올리버 트위스트>가 있다. 이 작품은 산업혁명이 가져온 빈부의 격차와 계급갈등을 수십편의 논문보다도 훨씬 더 호소력있게 표현해주었다. 과학소설도 마찬가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 SF영화의 시대적 변화가 그러한 산 증거다. 미국 영화에서 50~60년대에는 외계인은 단순히 호기심거리가 아니라 적대적인 이데올로기를 지닌 적국 국민에 대한 등가물로 대입되었지만, <E.T.>나 <코쿤>과 같은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냉전이 해소되고 화해무드가 고조된 70~80년대에는 외계인들이 갑자기 우호적으로 돌변해 우리와(정확히 말해서 미국인들과) 친한 척 한다.
과학문명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단 한시도 떠날 수 없는 울타리라는 것이 분명하다면, 그것을 인문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대중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문학장르의 효용성은 그 출신성분이 어디이건 간에 정당하게 인정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과학소설을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을 마치 별종인양 취급하는 사회에서는 과학문명은 늘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갈짓자 걸음을 걸을 수 밖에 없다. 과학소설의 융성이 문제이기보다는 과학소설이 대중적인 공감을 얻지 못하는 사회의 구조적 편협성이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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