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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소설 작법(探偵小說作法)
방 인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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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 방인근(方仁根, 호 春海, 1899-1975)
소설가. 충남 예산 출생.
일본 아오야마(靑山) 학원 중등부, 주오(中央)대학 수학.
1924년 문예지 [조선문단] 창간.
작품으로는 단편 [분투], [어머니], [마지막 편지], [자기를 찾은 자],
[방랑의 歌人], [젊은 아내], 장편으로 [고향산천], [애정쌍곡선],
[인생극장]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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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序論)
소설의 원조는 탐정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동서의 고대소설을 보면 거의 탐정소설이다. 그것이 차차 진보되어 역사적인 것, 문예적인 것을 가미한 소설이 많이 나오게 되고 다시 분리되어 순 역사소설(純歷史小說)이니 문예소설의 획선(劃線)을 긋게 되고 대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엄정하게 말하면 어느 소설이고 탐정미(探偵味)가 없는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 표현방법이 다를지언정 전혀 탐정미가 없는 소설은 건조무미한 것이 되기 쉽다. 그 표현방식이 저속이면 탐정소설이라 하고 고상하면 문예소설이라 하지만 탐정미를 전혀 뺄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기 순문학소설가도 여기(餘技)로 또는 시험적으로 탐정소설을 쓴 이가 구미(歐美)작가 중에도 여럿이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탐정소설을 안가(安價)로 저하시키고 그 작가까지 멸시하게 되었다. 물론 일부 층의 절대한 환영을 받으면서도 문예의 반역자처럼 취급을 당하기까지 하는 것은 피차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다. 탐정소설도 얼마든지 발전시키고 개척할 여지가 있으며 그 레벨을 높일 수 있는 문학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무턱대고 배척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2. 탐정소설의 가치(價値)
탐정소설은 우선 모험이 많은 고로 모험성을 기르는 데 좋다. 바다로 산 속으로 무인지경으로 동굴로 지하실로 총탄 속으로 용기 있게 돌진하는 것이다. 범인을 잡기 위해서는 탐정은 생명을 내놓고 추격한다. 보통사람이 할 수 없는 모험을 용감스럽게 해나가는데 탐정소설의 가치가 있다. 거기에는 피가 뛰고 살이 떨리며 민족과 나라를 위해서 또는 정의를 위해서 또는 혹은 애인을 위해서 목숨을 내 놓고 자아를 버리고 용진(勇進)하는데 특색이 있는 것이다. 독자로 하여금 의분을 일으키게 하고 범인을 증오하는 감정에 불탄다. 기어이 그 범인을 잡아서 처벌해야 독자는 안심하고 양해하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 해독(害毒)을 주고 범죄의 지식을 넣어 역효과를 낸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길에서도 눈을 감고 지나다녀야 할 것이다. 거리나 사회에는 탐정소설 이상의 죄악이 범람하고 있다. 그것을 올바르게 비판해서 독자에게 보여주는 것이 탐정소설이다. 그러므로 경찰이나 사법에는 큰 도움이 되고 자료가 되고 수사상 편의를 주기도 한다. 이 세상에 가득 찬 범죄사실을 어떻게 요리하고 처치하여야 할 것을 가장 깊이 연구해서 발표하는 것이 탐정소설이다. 그러므로 탐정소설은 권선징악(勸善懲惡)의 표본이다. 권선징악은 켸켸묵은 시대에 뒤떨어진 소설형식이라고 한다. 그러나 고금(古今)의 소설 거의 모두가 권선징악의 소설 아닌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천리요 인간의 이상인지라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정의와 선을 사랑하고 불의와 악을 미워하는 것은 영원불멸할 진리일 것인데 이것을 표현하는 탐정소설을 그르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것은 문학이건 정치건 뭐든지 거기에는 살 것이 있고 독이 있지만 그것을 잘 가려서 먹는 것이 지성적인 현대인일 것이다. 그만한 상식은 누구나 가졌을 것이니 과히 기우(杞憂)를 아니하여도 좋다.
3. 요소와 내용
탐정소설은 어디까지나 과학적이어야 한다. 비과학적이면 그것은 탐정소설로서의 생명을 잃은 것이다. 범죄나 탐정에 부자연이나 무리가 있어서는 안 된다. 보통소설 이상으로 독자의 예민한 관찰과 비판에서 어그러지지 아니하고 납득할만한 만치 과학적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조리가 분명하고 앞뒤가 맞고 일사불란의 정연한 과학적인 것이다. 미국의 반 다인이 과학탐정소설을 시험해서 성공하였지만 그것은 대중이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아서 흠이지만 앞으로는 이 과학적인 탐정소설이라야 할 것이다. 과학을 재료로 해서 과학적 지식을 대중에게 넣어 줄 것은 탐정소설의 형식이 가장 적당하다고 할 수 있다.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과학을 발명시키는 데에도 탐정소설의 역할이 크다. 탐정소설은 가끔 황당하고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을 창작해서 쓴다. 사람이 하늘로 날아간다. 사람이 바다 속으로 들어간다. 가지가지의 모험을 해서 그것이 비행기나 잠수함을 만들게 한 것과 마찬가지다. 앞으로 이런 과학을 창조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고 여기에 탐정소설이 가진 임무의 하나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모험심과 용맹성과 과학적인 것이 부족한 민족이라 이것을 계몽하고 지도하고 고양시키는 데는 탐정소설이 제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탐정소설을 어느 정도 발전시킬 필요도 있다. 물론 지금까지의 탐정소설보다 나은 것이 나와야 할 것이다. 탐정소설이라면 무조건 반대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말하자면 좋은 탐정작가가 나와서 이 나라에서도 좋은 탐정소설이 나오기를 부탁할 뿐이다.
어느 나라나 그 문화가 향상하려면 각 방면 다각도의 발전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탐정소설에도 신국면을 타개하여야 할 것이다.
4. 배경문제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탐정소설을 쓰기가 가장 어려운 조건에 처해 있다. 원체 좁은 지역에다가 생활도 단순하다. 그야말로 탐정소설의 배경이 될만한 것이 적고 무대가 좁다는 것이다. 외국의 그것과 다른 불편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할 수없이 무대를 중국이니 일본이니 서양이니 다른 외국으로 하는 수가 많다. 그것은 한편 해외진출의 의기를 돋아주는 데는 좋으나, 암만해도 부자연스럽고 실감이 적으며 또 우리 생활과 직접 부딪치는 것이 박약하다. 그래서 가공적인 배경과 무대를 만드는 수가 있는데 이것이 어느 의미로는 커다란 상상을 일으키는 효과는 있으나 역시 자연스럽거나 실감을 주지 못하는 애로가 있다. 여기에 우리나라 탐정작가의 고민이 있다. 외국 것을 번역하거나 번안하는 수가 많다. 창작이 드문 것은 작가의 역량에도 달렸지마는 이런 불리한 위치에 있는 까닭도 있다. 여기에 탐정작가는 유의해서 잘 조종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 배경과 무대가 좁더라도 우리 것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스케일이 클 때는 외국의 것을 넣어도 좋다. 어쨌든 스케일이 큰 세계적인 탐정소설이 나와야 하고 이번 전쟁과 공산당의 지하공작, 6.25때 대한청년들의 잠복하던 것, 자살 사건 등 좋은 재료가 많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지리산, 한라산 등 공비토벌과 그들을 잡은 피맺히는 사실 등은 보통소설보다는 탐정소설로서 훌륭한 것이 될 것이다. 그 외에도 우리 현실의 가지가지 비참한 것을 재료로 할 것이 많을 것이다. 그런 것을 드러내서 독자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적은 배경, 좁은 무대라도 크고 넓게 만들 수밖에 없다.
5. 탐정작가가 되려면
탐정작가가 되려면 다른 작가 이상의 노력과 지식이 많아야 한다. 먼저 말한 바와 같이 탐정소설은 이상소설(理想小說)이 아니요 어디까지 과학적이어야만 되는 고로 각 방면의 과학에 정통되어야 한다. 의학의 지식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탐정소설에는 살인이 의례히 있는 고로 자살이든 독살이든 의학, 약학(藥學), 기타에 박식하여야 한다. 또는 해부학에도 상식이 있어야 한다. 시체를 해부해서 범죄사실을 발견하는 수가 많은 까닭이다. 그 외에도 생물학이니 범죄심리학이니 법률학이니 이런 몇 가지는 반드시 정통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 탐정소설을 쓴다면 그것은 무식을 나타낼 뿐이다. 그것은 서적으로 습득하여야 하지만 실지로 보기도 하여야 한다. 예를 들면 병원에도 가 봐야 하고 해부하는 것도 봐야 하며 경찰서, 재판소도 감옥에도 자주 출입해서 견학하여야 한다. 부단의 노력으로 부지런히 다니며 연구해서 자기가 탐정이 되고 자기가 경찰관이 되고 자기가 사법관이 되고 때로는 자기가 범죄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상하계급 어디나 다녀보고 실지경험도 있어야 한다. 모든 작가가 다 그러하지만 특히 탐정작가는 뒷골목이니 노름판이니 노동자 모이는 데니 술집이니 아편굴이니 밀매음소굴(密賣淫巢窟)이니 어디를 막론하고 다녀봐야 한다. 그래서 거기서 지식을 흡수하고 재료를 수집한다. 강도범, 살인범, 소매치기, 고아 등도 찾아가서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들의 생활과 심리를 그리하지 아니하면 알 수가 없다. 그들의 속속들이를 파고 들어가야 한다. 이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요, 노력과 성의가 있어야 한다. 물론 경찰관, 사법관, 형무관, 변호사등도 친해서 자주 접촉하고 그들의 이야기도 들어야 한다.
그 밖에도 지리, 지문학에도 소양이 있어야 한다. 토질도 알아야 하고 어디에 무슨 골목, 어느 산 속에 동굴이 있고 숲이 있고 이런 것도 답사를 하여야 한다. 범인이 도망하고 숨고 그것을 탐정이 추격해서 잡고 이런 데도 지리에 정통해야지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작가는 무슨 동식물 채집자처럼 골목으로 들로 산으로 미친 사람처럼 돌아다녀 보아야 하는 것이다. 동식물학자는 그것을 잡으려고 산 속이나 숲 속을 헤매며 어느 산 어느 숲 어느 나무에는 무슨 풀, 무슨 벌레, 무슨 새가 있는지를 알아야 채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고분을 찾아다니며 전설도 들어야 하고 각 방면으로 활동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건축에도 지식이 있어야 하는 것은 범죄의 대부분은 집에서 생기고 그 집의 구조 여하를 상세히 알고 설명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건축을 모르고 집 구조를 모르고 탐정소설을 쓰면 그것은 기둥이나 방이 없는 집과 마찬가지로 탐정이나 작가도 범인 이상의 지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특히 지능범은 해박한 지식과 과학적 두뇌를 소유한 것이기 때문이다.
6. 스릴
탐정소설에는 무엇보다 스릴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탐정소설의 불가결한 요소이며 스릴이 없으면 탐정소설로서의 생명을 잃은 것이다. 그 스릴도 적당히 배치해서 독자의 흥미를 끌어가지고 나가야 한다. 원래 인간은 자극을 좋아한다. 자극 없는 생활은 권태를 느끼고 싫어한다. 그래서 그 자극을 날마다 요구하는 것이다. 그 자극을 주는 것의 하나가 탐정소설이다. 물론 자극이라는 것이 해독을 주는 것도 없지 아니하다. 그러나 인간 생활에 있어서 자극이 있음으로 해서 진보되고 향상 발전하는 것이다. 자극이 없으면 인간은 다 낮잠을 자고 게으름뱅이가 되고 비관해서 자살할 뿐이다. 자극으로 욕망도 희망도 진취도 있으며 인간생활의 취미를 가지게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자극은 우리 음식의 고추나 마늘이나 파나 그런 종류의 양념과 비슷하다. 양념 없이 하는 반찬이 무슨 맛이 있을 것인가. 자극은 인생의 조미료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극을 가장 많이 줌으로써 탐정소설의 존재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문화가 고도로 발달한 선진국인 불란서나 영국이 탐정소설을 많이 산출한 것으로 보아도 알 수 있다. 근래로 미국에서도 탐정소설이니 탐정극 영화가 발달해서 유행하는 것도 그 소이연(所以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누구나 악마성(惡魔性)이 있고 잔인성이 있다. 불구경을 좋아하고 싸움구경을 좋아하는 것도 그 일단의 발로이다. 권투구경, 닭싸움, 투우구경, 개싸움, 모두 좋아하고 종국엔 전쟁까지 좋아하게 되었다. 살인구경, 피를 보기 좋아하는 것이다. 선한 체 하고 이런 것을 가리우지만 사람마다 이 마성(魔性)이 잠재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면 탐정소설은 이런 종류의 악마성을 해부하고 비판해서 어느 정도로 선도하는 것이 탐정소설의 임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악마성이 범죄를 구성하고 부부싸움, 민족싸움, 국제전쟁, 가지가지의 비극을 연출한다. 그러면 탐정작가는 이 악마성을 요리하는데 가장 적임자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종교니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것으로 설교하는 것보다 탐정소설로 하는 것이 가장 첩경이요 가장 효과적이다. 탐정소설이 범죄를 조장시키고 악마성을 선동시킨다는 것은 속단이요 오해다. 그 반면에 지능적이요, 발전적인 것을 알아야 한다. 마치 청춘남녀에게 성교육을 시켜서는 안 된다, 그런 소설을 봐서는 안 된다는 것과 같다. 성교육이 얼마나 필요하다는 것쯤은 상식화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악마가 뒤끓는 이 세상에 그 악마성을 애독하면서도 또 자기에게도 그 악마성이 있어서 번민하면서도 이것을 배척하는 체 하는 것은 확실히 위선자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성교육을 반대하면서도 자기는 성생활에 탐닉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남몰래 자기 혼자 하려는 것이다.
(1963년 어문각 발행 세계문학강좌 IV - 창작 실기론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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