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스테리 하우스의 추리 관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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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어떤 추리소설을 쓸 것인가.
1. 자신의 성격에 맞는 형태의 추리소설
추리소설은 소수의 지적 추리소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엔터테인먼트(오락적 기능을 갖춘 추리소설)라고 단언할 수 있다.
여기서 지적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옴베르코 에코의 ‘장미의 이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뇌’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 ‘김탁환’의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 등도 같은 범주에 들 수 있다.
이 추리소설들은 단순하게 오락적 재미만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거나(장미의 이름), 사실적이면서 신비주의적인 작품으로 문학적 실험을 하고 있거나(폴 오스터의 스퀴즈 플레이) 지나간 시대를 복원하는데(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 더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특이하게 사회파 추리소설이 발전하여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을 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쉽게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대중적이면서 오락적인 추리소설인데 이 경우 크게 고전파 추리소설(코난 도일, 아가사 크리스티, 노원, 이상우, 강형원)과 비정파 추리소설(대실 해밋, 가드너, 챈들러, 김성종, 정건섭, 등)이라고 부르는 하드보일드로 대별된다.
계획된 범죄와 추리의 얼개를 갖고 있는 고전파 추리소설과 거칠고 냉혹한 행동에 중점을 두고 있는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은 추리소설을 양분하고 있으나 현대로 오면서 하드보일드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작가들의 경우 성격상 고전파 추리소설이나 하드보일드에 강점을 갖고 있는 작가들이 있다. 비교적 차분한 성격이라면 대개 고전파 추리소설이 맞고 내성적이라도 강한 성격을 갖고 있다면 하드보일드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2. 소재의 보편성
소설을 쓰려고 할 때 작가들은 어떤 소재를 소설로 쓸 것인지 많은 고민을 한다.
우리나라의 추리소설의 소재는 연쇄살인과 재벌비리, 마약범죄를 다룬 추리소설이 가장 많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연쇄살인을 다루었고 김성종(일곱 개의 장미송이, 미로의 저쪽), 이상우(악녀의 성), 이수광(금빛 육체의 여자), 이승영(미스코리아 살인사건), 황세연(미녀사냥꾼) 등이 연쇄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
김성종의 ‘일곱 개의 장미송이’는 윤간을 당한 아내의 처절한 복수를 다루어 상당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인데 이후 한국 추리소설에 여자들의 복수를 다룬 유사한 작품들이 많이 쏟아졌다.
이상우의 ‘악녀의 성’은 추경감이 등장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작품으로 기업의 비리를 다루고 있다.
이수광의 ‘금빛 육체의 여자’는 제목이 암시하듯 선정성이 소재가 되고 있다.
황세연의 ‘미녀사냥꾼’은 양들의 침묵을 연상케하는 엽기성이 소재가 되고 있다.
이러한 연쇄살인은 구성이 비슷하게 전개되는 문제가 있고 작가가 글 쓰기가 막힐 때마다 살인사건을 나열하는 문제점이 제기된다.
그렇다면 연쇄살인을 소재로 했을 때 어떻게 해야하는가.
연쇄살인은 영미권이나 일본에서도 자주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범인에 대한 치밀한 심리묘사, 상황의 설정, 완벽한 구성 등으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박진감이 있다.
특히 한국 추리소설에서 연쇄살인을 다룰 때는 구성이 완벽해야 한다.
작가가 글을 쓰다가 막힐 때마다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고 형사들이 출동하여 현장을 조사하는 것은 독자들을 떨어트리는 첩경이 된다.
한국추리소설에서 연쇄살인 소재를 다룬 작품을 한 번 살펴보자.
김성종의 ‘일곱 개의 장미송이’는 촉망받는 디자이너인 아내가 어느 날 무지막지한 사내들에게 윤간을 당하고 버려지면서 비롯된다.
아내가 돌아올 때만을 기다리던 남편은 아내가 처참하게 망가진 시체로 발견되자 이에 대한 처절한 복수를 하기 시작한다.
주인공의 아내에 대한 사랑과 범인들에 대한 처절한 복수는 이 작품이 발표되었던 80년대 상황과 맞물려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70년대와 80년대는 여성의 지위가 지금처럼 강화되어 있지 않아 여성들의 대사회적인 불만이 이러한 작품을 통해 발산되었던 것이다.
작가는 분노하면서 작품을 썼고 작가의 분노가 그대로 작품에 투영되었던 것이다.
언뜻 보면 단순한 소재에 단순한 스토리일 법한데 80년대 여성들이 이 작품에 매료되어 김성종 매니아 층까지 형성되었다.
김성종은 이 단순한 소재와 단순한 스토리에 치밀한 구성과 분노가 가득한 문장을 만들어 내 독자들을 흡인하는데 성공했다.
이 작품은 80년대에 수십만 부가 팔려 재야베스트셀러라고까지 불린다.
이제 미국의 추리소설 중 연쇄살인을 다룬 ‘양들의 침묵’을 살펴보자.
양들의 침묵은 FBI 풋내기 여성수사관이 정신과 의사이자 살인사건을 조종하는 한니발 렉터박사를 만나면서 비롯된다.
렉터박사는 거의 완벽한 범죄자로 인간이 아니라 신에 가까운 존재다.
그는 감옥에서도 사람들을 조종하여 살인을 저지를 뿐아니라 탁월한 심리분석가로 여자 수사관이 어릴 때 들었던 양들의 울음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까지 알고 있다.
렉터박사는 추리소설에서 새롭게 등장한 범죄자의 코드라고 할 수 있다.
신에 가까운 범죄자, 이에 대항하는 수사관은 여성으로 상대적으로 초라하고 연약하다.
이러한 설정은 미국의 추리소설에서 자주 이용되는 방법으로 거대한 악과 조그만 선이 싸우는 구도를 통해 긴장감을 조성한다.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를 묘사하는 양들의 울음소리,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에서 안정을 찾는 주인공의 불안한 내면. 자신의 얼굴을 성형하는 렉터박사의 강렬한 면모에서 우리는 연쇄살인사건이 소재가 되고 있다고 해도 새로운 추리소설 읽기가 가능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여류 추리작가 루스 렌델은 ‘내 눈에 비친 악마’에서 결벽증 환자를 등장시키고 있다.
그녀의 소설 속 주인공은 결벽증 환자로 자신의 이름과 이름이 같은 사람의 우편물을 잘못 보았기 때문에 심리적인 불안 상태가 되어 연쇄 살인사건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범인의 심리묘사에 탁월한 솜씨를 보여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작가가 된다.
연쇄살인사건은 추리소설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보편적인 소재다.
그러나 많은 추리소설이 독자들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은 이러한 연쇄 살인사건을 다루었으면서도 작가의 독특한 개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추리소설의 소재가 보편적이냐 보편적이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다루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작가는 어떤 소재를 다룰 것을 고민하는 것보다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실제사건의 예를 들어본다.
몇 년 전 7, 8명의 사람들을 연쇄적으로 잔인하게 살해한 정00씨가 검거되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정00씨는 교제하던 여인이 있었는데 그가 살인을 한 것은 오로지 교제하는 여인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 돈을 모으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검거되었을 때 교제하는 여인의 통장에는 이미 7천만원이 넘는 돈이 저축되어 있었다.
그는 앞으로도 수억원의 돈을 모으기 위해 살인을 계속하려다가 검거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와 교제하는 여인의 집에서는 그가 아주 성실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자신의 살인행각을 여자 쪽에 철저하게 위장해 왔었다.
정00씨 사건은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정00씨의 내면을 치밀하게 묘사한다면 이 사건은 연쇄살인사건이지만 훌륭한 추리소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살인사건이 같은 방법으로 나열되어도 안되고 잔혹하기만 해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양들의 침묵이 좋은 소설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양들의 울음소리’로 상징되는 기독교의 희생양에 대한 의식을 바탕에 깔았고, ‘내 눈에 비친 악마’는 결벽증 환자의 이상 심리를 바탕에 깔고 있다.
정00씨 연쇄살인사건도 독자들을 흡인하기 위하여 무엇인가 바탕에 깔아야 하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몫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이다.
한국에서는 유감스럽게도 추리소설을 천시하여 출판을 경원하고 있다.
왠만치 잘 쓰는 작가이거나 이름이 알려진 작가가 아니라면 출판은 불가능하다.
메이저급의 출판사들은 추리소설이라고 하면 검토조차 하지 않으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서 정00씨 연쇄살인사건을 하나의 장편추리소설로 완성한다고 해도 메이저급 출판사에서 출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작가는 여기서부터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을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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