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을 타진하는 한국SF는 SF평론가 박상준님이 2003년 GE메디칼 시스템 코리아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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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을 거쳐 유입된 SF싹
우리나라에 서양 SF가 도입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19세기말 동북아시아의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당시 중국과 일본은 우리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국제적 열강이었으며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자연스럽게 이들이 일종의 필터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서양에서 태동한 ‘과학소설’, 즉 SF가 우리나라에 유입된 과정도 모두 중국어나 일본어로 번역된 텍스트를 다시 중역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국내에 소개된 최초의 SF는 주울 베르느의 <해저여행기담(해저2만리)>와 <철세계>로 알려지고 있는데(1907-1908년), 둘 다 원서에서 직접 번역된 것이 아니며 내용도 번역이 아닌 번안으로서 등장인물과 사물의 명칭 등이 당시 우리 실정에 맞게 완전히 뜯어고쳐져 있다. 또한, 1912년에는 김교제의 <비행선>이라는 작품도 나왔으나 이 소설은 원작이 무엇인지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그뒤로는 1920년대에 주울 베르느의 <월세계 여행>과 카렐 차펙의 <인조인간(R.U.R.)>이 국내에 번역 소개된 기록이 있다. <인조인간>은 ‘로봇(robot)'이라는 말을 최초로 탄생시킨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소설이 아닌 희곡이다. 유념할만한 사실은 이 작품들을 끝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번역된 해외 SF작품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제시대 중반기 이후의 지적 환경을 유추해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즉, 당시 한반도에서는 학교에서 더 이상 한국어가 아닌 일본어가 ‘국어’ 과목으로 행세했고 따라서 1930년대 이후의 지식인 청년들은 우리말이 아닌 일본어로 읽고 쓰는 일에 익숙해졌던 것이다. 당연히 더 이상 외국 책들을 한국어로 번역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며 대부분의 해외 문학작품들은 일본어판으로 읽혀졌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생존해 있는 원로 작가들의 증언을 통해서도 입증이 되는 바이다.
한국 최초의 창작SF는?
우리나라의 SF문학사와 관련해서 아직 명백하게 규명되지 않은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과연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SF는 누구의 어느 작품인가?’ 하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1900년에 오시카와 슈로우가 쓴 <해저군함>이, 그리고 중국은 1904년에 한 문학잡지에 발표된 <달 식민지 이야기>라는 작품이 각각 최초의 SF로 일컬어지고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관련된 학문적 연구가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라서 이에 대한 언급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다만 필자가 보기에는 1929년에 김동인이 발표한 단편소설 가 일단 최초의 창작 SF로 유력한 후보작이다. 어떤 과학자가 사람의 배설물을 대체식량으로 활용하고자 연구한다는 내용이 전개되며, 대중들의 차가운 반응 때문에 의기소침한 주인공이 휴식을 취하러 시골에 갔다가 겪은 일을 통해서 일종의 자기모순적 반전을 시도한다. 과학자는 시골집에서 보신탕을 대접받지만, 그 개가 그날 오전에 자신이 목격했던 것임을 알고는 역겨움에 수저를 들지 못한다. 그 개는 길에서 배설물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출처:www.gehealthcare.com/krko/webzine/2003_fourth/human0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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