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SF에 빠져드는가는 SF평론가 고장원님이 2003년 GE메디칼 시스템 코리아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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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영향력을 보여주는 두가지 사례
1998년 11월 25일, 미국의 게이랙시언들(the Gaylaxians)주1이 당시 개봉을 앞두고 있던 <스타 트렉 Star Trek> 극장판 시리즈 ‘봉기Insurrection’편의 관람 보이코트를 벌인 적이 있다. 여기서 ‘게이랙시언’이란 SF를 즐기는 게이와 레즈비언을 지칭하며, 은하 (Galaxy)에 빗대 만들어진 조어다. 미국의 동성애자들은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 그들 자신이 누구보다도 열렬한 SF 매니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들이 내세운 명분은 명쾌했다. <스타 트랙>은 60년대 TV 시리즈를 거쳐 70년대 후반부터는 꾸준히 극장판 시리즈로 제작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대중적 인기로 인해 이 영화를 추종하는 오타쿠 그룹인 일명 ‘트레키’들이 미 전역에 생겨났고 최근에서는 할리우드가 <갤럭시 퀘스트>라는 패러디 영화까지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미국의 동성애자들이 <스타 트렉>에 주목한 것은 단지 지명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스타 트렉>은 단순히 외계를 탐험하는 신비한 모험담에 그치지 않는다. 이 작품에는 스토리 전개상 유전적으로 특이한 인간들과 각양각색의 외계인들이 무수히 등장한다. 문제는 아무리 괴상망칙한 외계인이 설치고 돌아다니는 설정이어도 정작 인간 동성애자는 단 한 명도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에 게이와 레즈비언들이 불만을 품었던 것이다. 일견 신기해 보이지만, 이 사건은 SF 컨텐츠가 얼마나 우리 삶 속에 깊숙히 들어와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일깨워 주는 하나의 본보기이다. 동성애자들은 SF적 설정을 통해 미래에도 게이와 레즈비언이 존재할 것이며, 나아가서는 지금보다 더 사회적으로 용인될 것이라는 주장을 담고 싶었던 것이다.
SF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텔레비전 광고로까지 확장된다. 미국의 대형서점 체인 보더스(Borders)의 광고가 좋은 예다. 여기서는 도서관에서 시끄럽게 전화하여 주위에 피해를 주는 몰상식한 사람을 한 트레키가 ‘스타 트랙 백과사전’에서 보고 배운 대로 스포크식 지압으로 까무러치게 만든다.(스포크는 <스타 트렉> 오리지널 시리즈의 주요 캐릭터로 인간과 외계인의 혼혈이다.)

SF의 매력은 어디서 오는가
18세기 초엽 여류 작가 메리 쉘리의 <프랑켄슈타인>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현대 SF가 밀레니엄을 넘어선 시점에서 소설은 물론이고 재패니메이션과 할리우드의 킬러 컨텐츠로 툭하면 차출되고 있다. SF의 이러한 매력은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다시 말해 SF는 어떻게 해서 거의 200살에 가까운 나이를 먹으면서 영향력 있는 하위문화 텍스트로 성장해올 수 있었던 것일까?
필자는 그 원인을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첫번째 원인은 본질적인 차원으로, SF가 다름아닌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즉 SF는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되었거나 아직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과학적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근거를 디딤돌 삼아 미래에 대한 예기치 못한 놀라움(희망에서 공포에 이르는)을 불러일으켜 대중의 상상력을 극한까지 끌어 올려 준다는 점에서 무척 매력적이다. 16세기에 발간된 노스트라다무스의 <여러 세기 Centuries>와 조선시대에 유행한 정감록 같은 예언서들은 바로 이같은 대중의 강렬한 소망이 빚어낸 결과물이라 보아도 과언이 아니리라. 미국의 인기 과학소설가 로벗 실버벅은 과학소설 작가들이 달성하고자 하는 주요 목표가 바로 독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즉 작가들의 욕심은 경이로운 것들에 대한 기적이나 마술같은 비젼을 선보임으로서 독자들을 경악하게 하고 그 결과 즐거움을 만끽하게 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유사한 맥락에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로도 유명한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원작자 아서 C. 클라크는 문명이 극도로 발달한 사회의 과학기술은 우리 눈에 마술로 밖에 여겨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두번째 원인은 사회 현상적인 차원으로, 오늘날 현대 산업사회의 삶이 허구의 SF보다 더 SF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급속하게 변모해왔기 때문이다. 지칠줄 모르고 끊임없이 전진해온 현대 과학은 SF가 예견한 전망 가운데 상당수를 이미 실현시켜 사실상 과학소설과 현실 사이의 경계선을 흐려놓고 있다. 일례로 몇 년 전, 미국 토머스 제퍼슨 대학의 재미 한국인 과학자 윤경근은 ‘유전자 수리’를 통해 흰 쥐를 검은 쥐로 만드는데 성공한 바 있다. 흰 쥐가 생기는 이유는 피부 색깔을 변화시키는 색소인자인 멜라닌 생산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에 결함이 생긴 탓인데, 그 유전자 변이를 고쳐주면 다시 멜라닌이 만들어져 흰 쥐가 검은 쥐로 변하게 된다. 이처럼 변이된 유전자를 정상 유전자로 고치는 기술은 좀 더 보완을 거쳐 사람들의 각종 유전성 질환을 치료하는데 이용될 전망이다.
(출처:www.gehealthcare.com/krko/webzine/2003_fourth/human0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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