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발달과 상상력의 결합
서구에서 통속적인 스타일의 SF잡지들이 전성기를 누리게 된 1930년대를 기점으로 SF작가들의 상상력은 현실을 추월하기 시작했습니다. 발달하는 과학기술과 더불어 그 최전선의 생생한 정보들을 소화해내는 SF작가들은 그를 바탕으로 이미 머나먼 미래를 앞질러 살기 시작한 것이지요.

SF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편집자이기도 한 미국의 존 캠벨은 1930년에 <공중해적주식회사>라는 작품을 한 SF잡지에 발표했는데, 그는 이 소설에서 초고공 비행으로 대륙 간을 운항하는 거대한 여객기를 마치 독자들이 직접 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해냈습니다. 또 항공교통이 발달해서 대도시 상공이 교통공해로 시달린다는 예측까지 내놓았지요. 그런가하면 E. E. 스미스라는 작가는 비슷한 시기에 초광속 우주선이나 무관성 추진장치 등, 당시 발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대성이론의 한계까지도 넘어서는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펼쳐 보인 바 있습니다.

SF작가들은 과학적 상상력 못지않게 그에 따른 사회적 영향의 예측에도 소홀하지 않았지요. 의사 출신인 데이비드 켈러는 이미 1920년대 말에 과학이 만능으로 발달한 미래 세계에서 정체성을 잃어버린 인간을 주인공으로 묘사한 작품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그는 또 현대적인 의미의 복합 데이타베이스 컴퓨터 시스템을 고안해내기도 했으며, 특히 오늘날에도 연구단계에 머물러있는 생체컴퓨터를 묘사하여 한층 더 앞선 상상력을 작품 안에다 형상화시켰습니다. 그가 이 작품에서 묘사한 인간들은 거대한 컴퓨터시스템의 단말기 역할들을 맡고 있지요.
2차 세계대전 중에는 SF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웃지 못할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1944년에 미국의 클리브 커트밀이란 작가가 한 SF잡지에 스파이를 주인공으로 다룬 첩보소설을 발표했는데, 이 작품에 등장하는 비밀병기는 다름 아닌 원자폭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원폭에 대한 세부묘사가 당시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이름아래 미 정부에서 비밀리에 진행 중이던 실제 원자폭탄 개발계획의 내용과 너무도 비슷해서 잡지의 편집장과 작가가 FBI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는 일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일반문학계에도 영향을 미치다
이처럼 SF라는 장르에서 비롯된 예리한 미래 예측의 시각은 점차 일반 문학계에도 영향을 끼쳐, 20세기 초반이 지나면서부터는 세계문학사상 고전으로 자리 잡게 되는 굵직굵직한 걸작들이 미래소설의 형태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조지 오웰의 <1984>를 들 수 있지요. 각각 1932년과 1949년에 발표된 이 두 소설은 오늘날 디스토피아 문학 분야의 대표작들로 꼽히면서 과학의 발달과 전체주의가 사회에 끼칠 수 있는 영향을 심도 깊게 고찰한 묵직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작품들 이후 주류문학계의 작가가 미래소설의 형태로 자신의 전망을 제시하는 예는 더 빈번해지고 보편화되었습니다. 여러 차례 노벨상 후보에 오른 바 있는 영국작가 안소니 버제스는 1962년에 발표한 <시계장치의 오렌지>를 통해 청소년범죄가 흉포화 되고 국가기관이 인간성 개조작업을 벌이는 가까운 미래를 묘사했습니다. 특히 이 작품은 1971년에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만든 같은 제목의 영화로 훨씬 더 유명해졌지요. 또 버제스는 1978년에 발표한 <1985>라는 소설에서 급진세력이 정권을 장악한 가까운 영국의 미래사회를 부정적으로 묘사하여, 그 다음 선거에서 보수당에 100만 표 이상을 몰아주었다는 평가까지 받기도 했습니다.

SF와 영화의 만남
20세기 들어 새로운 예술매체로 각광받게 된 영화는 그 자체가 과학기술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상의 촬영과 기록 및 감상에 기계장치가 반드시 필요한 분야니까요. 그동안 영화는 다양한 미래의 모습들을 수많은 SF영화들을 통해 펼쳐 왔는데, 특히 근년에 들어서는 특수효과 기술이 발전하면서 거의 모든 영화들이 매우 실감나는 미래 사회의 묘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달여행> (사진 오른쪽 위) 은 일찍이 1902년에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영화의 제목입니다. 제목 그대로 달여행을 묘사했으며, 비록 과학적으로는 허술하지만 대중들로 하여금 앞으로 영화가 펼쳐 보일 시각적인 상상의 세계를 암시하기에는 충분했지요.

초창기 영화들 중 미래사회의 묘사에서 단연 돋보이는 작품은 1926년에 독일의 프리츠 랑이 감독한 <메트로폴리스>입니다. 3시간이 넘는 대작인 이 작품에서는 마천루가 즐비한 거대도시가 배경으로 등장하여, 오늘날 고층빌딩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대도시의 풍경을 거의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회 계층 간의 갈등을 제재로 삼아 시각적인 묘사 못지않게 묵직한 주제 의식도 담고 있는, SF영화사상 최고의 고전 중 하나입니다.

현대사회 화두 다룬 걸작 탄생하다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SF영화들은 공포물이나 오락 활극류의 성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으나, 1968년에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내놓은 대작 <2001년:우주의 오디세이>는 SF영화의 차원을 한꺼번에 크게 격상시켜 놓기에 이릅니다. 이 작품은 인간이 달에 도달하기 1년 전에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직접 우주선을 타고 가서 찍은 듯한 생생한 무중력 상태 묘사와 달 탐험 장면, 또 심오한 내용 등으로 인해 오늘날 SF영화의 테두리를 넘어서 세계영화사상 10대 명작의 하나로까지 꼽히는 걸작입니다. 실제로 우주여행을 한다면 어떨 것인가 하는 의문은 이 영화를 통해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대두된 현대 사회의 큰 화두 중 하나로 핵문제가 있습니다. 직간접적으로 핵문제를 다룬 영화들은 이미 1940년대부터 선보인 바 있지만, 영화사상 기억할만한 예언과 뒤이은 적중의 사례로는 1979년에 발표된 영화 <차이나 신드롬> (사진 왼쪽) 을 들 수 있습니다. 발표 당시만 해도 이 영화에서 다룬 핵발전소 사고는 어디까지나 경고의 의미 만을 담은 가상의 상황이었지만,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스리마일 섬의 핵발전소에서 유사한 사고가 실제로 발생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SF라는 장르는 현대에 접어들면서 소설과 영화 모두 과학기술의 부정적인 면을 경고하는 내용으로 채워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198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개인용 컴퓨터가 널리 보급되면서 사회생활의 모습도 점점 변화하기 시작했는데, 이처럼 PC가 보편화된 미래 사회는 예전의 SF작가들도 미처 예견하지 못했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회상을 반영한 새로운 SF의 조류도 역시 1980년대부터 생겨나서, 오늘날 ‘사이버펑크(cyberpunk)’라는 한 독특한 스타일을 형성했습니다. 고도로 발달한 컴퓨터 정보통신망 사회에서 현실 세계와 컴퓨터 안의 가상공간인 ‘사이버스페이스(cyberspace)’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구성의 작품들은 오늘날 서구의 SF에선 보편화된 것입니다. 사이버펑크는 과거 세대와는 달리 PC를 어릴 때부터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대해왔던 인류의 신세대 문화라는 점에서 21세기의 사회상과 문화적 감수성을 짚어보는데 중요한 변수가 되는 현상입니다. 바로 그러한 감성과 세계관이 21세기 미래사회의 모습을 이룰 것이니까요.

최근 작품들, '미래사회 전망, 독자 몫으로'
이전에는 미래소설이나 미래를 배경으로 삼은 영화라고 하면 단순히 유토피아나 디스토피아적인 획일성만을 지닌 내용들이 많았지만, 최근에 발표되는 작품들은 단순하게 재단할 수 없는 복잡다기한 성격을 지닌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즉, 다양한 미래의 가능성들을 제시하면서 독자나 관객들 각자의 해석에 맡기는 것이지요. 날이 갈수록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과학기술과 그에 따른 사회상의 변화는, 이제 우리들로 하여금 다음 세대를 위한 선택 이전에 얼마 남지 않은 우리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선택이 불가피해졌음을 일깨워주는 듯 합니다.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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