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사이보그, 안드로이드, 휴머노이드
흔히 로봇이라고 하면 기계장치로 이루어진 것을 연상하지만, 차펙이 (사진 왼쪽)에서 처음으로 등장시킨 로봇은 유기물질로 만든 인조인간이었습니다. 최근에는 로봇 외에도 사이보그, 안드로이드, 휴머노이드 등 비슷한 의미를 지닌 말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지요. 그렇다면 이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로봇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대로입니다. 사람을 대신해서 일련의 작업을 수행하는 기계 및 전기, 전자장치의 복합체이지요. 이러한 로봇은 더 이상 SF에만 등장하는 용어가 아니라 산업현장에서 실제로 쓰이고 있습니다. 꼭 인간과 비슷한 모양으로 생겨야만 할 필요는 없으며 용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고 있는데, 예를 들어 화성으로 보내졌던 무인 탐사선 패스파인더호(사진 아래 가운데)도 일종의 로봇입니다.
사이보그(cyborg)는 ‘사이버네틱 오가니즘(CYBERnetic ORGanism)’의 약자로서 1950년대에 의학자들에 의하여 창안된 개념입니다. 처음에는 인간의 신체를 인공장기로 대체하여 외계와 같이 가혹한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게 만든다는 SF적인 발상으로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엔 질병이나 사고 등으로 신체 일부의 기능을 잃은 사람들에게 인공장기를 달아주는 실용적인 방향으로 정착되었지요. 인공심장이나 인공뼈는 물론이고, 의안이나 의수, 또 콘택트렌즈나 인조 속눈썹, 가발 등을 쓴 사람도 엄밀히 말하자면 사이보그라 할 수 있습니다. 로봇이나 사이보그는 이처럼 오늘날 단순한 SF용어가 아니라 과학용어로 받아들여지고 있지요.

안드로이드와 휴머노이드는 ‘외형상 인간과 닮은 것’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움직이지 않는 인형을 두고는 이런 말을 쓰지 않으며, 인간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사고하는 로봇을 의미합니다. 로봇이 넓은 의미의 자동장치를 가리킨다면, 안드로이드는 겉보기에 인간과 매우 흡사한 로봇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인조인간을 등장시켜 애수에 찬 휴머니즘을 그린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블레이드 런너><사진 아래 왼쪽)에 나오는 안드로이드들이 좋은 예지요.
휴머노이드는 인간을 닮은 물체를 가리킬 때 주로 사용하는 말인데, 흔히 외계인의 모습이 인간처럼 두 팔, 두 다리가 달렸고 직립보행을 할 경우 이렇게 표현합니다. 아무튼 안드로이드나 휴머노이드는 아직 SF용어의 차원에만 머무르고 있는 단계랍니다.

로봇, 인간의 정체성을 되묻다
먼 미래에나 닥치게 될 일이지만, 외형이나 능력 면에서 인간과 똑같은 로봇이 등장한다면 인간의 정체성이나 휴머니즘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일견 공상으로만 여겨질 그런 상황을 추론해보는 이유는, 그런 설정을 통해서 지금 현재의 인간에 대한 반성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SF에서는 이와 같은 구성을 즐겨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 분야의 수작으로 꼽히는 작품 중에 아시모프가 1976년에 발표한 중편 <2백 살을 맞은 사나이>가 있습니다. 바로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한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사진 왼쪽)의 원작이지요. 로봇이 한 가정에 들어와서 집사 노릇을 하며 가족처럼 살아가는데, 제작과정상의 이상으로 로봇의 전자두뇌가 스스로 자기계발을 해나갑니다. 그리하여 로봇은 스스로의 힘으로 돈을 벌고 독립해서 혼자 살게 되며, 나중에는 외모도 인간과 똑같이 개조해나갑니다. 원래 함께 살던 집안사람들과는 100년이 넘도록 대를 이어 끈끈한 정을 이어나가면서 법적으로 독립도 보장받고, 제한적이나마 자유도 누리게 되지요.
그러나 그가 추구하는 단 하나의 목표는 바로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는 어느 인간도 이룩하지 못한 뛰어난 과학연구로 인류에게 커다란 공헌을 하고 널리 존경을 받게 되지만, 결코 인간으로 인정받지는 못합니다. 뜻을 함께하는 몇몇 사람들과 세계의회에서 인간의 정의를 놓고 힘겨운 법적투쟁을 벌이다가, 그는 마침내 최후의 수단을 택하게 됩니다. ‘인간’에게는 원래 기계로 된 부속품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자신의 몸에서도 금속 부품을 모두 빼고 완전한 유기체로 바꾸는 수술을 받은 것이지요. 그렇지만 그 결과 자신의 양전자두뇌와 유기질 신체는 부조화를 이루어 그는 200살이 되는 해에 숨을 거두고 맙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그가 간파한 인간과 로봇의 차이였습니다. 로봇은 개조를 통해 수명을 무한대로 늘일 수 있는 반면에, 인간은 유한한 삶을 타고난 존재인 것입니다.

현재 산업현장에서 쓰이는 로봇들과는 달리, 아직 ‘로봇’하면 영화나 소설에서 볼 수 있는 인간형 로봇, 즉 안드로이드들이 연상되기 마련입니다. 영화 <터미네이터>에 등장하는 로봇들은 무자비한 전투기계이며, 앞서 언급했던 <블레이드 런너>의 안드로이드들도 제한된 수명의 굴레를 벗기 위하여 인간에게 반기를 든 인조인간들입니다. 이들에게는 로봇공학의 3원칙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지요. 그러나 로봇의 창조자와 조종자는 어디까지나 인간이며, 결국 로봇이 저지르는 모든 악행은 인간의 어두운 면이 투사된 결과들인 셈입니다.
인격을 지니고 스스로 사고하는 로봇은 아직 SF에서만 접할 수 있지만, 그들은 작품 속에서나마 인간 못지않게 스스로의 정체성을 갈구하며 인간보다 나은 휴머니즘을 보여줍니다. 과학기술과 유전공학의 발달로 마침내 인간이 ‘신의 손’을 갖게 되었을 때, 우리는 과연 ‘인격을 갖춘 로봇’을 만들어도 될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휴머니즘에 확신을 갖지 못한다면, 보다 완벽한 인성(人性)을 지닌 로봇들에게서 ‘타락한 신’으로 단죄받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지요.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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