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바탕으로, 또는 과학을 넘어서
재까지는 작용-반작용의 역학법칙에 의하지 않고 우주공간을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이 발견되지 않고 있지만, SF작가들은 몇 가지 이론적인 대안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SF작가 아서 클라크는 이러한 미지의 우주비행 원리를 총칭하는 말로 ‘우주 추진(space drive)’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반중력(反重力) 장치 등이 우주 추진의 예가 될 수 있는데, 이러한 방법을 쓸 수 있다면 우주선에 연료 탱크를 달 필요가 없어지므로 매우 획기적인 우주여행 수단이 될 것입니다.
로켓을 사용하더라도 빛의 속도에 가깝도록 빠르게 날아가는 것은 이론적으로 가능합니다. 진공 상태인 우주공간에서는 사실상 마찰이 발생하지 않으므로 가속을 거듭하면 속도는 계속 올라가기 마련이며, 그렇게 해서 얻은 속도로 관성 비행을 하면 장거리 여행도 가능합니다. 물론 이 경우에도 아인슈타인이 밝힌 상대성이론에 따라 빛의 속도를 능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몇 백 광년의 머나먼 거리를 여행하려면 탑승자가 인공동면에 들어간다든가, 우주선 안에서 자급자족하면서 아이를 낳고 길러 몇 세대에 걸쳐 여행을 하는 ‘세대우주선’을 탄다든가 하는 일이 필요하게 됩니다.

아서 클라크가 1973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라마와의 랑데부>(사진 위 오른쪽)에는 SF문학사상 과학적으로 가장 치밀하게 묘사된 것으로 꼽히는 외계 우주선이 등장합니다. 22세기의 어느 날, 지구로 접근하는 미지의 외계 물체가 포착되어 ‘라마’라는 이름이 붙여진 채 엄밀한 탐사의 대상이 됩니다. 라마는 놀랍게도 길이가 50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원통형 인공물체인데, 자그마치 20만 년 이상을 막막한 우주공간을 가로질러 날아온 외계의 우주선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지요.
아서 클라크가 앞서 언급했던 미지의 우주 추진 방식을 이용하고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라마는 이 작품에서 역학적으로 거의 완벽에 가깝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원통이 길이 방향을 축으로 삼아 자전하면서 내부의 안벽에 인공중력이 생겨나며, 내부의 모든 구조물들은 진행 방향의 최고가속도에 알맞도록 정확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우주선 안에서는 생명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발견되지 않지요. 마침내 탐사대원들은 라마가 하나의 거대한 로봇처럼 움직이는 인공 천체라는 결론을 내린 채, 시시각각 태양으로 다가가는 라마에서 탈출해 나옵니다.
<라마와의 랑데부>는 장대한 시각적 묘사와 치밀한 과학적 논리구사에 힘입어 외계 문명과 처음으로 만나는 것을 의미하는 SF용어인 ‘최초접촉(first contact)’ 분야에서 오늘날 교과서나 다름없는 본보기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사진 위는 스타트렉 엔터프라이즈호 그림>

한편 SF사상 가장 유명한 우주선을 꼽으라면 <스타 트렉>에 등장하는 엔터프라이즈 호가 단연 1등일 것입니다. 1964년에 미국의 진 로덴버리에 의해 TV연속극으로 처음 선을 보였던 최초의 <스타 트렉> 시리즈는 오늘날 이미 전설적인 고전으로 팬들의 뇌리에 남아 있으며, 현재는 그 후속편이 영화와 TV시리즈로 계속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스타 트렉>의 열광적인 팬들을 일컬어 ‘트레키(trekkie)’라고 부르는데 - 이 말은 오늘날 영어사전에까지 올라 있지요 -, 이들이 엔터프라이즈 호에 쏟았던 애정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케 하는 재미있는 일화가 한 가지 있답니다.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처음으로 우주왕복선을 개발해냈을 때, 그 우주선의 이름을 엔터프라이즈 호로 짓도록 압력을 넣으라는 편지가 자그마치 40만 통 가까이 워싱턴에 쏟아졌다고 합니다. 이 숫자는 미항공우주국으로 직접 날아간 편지들은 제외하고 어림한 것이라고 하니까, 당시 트레키들의 열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지요.
SF작가들의 상상력은 단순히 미래의 우주선을 고안해 내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우주선이 실제로 어떤 문제점을 나타낼 수 있는가 하는 세부적인 사항에까지 설득력 있는 논리를 전개해나갑니다. 미국의 SF작가 폴 앤더슨은 자신이 SF잡지에 연재했던 작품 하나를 1970년에 단행본으로 펴냈는데, <타우 제로>(아래 왼쪽 사진)라는 제목이 붙은 이 소설은 장거리 우주여행을 다룬 분야에서는 걸작으로 평가받는 것입니다.

몇 세기 뒤의 미래, 태양에서 33광년 떨어진 성좌를 목적지로 삼고 각기 50명씩의 남녀로 구성된 대규모 이민탐사대가 지구를 떠납니다. 그들이 타고 가는 우주선은 항성간 램제트(ramjet) 엔진을 단 것으로, 우주선 주위에 100만 킬로미터 정도 길이의 강력한 전자유체역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 역장을 통해 우주공간에 존재하는 극히 미소한 양의 성간물질들을 끌어 모아다가 연료로 사용하는 것이지요. 또한 이 역장은 성간물질과의 마찰도 자동적으로 없애주며 외부의 강력한 방사선으로부터 우주선을 보호하는 역할도 합니다. 이런 시스템에 의해 우주선은 일정한 가속도를 계속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33광년의 거리를 우주선 시간으로 5년 안에 비행할 예정이었습니다.
<사진 왼쪽- 소설 타우제로 책표지>

그런데 여정의 절반쯤에 이르러 감속을 해야 할 시점이 되었을 때, 그만 외계 천체와의 충돌로 감속시스템이 파괴되어 버립니다. 이를 수리하려면 외부 역장을 제거하고 우주선 밖으로 나가야 하지만, 역장을 제거하면 감마선 때문에 승객들의 생명이 위험합니다. 결국 사람들은 성간물질의 밀도가 극도로 희박한 곳까지 우주선을 이동시켜야만 수리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처럼 완벽한 진공 상태의 우주공간을 찾아 방향을 돌립니다. 그러한 진공 상태는 은하들이 전혀 없는 머나먼 바깥 우주에만 존재하는 것이었지요.

그리하여 그들은 은하계 밖으로 기수를 돌려 4,000만 광년 저편의 까마득한 섬우주 하나를 목표삼아 비행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득한 우주공간 저편에 이르러 감속장치는 겨우 수리할 수 있었지만, 이미 가속도는 광속에 가까운 정도까지 도달한 뒤라서 감속장치가 감당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선 뒤였습니다. 또 엄청난 가속도로 인해 우주선 안의 시간도 외부세계보다 수천수만 배나 늘어나 있었습니다. 즉, 그들은 지구의 역사와 영원히 격리되어 버린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정처없이 우주공간을 방랑하기 시작합니다. 전방에 자신들이 탄 우주선의 속도를 흡수해 줄 거대한 천체가 나타나기만을 바라면서.
순수한 과학적 추론만을 전개하여 놀라운 스케일로 형상화시킨 이 작품은 대단원도 장대하게 맺어집니다. 그들은 이 우주가 팽창에서 수축으로 전환하고 그 다음 팽창으로 대우주의 새로운 사이클이 시작될 때까지 계속 비행하다가 마침내 다음 우주에서 안주할 땅을 찾게 되지요. 과학적 논리 구사에 중점을 두는 ‘하드SF(hard SF)’의 걸작다운 결말인 셈이지요.

우주로 떠나는 환갑여행, 신혼여행
로버트 하인라인이 1950년대에 발표한 <달을 판 사나이>(사진 오른쪽)에서는 달에 가는 것을 일생의 소망으로 삼고 한평생 갖은 노력을 다하는 사나이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의 업적으로 달에 우주선이 가기 시작했을 때, 그는 남들이 달 여행 가는 것을 그저 구경만 하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로켓을 타기에는 이미 너무 늙어버렸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목숨을 걸고 생애 최초이자 최후의 달 여행을 한 뒤 달에서 숨을 거둡니다.

이처럼 우주여행을 한다는 것은 사실 간단한 일이 아니지요. 실제로 미국이나 러시아 등에서 우주비행사를 선발하는 과정은 매우 까다로워서, 심신이 매우 건강한 사람들 중에서 엄격히 가려 뽑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이 발달할수록 오늘날 비행기를 타는 정도로 간단하게 우주여행을 할 수 있는 우주선이 머잖아 등장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주관광여행도 가능할 것이고, 어쩌면 지금의 20-30대 연령층은 환갑여행을 달로 가게 될지도 모르지요. 아들딸들의 신혼여행과 함께. 그러나 그렇게 해서 달에 갈 수 있게 되더라도 태양계 밖의 머나먼 별세계는 그 뒤로도 한참동안 동경의 대상으로만 남게 될 테니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지요. 인류의 우주 진출 꿈이 이루어지기에는 우주공간의 까마득한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입니다.

(사진 위는 다이달로스 프로젝트 관련 그림)

1970년대 초반에 영국행성간협회(BIS:British Interplanetary Society)에서는 ‘다이달로스 프로젝트’라는 우주선 건조계획을 입안한 바가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현재의 과학이론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우수한 로켓을 설계하는 것이었고, 그 결과 핵융합 로켓엔진을 이용한 항성간 우주선인 다이달로스 호의 설계도를 내놓았지요.
이 우주선은 항성간 여행, 즉 태양계를 벗어나 아득한 우주 저편까지 날아가는 것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먼 옛날 다이달로스가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크레테섬을 탈출했듯이, 지구와 태양계를 벗어나 대우주로 진출하려는 인류의 궁극적 꿈을 실현시켜줄 야심찬 계획인 셈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우주선은 아직 대략적인 설계도밖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현재까지 밝혀진 과학이론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우수한 우주선임에는 틀림없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핵융합 엔진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없기 때문이지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비행기의 원리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당시의 과학기술이 부족해서 만들지 못했던 것처럼, 다이달로스 우주선 역시 앞으로 150년쯤은 지나야 실제로 제작될 수 있을 거라고 합니다.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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