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졸리다. 점심을 평소보다 좀 많이 먹었더니 어김없이 식곤증이 몰려온다. 멍하니 앉아 있자니 뭐해서 알라딘에 들어와 끄적끄적. 요즘 일이 많기도 많은데 자꾸만 늘어져서 걱정이다. 뭔가 나사가 빠진 느낌. 의욕이 바닥을 치는 느낌... 가을을 타는가? 라고 센티멘탈하게 묘사하고 싶긴 한데.... 실상 그렇지 않으니 적기도 민망하다.

 

야구 이야기나. 어제부로 2015 정규 시즌이 끝났다. 결국 5연패 하신 1등 천상계 삼숭... 이건 언제쯤 깨질런지. 도대체가 이젠 경기내용이 다른 팀과 비교가 안되니 욕하기도 어렵다. 예전엔 꾸역꾸역 1등 해서 욕도 많이 했더랬는데. 류중일감독이 들어오고 나서는 거의 최상의 팀상태이다. 그리고 2등 NC. 1등이나 2등이나 감독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알게 해주지 뭔가. 달감독은 첫 해 꼴등한 팀을 일년만에 3등, 2년만에 2등으로 만들어 놓았다. 달감독이니까 가능한 것이라고 본다. 게다가 테임즈라는 멋지구리 용병까지 눈밝게 데려오시고. 정말 완벽한 것이죠... 부럽부럽. 원래 두산감독이었다구!

 

3등은... 그저 어찌저찌해서 두산. 잘 나가다가 8월엔가 승률 꼴등을 달리시더니만 결국 0.5게임 차이로 3등을 하는 신공을 발휘. 정말 열불나서 쳐다볼 수가 없었으나 그래도 3등... 이라니 눈물을 머금고 기뻐하기로. (나 두산 팬) 그리고 4등은 넥센. 내가 넥센팬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4등이다. 144게임 중 먼저 끝나고 두산이 한 게임 남은 상태에서 동순위. 그러니 두산아 져라 두산아 져라.. 해겠지만 9대빵으로 이겨버린. 그리고 5등은 스크. 역시 뭐라뭐라해도 전력이라는 게 있는 팀인 게지. 예전 김성근 감독이 만들어놓은 토대가 아직도 유효한 것 같다는 느낌 아닌 느낌? 예전 스크를 생각하면 지금의 5등이라는 점수는 차마 말하기도 부끄럽지만 말이다.

 

6등은 한화, 처음의 그 기세는 어디로 가고 뒤로 갈수록 허덕허덕. 김성근 감독의 특유의 밀어붙임이 선수들 진을 다 뺀게 분명하고 권혁 등은 넘 자주 나와서 나중에 공 던지는 거 보니 이건 뭐 부상당한 선수마냥 겨우 던지고. 아무래도 꼴등하던 팀인데 일년만에 어떻게 5등 안으로 끌어올리려고 무리수를 두었다는 게 패인인 듯. 선수들이 아직 기초가 다 안 닦인 상태라는 거지. 그래도 한화는 놀라운 성장을 한 거다. 만년 하위였는데 이제 중위권으로 올라왔으니. 이 시점에서 냄비같은 사람들은 처음엔 김성근 감독을 신처럼 떠받들더니 이제 와서는 독하다느니, 훈련방법이 전근대적이라느니, 욕을 해대고. 에잇.

 

7등은 기아, 8등은 롯데, 9등은 엘쥐. 오마이. 엘롯기. 기아는 그래도 막판에 상승세를 보였고 5등을 할랑말랑하다가 안되어버렸고. 김기태 감독의 리더십이 먹히는 느낌이 나고 있으니 내년은 좀 기대해볼만 한 듯. 특히나 이 팬심. 마지막 엘쥐와의 경기에서 졌음에도 이렇게 팬들이 구장에 내려가 하트를 그려 주었다. 눈물나는 정경이 아니냔 말이다.

 

 

 

 

 

 

롯데와 엘쥐는... 뭐라 드릴 말씀 없음. 패스. 일년 내내 경기가 졸렬했기 때문에 대대적인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10등 케이티. 신생팀이라 꼴등의 영예(?)를 안을 수 밖에 없었지만 (사실 이것도 예의다. 신입의 예의..ㅜ) 중반 이후 보여준 기량으로 봤을 때 내년엔 꼴등이 뭐냐. 훨씬 잘 할 것 같다. 여기도 명장 조범현 감독이 있으니까. 대체로 못하는 팀은 감독들이 초보 수준이라는 거. 수많은 야구선수들이 배출되었지만, 그 중에 제대로 된 감독은 거의 없다는 거. 지금도 몇명 두고 돌려막기 중 아닌가. 심지어 롯데는 로이스터 감독을 재계약하려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일등 못한다고 쫓아낼 때는 언제고 말이다.

 

여하간, 오늘부터 와일드카드 시작이다. 팀이 10개가 되니 와일드카드 제도가 생겨서 포스트시즌이 더 길어졌다는 게 올해의 특징이다. 4등 넥센과 5등 스크가 붙고 넥센에게 1승을 먼저 주고 시작하는 것으로, 그러니까 넥센은 한번만 이기면 준플레이오프전에 올라갈 수 있는 티켓을 확보한 셈이다. 여기서 이긴 팀이 두산이랑 붙을 건데... 두산이 이 두 팀한테 계속 약했어서... 걱정이다.

 

포스트시즌 기간동안에는 아예 이동일 빼놓고는 약속을 안 잡을 계획이다. 이제 길게 가야 11월 초까지 보면 야구 끝. 내년 3월까지 스카우팅 리포트나 봐야 하는 신세가 된다. 나의 암흑기가 시작되는 시점.... 무려 5개월을 전력분석하느라 보내야 하니.... 포스트시즌을 충분히 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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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10-07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성은 구단 자체 선수 육성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서 앞으로 선수 세대교체가 착실히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하는 기자와 일부 삼성 팬이 있는데 저는 오히려 비관적으로 봐요. 왜냐하면 박석민을 대체할 우타 거포뿐만 아니라 최형우, 이승엽만큼 해줄 타자들이 나올 수 있을지 걱정돼요. 투수 노쇠화 문제도 이번 시즌에 보여줬고요.

비연 2015-10-08 09:39   좋아요 0 | URL
저는 사실 반반. 선수육성 프로그램을 한다고는 하지만, 기존 선수를 대체할만한 선수는 별로 없어보인다는 것엔 동감인데... 시스템 야구를 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약간의 어려움은 있겠지만 무난히 넘어가지 않을까 싶기도 하구요. 다만, 한 팀이 계속 이렇게 독식하는 건 반대인지라 다른 팀들이 좀 훌쩍 커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분주하게 지내고 있다. 이것이 의미있는 일인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지나고나니 의미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냥 일을 해야 했고 끝을 내야 했고 그래서 한 거고. 스티브 잡스가 말했듯이, 매일 아침 일어나 이 일이 재미있는가 가슴이 뛰는가 물어서 3일 이상 아니라고 대답 나오면 바로 집어치우라는 건. 현실에선 대부분에게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정말 부럽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걱정이 하늘을 찌르고 그닥 다른 재주가 없는 凡人들은 그저 남이 주는 몇푼의 월급에 목을 매며 매일을 지내게 된다.

 

그게 오늘의 나이다.

 

인정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그게 오늘 현재 시점의 나니까. 난 지금 그냥 의미있는 일을 찾겠다는 열망보다는 이 끝내야 할 일을 주말작업을 해서까지 끝내고 얼른 집앞 카페에 가서 따끈한 아메리카노 한잔 마시며 생각도 하고 책도 읽고 중국어 공부도 하고.. (찔린다) 그러고 싶은 마음 뿐이다. 대개는 그런 거다. 대개는 쉴날을 꿈꾸며 오늘의 일을 한다.

 

이제 일이란 걸 얼른 해야 하는데, 와야 할 사람들이 오지 않고 있다. 새벽부터 일어나 서둘러 왔더니 눈이 감긴다. 어제 저녁에 知人들과 맛있는 거 먹으며 웃고 떠들고 하느라 늦게까지 밖에 있었더니 오늘 아침엔 때려 죽여도 못 일어나겠다는 생각이 설핏 들었었다. 그래도 직장인은 의무감에 억지로 몸을 일으키고 꾸역꾸역 샤워를 하고 대충대충 화장을 하고 아침은 토스트와 커피로 간단히 한 채 집을 나선다. 버스를 타려고 내린 강남역은 일요일 아침이라 그런 지 썰렁했다. 지난 밤의 숙취로 바닥에서 주무시던 분들이 (날이 쌀쌀해지고 있는데 걱정이다 이런 분들..) 슬슬 일어나서 엉망이 된 머리를 쓰다듬으며 퀭한 눈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게 보인다. 뭔가 산다는 게 무지하게 가엾어 보이는 아침이었다. 누구나 다 가엾은.

 

읽고 싶은 책이 잔뜩인데, 아직 열어보지도 못하고 있다. 며칠 전 책 구매하고 그 책들을 읽어야겠다 생각했는데 아직이다. 보고 싶은 책을 또 구매해야 하나, 아니면 있는 거나 일단 읽어야 하나 고민에 빠진다. 일단 오늘의 일을 하고 다시 고민해보자. 사람들이 슬슬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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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난 못되었다. 아주 성질머리 드럽고 까칠하고 예민하고 툭하면 째리고 그런다...

 

그래도 잘 포장해서 드러나지 않게 조신스럽고 즐겁게 다니려고 하는데 정말 못 참을 일이 있다. 내가 이 프로젝트에 들어온 지 넉달이 좀 지났는데, 가장 못 견딜 일은 고객의 갑질이나 일의 무거움이나 그런 게 아니다. 바로 내 옆에 앉은 피엠의 타자'질' 소리이다.

 

이건 거의 자판기를 부수는 수준이다. 참고 참고 또 참다가 이어폰을 꽂아보지만, 아... 쳐대는 소리는 이어폰을 뚫고 내 귀에 닿아버린다. 째려보지만, 잠시 멈칫하다가 다시 돌아간다. 그 소리가 어느 정도냐 하면 우리가 과제 하느라 들어와 있는 방은 열명 정도가 다닥다닥 들어갈 작은 방인데 그 밖에까지 울려퍼진다. 예전 수동타자기를 내려치던 그 솜씨를 생각하면 된다. 

 

그게 일을 하는 거면 말을 안한다. 주로 하는 일이 이메일작성인데, 그 이메일 하나 작성하는데 몇 줄 쓰는데 시간은 거의 30분은 걸리고 그 내내 쳐댄다. 드르르르륵 탁탁 드르르르륵 탁탁... 탁탁탁탁탁탁... 엔터키가 살아남아 있는 게 가상할 정도이다. 사무실 소음이 50 데시벨 정도면 정상이라고 봤을 때 바로 옆에 앉아 있는 나에겐 70 데시벨 정도는 계속 들려온다고 생각된다. 그러니까 소형 프레스기나 좀 시끄러운 복사기가 옆에서 계속 가동하는 거다.

 

참고, 또 참고, 또 참고... 그러나 뭔가 생각하려고 하면 그 예의 타자 소리가 울려퍼지고 갑자기 정신이 흩어지면서 그 타자 소리에 화를 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건 주말에 아무리 수양을 하고 와도 소용이 없다. 정말 피엠이 나보다 연세가 차이가 그리 나지 않았으면 벌써 얘기하고 시정을 요구했을 사안이나... 열살은 나는데 어떻게 그런... 하고 참고, 또 참고, 또 참고.

 

드디어 오늘. 도저히 못 참고 분연히 일어나 다 가지고 회의실에 와서 좌판을 벌였다. 아 조용해. 일할 맛 난다. 나오는데 뒤통수가 따갑긴 했지만 에라 몰라. 나 못된 애야. 나 못되었어. 그래도 타자 소리에 미치는 것보다는 그냥 그걸 택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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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싫어하는, 주말 출근을 했다. 그것도 수원에. 젠장.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7시 통근버스를 타고 왔는데, 평일과는 다른 데 세워줘서 모르고 쿨쿨 자다가 허겁지겁 내렸다. 넘 잤는지,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버스에서 보도블럭으로 무릎착지를 했다. 아프고 부끄럽고... 잘 일어나지도 못해 엉거주춤하면서 주위에 시선을 두지 않으려고 고개 푹.

 

왔더니 아무도 안 와 있다. 9시 회의인데 아무도 없다. 회의 때 마시려고 사온 커피는 벌써 다 먹었고 어쩔 수 없이 10시로 미루었다. 그러니까... 퇴근도 한시간 밀릴 거다. 점심 먹기전에 출발해보겠다는 나의 야심찬 플랜은 공중으로 날아갔다. 저녁 먹기전에 가길 빌어야 할 시점.

 

어제 여러가지로 멘붕의 사건들이 회사에서 터져서 지금 안 그래도 마음이 착잡한데. 그래서 주말에 조용히 마음을 다스려도 모자랄 판에, 회사에 나와 자빠지고 (엎어지고 인가...) 회의 밀리고 정말 사는 게 녹록치 않다. 7월 8월 2달 스킵했던 중국어 학원 9월에 등록했더니 두번째 주부터 결석이구나.

 

내 돈. 이번 주, 아니 이번 달, 아니다 올해... 정말 마가 끼었다 안 좋은 일의 연속이다. 그래도 긍정심을 잃지 말자고 매일 아침 되뇌는데 잘 되지 않는다. 나약한 비연. 어제는 괜히 속상해서 친구랑 메세지로 다투기까지 했다. 최악이구나. 오늘 아침, 서로 다시 메세지 주고 받으며 무마하긴 했지만 상태 별로인 서로에게 생채기는 남을 것 같다.

 

뭔가 전환할 계기가 필요하다.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데, 이런 류의 고민은 십년 전에도 했었던 것 같아서 아주 매우 상당히 씁쓸하다. 나의 인생은 계속 답보 상태인 건가. 같은 고민을 주기적으로 한다는 건 문제 아닌가... 에잇.

 

 

뱀꼬리) 어제 며칠 전 주문한 책이 도착했다. 이 책들 읽고 싶은데 집을 나와 출근하는 맛이란. 찝찝. 일요일엔 이 책들을 잡고 읽어야겠다. 아 지금 읽고 있는 책들도 있는데.... 어쨌든 주말의 책은 이 책들이다. 다 읽기는 어려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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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2015-09-12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릎 괜찮으세요? 땅 바닥이 콩크리트였으면 , 많이 아프실텐데.

일이란게 , 잘 하는 사람들한테 독박이 쓰이는 경우가 많아요. 열심히 사시는 것 같아 , 나는 뭐하고 있나 생각하다 갑니다. 주말 잘 쉬세요 비연님.

비연 2015-09-13 11:14   좋아요 0 | URL
몬스터님. 으흑. 무릎은 좀 쑤시긴 한데... 아팠기도 한데... 그럭저럭 괜찮아질 것 같아요..ㅠ 열심히 산다기 보다는 최소한만 하고 살려고 하는데도 이러네요. 오늘은 어제의 보상으로 아주 늘어지게 쉬어보려고 해요..우힛. 그나저나 가을날이 참.. 이쁘네요.. 좋은 주말 되세요, 몬스터님~
 

 

요즘 꿈에 외할머니가 자꾸 보인다. 십년 쯤 전에 돌아가셨는데, 그 때 그 모습 그대로. 가끔 말씀도 하시고, 가만히 누워 계시기도 하고. 돌아가시고 나서 이렇게 꿈에 나타나시는 건 처음 있는 일이라 마음이 좀 찝찝하다. 양력 6월에 돌아가셨으니 기일도 아니고 추석이 다가와서인가. 아니면 근간 내 마음이 심란해서인가.

 

우리 외할머니는 음식을 참 잘 하셨더랬다. 워낙 규모가 큰 살림을 해오셔서 제사 지내고 음식 하고 이런 일에 이골이 나다시피 하신 분이셨다. 평생을 그러셔서 그런지, 그런 일들을 그닥 싫어라 안하시고 늘 부엌에서 뭔가를 하시곤 했다.

 

외할아버지가 맏이이셔서 외할머니 살아계실 땐 명절만 되면 온 친척들이 다 외갓집에 모였더랬다. 외삼촌, 외숙모, 이모, 이모부, 고모할머니, 고모할아버지, 오촌 삼촌, 이모, 육촌, 사촌 등등... 뭐 이렇게 한꺼번에 모이는 건 아니었지만 쉴새없이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고 했다. 이러면 곤란한 게 식사시간이 일정치 않으니 밥상을 계속 차려내야 한다는 거였다. 외할머니는 늘그막에 거동이 좀 불편하셨기 때문에 지시에 따라 외숙모들이 고생을 많이 했었다. 그래도 먹기만 하는 나로서는 그런 자리들이 즐거웠던 것 같다.

 

내가 특히 좋아했던 음식은 외할머니의 육전과 토란국이었다. 소고기를 잘 반죽해서 가로 세로 5센티미터 정도로 네모지게 모양을 만든 후 살짝 굽는 거였는데... 거기에 고추장을 묻혀서 먹으면 그렇게 맛있었다. 가끔은, 제사라고 이것저것 한 나물들을 큰 그릇에 다 부어넣고 밥 넣고 참기름과 깨소금 살짝 뿌리고 슥슥슥 비비고 취향에 따라 고추장을 넣어 좀더 비비기도 해서 밥그릇에 담아 나눠주시면 구수한 기름 냄새와 나물향이 돌면서 식욕을 자극하곤 했다. 그 비빔밥에 제일 제격은 토란국이었다. 토란국이란 게 잘 하기 힘든 국인데, 외할머니가 해주시면 그렇게 맛났다. 

 

갑자기 병원에 가셨고 그렇게 병원에서 힘들게 계시다가 몇 달만에 돌아가시고 나서는, 신기하게도 친척들 발걸음이 조금씩 끊겼더랬다. 다들 외할머니가 해주시는 음식 맛에 같이 하는 즐거움이 있었단 걸까. 역시 먹는다는 행위는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다. 돌아가시고 처음 맞는 명절에, 한번 대부분 모였엇는데, 외숙모가 외할머니가 해주셨던 육전과 토란국을 그대로 만들어 내놓아 주셨다. 아. 외할머니가 생각나면서 눈물이 핑 돌았었다. 육전을 한 점 입에 집어 넣는데... 흠. 그 맛이 아니었다. 토란국을 한 숟가락 입에 말아 넣는데... 흠. 그 맛이 아니었다. 외할머니의 맛이 아니었다. 모양새는 거의 비슷한데 그게 아니었다. 그 때 느껴지던 왠지 모를 상실감이란.

 

요즘 먹방이다 셰프다 어쩌고 저쩌고 먹는 거에 대략 열광하는 대한민국이고 나도 못지않게 맛집 찾아다니며 먹는 사람이지만, 역시 음식이란 추억인 거다. 맛나다고 때깔 좋다고 그게 다가 아닌 거다. 그건 그냥 그때 그때 좋은 거고. 내 맘 속 깊은 곳에서 뭔가 철컥 맞아들어가는 아릿함과 쾌감을 주는 음식은, 나에게 애정을 가진 사람이 진심을 담아 해주던 음식이고 거기엔 나의 어릴 적 추억이 함께 공유되는 맛이 있는 거다.

 

외할머니가 많이 보고 싶어진다. 추석도 다가오는데 천안에 있는 산소에나 다녀올까 싶네. 다녀온 지 꽤 되었는데.. 그래서 내 꿈에 자주 나오시나. 보고 싶다고, 우리 손녀. (눈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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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2 0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12 08: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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