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누군가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순간은, 진정 깨닫게 되는 순간은 그 혹은 그녀가 不在할 때일 것이다. 우스운 건, 그 깨달음이 不在하게 된 바로 그 순간이 아니라, 좀더 시간이 지나, 문득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늘 있던 자리에 없는 그 혹은 그녀를 새삼 발견하게 될 때라는 것이다.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 입장이 되고 보니, 참 도리가 없다, 마음의 심란함이.
요즘 계속 좋지 않았다. 야구가 끝나고, 어딘가 내 정신을 몰입할 상대가 없어져 버리니, 더 했다. 어쩌면 올해 유난히 열심히 야구를 좇아다닌 것도 그런 느낌을 외면하고 싶어서였는 지도 모르겠다. 혼자 있기 싫었고 혼자서 그런 슬픔을 감당하기가 싫었고 마음에 여러 추억들이 밀려와 무너져내리는 게 싫었다.. 그래서였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더 웃고 더 떠들고 그렇게 지냈지만, 그러고 나서 돌아오는 발걸음은 늘... 무거웠다.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이 기분. 누구에게 설명을 하면 알아줄까. 이런 마음들을 꼬치꼬치 설명할 유일한 상대를 난 잃어버렸으니까. 어쩔 수 없이 혼자 앓이를 할 수밖에 없다.. 싶으니 참 울컥한다.
울컥한다.. 라는 말을 잘 하는 아이였는데. 언니. 울컥하는데요. 그렇게 말하던 그 아이가 생각난다. 울컥. 이라는 말이 잘 쓰여지는 말이던가. 그 아이가 그 단어를 말할 때마다 묘하게 신선함을 느꼈었다. 정말 울컥. 하는 상황이었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말하며 큰 키에 삐쩍 마른 팔다리를 흔들며 언니, 커피나 마실까요. 라며 걸어가던 그 아이가 오늘따라 유난히 생각이 난다.
자주, 근처 스타벅스에서 만났었다. 그 아이 집 근처나 우리 집 근처나. 역시 스타벅스 커피가 제일 좋아요. 라며 주문하곤 했었다, 그 아이. 둘이 티격태격 스벅카드 서로 채워달라고 장난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스타벅스 카드에 10만원쯤 충전해서 줄 걸. 지나면 다 후회다. 우리끼리 가던 단골 술집도 있었다. 지금은 문을 닫고 다른 가게가 들어섰지만. 이렇게 날이 서늘해지면 둘이 가끔 그곳에 가서 따뜻한 정종과 오뎅국, 그리고 오꼬노미야끼를 시켜먹었었다. 이런저런 얘길 하며 정종은 따뜻한 게 참 좋다며 다음엔 일본 가서 먹자며 이야기하곤 했었다.
마지막으로 여행갔을 때, 일본 가자던 그 아이에게 아직 방사능 쪽이 해결 안 된 것 같으니 다음에 가자. 그러고는 중국에 갔었다. 그냥 일본 갈 걸. 일본 여행을 좋아하던 아이였는데. 별로 맞지도 않는 중국에 가서 걸어다니느라 고생만 했었다. 그래도 숙소 근처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맛난 만두집에서 아사히 생맥주 한잔 시켜서는 둘이 좋아라 먹던 기억은 늘 좋다. 언니, 맥주는 역시 아사히인 것 같아요. 아사히 생맥주를 보면 그 아이가 생각난다.
그 아이와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다. 생활의 사소한 부분에까지 그 아이와의 추억이 담겨져서 문득문득 하던 일을 멈추고 생각에 잠길 때가 있다. 그렇게 나랑 지내던 그 아이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달을 보고 별을 보고 해를 봐도 해답을 잘 모르겠다.
내일이... 내 생일이다. 작년 내 생일 때 그 아이가 아파서, 생일 파티를 못했었다. 그 떄 많이 미안해하면서 그 아이가 그랬었다. 언니. 미안요. 몸이 안 좋아서 생일 챙기기 힘들었어요. 대신 내년에 두 배로 해드릴게요... 나는 어서 낫기나 하라고. 그렇게 웃으며 말했었다. 진심이었다. 낫기만 하라고... 그리고 그 땐 이렇게 일 년 뒤 그 아이 없이 생일을 맞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었다. 그냥 항상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다... 그 아이가 있었으면, 오늘 만나서 좋은 영화 한편 보고 맛난 점심 먹고 생일 선물 받고 커피 한잔 먹으며 들어가는 나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앞으로 어떻게 지내겠다 이야기도 하고... 그랬을텐데. 이제 앞으론 절대 할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비도 오고. 참 울적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