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꿈에 외할머니가 자꾸 보인다. 십년 쯤 전에 돌아가셨는데, 그 때 그 모습 그대로. 가끔 말씀도 하시고, 가만히 누워 계시기도 하고. 돌아가시고 나서 이렇게 꿈에 나타나시는 건 처음 있는 일이라 마음이 좀 찝찝하다. 양력 6월에 돌아가셨으니 기일도 아니고 추석이 다가와서인가. 아니면 근간 내 마음이 심란해서인가.
우리 외할머니는 음식을 참 잘 하셨더랬다. 워낙 규모가 큰 살림을 해오셔서 제사 지내고 음식 하고 이런 일에 이골이 나다시피 하신 분이셨다. 평생을 그러셔서 그런지, 그런 일들을 그닥 싫어라 안하시고 늘 부엌에서 뭔가를 하시곤 했다.
외할아버지가 맏이이셔서 외할머니 살아계실 땐 명절만 되면 온 친척들이 다 외갓집에 모였더랬다. 외삼촌, 외숙모, 이모, 이모부, 고모할머니, 고모할아버지, 오촌 삼촌, 이모, 육촌, 사촌 등등... 뭐 이렇게 한꺼번에 모이는 건 아니었지만 쉴새없이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고 했다. 이러면 곤란한 게 식사시간이 일정치 않으니 밥상을 계속 차려내야 한다는 거였다. 외할머니는 늘그막에 거동이 좀 불편하셨기 때문에 지시에 따라 외숙모들이 고생을 많이 했었다. 그래도 먹기만 하는 나로서는 그런 자리들이 즐거웠던 것 같다.
내가 특히 좋아했던 음식은 외할머니의 육전과 토란국이었다. 소고기를 잘 반죽해서 가로 세로 5센티미터 정도로 네모지게 모양을 만든 후 살짝 굽는 거였는데... 거기에 고추장을 묻혀서 먹으면 그렇게 맛있었다. 가끔은, 제사라고 이것저것 한 나물들을 큰 그릇에 다 부어넣고 밥 넣고 참기름과 깨소금 살짝 뿌리고 슥슥슥 비비고 취향에 따라 고추장을 넣어 좀더 비비기도 해서 밥그릇에 담아 나눠주시면 구수한 기름 냄새와 나물향이 돌면서 식욕을 자극하곤 했다. 그 비빔밥에 제일 제격은 토란국이었다. 토란국이란 게 잘 하기 힘든 국인데, 외할머니가 해주시면 그렇게 맛났다.
갑자기 병원에 가셨고 그렇게 병원에서 힘들게 계시다가 몇 달만에 돌아가시고 나서는, 신기하게도 친척들 발걸음이 조금씩 끊겼더랬다. 다들 외할머니가 해주시는 음식 맛에 같이 하는 즐거움이 있었단 걸까. 역시 먹는다는 행위는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다. 돌아가시고 처음 맞는 명절에, 한번 대부분 모였엇는데, 외숙모가 외할머니가 해주셨던 육전과 토란국을 그대로 만들어 내놓아 주셨다. 아. 외할머니가 생각나면서 눈물이 핑 돌았었다. 육전을 한 점 입에 집어 넣는데... 흠. 그 맛이 아니었다. 토란국을 한 숟가락 입에 말아 넣는데... 흠. 그 맛이 아니었다. 외할머니의 맛이 아니었다. 모양새는 거의 비슷한데 그게 아니었다. 그 때 느껴지던 왠지 모를 상실감이란.
요즘 먹방이다 셰프다 어쩌고 저쩌고 먹는 거에 대략 열광하는 대한민국이고 나도 못지않게 맛집 찾아다니며 먹는 사람이지만, 역시 음식이란 추억인 거다. 맛나다고 때깔 좋다고 그게 다가 아닌 거다. 그건 그냥 그때 그때 좋은 거고. 내 맘 속 깊은 곳에서 뭔가 철컥 맞아들어가는 아릿함과 쾌감을 주는 음식은, 나에게 애정을 가진 사람이 진심을 담아 해주던 음식이고 거기엔 나의 어릴 적 추억이 함께 공유되는 맛이 있는 거다.
외할머니가 많이 보고 싶어진다. 추석도 다가오는데 천안에 있는 산소에나 다녀올까 싶네. 다녀온 지 꽤 되었는데.. 그래서 내 꿈에 자주 나오시나. 보고 싶다고, 우리 손녀. (눈물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