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굴에 감정이 드러나는 걸 잘 못 숨기는 편이다. 아니, 잘 못 숨긴다는 건 어폐가 있겠다. 아예 못 숨긴다. 그리고 그게 좋아하지 않는 것, 못마땅한 것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항상 손해를 보고 사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포커 페이스. 이런 걸 잘 해야 사회생활에 성공한다. 이걸 나쁘게 얘기하면 뻔뻔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내 감정을 내 얼굴 가죽 위로 다 드러내면서 마치 비디오를 보여주듯이 하는 게 딱히 좋다고도 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포커 페이스가 필요하기도 하다. 많이 노력하는데, 감정이 쌓여서 어느 순간 스위치가 켜지듯이 딱 깨닫는 순간, 표정이 확 가는 걸 어쩔 수가 없다. 에구. 근데 이게 때마다 그런 게 아니라 이제 내 얼굴로 되어 버린 걸까.

 

오늘, 지난 학회 때 좌장을 맡았던 사진 한장을 입수했는데 깜짝 놀랐다. 얼굴표정이 너무 무서운 거다..ㅜ 예전엔 이렇지 않았던 거 같은데, 발표하는 사람을 그냥 쳐다본다고 본 거였건만, 마치 질책하는, 노려보는 그런 표정의 내가 사진에 박혀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여주고 물어봤더니... "후배가 말도 못 붙일 얼굴이에요.", "무서워요..", "어엄청 무서워요.", "발표자가 자기가 뭐 잘못 하고 있나 떨었을 거 같아요".. 라는 다양하지만 일관된 어조의 대답들이 나왔다.

 

사실 그 때 나는, 아무 생각도 없었고... 발표하는 내용이 생각보다 너무 일반적이고 장황해서 언제쯤 끊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 사람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고 (모르는 사람이었...;;;;) 불만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결국, 평상시에 내 표정이 이렇다는 거 아닌가. '화남'이 화석처럼 얼굴에 붙어버린... 그런 중년.

 

나이들수록 푸근하고 밝고 품이 넓은 표정이 되어야 하는데, 갈수록 빡빡해지고 싸나와지고 있구나 싶어 참 허탈했다. 예전에 차인태라는 아나운서가 말했었다. 모르는 분들도 있겠지. (차인표 아닙니다...) 장학퀴즈 사회자로 무지하게 유명했던... 나중에 MBC 사장도 했던 분이다. 그 분 얼굴이 좀 매섭게 생긴 편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얼굴이 너무 냉정해 보인다. 그러면 아나운서할 때 좋지 않을 수 있다.. 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매일 아침 거울을 보고 웃는 연습을 했다.. 매일. 활짝. 씨익. 하하. 이러면서 말이다. 그랬더니 나중에 얼굴이 변하진 않았으나 표정은 웃는 모습이 어울리게 바뀌더라.. 뭐 이런 말이었다... 나도 거울을 보고 연습을 해야 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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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6-09-09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비연님이 저 사진 속의 캔디처럼 항상 밝게 웃는 얼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나이 마흔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뭐 그런 무책임한 이야기도 있지만 타고 나길 돼지로 생겨먹었는데 어쩌라는 말인지 하다가...차인태 아나운서의 말씀을 실천궁행해야겄다는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일요일 아침마다 보던 장학퀴즈의 차인태 아나운서 제 기억엔 인상이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비연 2016-09-13 09:41   좋아요 0 | URL
저 캔디가 붉은돼지님에게 혼란을 ㅎㅎㅎ 저도 아침마다 스마일 운동 한번 해보려구요~ 우리 함께 노력해요^^*
 

 

야구팬이라면 하일성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 옛날 야구해설가라는 직업이 뭔지도 잘 모를 때부터 이것을 직업으로 삼았고 프로야구 원년 때부터 계속해서 해설을 해오셨던 분이다. 원래를 환일고 선생님이었으나, 야구가 좋아서 야구를 해설하는 게 너무 좋아서 안정된 선생님이라는 직장을 박차고 이 길을 나섰다... 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야구해설가 양대 산맥은 허구연과 하일성. 이건 뭐 오래된 이야기이다. 둘다 야구에 완전 몰두하여 살아온 분들이고, 오래 된 만큼 영향력도 크고..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나는 하일성의 해설을 좋아했다. 딱딱하지 않고 친근감있게 때론 진지한 말도 하지만 그게 질책처럼 느껴지지 않게 할 줄 알고 무엇보다 해설 자체가 쫀득쫀득하다고나 할까. 맛깔스럽다고나 할까. 듣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야구를 보게 하는 맛이 있었다.

 

그런 분이 오늘 아마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리라 추정되는... 죽음을 맞았다. 아... 지은 책 제목처럼 정말 <야구 몰라요 인생 몰라요>가 아닐 수 없다...  해설가를 하다가 KBO 사무총장을 지냈고 그러다가 다시 해설가로 복귀할 때 쯤에 여러가지 추문에 휩싸인 건 맞다. 그 진위를 떠나서 사실 많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 일흔이 다 되어가는 야구계의 산 증인이 이런 좋지 않은 일들에 휩싸여 있다니.

 

그래도 예전에 한번 쓰러져서 건강이 매우 안 좋아졌던 때에도 담배 술 다 끊고 스스로 노력해서 잘 이겨낸 일도 있던 분이라, 설마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줄은 몰랐다. 오늘 이 기사를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그냥, 차라리 쓰러져서 돌아가셨다면 이렇게 참담하진 않을 것 같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얼마나 몰렸으면 그랬을까. 그 어두운 사무실에서 혼자 무슨 생각을 하다가 그런 결단을 내렸을까... 를 생각하니 참 마음이 아프다... 이렇게 또 나의 추억이 덧없이 사라지는 것도 슬프다. 내 어린 시절부터의 야구와 관련된 추억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이 이런 말로를 맞으셨다는 게.. 더없이 허무하고.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 어딘가에서 모든 것 다 잊고 편안하시길 기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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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09-08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 고등학교에 야구부가 있었는데, 제가 다니던 학교와 광주일고가 봉황대기 4강전에서 붙었던 적이 있었어요. 그때 광주일고가 이길 확률이 80%라고 고 하일성님이 예언하셨고, 저희가 2:8로 졌지요... 정말 명해설가셨는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비연 2016-09-08 14:38   좋아요 1 | URL
저도 제가 아는 한 최고의 야구해설가셨다고 생각합니다... 아쉽고 애석할 따름입니다...ㅜ

cyrus 2016-09-08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일성님 귀에 자란 털이 장수털이라고 해서 자르지 않았다고 하던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하실 줄 꿈에 몰랐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비연 2016-09-08 17:16   좋아요 0 | URL
장수털 얘기 들으니 더욱 허탈. 사람 인생이 참 뜻대로 안 되는 것 같아요. 이제 그 구수한 말솜씨와 목소리를 못 듣는다고 생각하니 괜히 슬퍼지구요. Rest in Peace...
 

 

감기에 걸렸다. 난데없이 기침감기. 콜록콜록... 에어컨을 너무 틀었던 걸까.

 

암튼 며칠 참다가 어제 급기야 병원에 갔고 간 김에 수액도 거나하게 맞아주시고 퇴근길에 약국에 들러 약을 탔다.

저녁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저녁 약을 먼저 먹어야겠다 싶어서 약국 안에 있는 정수기로 가서 약을 먹고 기침용 시럽도 들이켰다. 강렬한 플라시보 효과 덕분인지 왠지 기침도 좀 잦아든 것 같고 몸도 좀 거뜬해진 것 같고.

 

룰루랄라... 약속장소로 갔다. 내가 계속 가고 싶어했던 가로수길 '몽리'. 와인바.

오랜만의 와인이야 하면서 끼안티 클라시코 한병을 주문하고 피자와 파스타를 안주로 한다. 아. 끼안티 클라시코를 먹으면 로마가 생각난다. 천지가 다 끼안티 류였는데, 내가 많이 먹었던 게 끼안티 클라시코. 거기선 만원 좀 넘었던 것 같은데 여기선 와인바라 그렇겠지만 81,000원이다. 아마 내가 로마에서 먹었던 거랑 빈티지나 와인의 질이 다른 걸거야 라고 애써 누르며 음미. 안주도 다 맛있다. 여기 괜찮은 걸? 애용해줘야겠어.. 라며 수다 삼매경.

 

근데, 뭔가 허전. 계속 뭔가 허전한거다.

왜 허전하지? 내가 뭘 잊어먹고 있나? 뭐지뭐지? 계속 머리를 맴도는 이 찝찝함... 그리고... 알았다.

 

약을 약국에 두고 왔다!!!!

 

아 정말. 그러니까 정수기에서 약 먹는다고 위에 올려두고는 약만 먹고 바로 뒤돌아 룰루랄라... 나온 거다. 아예 까맣게 잊고는. 철푸덕. 이거 뭐냐. 노환이냐. 치매냐. 건망증이냐. 정신상실이냐... 자책자책. 밤에 기침약 먹고 자야 하는데...으앙. 덕분에 새벽에 깨서 기침하느라 잠을 못 주무시고.... 와인도 먹었겠다 잠도 못잤겠다 퀭한 눈과 거칠한 얼굴로 출근 중... 버스에서 졸다가 뒤로 목이 꺾이는 신공까지 발휘하고.. (목뼈 나가는 줄 알았다. 너무 뒤로 확 젖혀져서.) 아 챙피해...

 

약국이 8시 30분부터 한다길래 일부러 시간 맞춰 갔으나 출근 전.

아니, 자영업자가 왜 시간을 안 맞추고 난리야. 괜히 투덜거리고. 9시 넘어 전화해봤더니 그제야 나온.... 그리고 다행히 나의 약을 잘 보관되어 있었다. 이따 찾으러 가야지.......................... 아. 비연. 도대체 왜 그러냐.

 

(...)

 

그 와중에 어제 밤엔 달밤 운동을 했다. 집앞 중학교가 항시 잠겨 있는데 (세상이 하수상하니) 가끔 밤엔 문을 열어둔다. 아주 멋진 육상트랙이 있는 고로, 어제 열려 있길래 내려가서 트랙을 돌기 시작했다. 사실 난 항상 걷는다. 걷는 게 어디냐. 근데 어제는 보니, 중고등학교 애들이 시험 연습을 하는 건지, 야밤에 몇몇이 나오더라. 그러더니 그들은 요이땅.. 하고는 뛰기 시작했다. 십대들의 저 뜀박질. 내 옆을 쉭쉭 지나가는 그 아이들을 보며 나의 십대가 떠올랐다.

 

나는 체육을 정말 싫어했고, 그 시간이 늘 고역이었다. 구르기도 안되고 평행봉도 안되고 뛰기도 안되고 던지기도 안되고... 악몽같은 체력장이 떠오른다. 그 중 장거리 달리기. 몇 미터였지? 4,000미터였던가 2,000미터였던가. 운동장을 대여섯바퀴 뛰는 거였던 거 같다. 심지어 지구력도 없어서 장거리 달리기 매번 꼴찌. 일등이 나와 나란히 뛰는 게 한두번이 아니고. 장거리 달리기 점수 없으면 체력장 점수를 받을 수가 없어서 정말 죽을 각오로 뛰어야 했다. 으. 생각해보니 정말 기억하기 싫은 십대의 날들이었다.

 

그런데, 어제 밤, 십대 아이들이 뛰는 걸 보니 문득 나도 몇 십년 만에 뛰고 싶어진 거다. 한번 뛰어봐? 하고는 슬슬 뛰어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제자리걸음 하듯이 뛰어지더니 좀 뛰니까 다리가 앞으로 나간다. 십대 애들 빠르기에는 영 못 미쳐서 그냥 내 페이스대로 뛰었지만, 나중에 한 바퀴 정도는 내 나름의 전력 질주도 가능해졌다.

 

아. 근데, 너무 상쾌했다!

 

이런 기분 백만 년 만이야 이럴 정도로. 마지막으로 한 바퀴 뛰고는 두 팔을 벌려 하늘을 보는데 정말 상쾌하고 통쾌하고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음주 뜀박질이었는데 말이다. 순간, 무라카미 하루키 아저씨 머릿 속에서 뿅. 떠오르고. 이래서 사람들이 뛰는구나. 뛰다 보니 마라톤이란 것도 하게 되고. 그런 거구나.. 를 어제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 계속 걷기는 하되, 한번씩 트랙을 뛰어봐야겠다... 생각한다. 스트레스 해소에 이 만한 게 없는 거라는 걸 알아버렸다. 뭔가 비밀을 알아버린 이 느낌. 좋다.

 

몇 년 뒤에 스페인 산티아고를 가려고, 그게 하루에 20km 씩 걸어야 한다고 해서, 요즘 걷기량을 조금씩 늘리고 있었다. 하루 10km씩은 걷기로. 이제 뛰기도 넣어 봐야겠다. 산티아고가 다 평탄한 길은 아닐테니 폐활량을 좀 늘려놓을 필요가 있겠다 싶기도 하고, 우선, 이 스트레스를 다 버려 버릴 수 있는 좋은 방안이 생겼으니 뛰지 않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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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9-07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고 가요!^^ 감기는( 몸) 좀 좋아지셨나요?( 응? 감기가 좋아질리..없잖아!)ㅎㅎㅎ

비연 2016-09-07 11:07   좋아요 1 | URL
그장소님..ㅜㅜ 약을 안 먹어서인지 기침이 점점 심해져서 사무실에서 눈총을...ㅜㅜ
얼렁 가서 약 도로 찾아와 입에 밀어넣어야겠어요... 이넘의 부실한 성격 땜에 고생입니다..흑흑.

[그장소] 2016-09-07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얼렁 얼렁 약 투척해쥬세욧~^^
사무실근처에 라도 약국이 있다면 요!
눈총 ㅡ그만 받게요~~

비연 2016-09-07 15:11   좋아요 1 | URL
약국에서 어제 잃어버린 약을 조우하였나이다 ㅎㅎㅎㅎ
먹었더니 좀 낫긴 한데 아직도 약간 콜록콜록... 감기가 심하게 들린 모양이에요..ㅜ

[그장소] 2016-09-07 19:30   좋아요 0 | URL
결국퇴근후 드시는군요! 에고고~ 기침 목 ..감기엔 꼭 목에 손수건을 두르세요 ..기침이 한결나아져요! 밤사이 안녕하자고 ㅡ감기한테 !

비연 2016-09-08 11:16   좋아요 1 | URL
그장소님... 먹으니 좀 낫긴 한데. 어제 모임 갔다가 늦게 귀가해서 완전 피곤하네요..ㅠ 쉬어야 하는데 말이죠.
감기야, 얼렁 떨어져라 하고 있어요. 손수건도 둘러야겠어요. 감사~

[그장소] 2016-09-08 11:20   좋아요 0 | URL
약도 잘 챙겨드세요! 무리 말아야하는데~ ㅎㅎ

비연 2016-09-08 13:14   좋아요 1 | URL
네네~ 오늘은 가서 좀 쉬려구요~^^

[그장소] 2016-09-08 22:55   좋아요 0 | URL
저도 오늘은 문닫고 푹 쉬어야겠어요!^^ ㅋㅋㅋ
 

 

일이 한가해지니 매일 알라딘에 도닥도닥.

 

마음 한켠 불편하지만, 그냥 이 상태를 즐기기로 했다. 으. 즐기는 게 쉽지는 않다. 성격이 이상한 지, 과민성대장증후군이 생긴 듯 하다. 지난 번 검진 및 여러 검사를 통해 내장기관에 별 이상이 없다고 밝혀진 이상, 이것의 주요 원인은 스트레스다.

 

어제는 회사 동료들과 선정릉 근처 깐부치킨에서 치맥을 했다. 역시나 회사 사람들이니까 회사 얘기 이런저런... 하고 있었다. 그 곳 깐부치킨은 저녁이 되니 앞쪽 창문을 화악 다 열어제껴서 공간이 넓어진 느낌이 들어 좋았다. 그렇게 얘기하는데, 내 앞에 앉은 사람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며 창문 바깥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허억!" 하는 거다. 이 사람 왜 이래. 라며 뒤를 돌아보니, 허억. 작년에 퇴직하신 회사 선배님이 지나가고 계신 거다. 서로 손을 뻗어 가리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그러니까, 작년 10월엔가 퇴직하셨으니 근 10개월만에 처음으로 뵙는 것이었다. 그것도 정말 우연히, 선정릉이라는 아무 연관없는 장소에서.

 

알고 보니, 근처에 다른 퇴직한 선배님이 근무를 하시는데 두 분이 번개로 오늘 만나기로 하셨다는 거다. 어찌나 반갑던지. 결국 합류하여 치맥과 함꼐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나랑 나이차도 꽤 나시는 분들이지만, 그래도 참 좋았다. 돌아보면, 이 두분이 계실 때가 이 회사 근무한 5년 중에 가장 좋았던 것 같다. 선배가 선배같았다. 사리사욕 부리지 않고 조직에서 리더로서의 본분에 충실하셨고 모두에게 세심한 관심을 실어 주셨다. 그 땐 몰랐는데, 정말 두 분 퇴직하고 나시니 지금 상황과 분위기는 영 엉망이 되어 버렸음을, 이 두 분의 무게감이 상당했음을 절감하고 있다. 특히 요즘처럼 난데없는 시달림(?)을 받고 있는 때는 더더욱.

 

사람이, 어디서나 잘 하고 지내야 한다는게, 이렇게 언제 어디에서 알던 사람을 만날 지 알 수가 없다는 거다. 이게 길바닥일 수도 있고 식당일 수도 있고 어쩌면 다른 조직에서일 수도 있고. 어쨌든 어디서 어떻게 만나든 반가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겠다는 생각을 집에 오는 내내 했더랬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런 일을 겪고 나면 더더욱 절실하게 드는 생각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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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9-02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말을 코앞에 둔 금요일에 비가 내리니 기분이 가라앉는 것 같아요. 며칠 동안 날씨가 선선해지니까 따뜻한 음식과 음료를 찾게 됩니다.

비연 2016-09-02 12:25   좋아요 0 | URL
금욜의 비... 차분해지는 거 맞는 것 같아요~ 날씨가 선선해졌다가 다시 좀 더워져서 헥헥 입니다 ㅎㅎ;;;
 

 

어제 <내 연애의 모든 것>을 다 읽고... 이것도 리뷰 혹은 페이퍼를 쓰고 싶긴 한데 여력이 닿을 지... 암튼 생각보다는 그냥 그랬다. 내가 좋아하는 문체이긴 한데 긴 소설로 읽으니 나중엔 좀 지겹다고나 할까. 약간 짧은 글로 대하는 게 좋겠다 라는 결론. 물론 이응준이라는 작가의 재능은 확인했다. 상당히, 재능이 있는 작가임은 틀림없는 것 같다. (아직 불명확. 한두편 가지고야)

 

9월을 시작한다고 어제에서 오늘로 꼴깍 넘어가는 자정 즈음에 펼쳐든 책은 <사피엔스> 이다.

 

 

누가누가 추천했어요 라며 읽으려고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빌 게이츠도 추천하고 마크 저커버그도 추천하고... 그 정도면 세상에 대한 식견 정도는 열어주는 책이 아니겠는가 라는 판단이 선다. 게다가 난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한다. 636페이지의 책 두께가 좀 허걱... 스럽기는 한데, 막상 열어보니 사진도 군데군데 들어가있고 줄간격 넓고 페이지에 들어간 글자도 많지 않아서 대략 읽어볼 만 하다 싶었다. 우연스럽게 뒤를 뒤집어보니.. 1판 53쇄. 헉.

 

53쇄!

 

그것도 일 년 만에. 사람들이 이 책을 그렇게 읽었단 말이냐. 이런. 내가 이제까지 읽지 않았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로 놀라운 인쇄판본수였다. 더더욱 잘 읽어내겠다는 투쟁의지를... 활활 불태우다가 침대게 고꾸라져 잠든 나. 새벽녘에 잠시 깨보니 책을 부둥켜 안고 자고 있더라는. 그래그래. 나이 먹으니 투쟁의지도 5분이구나. 라며 전깃불 탁 끄고 침대 안으로 슝.

 

그러고 났더니 갑자기 잠이 안오고. 이불 안에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머리를 뭉개면서 아무리 잡을 청해도 잠이 안 오지 뭔가. 아 정말. 그냥 책을 읽어 말어? 망설이다가 설핏 잠들었는데 꿈자리 대박 뒤숭숭. 그렇게 잠을 설치고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유리창에 머리를 짓찧으며 잤던 나. 도대체 품위와 우아는 어디에서 구한다는 말인다. ㅜㅜ;;;

 

 

 

가방에 이거 대충 구겨 넣고 다니고 있다. [Axt]와는 다른 느낌. 주제의식을 가지고 접근한 내용이 좀 다른 접근방법. 그 주제의식이 매우 심층적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있으나 한번쯤 던져볼 만한 주제이긴 해서 뒤적뒤적.

 

문예지를 하나 구독해야겠다고 마음먹으니 이거 자꾸 뭐가 나와서 난감하다. 지금 생각엔 [Axt]나 [Littor] 중에 하나 고르려고 하는데, [미스테리아]도 있고 오늘 하이드님 서재에서 [conceptzine]이라는 것도 발견하고... 고민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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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6-09-02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피엔스> 너무 좋습니다ㅠㅠ 저런 책 또 있으면 누가 알려주면 참 고마울 것 같아요

비연 2016-09-02 10:38   좋아요 1 | URL
앗. 첫장부터 재미있다 생각하고 있는데, 너무 좋다고 하시니 얼른 다 읽어버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