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얘기 아닐 수 있다. 그냥 영국의 채링크로스 84번지에 위치한 어느 작은 중고서점에 있는 사람과 미국에서 그닥 잘 나가지는 못하는 작가간의 책 있어요 책 보냈어요 뭐 이런 내용들만 가득한 편지일 뿐 일수도. 사실 내용도 그렇다. 그 내용 이외에 매우 대단한 내용이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이리 재미있고 훈훈하고 아름다운 거지..?

 

1949년 10월 5일

선생님께:

토요문학평론지에 실린 귀하의 광고를 보니 절판 서적을 전문으로 다룬다고 하셨더군요. 저는 '희귀 고서점'이라는 말만 봐도 기가 질리곤 하는데, '희귀' 하면 곧 값이 비쌀 것이라는 생각부터 들기 때문입니다...

(p9)

 

 

이렇게 미국의 헬렌 한프가 영국의 채링크로스 가 84번지에 있는 마크스 서점에 보낸 편지가 시작이었다. 1949년.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였고 그래서 영국의 사정이 그닥 좋지 않은 시기였다.

 

 

1949년 10월 25일

친애하는 부인,

10월 5일 보내신 편지에 대한 답신입니다. 저희는 부인의 문제 가운데 3분의 2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부인께서 원하시는 해즐릿의 수필 세 편은 논서치 출판사에서 간행한 산문선집에 들어 있고, 스티븐슨은 젊은이를 위하여에서 찾았습니다...

(p10)

 

정중하게 보낸 답신에 서명은 FPD. 그것이 '친애하는 한프양'으로 호칭되고, 서명은 '프랭크 도엘 드림'으로 바뀐다. 그리고 다시 '친애하는 헬렌'으로 호칭되고 서명도 '프랭크'로 바뀌는 동안 그들 사이에 생기는 유대감이란... 아름다움이라 표현할 만 했다. 헬렌 한프의 까칠하면서도 책에 대한 사랑이 담뿍 느껴지는 편지와 사정이 안 좋은 영국의 사정을 생각하여 미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식료품들을 챙겨서 서점 식구들에게 보내는 마음이 전해지면서 근 20년 동안 프랭크 도엘 뿐 그의 아내 노라와 딸뜰, 서점의 모든 사람들, 세실리와 마크스... 과의 우정이 피어나게 되는 과정들... 정중하고 무뚝뚝하지만 속 깊고 일면 유머러스한 프랭크 도엘의 편지들. 무엇보다 20년이라니. 

 

 

1949년 12월 8일

... 저는 전 주인이 즐겨 읽던 대목이 이렇게 저절로 펼쳐지는 중고책이 참 좋아요. 해즐릿이 도착한 날 '나는 새 책 읽는 것이 싫다'는 구절이 펼쳐졌고, 저는 그 책을 소유했던 이름 모를 그이를 향해 '동지!'라고 외쳤답니다...

(p18)

 

 

중고책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애정 중에 이것에 비길 게 있을까 싶다. 누군가의 손을 거친 책에서 그가 즐겨 펴던 페이지가 저절로 펼쳐지는데 그 대목이 나의 마음과 통할 때의 그 찌릿함. 아. 생각만 해도 훈훈하지 않은가.

 

 

1951년 4월 9일

친애하는 한프 양,

소포에 대한 인사가 없어 혹시 뭐가 잘못된 건 아닌지 염려하고 계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를 감사도 모르는 패거리로 생각하셨겠지요. 사실은 제가 그동안 안쓰럽게 바닥난 재고를 채우기 위하여 교양 있는 가정을 찾아 전국 곳곳을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제 집사람은 이제 저보고 숙식만 제공받는 하숙생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물론 건조 달걀과 햄은 말할 것도 탐스러운 고기까지 들고 집에 들어서자 집사람은 저를 썩 괜찮은 남자라 여기며 모든 것을 용서해주더군요. 그렇게 많은 양의 고기를 한 덩어리로 본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습니다...

(p47)

 

 

공식적으로 또는 어느 정도는 건조한 답변만 보내던 프랭크 도엘의 이 유머러스한 답변이라니. 그냥 서점에서 책을 사는 손님과 책을 파는 점원의 관계가 아니라, 책을 사랑하는 서로를 배려하고 마음을 쓰는 관계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1951년 4월 16일

... (그리고 미래의 소유자에게도 그랬을 거에요. 저는 속표지에 남긴 글이나 책장 귀퉁이에 적은 글을 참 좋아해요. 누군가 넘겼던 책장을 넘길 때의 그 동지애가 좋고,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누군가의 글은 언제나 제 마음을 사로잡는답니다).

(p50)

 

 

책에 뭐가 쓰여 있으면 버럭 화가 날 수도 있는데, 그 책을 가졌던 사람의 글을 보면서 마음이 통함을 느끼는... 책을 애정하는 헬렌 한프의 마음이 느껴져서 참 좋았다. 책이라는 대상이 그저 소유품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같은 책을 바라보며 역사를 가질 수 있는, 사랑의 대상이라는 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거.

 

 

 

1957년 5월 3일

친애하는 헬렌,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세요. 지난 편지에서 요청한 세 권이 일제히 당신한테 가고 있습니다. 1주일 정도면 도착할 겁니다. 어떻게 한 건지는 묻지 말아요. 그저 마크스 서점의 서비스라고만 생각해줘요. 부족한 5달러 청구서를 여기에 동봉합니다...

(p108)

 

 

한번의 만남도 없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서로 편지를 주고 받으며 사랑을 전달하며 20년이 흘렀다. 늘 일에 쫓기고 생활에 시달렸던 헬렌 한프는 늘 방문하고 싶어했으나 영국을 가보지 못했고, 그러다가 프랭크 도엘이 불현듯 세상을 떠나면서 이 책은, 이 편지 왕래는 끝나게 된다. 아. 마음이 너무 아팠다.

 

 

1969년 4월 11일

... 이 모든 책을 내게 팔았던 그 축복 받은 사람이 몇 달 전에 세상을 떠났어요. 그리고 서점 주인 마크스 씨도요. 하지만 마크스 서점은 아직 거기 있답니다. 혹 채링크로스 가 84번지를 지나가게 되거든, 내 대신 입맞춤을 보내주겠어요? 제가 정말 큰 신세를 졌답니다. 헬렌

(p145)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살면서 만나서 지지고 볶고 얼굴을 마주대고 이 일 저 일 함께 겪는 인연이 있는가 하면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서 가끔씩 소식을 전하면서도 묘하게 마음의 위안이 되는 인연이 있다. 그것이 책을 매개로 한다면 더욱 매력적인 일이 될 수 있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책에 대한 짤막짤막한 이야기들을 하면서도 사는 이야기, 나누는 이야기들을 함께 한, 그렇게 해서 둘만의 인연이 아니라 그 주변의 많은 인연으로까지 이어졌던 세월들이... 마음에 너무나 따뜻하게 다가왔다. 뭐라 장황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훈훈함이 가슴 가득 퍼지는 책. 그런 책이다, 이 책이.  

 

이 책은, 영화로도 나왔다. 우리나라 제목은 <84번가의 연인> - 아 유치해라. 이건 연인 이야기가 아니란 말이닷 - 안소니 홉킨스와 앤 밴크로프트가 나온 영화. 나는 어제 네이버에서 이 영화를 5,000원이나 주고 다운로드를 받았다. 꼭 영화로 만든 걸 보고 싶었다. 영화도 참 아름답다는 소문을 들어서... 주말에 이 영화를 보면서 마음을 릴랙스하리라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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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30 0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절판된 책 중에서 잘 찾아보면 읽어 볼만한 것이 있어요. 원하는 책을 찾을 때와 무작정 책을 찾을 때의 느낌을 비교하면 완전 달라요. 좋은 책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 그 기분, 정말 짜릿합니다. ^^

비연 2017-05-30 10:49   좋아요 0 | URL
아... 저도 그 짜릿한 기분 느껴보고 싶네요. 절판된 책 중에 읽어볼만 한게.. 저번에 한 권 눈에 들어왔었는데.. 중고서점에 한번 가볼까... 그냥, 이 책의 헬렌처럼 편지를 써볼까요? ㅎㅎㅎ

레삭매냐 2017-05-30 1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는 영국에 대해 관심이 없어서 유럽에 갔을 때도
영국에 가지 않았었는데, 영국에 관한 책들을 읽다보니
이제는 영국에 한 번 가보고 싶어지더라구요 :>

비연 2017-05-30 15:23   좋아요 0 | URL
영국은... 참 독특한 나라라는 생각 들어요.
예전에 런던만 잠깐 갔었는데... 레삭매냐님 말씀처럼... 영국에 관한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아.. 런던도 다시 가고 싶고 여기저기 영국을 알고 싶구나 싶어져요. 헤이온와이도 가고 싶구요. 흠... 계획 짜야겠어요!
 

이 책, 재미있게 읽고는 있는데 맞춤법 틀린 게 자꾸 눈에 보여서 짜증이 유발되고 있다.

‘낮다‘를 ‘낫다‘라고 쓰는 건, 그것도 두 문장에 연이어서 쓰는 건,

오타가 아니라 정말 이렇게 번역한 거 아냐? 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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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헌책에 대한 동경, 헌책방에 대한 설레임이 기본적으로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사실, 나는 헌책을 찾아 사서 읽는 류의 사람은 아니었으나, 몇 번 들러본 헌책방 거리들에 흠뻑 반해서 늘 마음에 동경을 품고 있다. 내가 가본 헌책방 거리라 봐야... 두세 군데 쯤인가. 아주 예전에 파리인가에 갔을 때 노점에 쭈욱 늘어서 있던 헌책방 거리 정확히 말해 헌책방 '리어카' 거리가 기억난다. 뭔가 야사시러운 표지의 책들이 정면에 늘어서 있어서 차마 눈을 못 돌리고 걷다가도 문득문득 괜찮은 책들이 눈에 들어와서 멈칫 멈칫 했었다. 프랑스어는 까막눈인지라 (그 때, 내가 왜 제 2외국어를 독일어를 했던가 막 후회했던 새삼스러운 기억이...) 살 수도 없고 펼쳐보기도 민망했지만 이상하게 그 길을 걷는데 안도감 같은 게 느껴졌다. 안도감. 이 책에 등장하는 가쿠타 미쓰요도 같은 심정을 느꼈다니!

 

 

1년 동안 여러 동네의 여러 헌책방에 들렀다. 어느 서점이든 그 서점만의 온도가 있어서, 그 온도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게는 즐거움보다 안도감 쪽이 더 컸다. 책은 소비되고, 잊히고, 사라지는 무기물이 아닌 체온이 있는 생명체라는 걸 실감할 수 있어서 어쩐지 마음이 놓였다.

(p244)

 

 

아. 내가 느꼈던 그 감정이 이런 것이었던가. 책에서 느껴지는 생명감 그래서 전해지는 체온, 그리고 그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편안함, 안도감. 그렇게 낯모르는 언어로 만들어진 책들 사이를 거닐며 쪼끄만 동양여자가 기웃거리는 걸 프랑스 파리 사람 특유의 그 냉랭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헌책방 주인장들의 논초리를 받으면서도 그닥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은 우리는 다 같이 책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라는 동질감이 느껴져서였는 지도 모르겠고. (물론 나만..ㅎㅎ;;;)

 

그리고 갔던 헌책방 거리는 도쿄 간다 고서점 거리였다. 도쿄를 들락날락하면서 거길 꼭 가보고 싶었다. 워낙 유명헀고, 무엇보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거리가 있다는 걸 못 들어본 나로서는 도대체 어떤 분위기일까 궁금해 미치겠어서 그런 데를 왜 가냐는 동행인을 붙잡아 끌어서 갔던 기억이 있다. 아 정말 컸다. 수백개는 되어 보였다. 가도 가도 끝이 없었고 가는 서점마다 다 특색이 있었다. 어디에는 잡지만 그득하고 어디에는 옛날 소설들만 그득하고... 또 어디는 LP 레코드판으로 가득하고... 안에만 있는 게 아니라 밖에도 한참이나 진열해놓은 책들... 악 소리가 나는 곳이었다.

 

 

헌책방 순례의 목적은 그저 책을 사러 가는 것이 다가 아니다. 가게에 이르기까지 풍경 구경도 재미있고, 기분도 즐겁다. 책을 읽듯 거리를 읽는다. 헌책방을 향해 낯선 거리를 걸어가는 기분은 좋아하는 작가의 학수고대하던 신작을 펼치는 느낌과 비슷하다. 살며시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이다.

(p61)

 

 

어쩜, 내 느낌과 이리 같은 지. 책을 읽듯 거리를 읽는다... 가슴을 두근거리며 애인을 만나러가듯 설레는 느낌을 한껏 품고... 천천히 거리를 걸어간다. 일본 문화에서 자라났어야 알 법한 책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좋다. 사지 않아도 좋고 그냥 바라만 봐도 좋다. 어딜 기웃거리다가 어멋.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몇 년도인가 초판을 발견했다. 우리나라 돈으로 5만원 정도였는데... 그 때 살 걸. 몇 번을 망설이다가 안 산 게 지금까지 마음에 남는다. ㅠㅠ 간다 고서점거리를 보면서 우리나라도 이런 거리 하나 정도는 제대로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라는 심정에, 정말 너무나 많이 부러웠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그렇게 대규모는 아니었지만 부산에 헌책방 거리가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고 몇 년 전, 부산국제영화제 갔을 때 짬을 내어 가보았다. 보수동 헌책방 거리. 그러니까 한국전쟁 때 1950년대에 피난온 사람들이 부산에서 헌책방을 팔던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니 무려 60년 가까이 지탱해오고 있는 고서점 거리였다! 많은 책들이, 한국말로 되어 알기도 쉽고 작가들 대부분도 알 수 있는 그런 책들이 백미터 넘는 거리에 쭈욱 늘어서 있었다. 참고서도 있고, 어린이책도 있고, 소설도 있고, 전문서적도 있고, 만화책도 있고... 이런 곳이 아직까지 있다니,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갑고 고마왔던 기억이 난다. 이것저것 들척이면 값이 얼마인지 물어볼 수도 있고... 이렇게나 편할 수가.

 

 

오호라, 어쩐지 재미있어진다. 가령 무나 블라우스 한 장이라면 가격을 일일이 확인하는 자신이 한심해질 텐데, 헌책의 경우 가격을 확인했을 때 그 가격이 자신의 예상이나 체험과 다르면 책이 마치 생명체처럼 느껴진다.

(p202)

 

 

큭큭큭. 가쿠다 미쓰요라는 작가분. 어쩜 나랑 이렇게 정서가 맞는 지. 보수동 헌책방 거리에서 나도 그런 비스무레한 생각을 했었다. 헌책방에 가격을 매기는 건 어떻게 하는 걸까. 어디는 10%에도 팔고 어디는 50%에도 팔고. 각각의 가게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이, 옷을 살 때였으면 막 기분나쁘고 뭐 이런 게 다 있어 그렜겠지만, 책은 달랐다. 책의 상태에 따라서도 달랐고 주인장이 책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서도 다른 것 같았고. 아 재미있어라. 나는 그 때 웃기게도 '스도쿠' 책을 몇 권 사왔었다. 지금도 있는데, 볼 때마다 보수동 헌책방 거리가 기억난다. 엄마가 아이의 손을 잡고 와서 참고서를 고르고, 씻고 나왔는 지 몰라볼 청년(아저씨?)이 헌 법률서적을 뒤적이고 나같이 뭣도 모르고 와서 입 벌리고 헤 거리며 사진도 찍고 책도 뒤적거리는 사람도 있고... 의외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에 놀라왔고... 진심으로 기뻤다.

 

그냥저냥한 헌책방 순례기이지만, 묘하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었다. 일본에 가면 여기 수록된 서점들을 몇 군데라도 찾아가 봐야겠다 라고 결심 아닌 결심을 하게 되고. 영국 헤이온와이 이런 곳들도 여행 목록에 얼른 넣어서 다녀와야겠다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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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15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헌책방 이야기를 접하게 될 때마다 마음에 드는 헌책방들이 하나둘씩 알게 돼요. 그런데 우리 지역, 동네에 좋은 헌책방들이 없다는 게 정말 아쉬워요. 전국의 헌책방에 한 번씩 가보는 일이 위시리스트인데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

비연 2017-05-16 08:03   좋아요 0 | URL
저도 이런 이야기 읽으면, 우리나라 곳곳의 헌책방 동네를 가보고 싶다, 찾아봐야겠다 하는데...^^
cyrus님. 우리 한군데씩 다니면서 서로 공유하도록 해요~^^ 아. 왠지 이 아침, 넘 기분이 좋아지네요~

보빠 2017-05-15 1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감동을 줍니다

비연 2017-05-16 08:0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팔루스의 기표님 댓글을 보니 오늘 하루 멋지게 보낼 기운이 얻어지는 것 같아요~
 

 

 

 

 

 

 

 

 

 

 

 

 

 

 

 

이 책을 읽으면서, 아.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남자는 스티브 카렐라 같은 사람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매우 강렬하게 들었다. 영리하고 경찰의 직감이 뛰어나면서도 아내를 사랑하고 동료를 배려하고 누구에게나 다정함을 주는 사람. 흠. 이 책에선 사실 호스 코튼이라는 87분서에 새로 들어온 경찰이 대두되느라 그다지 전면에 나서지 않았음에도, 묘하게 이 책에서 스티브 카렐라의 진면목을 확인하게 된다. 앞으로 난, 누가 이상형이냐 그러면, 87분서의 스티브 카렐라 라고 할 거다. 제발 이 얘길 알아듣는 사람들이 많기를 바라면서. (그게 누구? 그러면 설명해야 하는...ㅜ)

 

에드 맥베인의 책은 유쾌하다. 경찰들끼리, 경찰과 조사받는 상대방과의, 혹은 경찰과 용의자와의 대화들이 맛깔지다. 통통 튀기며 주고 받는 대화들이 촌철살인이면서 재미있다. 이번엔 마이어마이어 형사의 가족간 대화가 압권이었다. 큭.

 

 

"그 아저씨가 문을 두드리지 말았어야 하는 거야, 아빠?" 수지가 물었다.

"얘야." 마이어가 말했다. "아파트에 있던 그 남자는 살인 용의자였단다. 살인 용의자를 상대할 때 네가 두드려야 하는 건 그놈의 머리뿐이지."

수지가 킥킥거렸고, 싱크대에 있던 사라가 소리쳤다. "마이어!"

"살인자에게 친절하게 대하라고 가르치란 말이야?"

...(중략)...

"스티브는 화났어?"

"모르겠어. 별로 말이 없었어. 미스터 코튼은 카드에다 써 갖고 다녀야 할 거야. '코튼 호스 방문' 이라고. 노크를 한 다음에 그걸 문 아래로 밀어 넣는 거지. 만일 그 친구가 사흘 내내 문을 노크하고 다닌다면 딕스 강에서 건져 낸 시체가 그 친구인지 우리는 신원 조회를 해야 할 거야."

"마이어!"

(p130-131)

 

 

읽으면서 이런 현실감 나는 대화를, 굳이 웃기려는 말을 넣지 않아도 대화만으로도 웃기게 하는 장면을 만들어내는 에드 맥베인의 재주에 새삼 감탄했지 뭔가.

 

 

"호스, 자네에게 충고 하나 하지."

"뭔데?"

"내가 세계 최고의 경찰은 아니야. 난 내 일을 열심히 하려고 할 뿐이야. 그게 다야. 하지만 나는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고, 샘 그로스먼과 그의 감식반원들 덕분에 내 일이 훨씬 쉬워진다는 걸 아네. 가끔은 감식반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때도 있지. 가끔은 탐문 수사와 경찰 끄나풀과 개인적인 추리에 의해 해결될 때도 있고. 하지만 감식반이 모든 걸 해결할 때도 있네. 직접 체포하러 나가진 않지만. 감식반이 얘기할 땐, 나는 듣네. 경청하지."

"무슨 뜻이지?" 호스가 물었다.

"자네에게도 귀가 있다는 뜻이야." 카렐라가 말했다. "커피나 마시러 갈까?"

(p53)

 

카렐라의 장점은, 마지막 문장에 있다. 잔소리 같은 충고를 했지만 커피나 한반 마시러 갈까 하면서 마음을 풀어줄 줄 안다는 것. 그리고 누구에게나 겸손하다는 것. 감식반의 샘 그로스먼이 기초적인 감식방법을 알려준다고 해도 끝까지 들어준다는 것.

 

**

 

에드 맥베인의 87분서 시리즈는 아직도 번역되어 나올 게 한참 남았다. 그게 기쁘면서도 초조하다. 우잉.

 

 

1956, 01. Cop Hater (경찰 혐오자)

 

 

 

 

 

 

 

  

1956, 02. The Mugger (노상강도)

 

 

 

 

 

 

 

 

1956, 03. The Pusher (마약밀매인)

 

 

 

 

 

 

 

 

1957, 04. The Con Man (사기꾼)

 

 

 

 

 

 

 

 

 

1957, 05. Killer's Choice (살인자의 선택)

 

 

 

 

 

 

 

 

1958, 06. Killer's Payoff (살인자의 보수)

 

 

 

 

 

 

 

 

 

 

1958, 07. Lady Killer

 

 

 

 

 

 

 

 

 

1959, 08. Killer's Wedge (살의의 쐐기)

 

 

 

 

 

 

 

 

 

1959, 09. 'til Death

 

 

 

 

 

 

 

 

 

1959, 10. King's Ransom (왕의 몸값)

 

 

 

 

 

 

 

 

1960, 11. Give the Boys a Great Big Hand

 

 

 

 

 

 

 

 

1960, 12. The Heckler

 

 

 

 

 

 

 

 

1960, 13. See Them Die

 

 

 

 

 

 

 

 

1960, 14. Lady, Lady I did it!

 

 

 

 

 

 

 

 

1962, 15. Like Love

 

 

 

 

 

 

 

 

1963, 16. Ten plus One (10 플러스 1)

 

 

 

 

 

 

 

 

1964, 17. Ax

 

 

 

 

 

 

 

 

1964, 18. He who Hesitates

 

 

 

 

 

 

 

 

1965, 19. Doll

 

 

 

 

 

 

 

1966, 20. 80 Million Eyes

 

??? (실종...)

 

 

1968, 21. Fuzz

 

 

 

 

 

 

 

 

1969, 22. Shotgun

 

 

 

 

 

 

 

 

1970, 23. Jigsaw (조각맞추기)

 

 

 

 

 

 

 

 

1971, 24. Hail, Hail the Gang's All Here

 

 

 

 

 

 

 

 

1972, 25. Let's Hear It for the Deaf Man

 

 

 

 

 

 

 

1972, 26, Sadie When She Died

 

 

 

 

 

 

 

 

1973, 27. Hail to the Chief

 

 

 

 

 

 

 

 

1974, 28. Bread

 

 

 

 

 

 

 

 

1975, 29. Blood Relatives

 

 

 

 

 

 

 

 

1976, 30. So Long as You Both Shall Live

 

 

 

 

 

 

 

1977, 31. Long Time No See

 

 

 

 

 

 

 

 

1979, 32. Calypso

 

 

 

 

 

 

 

 

1980, 33. Ghosts

 

 

 

 

 

 

 

 

1981, 34. Heat

 

 

 

 

 

 

 

 

1983, 35. Ice (아이스)

 

 

 

 

 

 

 

 

 

1984, 36. Lightning 

 

 

 

 

 

 

 

 

1984, 37. And All Through the House

 

 

 

 

 

 

1985. 38. Eight Black Horses

 

 

 

 

 

 

 

 

1987, 39. Poison  

 

 

 

 

 

 

 

 

1987, 40. Tricks

 

 

 

 

 

 

 

 

1989, 41. Lullaby

 

 

 

 

 

 

 

 

 

1990, 42. Vespers

 

 

 

 

 

 

 

 

1991, 43. Widows

 

 

 

 

 

 

 

 

1992, 44. Kiss

 

 

 

 

 

 

 

 

1993, 45. Mischief

 

 

 

 

 

 

 

 

1995, 46. Romance

 

 

 

 

 

 

 

 

1997, 47. Nocturne

 

 

 

 

 

 

 

1999, 48. The Big Bad City

 

 

 

 

 

 

 

 

2000, 49. The Last Dance

 

 

 

 

 

 

 

 

2001, 50. Money, Money, Money

 

 

 

 

 

 

 

 

 

2002, 51. Fat Ollie's Book 

 

 

 

 

 

 

 

 

2003, 52. The Frumious Bandersnatch

 

 

 

 

 

 

 

 

2004, 53. Hark!

 

 

 

 

 

 

 

 

2005, 54. Fiddl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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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내가 찾아본 총 54권 중 번역이 되어 나와 있는 것은 10권. 그 중 피니스 아프리카에 것이 8권. 나머지는 해문과 검은숲, 동서문화사 등등. 주로 초기 작품들만 번역이 되어 나와 있고....  특히 <Cop Hater>라는 첫번째 작품은 여러 출판사에서 다양한 제목으로 출간. 이게 대표작이라서 그런가...

 

1970년 이후 것은 아직 번역된 것이 없어 보인다. 피니스 아프리카에가 열심히 펴내고 있기는 한데... 근데 가만 보면 표지는 피니스 아프리카에가 훨씬 낫다. 초창기의 에드 맥베인 영문소설 표지는.. 어쩐지 3류의 스멜이 느껴지는... 그나마 최근에 reprint 되거나 한 것들은 좀 낫지만. 그래도 피니스 아프리카에 만세.

 

2005년에 에드 맥베인이 사망했으니... 죽는 순간까지도 87분서 시리즈를 쓰고 있었다고 보면 되나. 괜히 아연... 2000년대 소설 번역되어 나오는 거 기다리다가 감질 나서 못 사느니 그냥 영문판으로 볼까. 근데 중간중간 이어지는 내용들을 모르고 뒤의 것만 뜬금없이 읽으면 헷갈리지 않을까. 기다려야 하나. 지금 피니스 아프리카에가 뭔가 하나 더 낸다고 하던데. 대략 순서대로 내다가 갑자기 초기의 <살인자의 선택>으로 돌아갔으니. 종잡을 수가 없다. 대충 보면 <Killer's Payoff>가 나올 법도 한데 말이다. 암튼... 기다려 본다. 힘내라, 피니스아프리카에. 글고 힘낸 김에 가마슈 경감 시리즈도 얼른 내는 것이..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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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잡이 2017-05-06 07: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작 소식에 반가워서 덧글 남깁니다 ㅎㅎ 팬까지는 아니어도, 킹의 몸값을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또또 찾아봐아겠네요!

비연 2017-05-06 10:23   좋아요 0 | URL
양손잡이님! 에드 맥베인의 87분서 시리즈는 진리입니다!^^ 아직 읽지 않으셨다니.. 부럽. 다음 신간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비연이구요 ㅎㅎ 다른 작품들도 꼭 보세요. <살의의 쐐기> 이런 책들. 엄지척!
 

 

 

 

 

 

 

 

 

 

 

 

 

 

 

 

 

 

어제, 대구를 다녀왔다. 오고 가는 길 기차 안에서 어떤 책을 읽을까 많이 망설이다가 이 책을 집어들었다. 에드 멕베인의 소설이 눈 앞에 어른거렸지만, 잠시 생각한 후 이 책으로 결정.

 

대구 갈 때는 새로 생긴 SRT 기차를 이용했다. 수서역에 가니 연결통로가 있어서 참 편리했고 게이트 통과하면 바로 기차가 보여 허겁지겁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 아직 처음이라 그런 지 사람이 버글거리지도 않았고 상점들도 깨끗하게 정비된 상태였다. 세상은 날이 갈수록 빨라지고 편리해져서, 대구까지 1시간 40분 걸려 도착했다. 그냥 잠깐 자다가 책읽다가 커피 한 잔 마시니 도착. 더 빨라진다고 하던데 이제 정말 우리나라 정도는 일일 생활권이 되나 보다 싶었다. 솔직히 경기도의 어느 도시에 통근하는 것도 그 정도 시간은 걸린다고 보면, 대구까지 출퇴근을 해도 거리적인 무게감만 제외하면 가능하지 않겠는가.

 

새벽부터 서두른 탓에 많이 졸리기도 했지만, 일단 책을 펼쳤다. 서문부터 인상적이었다. 아서 케스틀러가 1976년에 쓴 서문 마지막 글, "인종 청소를 위해 시체들을 녹여 비누로 만들었던 기시를 다룬 두꺼운 책들이 이제까지 수백 권 쓰였지만 그렇더라도 나는 이 얇은 책이 서가에서 영원히 차지할 자리를 찾아낼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는다." 그리고 장 도르메송이 1997년에 쓴 서문 마지막 글, "영국에서 살았던 유대계 독일인 화가가 쓴 몇 페이지의 글이 단테, 셰익스피어, 밀턴 또는 파스칼의 위대한 구성들과 공통적으로 지닌 특성은 이것이다. 최악의 것에 언제나 의지할 수는 없고, 저주받은 것들 가운데는 항상 정의가 있으며 그 정의는 마지막 순간에 하느님이 어둠 속에서 끌어 올린다는 것." ... 이 두 글만으로도 뭉클함으로 시작할 수 있었던 책이었다, 이 책, <동급생>.

 

이 작품은, 피곤함을 물리치고 오고 가는 길에 다 읽어낼 수 있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리 길지 않고 대단한 철학이나 소양이 묻어나는 것도 아니며 그 비참했던 시절의 참혹한 현실에 대해 구구절절 이야기하고 있지도 않은데, 책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그 어느 책보다 그 시절의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한 작품이라는 믿음이 생겼었다.

 

독일인 귀족 집안의 한 아이와 유대계 중산층 의사 집안 한 아이와의 우정. 그 시절은 아직 히틀러의 나치즘이 창궐하기 이전이었고 그냥 평온하고 빛나는 시절이었다. 슈투트가르트라는 곳은 독일인이든 유대인이든 모두의 고향이었고 터전이었으며 유대인 아이의 아버지는 심지어 독일 당국으로부터 수많은 훈장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1932년 2월에 내 삶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사반세기가 넘는, 9천 일이 넘는 세월이 지났다. 별다른 희망도 없이 그저 애쓰거나 일한다는 느낌으로 공허한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았다. 그중 많은 나날들이 죽은 나무에 매달린 마른 잎들처럼 종작없고 따분했다. (p21)

 

이렇게 시작한다. 인상적인 첫 글이다. 두 아이, 독일인인 콘라딘과 유대인인 한스. 그 두 아이의 우정은 견고하고 아름다왔다.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서로를 나눌 수 있는 열여섯 살 두 남자아이의 교류.

 

<내가 그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친구>라고 쓰기 전에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뒤에도 나는 이것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으며 내가 친구를 위해 - 그야말로 기뻐하며 -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믿는다. 독일을 위해 죽는 것이 달콤하고 옳은 일이라고 당연하게 여겼듯, 나는 친구를 위해 죽는 것도 달콤하고 옳은 일이라는 데에 동의했을 터였다. 열여섯살에서 열여덟 살 사이에 있는 소년들은 때때로 천진무구함을 심신의 빛나는 순결함, 완전하고 이타적인 헌신을 향한 열정적인 충동과 결부시킨다. 그 단계는 짧은 기간 동안에만 지속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 강렬함과 독특함 때문에 우리의 삶에서 가장 귀중한 경험 가운데 하나로 남는다. (p38-39)

 

 

이 아름다운 우정이, 역사의 소용돌이, 히틀러라는 존재와 인종에 대한 그릇된 결정론으로 어떻게 훼손되는 지, 작은 사건들로도 참 구체적인 느낌을 전달하고 있다.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문제들이 학교의 교실에서도 도드라지고, 세상의 변화를 예민하게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청소년들이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드러난다. 그 속에서 콘라딘과 한스의 우정 또한 위태위태해지고... 그 광기와 같은 소용돌이가 다 지나간 후, 그렇게 세월이 흘러 흘러 마지막에 확인된 진실은... 이 책을 소개할 때 책의 마지막 문구에서 전율을 느낄 거라 했었는데.. 실제 그러했다. 나 또한 몇 번이나 돌이켜 읽어야 했던 구절이었다.

 

프레드 울만이라는 이 책을 쓴 저자는, 화가였다고 하나 이 책 한 권으로 정말 잊을 수 없는 작가로서의 자리를, 적어도 내게는 작가로서의 자리를 매김한다. 비참하고 어지러웠던 시절을 그렇게 비참하고 어지럽게 얘기하지 않고도 그 심정의 깊이가 더없이 깊숙이 다가오게 하는 글이다. 아름답고 빛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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