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헌책에 대한 동경, 헌책방에 대한 설레임이 기본적으로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사실, 나는 헌책을 찾아 사서 읽는 류의 사람은 아니었으나, 몇 번 들러본 헌책방 거리들에 흠뻑 반해서 늘 마음에 동경을 품고 있다. 내가 가본 헌책방 거리라 봐야... 두세 군데 쯤인가. 아주 예전에 파리인가에 갔을 때 노점에 쭈욱 늘어서 있던 헌책방 거리 정확히 말해 헌책방 '리어카' 거리가 기억난다. 뭔가 야사시러운 표지의 책들이 정면에 늘어서 있어서 차마 눈을 못 돌리고 걷다가도 문득문득 괜찮은 책들이 눈에 들어와서 멈칫 멈칫 했었다. 프랑스어는 까막눈인지라 (그 때, 내가 왜 제 2외국어를 독일어를 했던가 막 후회했던 새삼스러운 기억이...) 살 수도 없고 펼쳐보기도 민망했지만 이상하게 그 길을 걷는데 안도감 같은 게 느껴졌다. 안도감. 이 책에 등장하는 가쿠타 미쓰요도 같은 심정을 느꼈다니!

 

 

1년 동안 여러 동네의 여러 헌책방에 들렀다. 어느 서점이든 그 서점만의 온도가 있어서, 그 온도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게는 즐거움보다 안도감 쪽이 더 컸다. 책은 소비되고, 잊히고, 사라지는 무기물이 아닌 체온이 있는 생명체라는 걸 실감할 수 있어서 어쩐지 마음이 놓였다.

(p244)

 

 

아. 내가 느꼈던 그 감정이 이런 것이었던가. 책에서 느껴지는 생명감 그래서 전해지는 체온, 그리고 그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편안함, 안도감. 그렇게 낯모르는 언어로 만들어진 책들 사이를 거닐며 쪼끄만 동양여자가 기웃거리는 걸 프랑스 파리 사람 특유의 그 냉랭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헌책방 주인장들의 논초리를 받으면서도 그닥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은 우리는 다 같이 책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라는 동질감이 느껴져서였는 지도 모르겠고. (물론 나만..ㅎㅎ;;;)

 

그리고 갔던 헌책방 거리는 도쿄 간다 고서점 거리였다. 도쿄를 들락날락하면서 거길 꼭 가보고 싶었다. 워낙 유명헀고, 무엇보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거리가 있다는 걸 못 들어본 나로서는 도대체 어떤 분위기일까 궁금해 미치겠어서 그런 데를 왜 가냐는 동행인을 붙잡아 끌어서 갔던 기억이 있다. 아 정말 컸다. 수백개는 되어 보였다. 가도 가도 끝이 없었고 가는 서점마다 다 특색이 있었다. 어디에는 잡지만 그득하고 어디에는 옛날 소설들만 그득하고... 또 어디는 LP 레코드판으로 가득하고... 안에만 있는 게 아니라 밖에도 한참이나 진열해놓은 책들... 악 소리가 나는 곳이었다.

 

 

헌책방 순례의 목적은 그저 책을 사러 가는 것이 다가 아니다. 가게에 이르기까지 풍경 구경도 재미있고, 기분도 즐겁다. 책을 읽듯 거리를 읽는다. 헌책방을 향해 낯선 거리를 걸어가는 기분은 좋아하는 작가의 학수고대하던 신작을 펼치는 느낌과 비슷하다. 살며시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이다.

(p61)

 

 

어쩜, 내 느낌과 이리 같은 지. 책을 읽듯 거리를 읽는다... 가슴을 두근거리며 애인을 만나러가듯 설레는 느낌을 한껏 품고... 천천히 거리를 걸어간다. 일본 문화에서 자라났어야 알 법한 책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좋다. 사지 않아도 좋고 그냥 바라만 봐도 좋다. 어딜 기웃거리다가 어멋.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몇 년도인가 초판을 발견했다. 우리나라 돈으로 5만원 정도였는데... 그 때 살 걸. 몇 번을 망설이다가 안 산 게 지금까지 마음에 남는다. ㅠㅠ 간다 고서점거리를 보면서 우리나라도 이런 거리 하나 정도는 제대로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라는 심정에, 정말 너무나 많이 부러웠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그렇게 대규모는 아니었지만 부산에 헌책방 거리가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고 몇 년 전, 부산국제영화제 갔을 때 짬을 내어 가보았다. 보수동 헌책방 거리. 그러니까 한국전쟁 때 1950년대에 피난온 사람들이 부산에서 헌책방을 팔던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니 무려 60년 가까이 지탱해오고 있는 고서점 거리였다! 많은 책들이, 한국말로 되어 알기도 쉽고 작가들 대부분도 알 수 있는 그런 책들이 백미터 넘는 거리에 쭈욱 늘어서 있었다. 참고서도 있고, 어린이책도 있고, 소설도 있고, 전문서적도 있고, 만화책도 있고... 이런 곳이 아직까지 있다니,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갑고 고마왔던 기억이 난다. 이것저것 들척이면 값이 얼마인지 물어볼 수도 있고... 이렇게나 편할 수가.

 

 

오호라, 어쩐지 재미있어진다. 가령 무나 블라우스 한 장이라면 가격을 일일이 확인하는 자신이 한심해질 텐데, 헌책의 경우 가격을 확인했을 때 그 가격이 자신의 예상이나 체험과 다르면 책이 마치 생명체처럼 느껴진다.

(p202)

 

 

큭큭큭. 가쿠다 미쓰요라는 작가분. 어쩜 나랑 이렇게 정서가 맞는 지. 보수동 헌책방 거리에서 나도 그런 비스무레한 생각을 했었다. 헌책방에 가격을 매기는 건 어떻게 하는 걸까. 어디는 10%에도 팔고 어디는 50%에도 팔고. 각각의 가게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이, 옷을 살 때였으면 막 기분나쁘고 뭐 이런 게 다 있어 그렜겠지만, 책은 달랐다. 책의 상태에 따라서도 달랐고 주인장이 책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서도 다른 것 같았고. 아 재미있어라. 나는 그 때 웃기게도 '스도쿠' 책을 몇 권 사왔었다. 지금도 있는데, 볼 때마다 보수동 헌책방 거리가 기억난다. 엄마가 아이의 손을 잡고 와서 참고서를 고르고, 씻고 나왔는 지 몰라볼 청년(아저씨?)이 헌 법률서적을 뒤적이고 나같이 뭣도 모르고 와서 입 벌리고 헤 거리며 사진도 찍고 책도 뒤적거리는 사람도 있고... 의외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에 놀라왔고... 진심으로 기뻤다.

 

그냥저냥한 헌책방 순례기이지만, 묘하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었다. 일본에 가면 여기 수록된 서점들을 몇 군데라도 찾아가 봐야겠다 라고 결심 아닌 결심을 하게 되고. 영국 헤이온와이 이런 곳들도 여행 목록에 얼른 넣어서 다녀와야겠다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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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15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헌책방 이야기를 접하게 될 때마다 마음에 드는 헌책방들이 하나둘씩 알게 돼요. 그런데 우리 지역, 동네에 좋은 헌책방들이 없다는 게 정말 아쉬워요. 전국의 헌책방에 한 번씩 가보는 일이 위시리스트인데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

비연 2017-05-16 08:03   좋아요 0 | URL
저도 이런 이야기 읽으면, 우리나라 곳곳의 헌책방 동네를 가보고 싶다, 찾아봐야겠다 하는데...^^
cyrus님. 우리 한군데씩 다니면서 서로 공유하도록 해요~^^ 아. 왠지 이 아침, 넘 기분이 좋아지네요~

보빠 2017-05-15 1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감동을 줍니다

비연 2017-05-16 08:0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팔루스의 기표님 댓글을 보니 오늘 하루 멋지게 보낼 기운이 얻어지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