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좀 지루한 책이다 싶었다. 뭔가 르뽀 형식의 글이랄까. 정신과 의사의 시점으로 쭈욱 그려지는 이야기들이, 어째 더디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여기에 무슨 대단한 비밀이 있겠는 지, 정신과 의사가 자기 아들을 지키기 위해 하는 행동들이 짜증나기까지 했다. 그래도 꾸욱 참고 읽었던 건, 뭔가 있으니 다들 재미있게 읽었겠지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 읽고 난 감상은...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가 되어야 모든 내용들이 다 연결되어 진다. 물론 그 마무리가 좀 급한 감도 없지 않으나. 그렇게 모든 것들을 짠 설명하며 끝내니 좀 어리둥절하기도 하나. 그럼에도 갈수록 재미와 흥미가 더해졌었고 마무리도 예상 밖이었다. 정신과 의사가 왜 그래야 했는 지 왜 중간중간 별로 연관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는 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기억의 재생산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늘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기억이란 무엇인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 과연 '참'인가. 만약 가슴아픈 기억을 뇌에서 지워낼 수 있다면 내 인생은 좀더 편해질 수 있을까. 기억이라는 것은 뇌에서만 지워지면 다 없어질 수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 이 책은 프로이드적 관점이라고나 할까. 지금의 내 행동의 근간은 어릴 때의 기억, 특히나 성적인 부분에서의 기억에 기안한다고 하는 관점을 고수하고 있다. 그 기억을 내 속에 두고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내 속에서 그것을 재생하는 것이고 누구에게 말하지 못한 채 속에 꽁꽁 넣어둠으로써 알게 모르게 상처가 되고 그 상처는... 지금의 내 생활에 많은 부분 관여하게 된다.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 그 말을 하게 될 때, 그것은 나의 상처를 치유하는 경험이 될 수도 있으나 제대로 수습이 되지 않을 경우 더 큰 오해와 상처를 일으킬 수도 있다... 이런 생각들을 확인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영화로 만든다는데 어떻게 만들 지 꽤 궁금하다.

 

몇 가지 점만 빼고, 이 소설은 해피엔딩이다. 내 기억에서 비롯되는 상처가 제대로 해소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걸 고려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제 자리를 찾아갈 수 있어서 책을 덮는 순간, 그렇게 힘들지 않을 수 있었다.

 

***

 

저녁은 먹기 싫고, 근데 배에선 꼬르륵 시계가 울리고... 그래서 엉금엉금 기어나가 (온종일 집에 딱정벌레마냥 붙어 있었다) 마트에서 맥주와 안주거리를 사왔다. 꼬깔콘, 오징어, 크리스피롤,.... 그리고 하이네켄, 아사히, 싱아. 엄마와 오랜만에 마루에 도란도란 앉아 삼시세끼를 보며 맥주를 함께 했다. 딸이 집에 있는데도, 저녁을 혼자 꾸역꾸역 먹고 있는 엄마를 발견하고는 아 주말에 힘들다고 방에만 쳐박혀 있어서는 안되겠다 싶어... 엄마. 맥주 한잔? 이라고 한 것. 고약한 딸래미는 방에서 그저 자고 책보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그 동안 연세드신 어머니는 이른 저녁밥을 혼자 드시고. 마음아픈 풍경이다 싶어서 가슴이 뻐근해졌었다. 그렇게 둘이 맥주 두 캔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잔뜩 내놓은 안주를 함께 먹으며 .. 삼시세끼에 나오는 음식들에 와 맛있겠다 이얘기 저얘기 하며... 있으니 참 좋았다. 행복이란 게 별거인가. 추억이란 게 별거인가. 이렇게 건강하게 가족과 같이 맥주 한잔 하며 실없이 웃을 수 있는 지금이 행복이고 추억이지 뭔가. .. 좋은 토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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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만하면 '연애' 소설은 감명깊게 읽은 기억이 없다. 연애 소설들의 작품성이 떨어져가 아니라 그냥 읽고 나면 그런가보다 싶은게... 감성이 바닥을 쳐서 마이너스로 치닫는 자의 증상이긴 하지만, 어쨌든 말하고 싶은 건 남녀의 사랑 이야기로 내가 자극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거다.

 

근데. 이 책은 나의 마음을 두드린다. 울렁거리게 하고 기억나게 한다. 엄청나게 애절한 사랑이라든가, 대단히 아름다운 서사가 있다거나, 상상 이상의 에피소드들이 있는 게 아닌데... 그냥 사십대 즈음에 만난 남녀가 첫눈에 반했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서로를 마음에 간직하며 이메일과 스카이프로 대화를 나누고 그렇게 다시 만나 사랑을 고백하고... 주파수가 꼭 맞는 상대에게 경외감을 느끼며 사랑을 이루려 했으나 그게 그렇게 안되고 말았다는... 그런 이야기.

 

우연히도 그들은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에 서로를 만났고, 그래서 그 시기를 어쩌면 견디어 낼 수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또 그것 때문에 오해가 생기고 다른 사람이 개입되고... 그러나 헤어진 이후에도 간혹 간혹 서로를 그리워하는... 어른의 사랑 이야기이다. 현실감이 담뿍 들어갔으면서도, 그러니까 이라크 내전이라든가 미국의 금융 위기라든가 이런 이야기들이 어색하지 않게 잘 들어갔으면서도, 아련한 사랑의 감정들이 과하지 않게 잘 묘사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주인공 남자의 직업이 클래식 기타리스트라서 그런 지도 모른다. 음악이 있고 히라노 게이치로 특유의 섬세한 음악에 대한 묘사가 한 몫을 하고 있어서, 그리고 주인공 여자의 아버지가 영화감독이는 것도 더하여 낭만적인 감각들을 잃지 않는다. 만약 사랑이라는 게, 현실에서, 중년에 이루어진다면 아마 이런 감성, 이런 대화, 이런 추억으로 채워지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생각도 함께 들면서 말이다.

 

 

요코는 이제는 오로지 자신의 마음에 충실하자고 마음먹었다. 인간에게 결단을 재촉하는 것은 밝은 미래에 대한 적극적인 꿈이라기보다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현재 상태에 계속 머무는 것에 대한 불안이었다.

후회가 찾아오는 것은 한참 나중의 일일 텐데도 이미 그녀의 발밑은 그 차가운 바닷물에 잠겨들기 시작했다. 거기서 마냥 눈을 질끈 감고 가만히 서 있을 수는 없었다.

마키노가 했던 말을 요코는 자기 자신의 언어로 수없이 되뇌었다. 그를 사랑하지 않는 고미네 요코라는 인간 또한 이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비현실이라고. (p189)

 

 

누군가와 마음에 공명을 이룬다면, 이런 결심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나이가 차서 자신에게 잘 해주는, 그리고 자기도 좋아하는 사람과 약혼을 했지만, 진정 나를 이해하고 내가 그일 수 있고 그가 나일 수 있는 상대를 만난다면 아마 어렵겠지만 다시 시작하고 싶지 않을까. 많은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음에도, 그가 없는 나는 '비현실'이라고, 나이가 들면 오히려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한 자각이 뚜렷해지기 때문에, 두려우면서도 그 '비현실'을 벗어날 용기를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행복이란, 매일매일 경험하는 이 세계의 표면에 관해 함께 이야기할 사람의 얼굴이 또렷이 나타나는 것이다. (p198)

 

 

그래. 행복을 너절너절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냥 바라보는 세상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즐거운 사람과 함께 하는 것, 그런 사람을 가지는 것이 행복이다. 요코가 부러워지는 순간이었고 마키노가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곧장 뻗어나간 철도의 선로는 저 멀리의 소실점에서 서로 만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역을 하나둘 지나가도 풍경은 여전히 똑같고, 당연한 일이지만 그 평행하는 두 줄기 레일은 결코 교차하지 않는다. 현재에서 보기에는 언젠가 반드시 하나가 될 것 같은 그 점은 말하자면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p214)

 

 

슬픈 예감은 왜 늘 맞아들어가는 것인지. 이 소실점에 대한 구절에서... 무릎을 친다. 될 거라고, 만날 거라고 수없이 되뇌는 관계, 한 치 앞도 못 보는 인간들은 그렇게 될 거라고, 지금처럼 살면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때론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교차하지 않는 레일. 환상에 불과한 소실점.

 

마지막 장면은, 참 아름다왔다. 열린 결말이라고나 해야 할까. 하지만 충분히 두 연인의 아름다운 사랑이 퇴색하지 않았음을, 그 떨림이 여전함을 느끼게 해주는 장면이었다. 처음 만나 5년 반의 세월 이후 다른 위치에 선 상태로 재회하는 마키노와 요코. 아마, 이 더운 여름날, 두고두고 생각날 장면이고 책이 아닌가 싶다.

 

 

*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들을 좀 더 찾아보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던>인데, 여러 책들이 번역되어 나와 있었다. 와. 이렇게나 많이 번역되어 있었는데, 나는 이 책이 처음이다. <일식>과 <달>을 보관리스트에 슬쩍 담아본다. 히라노 게이치로라는 작가에 대해서 좀더 알고 싶다. 조만간 사서 줄기차게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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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7-08-10 1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지작 거리며 고민했던 책이네요. 이북으로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더운 여름 건강조심하세요.

비연 2017-08-10 22:54   좋아요 0 | URL
추천요 모리님^^
비가 갑자기 쏟아지네요~ 모리님도 건강 조심하시고, 여름 마무리도 즐겁게요~!
 

고독이란, 말하자면 이 세계에의 영향력이 결여되었다는 의식(意識)이었다. 자신의 존재가 타자에 대해 전혀 영향력을 갖지 못한다는 것. 갖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것. 동시대에 대한 수평적인 영향력뿐만 아니라 다음 시대에 대한 시간적이고 수직적인 영향력. 그것이 타자의 존재 어디를 찾아봐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

 

나만은 나이가 들어도 그런 환멸을 맛볼 리 없다고 어딘가에서 낙관하고 있었건만. (p155)

 

 

이 책, 좋다. 지금 1/3 쯤 읽었나. 사랑 이야기지만, 인생에 대한.. 왜냐하면 주인공 남녀가 40줄에 들어가는 사람들이라서 그런 듯 싶은데... 인생에 대한 성찰들이 곳곳에서 빛난다. 아울러 사랑이라는 감정에 어찌할 바 모르는 - 나이를 한참이나 먹었으면서도 - 남녀의 감정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읽을수록 좋아지는 책이다, 아직까지는.

 

총체적인 감상은 다 읽고 난 후... 그러나 이렇게 먼저 성급하게 올리는 이유는, 저 위의 문구가 가슴에 확 박혔기 때문이다. 고독의 정의를 저리 사무치게 묘사한 글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느껴지는 그 '고독'을 곱씹어가면 느낀 사람이 아니라면 저 글을 쓸 수도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고독은 그냥 외롭다 가 아니라... 주변 세계에 대한 나의 존재감이 상실될 때 느껴지는 감정이다.. 라는. 아. 정말 백퍼센트 동감이 된다.

 

히라노 게이치로. 문제적인 작가였다. 왜 모르고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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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흥미진진하게 짜임새 있고... 책에서 손을 못 떼게 한다는 데까지는 동감. 아 근데 이 책, 읽고나서의 기분이 영 찝찝이다. 표지부터가 마음이 안 들더니만 내용도 그러네.

 

 

이 작가의 작품, 번역되어 나온 건 나 다 읽었어 하며 찾아보니... 이런. 번역자들마다 작가 이름이 다 다르게 나와 있네? <스토커>에는 라르스 케플러, <샌드맨 >에는 라르스 케플레르, <최면전문의>에는 라슈 케플레르??? 이게 뭥미. 이래 가지고야 같은 작가라고 찾기가 힘들쟎아... 경찰 이름도 다르다. <스토커>에서는 요나 린나인데, 다른 책들에서는 유나 린나. 뭐냐고...ㅜㅜ 암튼.

 

돌이켜보니, 이 모든 책들이 읽고 나서는 마음이 영 불편했던 것 같다. 잔인한 묘사와 인물들간의 일그러진 관계, 지옥같은 약쟁이들의 모습.... 내가 무슨 핑크빛 세상을 꿈꾸는 소녀는 아닐지라도 이런 내용들에는 적쟎은 반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중고책 내놓을 때도 아낌없이 내놓았네... 다 내 책장에서 사라진.

 

사실 북유럽 스릴러들이 조금, 아니 많이 잔인한 게 사실이라 살 때마다 재미있다는 것에 홀려서 사기는 사는데 사기 직전에 살짝 망설이게 되는 게 사실이다. 코지 미스터리를 좋아하진 않으나 나는 루이즈 페니의 가마슈 경감 시리즈 같은 류를 좋아하는 것 같다. 체스터튼의 브라운신부 시리즈 같은... 조금 고전적인 소설류를 좋아하는 것일까.

 

끔찍한 내용을 화면으로 보는 것도 그렇지만, 글로 하나하나 묘사된 걸 읽어내려가는 건 곤혹스러운 일이다. 사실 <스토커>는 읽기 시작할 때 밖에서 밥을 먹고 있었는데, .... 밥맛이 떨어져서 책을 덮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 아. 하지만 이 책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재미있게 썼고 읽을 만 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너무 잔인하고 끔찍한 묘사들이 힘들게 한다.. 뭐 이런 감상.

 

상처받은 마음을 안고, 이번엔 좀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어야겠어. 라는 마음으로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을 골라본다.

 

 

사랑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어른들을 위한 연애소설이라.... 지금의 나에게 딱 맞는 책이 아닌가! 사랑 이야기를 그닥 좋아하지는 않지만, 덥고, 끔찍한 소설을 읽은 직후이고, 요즘 마음도 마음이 아닌지라 비교적 말랑말랑한(!) 내용의 책을 고른다고 고른 것인데... 기대가 된다. 일본소설의 가벼움과 거리가 있는 작가라니 더더욱. 내가 이 사람의 작품을 한번도 읽은 적이 없었다니 의아스럽지 뭔가. 이 책 읽고 좋으면 <던>도 사두었으니 (늘 먼저 사놓는 비연 ...ㅜ) 그것도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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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검은색, Black에 대한 책이다. 검은색 하나를 기반으로 여러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역사로, 문학으로, 패션으로, 예술로... 혹시 지겨우면 어쩌지? 도대체 색 하나 지고 이야기를 500페이지 넘게 쓴다는 것이 말이 되냐 이거다.. 라는 기우는 몇 장 넘기면서 깨끗이 사라졌다. 술술술 넘어가게 잘 썼고, 읽은 다음이 궁금해서 퇴근하자마자 아무리 졸려도 펼쳐보게 되었다. 이 방대한 서적을 번역하느라도 굉장히 힘들었을 듯... 가끔 보이는 오타들이 눈에 거슬리기는 했지만 (아 이 오타에 대한 민감성이라니) 힘들었을 번역자를 생각하면서 질끈, 눈을 감아 본다.

 

 

하얀 줄은 빛의 파장을 완전히 반사하기 때문에 검은 줄보다 두꺼워 보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검은 줄이 훨씬 강렬한 존재감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인류가 검은 점판암에 백악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고 밝은 암석 위에 목탄으로 그림을 그린 이유, 하얀 잉크 대신 검은 잉크를 사용하는 이유, 1980년대 컴퓨터화면이 검은 바탕에 하얀 글자를 입력하던 것에서 흰 바탕에 검은 글자를 입력하는 것으로 바뀐 이유다. (p13)

 

 

아. 책을 숱하게 보면서도, 하얀 종이에 검은 글자를 넣는 게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검은 종이에 하얀 글자를 넣어도 되는 것을. 물론 프린터에 검은 색을 인쇄하느라 들 토너를 생각하면 그렇게 안 한 게 합리적일 거란 생각은 들지만.

 

 

피, 취기, 진홍색 간음, 이 삼박자 속에 존재하던 죄는 어떻게 검은색으로 바뀌었을까? 이는 기독교의 전파와 동시에 벌어진 사건으로, 기독교가 점점 죄를 죽음과 연관시키면서 일어난 일이다. 인류의 최초의 조상이 죄를 저지르는 바람에 모든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 죄가 죽음 또는 영혼의 죽음을 의미한다면, 죽음은 곧 죄의 결과물이며 따라서 죄는 마땅히 죽음의 색을 갖게 된다. 특히 신약성서는 죄와 죽음의 연관성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p119)

 

 

어딜 가나 빠지지 않는 이 종교의 영향. 검은색이 뜻하는 바는 죄악, 죽음. 어쩌면 죄는 죽음.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죄악의 검은 특성' 이라는 말을 썼고, 성 히에로니무스는 '죄악의 다양성과 검은 특성' 이라 말했다. (p120) 죄는 색깔이 없지만, 뭔가 색깔로 대입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구체성을 지니게 한다.

 

당시 유행하던 까만 실크 모자와 검은색 옻칠을 한 포장마차로 상징되는 세련된 세상은, 더럽고 기름이 번들거리는 옷을 입고 살아가는 빈곤층과 오물이 넘실대는 검은 강물 곁 잿가루로 더러워진 테라스에서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검은 세상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이러한 차이를 소름 끼칠 정도로 짧은 문구로 묘사한다. 

 

어떤 이는 달콤한 기쁨 속에서 태어나고

어떤 이는 무한한 어둠 속에서 태어난다.

 

제각각 다른 검은색을 가진 이 두 세상은 - 디즈레일리는 이를 두 개의 나라라고 불렀다 - 그리 멀지 않은 거리를 사이에 두고 살았다. (p420)

 

 

검은색이라고 다 같은 검은색은 아니다. 어떤 이에겐 풍요와 권위와 매력의 상징이며, 어떤 이에겐 궁핍과 좌절과 불행의 상징일 수 있다. 물리적 거리는 가까우나 정서적 거리는 한참이나 먼 이 관계. 같은 색깔을 바라볼 때 이 양편의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자신의 처지에 따라 검은색에 대해 느껴지는 바가 다르지 않을까. 

 

좋은 글귀들도 많고 예시로 나오는 그림들도 좋다. 하나하나 다 옮기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니 한번쯤 관심있으면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특히나 렘브란트에 이르러서는, 그가 그렇게 검은색을 절묘하게 사용했는 지 이번에 처음으로 느낀 것 같다. 뭔가 미켈란젤로 같은 사람들에 비해 렘브란트라는 화가는 부족함이 없었을 것 같고 탄탄대로를 걸었을 것 같은 느낌인데 말이다. '자신의 심정을 단순히 색조와 질감에만 반영한 것이 아니라, 때와 장소에 따라 선을 부드럽게 처리하기도 하고 투박하게 처리하기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자신의 답답한 상황을 표현한 듯 하다 (p223-224)' 라고 말하고 있으니. 다시한번 그의 작품들을 찾아봐야 겠다는 동기가 유발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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