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제목이 참 좋다... 싶었다. 승효상이라는 이름보다는 책 제목 보고 고른 책.

책 첫장을 여니 이런 시가 담겨져 있다.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박노해

 

시간은 모든 것을 쓸어가는 비바람

젊은 미인의 살결도 젊은 열정의 가슴도

무자비하게 쓸어내리는 심판자이지만

 

시간은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거장의 손길

하늘은 자신이 특별히 사랑하는 자를

시련의 시간을 통해 단련시키듯

시간을 견뎌낸 것들은 빛나는 얼굴이 살아난다

 

오랜 시간을 순명하며 살아나온 것

시류를 거슬러 정직하게 낡아진 것

낡아짐으로 꾸준히 새로워지는 것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저기 낡은 벽돌과  갈라진 시멘트는

어디선가 날아온 풀씨와 이끼의 집이 되고

빛바래고 삭아진 저 플라스틱마저

은은한 색감으로 깊어지고 있다

 

해와 달의 손길로 닦아지고

비바람과 눈보라가 쓸어내려준

순해지고 겸손해지고 깊어진 것들은

자기 안의 숨은 얼굴을 드러내는

치열한 묵언정진 중

 

자기 시대의 풍상을 온몸에 새겨가며

옳은 길을 오래오래 걸어나가는 사람

숱한 시련과 고군분투를 통해

걷다가 쓰러져 새로운 꿈이 되는 사람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

 

 

아릿함이 가슴에 퍼진다. 오랜만에 만나게 된 박노해의 시. 그의 시 중에 이런 시가 있었던가. 이런 좋은 시를, 마음을 평화하게 하는 시라 명하며 책 서문에 넣은 승효상이라는 사람의 안목도 부럽고, 좋다.

 

글도 정갈하고 담백하다. 그저 건축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글을 참 잘 쓴다. 혜안이 있고 철학이 있어 인문학적 감성을 느끼게 한다. 요즘처럼 전쟁같은 생활을 매일 해나가는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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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3-13 0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이야기 읽고 느끼면서
마음 따뜻하게 추스를 수 있어요.

언제나 즐겁고 맑은 이야기
가슴으로 담으며 좋은 날 누리셔요.

비연 2013-03-14 10:25   좋아요 0 | URL
항상 좋은 말 감사드려요~^^
함께살기님도 좋은 날 누리세요~
 

 

 

화나는 일이 있었다고 세네카의 <화에 대하여>라는 책을 읽고 있는 나는, 정말 단순한 뇨자. 이천년도 전의 사람이 쓴 글을 읽겠다고 나설 때는 뭔가 좀 의구심을 가지고 시작할 수 밖에 없는데, 역시 사람들이 많이 읽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전혀 지루하지 않은 이 느낌. 화 잘 내는 동생이 화 다스리는 법을 글로 써달라고 했다고 쓰기 시작한 이 글은, 아 .... '화'라는 것에 대해 지금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내용들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의 본성이란 정말 수천년이 지나도 그닥 달라지는 바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

 

어쨌든,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좋아라 하며 재미나게 읽고 있다. 삶 자체가 드라마틱한 세네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아철학을 고수하며 마음의 평온에 대해 이야기했었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아는 로마의 폭군 네로 황제의 어릴 적 스승이었고 네로가 황제가 되고 나서도 한동안 그의 자문역할을 했으나 나중에 황제 시해 음모에 가담했다는 누명을 쓴 채, 네로에 의해 죽음을 명령받게 된 철학자. 그 명령에 전혀 반항하지 않고 처음엔 혈관을 끊고 다음에 독물을 먹고 그래도 죽지 않자 증기탕에 들어가 서서히 죽음을 맞은 세네카. 그래서 소크라테스와 비교되기도 하는 이 사람은, 아마도 자신의 철학에 철저했기에 그리 처신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가볍게 읽고 있는 책이다. 한동안 와인에 빠져서 와인만 마시고 와인 책을 보고 와인 코르크마개 모으는 게 낙이었던 적도 있었는데... 요즘은 그렇게는 아니지만 여전히 와인이라는 대상에 관심은 있다. 와인은, 와인으로만 끝나지 않은 그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 때문. 이 책은 어렵게만 느껴지는 와인에 쉽게 다가가게 하는 책이다. 다들 호평인데... 나도 이걸 읽고 다시 한번 와인에 애정을 쏟아볼까 싶다.

 

최근엔 술자리에 가급적 가지 않기도 하지만, 소주에 막걸리에 드립다 부어 마시는 건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견디기가 힘들어서, 좀더 조용하고 은은하고 가볍게 술자리를 가지기 위해서라도 와인에 대한 상식을 좀더 넓힐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요즘 소믈리에 따는 사람들도 많던데 그것도 한번 해볼까 싶고.

 

 

 

최근에 회사가 정신없이 바빠져서, 저녁에 집에 가면 콕 고꾸라지기 일쑤인지라 책을 제대로 읽기가 힘들어졌다. 곧 용인으로 프로젝트하러 나가면 더 힘들어질 것 같아 걱정이고. 그래도 올해는 '나'에게 집중하는 한 해. 나의 체력과 나의 정신과 나의 실력에 집중하는 한 해로 삼았기에 좀 규칙적으로 생활을 해볼 작정이라 오히려 작년보단 나아지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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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3-02-20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에 대하여'는 아무래도 제가 읽어야겠어요. ^^
소믈리에 비연님을 상상하며, 멋있어요.
저는 와인에 대한 책에서 경제적개념으로 들어가면 오리무중 눈에 잘 안 들어와요.
와인잔에 혹~하구요.

비연 2013-02-20 09:07   좋아요 0 | URL
ㅎㅎㅎ '화'에 대하여는 정말 유용할 것 같아요..
저도 이 화를 다스릴 방법을 찾다가..^^;;;;;
소믈리에가 되는 길은 쉽진 않겠죠? 그래도 한번 도전할 맘이 나네요..ㅋ
 

 

 

 

 

 

 

 

 

 

 

 

 

 

 

어제, 이 책을 읽었다. 토머스 H. 쿡의 <붉은 낙엽>.

워낙 호평을 많이 받았던 책이라, 선듯 손이 갔고, 새벽까지 내리 읽어서 다 읽어내고야 말았다. 그만큼 흡인력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오랜만에 꽤 괜챦은 스릴러(?)를 읽은 기분이다.

 

첫번째 가족이 어이없이 붕괴되고, 두번째 가족인 아내와 10대 아들을 두고 평온하게 살던 에릭 무어. 사진관을 운영하며 주로 다른 사람의 가족사진을 인화하고 액자에 넣어 파는 그냥 겉으로 봐선 평범한 남자다.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무리한 사업으로 허덕이다 양로원에 계시고 형은 알콜 중독자에 여동생은 암으로 죽은 첫번째 가족에 비해, 두번째 가족은 잘 나가고 마음 잘 맞는 아내와 좀 독특하긴 하지만 무난하게 크는 것으로 보이는 아들에게서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그에게 큰 시련이 닥치는데, 아들인 키이스가 동네 8살 여자아이인 에이미의 유괴범으로 몰리면서부터이다. 그리고 몇 주만에 가족은 붕괴하고 상처투성이의 결과로 치닫게 되는데...

그 과정이 참으로 무섭기도 하고 적나라하기도 하다. 의심은 부식성이 있어서 바닥으로 치닫는다고 말하는 그 부분이 핵심이라고나 할까.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가족간의 숨겨진 비밀들이 드러나고 그로 인해 의심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이제까지 지켜온 가족은 점차 해체되게 된다. 사람이 사람에게 의심이라는 것을 품게 되면 그것이 어떻게 그 사람을 파괴하는가가 현실적으로 묘사되는 이 소설은, 정말 십몇 년을 유지했던 나의 기반이 몇 주만에도 본질까지 다 해쳐질 수 있다는 무서운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누구나 갈망하는 일반적인 삶을,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환상일 지도 모른다는, 어쩌면 내 속의 무언가를 자꾸 억누른 댓가로 받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서로가 서로를 기만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리라는 그런 느낌을 준다. 공포의 형태로.

 

누가 누구를 죽이고 살리고 하는 내용보다 일상적 생활의 파괴라는 것이 더 무섭게 다가오는 것은, 누구나 자신의 삶이 가끔 흔들린다고 느끼고 기반이 모래성 같다고 불안해하기 때문에 작은 바람에 후욱 날아갈 지도 모른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읽는 내내 큰 공포가 아니라 작은 두려움들이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쌓여서 책을 덮는 순간에는 멍해질 지경이었다.

 

 

 

 

 

 

 

 

 

 

 

 

 

 

 

 

토머스 H. 쿡의 번역본은 두 권 정도가 더 나와 있었다. 한번 사서 읽어봐야겠다. 꽤 흥미가 가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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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 맥베인의 87분서 시리즈가 나왔다는 얘기에 두 말없이 장바구니에 밀어넣고 바로 산 후 다시 바로 읽어버린 책. 피니스 아프리카에라는 독특한 이름의 출판사에서 이 시리즈를 하나씩 내려고 하는 것 같은데... 이 또한 반가운 일이 아닌가 싶다.

 

87분서 시리즈의 매력은, 어디 천재적인 탐정이나 괴팍한 형사가 나와서 여기저기 휘젓고 다니면서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어찌 보면 더 복잡하게 만드는 여타의 소설들과는 달리 뭔가 일상적이랄까 현실적이랄까 그런 데에 있는 것 같다. 느낌이 수사반장 같은 느낌이랄까. 정말 직업인으로서의 경찰을 보는 느낌이고, 대단한 스타가 있지는 않으나 각각의 사연을 가진 경찰들이 범죄현장을 협업하여 풀어나가는 것이 재미지다고나 할까. 암튼 대단히 매력적인 시리즈임엔 틀림없다.

 

'살의의 쐐기' 에서는 표면적으로는 두 가지의 사건이 진행된다. 카렐라 형사를 죽이겠다고 니트로글리세린과 38구경 권총을 들고 87분서 경찰들을 붙잡아 인질극을 벌이는 한 여자와, 그 카렐라 형사가 어느 노인의 죽음 앞에서 밀실 사건이라는 난제를 풀어나가는 것. 그렇게 두 가지 사건이 마주치는 듯 멀어지는 듯 하다가 어느 한 순간 한 곳에서 홀가분한 기분으로 만나게 된다.

 

회색 뇌세포가 번뜩이는 추리가 필요한 내용은 아니지만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고 긴장되는 내용이다. 워낙 옛날 책이라, 이제는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타이프라이터가 나오질 않나, 핸드폰으로 다 해결될 일을 부서에 놓여있는 전화를 기다리면서 넋놓고 있어야 하질 않나 .. 뭐 그런 것들도 소소한 재미로 보게 되는 소설이다.

 

 

 

 

 

 

 


 

 

 

에드 맥베인의 87분서 시리즈는 열 몇 권인가 번역되었다고 하는데 지금 찾아보면 '10플러스 1'과 다수의 '경관(찰) 혐오자' 만 있을 뿐이다. 50권쯤 된다는 이 시리즈가 차근차근 나오면 좋겠다. 제발 중간에 그만두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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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을 읽고 있다. 오늘 1권을 다 읽고 덮으면서... 아 역시 고전의 힘이란. 그런 말을 나도 모르게 내뱉게 된다. 영화나 뮤지컬, 동화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부분들에, 사실은 진리가 숨겨져 있었다. 미리엘 주교가 어떤 사람인가가 한참이나 얘기되어 있었고 혁명과 왕정복고의 와중에서 만난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져 있다. 국민의회 의원인 G가 죽어갈 때 일말의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도 그의 곁을 지켰고 그에게 들은 말들을 곱씹으며 이후에는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더 애정을 주었다 했다.

 

"... 경우에 따라서는 나 자신의 적인 당신네들을 보호하기도 하였소. 플랑드르의 페테겜에, 메로빙 왕가의 여름 궁전이 있는 바로 그곳에 성 클라라회 수녀들의 수녀원인 성 클라라 앙 볼리외 수도원이 있는데, 1793년에 나는 그 수도원을 지켜 주었소. 나는 내 힘에 따라 의무를 다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선을 행하였소. 그런 뒤에 나는 몰려나고, 쫓기고, 추적당하고, 박해와 중상, 조소와 모욕, 저주와 추방을 받았소. 이미 여러 해 전부터, 백발이 된 나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무시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느끼고 있고, 무지몽매하고 가련한 군중에게 내 얼굴은 천발받은 놈 같은 얼굴로 보이겠지만, 나는 아무도 원망하지 않고, 증오받는 사람의 고독을 감수하고 있소. 지금 내 나이 여든여섯이오. 나는 곧 죽을 것이오. 당신은 내게 무엇을 요구하러 왔소?"

"당신의 축복을." 주교가 말했다.

 

 

그리고 장 발장은 내가 영화 등에서 느꼈던 것처럼 그저 가엾고 힘없는 죄수가 아니었다. 그는 무지몽매한 한 사람에 불과했으나 조카들을 위해 빵을 훔친 죄로 감옥에 들어갔고 두번의 탈옥 기회가 다 무산되면서 19년을 살게 된 사람이고 그 사이에 많이 포악해지고 세상에 대한 분노심이 가득해져 있었다. 힘은 장사였고 갈 곳없어 헤매이며 결국 미리엘 주교에게 왔을 때에도 어떡하든 한밑천 마련해보고자 은그릇을 훔쳐간 볼품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미리엘 주교의 한 마디에 그의 영혼은 깨어났다.

 

 

"장 발장, 나의 형제여. 당신은 이제 악이 아니라 선에 속하는 사람이오. 나는 당신의 영혼을 위해서 값을 치렀소. 나는 당신의 영혼을 암담한 생각과 영벌의 정신에서 끌어내 천주께 바친 거요."

 

(...)

 

장 발장은 오래오래 울었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흐느끼며 울었다. 여자보다도 더 연약하게, 어린아이보다도 더 겁내며.

 

 

그리고 무엇보다 몽트뢰유쉬르메르 시장인 마들렌으로 있으면서 선을 베풀었고 많은 사람들의 생계를 일으켜 세웠으며 겸허하고 경건한 삶을 지속하던 장 발장이, 사복형사 자베르로부터 자신의 이름으로 형을 살게 될 죄수가 붙잡혔음을 듣고 나서 고뇌하는 모습에 대한 서술은 영화 등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감동을 자아낸다. 그러니까 그냥 그대로 있으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스스로를 부인하고 자기 대신에 잡혀 들어갈 죄없는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먼 거리를 달려가던 모습.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번복되던 심정, 어쩌면 타의에 의해서 그 곳에 당도하지 않게끔 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그래도 가서 그를 구해 내야 한다는 심정이 복잡하게 얽히는 대목은... 아. 너무나 인간적이다.

 

 

'이거다. 나는 진리를 꺠달았다. 이제 해결되었다. 생각하기로 들면 한이 없다. 결심은 섰다. 되는 대로 내버려 두자! 더 이상 망설이지 말자. 더 이상 물러서지 말자. 이건 모든 사람을 위해서이지 나를 위해서가 아니다. 나는 마들렌이다. 그대로 마들렌으로 있자. 장 발장이라는 자는 불행할 진저! 그건 이제 내가 아니다. 나는 그런 사람은 모른다. 나는 이제 그게 뭔지 모른다. 지금 누군가가 장발장이 되어 있다면 제가 알아서 하라지! 그건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그건 어둠 속에 떠 있는 숙명의 이름이다. 그게 어떤 사람의 머리 위에 와서 떨어진다면, 그 사람에겐 딱한 일이다!'

 

(...)

 

그는 잠시 미래를 생각했다. 오오, 자수를 하고 자백을 한다! 그는 버려야 할 모든 것을 다시 취해야 할 모든 것을 생각하고 막심한 절망을 느꼈다. 그래, 이처럼 훌륭하고 깨끗하고 빛나는 생활에도, 이 만인의 존경에도, 명예에도, 자유에도 고별을 해야 한단 말인가! 이제는 들에 산책도 못 가리라. 이제는 5월의 지저귀는 새소리도 듣지 못하리라. 이제는 어린아이들에게 적선도 못하리라! 

 

(...)

 

이렇게 그 불행한 영혼은 번민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이 불운한 사나이보다 천팔백 년 전에 중생의 모든 신성과 모든 고뇌를 한 몸에 구현한 그 신비한 인간 역시 절대자의 사나운 바람에 감람나무가 흔들리는 동안 별이 총총한 하늘로부터 그림자가 넘쳐흐르고 어둠이 철렁거리는 무서운 잔이 앞에 나타났을 때 그 잔에 손을 대기를 오래 주저하지 않았던가!

 

 

마침내, 자신이 장 발장이라고 밝힌 그. 정말 그 재판정에서의 광경은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모습이었다. 내가 그 죄인이라고. 날 잡아가라고. 그리고 자기를 증언한 동료죄수들의 특징들을 하나씩 하나씩 읊어댈 때란. 이렇게 용감하게 나선 장 발장에 대해 세상은 바로 돌아서 버린다.

 

 

자베르는 장 발장을 시 형무소에 구금했다.

마들렌 씨의 체포는 몽트뢰유쉬르메르에 놀라움을 불러일으켰다. 아니, 오히려 비상한 동요를 일으켰다고 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실로 서글픈 일이지만, "그는 전과자였다" 라는 단 한마디 말로 거의 모든 사람이 그를 버리고 돌아보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숨길 수 없다. 두 시간도 채 못 가서 그가 베푼 선행은 모조리 잊혔고, 그는 이제 그저 '전과자'일 뿐이었다. (...) "옳아! 어쩐지 수상하더라. 권력자가 글쎄 너무도 친절하고, 너무도 성인군자 같더라니까. 훈장을 거절하는가 하면, 아이들을 만나면 아무한테나 돈을 주지 않았겠어? 나는 늘 그런 이면에는 무슨 심상치 않은 곡절이라도 있으리라 싶었지."

 

 

세상 사람들의 인심이란. 이 대목을 읽으면서 괜히 내가 배신감에 몸서리를 쳤다. 그리고 장 발장은 탈옥을 감행했고 팡틴에게 약속한 대로 코제트를 데리러 떠난다. 이게... 1권의 마지막. 주저없이 2권을 들면서 다 아는 스토리임에도 이렇게 읽게끔 만드는 소설이란, 정말 좋은 글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책보다 나은 영화나 뮤지컬은 없다, 라고 단언하는 바, 책은 많은 부분들이 철학적으로 역사적으로 명상적으로 그려져 있음을 다시한번 강조하는 바이다. 알라딘 서재분들이 많이도 읽은 이 책을 이제야 읽으면서 이렇게 흥분하는 게 좀 우습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가 이 책을 읽고 있음을 그리고 이 책을 참 많은 사람들이 읽고 싶었으면 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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