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이 책을 읽었다. 토머스 H. 쿡의 <붉은 낙엽>.

워낙 호평을 많이 받았던 책이라, 선듯 손이 갔고, 새벽까지 내리 읽어서 다 읽어내고야 말았다. 그만큼 흡인력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오랜만에 꽤 괜챦은 스릴러(?)를 읽은 기분이다.

 

첫번째 가족이 어이없이 붕괴되고, 두번째 가족인 아내와 10대 아들을 두고 평온하게 살던 에릭 무어. 사진관을 운영하며 주로 다른 사람의 가족사진을 인화하고 액자에 넣어 파는 그냥 겉으로 봐선 평범한 남자다.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무리한 사업으로 허덕이다 양로원에 계시고 형은 알콜 중독자에 여동생은 암으로 죽은 첫번째 가족에 비해, 두번째 가족은 잘 나가고 마음 잘 맞는 아내와 좀 독특하긴 하지만 무난하게 크는 것으로 보이는 아들에게서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그에게 큰 시련이 닥치는데, 아들인 키이스가 동네 8살 여자아이인 에이미의 유괴범으로 몰리면서부터이다. 그리고 몇 주만에 가족은 붕괴하고 상처투성이의 결과로 치닫게 되는데...

그 과정이 참으로 무섭기도 하고 적나라하기도 하다. 의심은 부식성이 있어서 바닥으로 치닫는다고 말하는 그 부분이 핵심이라고나 할까.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가족간의 숨겨진 비밀들이 드러나고 그로 인해 의심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이제까지 지켜온 가족은 점차 해체되게 된다. 사람이 사람에게 의심이라는 것을 품게 되면 그것이 어떻게 그 사람을 파괴하는가가 현실적으로 묘사되는 이 소설은, 정말 십몇 년을 유지했던 나의 기반이 몇 주만에도 본질까지 다 해쳐질 수 있다는 무서운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누구나 갈망하는 일반적인 삶을,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환상일 지도 모른다는, 어쩌면 내 속의 무언가를 자꾸 억누른 댓가로 받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서로가 서로를 기만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리라는 그런 느낌을 준다. 공포의 형태로.

 

누가 누구를 죽이고 살리고 하는 내용보다 일상적 생활의 파괴라는 것이 더 무섭게 다가오는 것은, 누구나 자신의 삶이 가끔 흔들린다고 느끼고 기반이 모래성 같다고 불안해하기 때문에 작은 바람에 후욱 날아갈 지도 모른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읽는 내내 큰 공포가 아니라 작은 두려움들이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쌓여서 책을 덮는 순간에는 멍해질 지경이었다.

 

 

 

 

 

 

 

 

 

 

 

 

 

 

 

 

토머스 H. 쿡의 번역본은 두 권 정도가 더 나와 있었다. 한번 사서 읽어봐야겠다. 꽤 흥미가 가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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