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을 읽고 있다. 오늘 1권을 다 읽고 덮으면서... 아 역시 고전의 힘이란. 그런 말을 나도 모르게 내뱉게 된다. 영화나 뮤지컬, 동화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부분들에, 사실은 진리가 숨겨져 있었다. 미리엘 주교가 어떤 사람인가가 한참이나 얘기되어 있었고 혁명과 왕정복고의 와중에서 만난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져 있다. 국민의회 의원인 G가 죽어갈 때 일말의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도 그의 곁을 지켰고 그에게 들은 말들을 곱씹으며 이후에는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더 애정을 주었다 했다.
"... 경우에 따라서는 나 자신의 적인 당신네들을 보호하기도 하였소. 플랑드르의 페테겜에, 메로빙 왕가의 여름 궁전이 있는 바로 그곳에 성 클라라회 수녀들의 수녀원인 성 클라라 앙 볼리외 수도원이 있는데, 1793년에 나는 그 수도원을 지켜 주었소. 나는 내 힘에 따라 의무를 다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선을 행하였소. 그런 뒤에 나는 몰려나고, 쫓기고, 추적당하고, 박해와 중상, 조소와 모욕, 저주와 추방을 받았소. 이미 여러 해 전부터, 백발이 된 나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무시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느끼고 있고, 무지몽매하고 가련한 군중에게 내 얼굴은 천발받은 놈 같은 얼굴로 보이겠지만, 나는 아무도 원망하지 않고, 증오받는 사람의 고독을 감수하고 있소. 지금 내 나이 여든여섯이오. 나는 곧 죽을 것이오. 당신은 내게 무엇을 요구하러 왔소?"
"당신의 축복을." 주교가 말했다.
그리고 장 발장은 내가 영화 등에서 느꼈던 것처럼 그저 가엾고 힘없는 죄수가 아니었다. 그는 무지몽매한 한 사람에 불과했으나 조카들을 위해 빵을 훔친 죄로 감옥에 들어갔고 두번의 탈옥 기회가 다 무산되면서 19년을 살게 된 사람이고 그 사이에 많이 포악해지고 세상에 대한 분노심이 가득해져 있었다. 힘은 장사였고 갈 곳없어 헤매이며 결국 미리엘 주교에게 왔을 때에도 어떡하든 한밑천 마련해보고자 은그릇을 훔쳐간 볼품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미리엘 주교의 한 마디에 그의 영혼은 깨어났다.
"장 발장, 나의 형제여. 당신은 이제 악이 아니라 선에 속하는 사람이오. 나는 당신의 영혼을 위해서 값을 치렀소. 나는 당신의 영혼을 암담한 생각과 영벌의 정신에서 끌어내 천주께 바친 거요."
(...)
장 발장은 오래오래 울었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흐느끼며 울었다. 여자보다도 더 연약하게, 어린아이보다도 더 겁내며.
그리고 무엇보다 몽트뢰유쉬르메르 시장인 마들렌으로 있으면서 선을 베풀었고 많은 사람들의 생계를 일으켜 세웠으며 겸허하고 경건한 삶을 지속하던 장 발장이, 사복형사 자베르로부터 자신의 이름으로 형을 살게 될 죄수가 붙잡혔음을 듣고 나서 고뇌하는 모습에 대한 서술은 영화 등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감동을 자아낸다. 그러니까 그냥 그대로 있으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스스로를 부인하고 자기 대신에 잡혀 들어갈 죄없는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먼 거리를 달려가던 모습.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번복되던 심정, 어쩌면 타의에 의해서 그 곳에 당도하지 않게끔 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그래도 가서 그를 구해 내야 한다는 심정이 복잡하게 얽히는 대목은... 아. 너무나 인간적이다.
'이거다. 나는 진리를 꺠달았다. 이제 해결되었다. 생각하기로 들면 한이 없다. 결심은 섰다. 되는 대로 내버려 두자! 더 이상 망설이지 말자. 더 이상 물러서지 말자. 이건 모든 사람을 위해서이지 나를 위해서가 아니다. 나는 마들렌이다. 그대로 마들렌으로 있자. 장 발장이라는 자는 불행할 진저! 그건 이제 내가 아니다. 나는 그런 사람은 모른다. 나는 이제 그게 뭔지 모른다. 지금 누군가가 장발장이 되어 있다면 제가 알아서 하라지! 그건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그건 어둠 속에 떠 있는 숙명의 이름이다. 그게 어떤 사람의 머리 위에 와서 떨어진다면, 그 사람에겐 딱한 일이다!'
(...)
그는 잠시 미래를 생각했다. 오오, 자수를 하고 자백을 한다! 그는 버려야 할 모든 것을 다시 취해야 할 모든 것을 생각하고 막심한 절망을 느꼈다. 그래, 이처럼 훌륭하고 깨끗하고 빛나는 생활에도, 이 만인의 존경에도, 명예에도, 자유에도 고별을 해야 한단 말인가! 이제는 들에 산책도 못 가리라. 이제는 5월의 지저귀는 새소리도 듣지 못하리라. 이제는 어린아이들에게 적선도 못하리라!
(...)
이렇게 그 불행한 영혼은 번민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이 불운한 사나이보다 천팔백 년 전에 중생의 모든 신성과 모든 고뇌를 한 몸에 구현한 그 신비한 인간 역시 절대자의 사나운 바람에 감람나무가 흔들리는 동안 별이 총총한 하늘로부터 그림자가 넘쳐흐르고 어둠이 철렁거리는 무서운 잔이 앞에 나타났을 때 그 잔에 손을 대기를 오래 주저하지 않았던가!
마침내, 자신이 장 발장이라고 밝힌 그. 정말 그 재판정에서의 광경은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모습이었다. 내가 그 죄인이라고. 날 잡아가라고. 그리고 자기를 증언한 동료죄수들의 특징들을 하나씩 하나씩 읊어댈 때란. 이렇게 용감하게 나선 장 발장에 대해 세상은 바로 돌아서 버린다.
자베르는 장 발장을 시 형무소에 구금했다.
마들렌 씨의 체포는 몽트뢰유쉬르메르에 놀라움을 불러일으켰다. 아니, 오히려 비상한 동요를 일으켰다고 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실로 서글픈 일이지만, "그는 전과자였다" 라는 단 한마디 말로 거의 모든 사람이 그를 버리고 돌아보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숨길 수 없다. 두 시간도 채 못 가서 그가 베푼 선행은 모조리 잊혔고, 그는 이제 그저 '전과자'일 뿐이었다. (...) "옳아! 어쩐지 수상하더라. 권력자가 글쎄 너무도 친절하고, 너무도 성인군자 같더라니까. 훈장을 거절하는가 하면, 아이들을 만나면 아무한테나 돈을 주지 않았겠어? 나는 늘 그런 이면에는 무슨 심상치 않은 곡절이라도 있으리라 싶었지."
세상 사람들의 인심이란. 이 대목을 읽으면서 괜히 내가 배신감에 몸서리를 쳤다. 그리고 장 발장은 탈옥을 감행했고 팡틴에게 약속한 대로 코제트를 데리러 떠난다. 이게... 1권의 마지막. 주저없이 2권을 들면서 다 아는 스토리임에도 이렇게 읽게끔 만드는 소설이란, 정말 좋은 글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책보다 나은 영화나 뮤지컬은 없다, 라고 단언하는 바, 책은 많은 부분들이 철학적으로 역사적으로 명상적으로 그려져 있음을 다시한번 강조하는 바이다. 알라딘 서재분들이 많이도 읽은 이 책을 이제야 읽으면서 이렇게 흥분하는 게 좀 우습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가 이 책을 읽고 있음을 그리고 이 책을 참 많은 사람들이 읽고 싶었으면 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