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한비자 관련 서적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효율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하고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한비자는 어떤 목표나 결과를 달성하기에는 기가 막히게 잘 드러맞는다. 경영전략이나 인사 업무를 할 때 한비자는 놀라운 혜안을 제공해 준다. 노자 역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사물을 관조할 수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언제나 매력적인 책으로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책의 정확한 위치와 쓰임을 알 때 더 많은 성찰을 줄 수 있다. 

만약 한비자나 노자가 처음으로 접해 보는 동양고전이라면 커다란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한비자나 노자는 기본적으로 기존의 사고방식에 대한 대안이거나 파격, 즉 비판서로서의 위치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이 책들의 역사성이다. 


기존의 사고방식이란 유가를 말한다. 먼저 문제가 되는 노자의 경우 "공자가 찾아가서 예를 물었다"는 사마천 사기의 내용 때문에 유가보다 앞선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한마디로 공자의 <논어>보다 <노자>가 시기적으로 뒤에 있을 뿐만 아니라 유학의 유구한 전통에 비해서는 너무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유학은    B.C.2288년, 즉 지금으로부터 3,300년 전 요임금 시기부터 시작하는 반면, 노자는 공자의 생몰연대인  B.C.552~479년 이후부터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동북아의 인간은 유전적으로 유가의 피를 타고 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동양인의 존재와 행동은 유가가 규정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바탕 위에 노자와 한비자가 있다. 


한비자의 사상을 받아들여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나라는 서쪽의 변방에 있던 나라로 중원의 중국인으로부터 멸시와 조롱을 받았다. 기본적으로 유가의 사고방식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한비자는 중국 가운데라고 할 수 있는 한(韓)나라에서 유세하였으나 개혁적 성향은 보수적인 유가의 벽을 넘지 못했다. 결국 한비자의 책을 눈여겨 본 진시황이 한비자의 사상을 철저히 받아들이고 진나라가 가혹하게 적용한 끝에 극단적인 효율성을 무기로 전국시대를 통일할 수 있었다. 


결국 한비자는 유가의 기반 위에 개혁을 이뤄냈다고 할 수 있다. 한비자를 읽을 때 이런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면 큰 도움이 된다. 결국 유가에 대한 반론으로서 법가를 주창한 것이다. 


동양인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유가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유가의 유전자가 몸에서 빠져나가려면 적어도 수백 년은 지나야 한다. 법가나 노장을 존재와 행위의 언어로 규정하는 순간 원인 불명의 상태가 된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유가를 원류로 하고 한비자와 노장 등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학습했다. 다산 정약용도 마찬가지였다. 


즉 유가로 발제를 삼고, 노자를 통해 유가의 고정관념과 맹신이 어떤 부분인지 가려내고, 한비자를 통해 유가의 비효율적인 부분을 가려낸다. 한비자 본인 역시 자신의 책이 정도를 벗어났다고 고백했다. 잔인한 전국시대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극약처방이 필요했다는 게 그의 해명이었다. 


마지막으로 특정 사상가에게 몰입하는 경우 그 사상가의 관점으로 세계를 이해하려는 성향을 가질 위험이 있다. 나는 1998년 스피노자의 <에티카>로 철학공부를 시작했다. 스피노자로 모든 현상이 설명이 된다고 믿어 5년 넘게 스피노자에 빠져들었다. 철학과 은사님이 "전체 철학사를 이해하고 그 속에서 스피노자가 가지고 있는 위치를 조망하는 게 좋다"는 조언을 해주셔서 철학사를 10권 가까이 읽었다. 그 결과 스피노자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서당을 다니면서는 주자에 빠지게 되었는데, 주자로부터 자유롭게 되기까지는 10년 정도의 세월이 걸렸다. 노자와 장자, 사마천 등을 보면서 주자의 한계를 알게 되자 자연스럽게 주자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었다. 어떤 특정한 사상가가 나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그 폐해는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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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가방 2012-11-22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스피노자에게서 자유로워지셨다는 거에요? ㅎㅎ
저 군대 가기 전까지만 해도 한참 스피노자에 푹 빠져계셨었는데.. ^^

승주나무 2012-11-22 18:42   좋아요 0 | URL
네.. 지금은 매슬로에 푹... 여기서도 자유로워져야 하는데 ㅎㅎ
 

페이스북 계정 가지고 계신가요?


페이스북에 댓글과 리뷰를 모아서 일명 '소셜리뷰'를 썼는데,

이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 담벼락으로 공유해주신 분들 중 5분을 뽑아 아래의 책을 선물로 드리기로 했습니다.


공유할 글 (아래 주소로 가서 공유하고 댓글에 공유한 링크 달아주시면 됩니다.)
http://goo.gl/ek34t

자세한 참여 방법은 아래 매뉴얼을 참조해주세요.


☞친절한 페이스북 공유 이벤트 참여 안내 매뉴얼(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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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3-21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이벤트를 한다는 것인지...?

승주나무 2012-03-21 12:08   좋아요 0 | URL
덧붙여서 썼습니다. 페이스북 계정이 있어야 참여 가능해용~~
 




지독한 활자중독

예전에는 주진우 검색하면 이 사진 금방 나왔는데.. 찾느라 애먹었어요. 캐릭터가 한방에 나온 사진. 2007년인데 그때도 '부끄럽구요..' 한 가지 알려지지 않은 팁이 있는데... 독서가인 나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지독한 독서가입니다. 거의 활자중독 수준.. 나와 다른 점은 무지막지한 잡식성 독서가라는 점. 활자라면 야소설도 마다하지 않을 겁니다. ㅋ

특히 소설을 많이 읽어서 동질화에 능합니다. 거의 천부적인 수준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 분은 기사를 쓸 때 기사 속의 피해자 입장이 되어보는 듯합니다. 그 마음을 읽어서 대신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의 취재원들은 마음을 주게 됩니다. 시사IN 창간 당시 자원봉사를 하던 젊은 여성분들은 다 주진우 팬이었습니다.
가장 유명한 취재원은 삼성 출신 김용철 변호사. 자기 속사정을 써주는 언론사를 헤매다가 주진우를 만났죠. 주진우 기자는 여관을 바꿔가며 김용철의 신변을 보호하는데 95%의 공을 들이고 나머지 5%는 기사쓰는데 썼죠.

이 정도면 열전이 제대로 됐는지 모르겠군요. 암튼 주진우는 지독한 편식증인 제가 존경하는 독서가입니다.
주진우 기자의 책이 곧 나온대서 올려봅니다~ 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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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12-01-18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항~기자는 무조건 매의 눈을 가졌거니 생각했는데 주진우 기자님은 수더분한 옆집 아저씨 같아요^^

승주나무 2012-01-19 02:30   좋아요 0 | URL
주진우 기자가 매의 눈+깡다구_수더분한 아저씨.. 이렇게 짬뽕된 것 같아요^^
 




일상의 언어생활을 마이크로스타일이 지배하게 된 이유는, 일부 비평가들의 주장과 달리 우리가 집단적으로 주의력결핍에 시달리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마이크로스타일은 문화적 쇠락의 징후가 아니다. 그저 경제학일 뿐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은유의 경제학이다. 언어적 관심의 경제학 말이다.
- 마이크로스타일(13쪽)



죽간에 글을 팠던 시대와 모바일폰으로 트위터, 페이스북을 올리는 시대가 서로 상응하는 점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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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짧고 책은 길다

수능날이다. 대학입시를 위해 달려온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영화나 여행, 적당한 음주도 좋다. 그럴 권리가 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과서를 벗어나 읽고 싶은 책들을 맘껏 읽는 것도 좋겠다.
책벌레들의 모임인 페이스북 소셜북스(http://www.facebook.com/socialbooks) 회원들이 수험생들이 수능 끝나고 읽을 만한 책들을 추천했다. 재밌는 책과 의미 있는 책을 적절히 섞었다. 크게 문학과 에세이(역사류)로 나누어서 소개한다.


문학의 재미와 힘을 듬뿍 얻다

   

 2000년 일본 나오키문학상을 받은 재일교포 2세 가네시로 카즈키의 작품으로, 조총련계 중학교를 다니다가 한국으로 국적을 옮기고, 나중엔 일본학교에 진학하는 고등학생 스기하라의 연애담이다. 재일 한국인의 정체성이라는 묵직한 주제가 유머러스하게 그려져 있다. 추천자는 "어차피 대학가면 또 학점이다 취업공부다 박터질텐데 그전에 상쾌통쾌한 시각의 소설을 읽고 현재를 즐기는 방법을 먼저 깨달았음해요 :)( Jinyu Chae 님)라고 추천이유를 설명했다.

동양철학과 철학 전반에 조예가 깊은 Woo Ju Chun 님은 조정래 <태백산맥>과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를 추천했는데 "모두 이 시대를 규정한 역사를 알게 함이고 개인의 주체성을 생각해보자는 의미!!"로 소개했다.

소셜북스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시, 소설, 산문 1편씩과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1편을 추천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도스토옙스키를 평범한 작가에서 러시아의 천재 작가 타이틀을 거머쥐게 한 작품으로 귀족 출신의 여성과 하급 공무원의 연애편지 형식으로 그려진 사랑 이야기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아는 여자주인공과 맹목적인 남자주인공의 온도차를 보면서 연애와 실연의 간접 체험을 할 수 있다. 백석 시인은 우리 시인 중에서도 빼어난 시인인데, 우리말의 원형, 원시의 세계를 보여준다. 특히 유년기를 다룬 시가 환상적이며 <여우난골족> 한편만 읽어도 감이 온다.
소설에서 백석 역할을 하는 작가가 김유정이다. 해학의 힘을 강력히 보여주고, 역시 우리말의 맛을 잘 살린 작품들이 일품이다. <떡> 같은 작품은 웃다가 배꼽이 빠질 정도지만 씁쓸한 뒷맛을 남기며 양가의 감정을 동시에 던져준다. 특히 요즘 인기 절정을 달리고 있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풍자의 전통을 볼 수 있다. 연암 박지원-김유정-이문구-성석제-나꼼수(시간순) 이렇게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를 선사한다. 
 

젊음을 응원하는 산문을 읽다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두 말이 필요없는 책이다. 추천자 이호진 님은 "이제 곧 대학생이 될 수험생들이 읽고 무엇인가 느꼈으면 하는 책입니다."라고 추천이유를 남겼다.
그리고 서점가 베스트셀러 1,2위를 다투는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도 추천을 받았다. 추천자 원종관 님은 "좀 선정적이긴 하지만...;; 내 삶과 정치가 얼마나 가까운지를 쉽고 명쾌하게 설명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소셜북스는 <김수영 산문전집>을 추천했다. 피천득, 한용운 같은 빼어난 산문가가 많지만 모순투성이 세상의 명령에 순응하기보다는 이를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기르려면 김수영 산문집을 읽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마쓰모토 하지메의 <가난뱅이의 역습> 역시 추천을 받았는데, 요새 유행하는 “쫄지마!!”를 잘 표현해주는 책이다. 주눅들지 않고 기발하고 발칙하게 젊음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 수 있고, 보는 것만으로 속이 시원해진다.
고전 작품 중에서는 사마천의 <사기>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추천했다. 특히 삼국지만 읽은 사람이 사마천 <사기>를 읽으면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든다.  분들에게는 하늘이 쪼개지는 느낌을 줄 것입니다. 중국의 역사가 어떤 사람들, 어떤 사건들로 이 이루어졌는지 소설보다 재밌게 그려져 있고 인생의 깊은 통찰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마천 사기에 버금가는 서양 역사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 일품이다.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을 비교하는 비교열전 형식인으로서 대학에서 배우는 학문이 서양사와 서양철학에 기반해 있다면 서양인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강력한 열쇠가 될 것이다.

수능이 끝나서 극장, 술집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서점으로 가는 것도 훌륭한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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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11-16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수능 끝낸 우리아들은 며칠째 컴터 앞에만 붙어 있더니, 오늘 온 '닥치고 정치'를 집어들고 열독중입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제가 아들에게 강추한 책인데, 아직 들여다보지 않아요.
엄마가 추천하는 이유가 뻔히 보이기 때문일까요?^^

두 아드님은 많이 컷겠네요, 큰아들은 재롱과 악동의 경계에 있을까요? 궁금...

승주나무 2011-11-17 12:57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반갑습니다. 그래도 닥치고 정치를 읽어주니 대견하네요. 큰아들보다 작은아들이 악동의 경계에 먼저 가 있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