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수데바와 나는 며칠 동안 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한 것은 대부분 나였다. 바수데바는 단지 "그렇군요" 같은 짧은 대답만 간간이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대화에서 커다란 감화를 받았다. 바수데바는 청자(聽者)다"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일부)
태어난 지 470여일 되는 아기 민준이가 있습니다. 말귀를 대충 알아듣는 장난꾸러기입니다.
태명을 "소리"로 지었더니 소리에 굉장히 민감합니다.
문 여는 소리만 들리면 달려오고, 전화 오는 소리 들으면 놀다가도 뛰어옵니다.
할 줄 아는 말도 엄마, 아빠, 응가, 이오(빙고), 푸푸(뿡뿡), 음머가 전부죠.
외할머니와 친할머니가 전화올 때는 곧잘 통화를 하게 되는데,
보청기를 끼고 있는 친할머니와 통화할 때면 민준이는 딴청을 피면서 이 버튼 저 버튼 눌러대기 바쁩니다.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외할머니와 통화할 때는 마치 절친과 통화하듯 뭐라고 옹알이를 하면서 대답도 곧잘 합니다.
지난 밤에는 5분 넘게 전화기를 붙들고 할머니와 통화를 하더군요.
할머니들이 아기에게 한 이야기는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민준아, 까꿍, 아부바..." 같은 단어의 연속이었습니다.
곰곰히 생각하다가 드디어 원인을 발견했습니다.
외할머니가 민준이랑 5분 넘게 통화할 수 있었던 까닭은 "경청"이었습니다.
민준이가 뭐라고 할 때마다 추임새를 해주고,
숨소리까지도 귀를 기울이며 감정이나 기분까지 들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당시 스피커폰을 통해 외할머니의 반응을 살필 수 있었죠.
자신의 말을 하려는 게 아니라, 아기의 소리를 들으면서 반응을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친할머니는 불행하게도 민준이의 작은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경청하기보다는 말을 하려는 마음이 강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민준이와 외할머니가 가르쳐준 경청의 힘입니다.
많 은 사람들을 만나 보지만 얼굴을 보면 "하고 싶은 말이 가득 찬" 표정인지, "들으려먼 마음이 많은 표정"인지 알 수 있습니다. 저 또한 SNS 매체를 통해서 듣기보다는 말을 하는 것을 우선시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페이스북에서 친구들이 하는 말뿐만 아니라, 페이스북 시스템을 만든 창업자의 목소리까지도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는 페이스북 기능서뿐만 아니라 심리학 책을 많이 읽게 되는 까닭도 이와 같습니다.
"경청"은 소리 없는 진정한 대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