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성에 관한 사유들
빅터 브롬버트 지음, 이민주 옮김 / 사람의무늬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요즘 책을 소장하는 데에 약간 생각이 달라졌다. 내가 살아 온 시간 만큼만 더 살면 어쩌면 나는 너무 노쇠해서 그 책들을 다읽지 못할 수도 있고, 이런 상상은 지극히 슬프지만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경우 처분에 대한 번거로움이 고스란히 남은 사람들에게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막무가내로 욕망하고 쌓을 나이의 능선은 이미 넘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내가 죽는다','나의 삶이 유한하다'는 명제를  도저히 피할 수 없다고 느낀 데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계절의 변화도 좀 더 각별하게 느껴진다. 나는 영원히 이 계절의 순환을 볼 수 없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냄새는 때로 가슴에 아린다. 그럴 때 듣는 이러한 얘기는 좀 더 경청할 수 있다. '유한성에 관한 사유들'은 과분한 것이 아니다.

 

미국의 명문대의 비교문학과 석좌교수. 그는 두 세계대전 사이에 태어나 실제 전쟁에 참전했고 함께 살아 남았던 동료들이 그를 제외하고 다 죽어버릴 만큼 나이가 들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삶의 유한성'을 의식했고 최근에는 자신이 살아온 세월 만큼 더 강렬하게 의식하고 있다. 게다가 앙드레 말로의 표현을 빌어 "우리의 무존재를 거부할 수 있게 해 주는" 예술 중 특히 문학을 연구하고 강연한 세월이 사십 년에 이른다. 저자 빅터 브롬버트는 19,20세기의 위대한 소설가 여덟 명의 작품들을 원어로 읽고 그들이 천착했던 삶의 유한성을 그들의 개인 이력과 그들의 언어와 조우하는 지점에 중개자로 선다. 대단히 신중해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보물찾기할 때 아주 꽁꽁 숨겨 둔 보물 만큼이나 쉽게 찾을 수 없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처럼 그도 1인칭이 아닌 3인칭의 서술 시점에 서 있음으로써 이야기의 일반화에 성공했다. 누구나 이 책을 읽으면 다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느끼고 몰입할 수밖에 없는 미덕이다.

 

톨스토이, 카프카, 카뮈, 버지니아 울프,  조르지오 바사니, 쿳시, 프리모 레비. 구태여 그들을 다 알지 못해도 그들의 작품을 읽지 않았어도 친절한 노교수의 강의는 가슴을 파고든다. 읽었다면 혹시 읽고 있다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대목이 군데군데 있다. 왜냐하면 독서는 기본적으로 고독한 일인데 친절한 안내자가 내가 헤매거나 의아해하는 대목, 한 조각 꺼내어 주머니에 넣어 버리고 싶은 부분들을 절묘하게 포착해 내어 언어로 풀어주는 가르침이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에 대한 고찰을 죽음에 대한 묵상이나 암흑의 세계에 대한 집착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에 맞닥뜨린다는 건 모순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여전히 살아있음을 의미한다. 나아가 인간의 유한한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고 도덕적인 고민을 한다는 뜻이다.

-에필로그 중

 

저자가 매료되어 있는 몽테뉴의 관심사는 본질이나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이행'이었다는 것, 스스로를 "나는 지나감을 그리는 사람이다."라고 했던 것은 저자가 여덟 작가들의 작품과 삶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과 만난다. 결론, 본질, 이데올로기, 관념이 해체되고 남은 모순, 흔들림, 스러짐에 대한 천착이 눈부시다. 누구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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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2-17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시간과 관련된 문화사나 과학 분야 도서를 읽는 중인데 우리에게 딱 주어진 시간이 정말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비록 유한성의 한계가 있더라도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blanca 2015-02-18 09:17   좋아요 0 | URL
사이러스님, 님은 충분히 젊고 또 제가 그 나이 때 낭비한 시간들을 생각하면(당시에는 최선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님의 독서의 깊이와 넓이가 참 부러워요. 저도 `시간`에 관련된 책 참 좋아해요.

2015-02-17 2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18 0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15-02-18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은 글도 잘 쓰시지만 제가 느끼는(블랑카님의) 장점중 하나가 성실하시다는 거에요!!!
이 책 읽으시고 계시다고 북플에 올라온 것 봤는데 벌써 읽으시고 이렇게 멋진 리뷰도 쓰시고!!^^

blanca 2015-02-18 09:18   좋아요 0 | URL
비비아롬나비모리님, 흑, 제가 추구하는 덕목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 오늘 아홉 시에 일어나버리고 말았어요. 지금은 망연자실, 황당 모드랍니다.--;;

세실 2015-02-18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권의 책을 읽기전 또는 읽고 난후, 친절한 안내자의 설명을 읽어보면 공감하는 부분이 참 좋더라구요~~

유한한 생!
요즘은 그저 아이들이 잘 커주었으면 하는 생각뿐이네요. 제 삶보다는....

blanca 2015-02-18 09:21   좋아요 1 | URL
아이들 잘 커 주는 게 이게 참 너무 많은 변수와, 나의 희생과, 각종 주변 여건의 도움이 필요한 거더라고요.
아직 아기인데도 가만히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예쁘기도 하지만 어깨가 무겁습니다.

[그장소] 2015-03-29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겨울나기전..책을 근근히 사 정말 볼정도만 사보던 제가있고..겨울나고선..
책에대해선 생각..아..이책들을 다봐야 죽을 수 있을 거같아..랄까요.
그 전엔 당장이라도 정리될 수있게 최소한의 ..살림늘리기를 주저한 반면..지금은 변했죠.남겨줄게..책밖에 없어도..그러면 놓겠다고.그럼 어떻겠냐고..

blanca 2015-03-30 10:16   좋아요 1 | URL
저도 또 읽고 싶은 책 목록이 마구 늘어나며 절제하려던 다짐이 무너지는 중이랍니다. ㅋ
 

서머싯 몸의 소설은 다 읽기 아까울 정도로 재미있다. 문체는 간결하고 알기쉽고 인물은 너무나 생생해서 마치 곁에서 살아 숨쉬는 것같다. 화가 폴 고갱을 모델로 한 소설 <달과 6펜스>, 마치 서머싯 몸 자신이 보고 듣고 개입한 것처럼 한 청년의 구도의 여정을 지척에서 그린 <면도날>, 그리고 자서전은 아니지만 그 안의 정서는 모두 자신의 것이라 고백한 자전적인 소설 <인간의 굴레에서>.

 

 

 

 

 

 

 

 

 

 

 

 

 

 

 

 

 

 

 

 

 

 

 

 

 

 

 

 

 

 

 

아홉 살 절름발이 소년이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마저 잃고 사제인 큰 아버지에게 맡겨져 엄격한 기숙학교에서, 독일, 런던, 파리, 다시 런던에서 사제, 화가, 회계사, 의사의 진로를 두고 방황하며 서른 가까이까지 친구, 은사, 멘토, 연인을 만나 사랑하고 우러르고 실망하고 헤어지고 웃고 울며 성장해 가는 궤적은 작가 자신의 것이기도 하고 우리 모두의 지난 날과 닮아 있기도 하다. 주인공 필립이 이 여정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은 영생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죽음을 두려워하고 이상을 좇으면서 현실에 발목잡히기도 하고 사랑을 이야기하면서도 물질적 향락에 기대기도 하는 모순과 불합리가 난무하는 현실에서의 인간 군상이다. 특히 필립이 비열하고 얕은 여자 밀드레드에게 끊임없이 농락당하면서도 다시금 그녀를 받아주고 그녀에게 이용당해 주는 모습은 그 세계의 바깥에서 지켜보는 나의 눈에 마뜩찮아 보이고 한없이 안타깝게 느껴지지만 그 상황과 그 나약함, 어처구니 없는 어리석음에서 나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상기시킨다.

 

필립은 점차 자신의 삶에서 조금씩 물러나 그림을 감상하듯 삶의 정경을 이해하고 알아차리려 한다. 과연 이 굴레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 걸까. 분명히 머리와 관념과 이성이 있는데 인간의 선택은 또다시 상황에 내몰려 어리석음으로 치닫는 이유는 뭘까. 아니, 이렇게 태어나 고생하고 죽는 삶이라는 게 과연 가지는 의미와 의의라는 것이 있기는 한 걸까.

 

술주정뱅이 시인 크론쇼가 선물한 페르시아 양탄자의 그 정교한 무늬들이 과연 의미하는 삶에 대한 대답은 무엇일까. 서머싯 몸은 섣불리 이 대답을 발설하지 않는다. 그는 답없음, 아니 답이 불가능한 질문을 진지하게 하는 법에 대한 길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필립은 자신을 이용하고 농락하는 밀드레드가 또다시 거리의 여자로 돌아왔을 때에도 그녀의 병을 치료해 주고 그녀를 받아준다. 한때의 어리석은 사랑도 그녀에 대한 증오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상황 속에서 그녀가 무기력하게 신산한 삶의 노예가 되었음을 연민으로 이해하고 용서한다. 분만 왕진을 하며 만나게 된 하류층 사람들의 출산을 도우며 그들의 사랑, 고난, 죽음을 목격하며 그는 그야말로 하나 하나 밀려오는 삶의 경험과 체험을 절절하게 겪고 받아들이고 느낀다. 이제 그는 섣불리 삶에 대하여 질문하지 않고 삶을 사는 법을 터득해 간다.

 

홉농장에서 한때 자신이 일하던 병원의 환자였던 유쾌한 허풍쟁이 애설니의 딸 샐리와 사랑에 빠지는 과정에 대한 묘사는 많은 말이 필요없는 하나의 아름다운 답이다. 서머싯 몸이 가장 이야기하고 싶었던 대답은 바로 이런 것. 필립은 실패한 저열한사랑들에 굴복하지 않고 다시 건강하고 어린 풀의 싱싱한 내음이 나는 아리따운 아가씨와 생울타리 밑에서 입을 맞춘다.

 

이야기의 중간에 나오는 어느 동방의 왕이 인간의 역사를 알고 싶어 현자에게 오백 권의 책을 요약해 오라고 끊임없이 요구하다 마침내 한 문장으로 받은 내용은 이러하다.

 

"사람은 태어나서 고생하다 죽는다." 이 단순 명료한 이야기가 가장 완전한 삶에 대한 이야기다. 이것은 비극이기도 하고 희극이기도 하고 하나의 형형한 실재이기도 하다. 잘 모르겠다. 필립이 그렇게나 꿈꾸었던 스페인 여행의 꿈을 접고 샐리의 남편이 되기로 결심한 것이 정말 가장 간명한 삶에 대한 태도의 전범인 지는. 서머싯 몸은 나의 나이 언저리에서 필립을 만들었고 훌쩍 더 나이들어 인간과 삶에 더 큰 의미와 의의를 부여하는 현장에서 <면도날>의 래리를 창조해 냈다. 그저 삶은 무의미하고 소모적이라는 허무한 결론에서 어쩌면 인간이 지각하거나 인식하지 못하는 더 큰 차원에서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의 제시는 죽음으로 더 한 발짝 전진했을 때의 작가가 스스로에게 보내는 위로의 몸짓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작품도 작가와 더불어 변전하고 늙고 성숙한다. 그 흔적을 찾아 보는 것도 또다른 읽기의 즐거움인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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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LA 2015-02-09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에겐 2014년의 발견이었어요. 인생의 베일도 재미있게 읽긴 했는데 면도날을 읽으며 감동이 철철...더 많은 글을 남겨주지 않은 것이 야속하게 느껴질 정도에요 ㅠㅠ

blanca 2015-02-09 19:25   좋아요 0 | URL
아, 저도 면도날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어젯밤에 서머싯 몸 소설 검색해 보니 번역 안 된 게 많더라고요. 아쉬울 따름입니다. 아쉬운 대로 <과자와 맥주> 빨리 읽어보고 싶어요.

moonnight 2015-02-09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첨 달과6펜스를 접했을 때 마음을 홀딱 뺏겼었지요. 감히 내 인생의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부끄럽게도ㅠㅠ 서머싯 몸의 작품을 읽은 게 별로 없네요. blanca님 덕분에 올해 새로운 독서계획을 세워봅니다. ^^

blanca 2015-02-09 21:01   좋아요 0 | URL
달밤님, 저도 달과 6펜스를 제일 좋아했어요. 그런데 혹시 면도날 안 읽어보셨다면 꼭 읽어보세요. 흑, 정말 너무 좋더라고요. 강력 추천드려요.

moonnight 2015-02-09 21:30   좋아요 0 | URL
네 면도날 꼭 읽어볼거에요. 불끈ㅠㅠ; 심지어 소장`은` 하고 있다는ㅠㅠ;;;;;

라로 2015-02-10 03:52   좋아요 0 | URL
ㅋㅎㅎㅎㅎㅎㅎ 달밤님!!!!!ㅋㅎㅎㅎㅎㅎ넘 재밌으셔~~~~ㅎㅎㅎㅎ
저도 면도날은 꼭 읽어볼게요!! 저 달과 6펜스 최근에 읽었는데 넘 좋았어요. 면도날 기대됩니다!!!저도 올 해는 몸의 작품을 다 찾아 읽으려구요~~~ㅋ

붉은돼지 2015-02-09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면도날은 아직 이지만 달과 6펜스, 인간의 굴레에서는 분명 읽었는데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는... ㅜㅜ
제가 읽은 건 다 어디로 가셨는지...

blanca 2015-02-09 21:01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ㅋㅋ 이제는 제 자신을 못 믿을 정도로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

cyrus 2015-02-09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의 작품을 거의 읽으셨으면 <어센덴>이라는 소설을 권합니다.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스파이 소설로 알고 있어요. 단편집인데 블랑카님의 취향에 어울릴지 모르겠어요. ^^

blanca 2015-02-09 23:10   좋아요 0 | URL
의외로 서머싯 몸이 단편을 많이 썼던데 저는 한 편도 제대로 못 읽어 봤어요. 기회가 되면 찾아 볼게요^^

[그장소] 2015-02-10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면도날 대기중..ㅎㅎ

blanca 2015-02-10 13:14   좋아요 0 | URL
와, 첫만남이 부럽습니다.

Alicia 2015-02-11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머싯 몸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명이기도 합니다. 군더더기없이 깔끔한 문장, 사람의 내면을 날카롭게 꿰뚫어 보는 통찰력,.. 저는 서른이 다 되어서 달과 6펜스를 읽었는데 읽어도 읽어도 좋더라구요. ^-^

blanca 2015-02-11 11:26   좋아요 0 | URL
알리샤님, 인터넷에 찾아보니 몸이 여성의 심리를 가장 잘 묘사한 작가라는 평도 있더라고요. 저도 <달과 6펜스>를 최근에 다시 읽었어요. 어렸을 때와는 또다른 느낌이었어요.

마녀고양이 2015-02-12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의 서머셋 몸에 대한 글을 보니 너무 반가와요.
정말 좋아하는 작가인데, 이제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책들을 사놓고.... 그저 쟁여놓았다눈... 아하하.
그래도 이렇게 좋아하는 작가를 좋아하는 친구 입에서 들을 수 있을 때는 행복하네요.

blanca 2015-02-13 15:12   좋아요 1 | URL
좋아하는 작가가 겹치는 일만큼 이 알라딘 서재에서 반가운 일이 또 있을가요? ^^ 번역안된 작품에 많은 게 아쉬울 따름이에요.

페크pek0501 2015-02-16 14: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모두 제가 읽은 책이라니...
아, 모두 제가 쓴 글에 인용한 적이 있는 책이라니...
서머싯 몸의 작품은 다 읽기로 했거든요.

몸의 광팬으로서 님의 페이퍼가 무척 반가웠다는 것을
늦게나마 밝힙니다. ^^ 반가운 글이에요. ^^

blanca 2015-02-16 15:00   좋아요 0 | URL
페크님, 저 요새 몸앓이 중이에요. 정말 <인간의 굴레> 다 읽고 무언가로 한 대 엊어맞은 느낌. 막 눈물 나려 하고... 그래서 막 다 찾아 봤는데 우리나라에 번역 안 된 작품이 왜이리 많을까요? 짧은 자서전도 있고. 아마존에서 몇 번이나 주문하려다 역시 나는 무리다, 하며 포기했는데. 지금도 어떻게 할까 고민중이랍니다. 너무 읽고 싶은데 원서를 제대로 소화하긴 힘들 것 같고 해서요.

앤의다락방 2015-02-17 1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머싯 몸의 책은 한번도 읽어보지 못했어요. 아... 또 읽고싶은 책이 늘었네요 ㅋㅋ 북플하면서 내가 알지 못하는 작가들 책을 많이 소개받(는 느낌이랄까요..)게 되니 북플하는 재미 또한 쏠쏠합니다^ ^

blanca 2015-02-17 16:30   좋아요 0 | URL
앤의다락방님! 축하드립니다. 아직 읽으시지 않으셨다면 앞으로 읽으면서 가지게 될 기쁨이나 설레임이
얼마나 클까요. <면도날>부터 시작하셔도 괜찮고 <달과 6펜스>도 재미있어요. 무엇보다 몸의 소설들은
아주 재미있어요. 어서 서머싯 몸의 세계로 들어오세요.^^

transient-guest 2015-02-21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문학책은 무슨무슨 문학전집 세트 또는 단권으로 나오던 시절에 `달과 6펜스`를 사서 읽었어요. 중학교 때였나?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은 있는데 그 뒤로도 다시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내용이 기억나지 않네요. 그저 `달과 6펜스`라는 제목에서, 그리고 그런 책을 읽는 저 자신이 뿌듯했던 것이 생각나요.ㅎㅎ 조만간에 다시 꺼내 읽어봐야겠네요.

blanca 2015-02-21 14:55   좋아요 0 | URL
저는 아마 고등학교 때 여동생과 함께 읽었을 거예요. 정말 너무 큰 감동을 받아서 `스트릭랜드`라는 주인공의 성도 잊지 않고 있었어요. 그런데 참 신기한 게 최근에 다시 읽었는데 그때의 감동이 안 와서 의아했어요. 서머싯 몸을 좋아하지만 <달과 6펜스>가 그의 베스트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주변에 책 이야기를 할 사람은 몇 없다. 고등학교 때 친구 한 명, 아이 친구 엄마 한 명. 그래서 어제 친구가 네루다의 시를 아이에게 읽어주고 싶다는 낭만적인 이야기에 살짝 뭉클해졌다. 사실 이제 아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다들 학습 진도, 영어, 학원 등으로 화제가 흐르기 시작한다. 그런 와중에 그림을 참 잘 그렸던 친구의 이야기에 나는 당장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읽어보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그러지 말고 내가 깜짝 선물을 해 주면 어떨까, 싶어 당일배송으로 주문했다.

 

 

 

 

 

 

 

 

 

 

 

 

 

 

 

 

 

 

물론 칠레의 유명한 시인 네루다에게 정말 편지를 전해 준 배달부에 대한 얘기는 아니다. 픽션이니 만큼 네루다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과 네루다의 이야기는 액면 그대로 다 받아들이기는 곤란하다. 그럼에도 네루다의 말년과 죽음은 픽션의 체를 거르고 핍진성 있게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의 삶을 어렵게 하나 하나 있었던 팩트 중심으로만 요약하여 받아들이는 것만이 그를 제대로 이해하는 과정은 아닐 것이다. 따뜻하고 대의를 저버리지 않았던 위대한 시인의 슬픈 말년은 그 어떤 발언보다 작가가 어떻게 사회적 책무를 져야 하나에 대한 유효한 대답이 될 것이다.

 

더불어 미술 선생님한테 종종 야단까지 맞았던 나의 형편없는 실력 앞에서 그저 감탄과 경탄만을 자아내던 친구의 그림과 그림에 대한 열정이 언젠가 다시 부활하기를 소망하며 나도 즐겁게 보았던 <날마다 하나씩 버리기>도. 일러스트가 참 사랑스러웠다.

 

솔직히 나는 고등학교 때 그 친구와 아주 많이 친하지는 않았다. 나는 좀 제멋대로 구는 경향이 있었고 그러한 구석이 친구한테 부담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드문 드문 연락이 닿고 만나기도 하면서 더욱 친해졌다. 그러고 보면 인연이란 남녀 사이에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때 찹쌀떡처럼 붙어 다니던 단짝 친구와는 오히려 소원해져서 소식도 모른다. 사람은 지금 당장 여기에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 변화와 변전을 겪을 지 모르면서 시간의 풍화를 겪는다. 얼마 전 읽은 박완서 님의 수필집도 그랬다. 나는 박완서의 열렬한 팬이고 그 분의 소설과 에세이를 완독하고자 했었다. 돌아가셨을 때는 참으로 슬펐다. 그런데 사십 대에 쓰셨을 에세이들은 노년의 그 분의 모습과 많이 달라 있어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웠다. 오늘 읽은 서재분의  글에 너무 공감이 갔다. 속된 말로 까칠한 모습이기도 했고 대단히 솔직한 내면의 어떤 어두운 곳에 대한 모습에 대한 고백도 놀라웠다. 일본의 어느 서점 바닥에서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으며 칭찬하는 관용적이고 열린 할머니의 모습이 사실 잘 상상이 안 갈 정도였다.

 

 

 

 

 

 

 

 

 

 

 

 

 

 

그래서 글이 가식으로 흐를 위험에 대하여 어느 정도 공감은 하지만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 글에는 삶이 그 사람의 기질이 생각이 욕망이 감정의 잔재가 비어져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니 오늘의 글이 그 사람의 전부이거나 고정된 그 사람에 대한 결론의 기반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글도 사람도 나빠지기도 하고 좋아지기도 한다. 핵심은 끊임없이 그 사람의 삶처럼 변화하고 진화하고 때로는 졸아들기도 한다는 것.

 

서머셋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를 읽고 있는데 주인공 필립은 이제 겨우 스물 언저리다. 그의 좁은 소견, 세상에 대한 판단, 오독, 오해들이 몸의 다른 작품의 문제들과는 조금 다르게 굉장히 투박하게 그려진다. 조금이라도 나이들거나 보이는 기준에서 초라한 사람들에 대하여 한창의 나이인 사람이 느끼는 경멸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에 대한 회한이 군데군데 묻어난다. 이 소설은 서머싯 몸의 성장과 삶이 투영되어 있다고 하니 주인공의 성장과 성숙에 대한 이야기가 더욱 기대되면서 나의 젊음들과 어리석음, 실수들을 부끄럽게 회고한다. 어렸을 때 안타깝게 생각했던 나이와 현실에의 발디딤이 지금은 나의 것이 되었다. 지금 전부라고 여기는 것들도 결국은 그렇게 되겠지. 지금 가차없이 나의 것이 아니라고 도리질하는 것들도 어쩌면 나의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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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2-05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모임에 참여하면 책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어요. 블랑카님의 아이들도 책을 좋아한다면 나중에 커서 엄마와 함께 책에 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

blanca 2015-02-06 07:56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저도 기회가 되면 꼭 참여하고 싶어요. ^^

Nussbaum 2015-02-06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미술선생님은 아마도 blanca님에게 뭔가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에 그랬을 겁니다.. 좀 확신이 들어요.. ㅎ

그리고 blanca님의 계속 이어지는 책읽기와 그 책읽기를 통해 반영된 여러 감정들을 잘 읽고 갑니다~

blanca 2015-02-07 15:23   좋아요 0 | URL
그래요? ^^;; 저는 지금도 참 불가사의한 면이 그리기에 있어요. 중학교까지는 잘 한다는 이야기도 가끔 듣다가 갑자기 고등학교 때 그렇게 추락할 수가 있는 것인지 ㅋㅋ 거기까지였던 게지요. 그런데 어떻게 생각하면 좀 가혹하다 싶게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신 선생님이 고맙기도 합니다. 하기 힘든 이야기잖아요.
 

이제 아홉 살이 되는 딸아이가 가까스로 정리 습관 좀 잡아가려는 찰나, 태어난 동생의 집안 어지르기 신공은 나날이 일취월장이다. 어디에선가 숨겨 놓은 면봉 하나 하나 다 꺼내어 흩어놓기, 옷장에서 가방, 옷 다 끌어내려 내동댕이치기, 없어져서 찾아 보면 좌변기에 수건을 빠는 센스까지 보여주신다.

 

집안은 난장판, 정갈하게 정리된 집에서 읽고 쓸 날은 멀었다. 참 이상한 괴벽이 생긴 게 그럴수록 정리에 관련된 책과 정리용품을 사 모으게 되었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가 너무 어지러우니 내가 꿈꾸는 깔끔하고 정리된 공간에 대한 염원은 커져만 가고 '수납'의 노하우만 알면 만사형통일 듯한 환각에 빠지는 것이다.

 

 

 

 

 

 

 

 

 

 

 

 

 

높은 집값과 한정된 주거 면적 때문에 비교적 좁은 공간에서  지내는 데에 익숙한 일본인들의 수납 노하우에 관련된 책이 많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그들의 집은 '나의 집'과 천양지차다. 어쩌면 물건들 사는 센스도 남다른지 흩어진 장난감도 색채와 모양이 조화를 이룬다. 이 책들을 읽으며 정리를 하기 위해 가장 먼저 착수하는 작업은 정리함 사재기다. 그런데 막상 정리함이 오면 그 정리함들이 공간을 차지하고 아이들은 정리함에 머리를 박고 끌고 다니며 더 가열차게 집을 어지른다.--;;

 

<깔끔 수납 인테리어>는 단순히 정리에 대한 노하우만 보여주는 책이 아니다. 그 공간에 사는 사람들의 물건과 공간에 대한 가치관도 은연중 읽을 수 있다. 정리와 공간에 대한 나름의 정비된 철학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적어도 그들은 공간과 그 공간을 무단칩입하며 점거하는 물건들에 휘둘리지 않고 그것들을 통제하고 간수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인상적인 점은 '물건'에 있어 어떤 가격이나 상황과의 타협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처럼 싸니까, 그냥 지금 여기 파니까, 사들이는 일은 하지 않는다. 정말 마음에 꼭 맞는 물건이 나오기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불편을 감수한다. '소비'에 대한 마음가짐이 남다르다. 단순히 정말 소비적이고 소모적인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데 긴요한 동반자적 지위가 '사물'에 부여되니 그 사물의 자리는 정갈하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이들 물건도 그러하다. 좋은 물건을 써봐야 물건을 선택하고 소유하는 데에 대한 눈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니 육아용품도 일시적으로 자리를 차지하는 보기에 유치찬란한 것들이 아니라 아이들이 두고두고 간직하고 물려줄 수도 있는 '진짜'를 산다.

 

 

 

 

 

 

 

 

 

 

 

 

 

 

 

'버리기'라면 솔직히 좀 하는 편이다. 둘째부터는 동생, 이웃네에서 옷을 물려 입히고 그마저도 치수가 작아지면 아름다운 가게에 보내기로 하고 있다. 첫째 공주님은 지금 당장 너무 예뻐서 그 옷이 어른과 달리 한두 해 용이라는 것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인형 옷 같은 것들을 여러차례 사곤 했다. 아이는 너무나 금방 크고 너무나 많은 것들을 샬랄라한 옷들에 흘렸고, 세탁에도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많아 그 첫눈에 반했던 옷들은 차마 남들에게도 주지 못할 정도로 추접스럽게 변하곤 했다. 이후로 이런 시행착오 덕에 아이 옷에 대한 소비욕은 거의 아예 없어졌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집안은 내가 몇 달에 한번 눈길도 주지 않는 많은 것들이 무단 점령하고 있다. 나의 소비 패턴은 '가격과의 타협'이 빈번한지라 후회로 점철된 사물들이 위무도 당당하게 버티고 있는 경우가 많다. 곤도 마리에도 도미니크 로로도 그렇게나 '버리라'고 하건만 그것은 쉽지 않다. 특히 책장의 책은 정말 몇 번을 훑어도 내 손을 떠나보낼 것이 없다는 결론이다.

 

아, 이 책은 정말이지 너무 사랑스럽다. 저자는 만화가 이우일의 아내이자 그 자신 그림책 작가 선현경이다. 사십대 중반이고 이제 몸에 살이 조금 올랐고 엄마와 취향이 비슷한 십대의 딸과 고양이들, 마당이 있는 집에 산다. 그녀가 '버리기'를 시작하며 하루에 하나씩을 버리는 프로젝트와 더불어 그 사물과의 이별을 자신의 일러스트로 장식한다. 덧붙여 그 사물과의 추억, 그 날의 일상이 있다. 친정 엄마가 준 아기자기한 소품들, 그릇들, 친구들이 손수 만들어 주거나 선물로 준 것들, 한때 자신의 취향이라고 믿었던 그러나 지금 나이에는 도저히 소화할 수 없을 것 같은 옷들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거나 버려지는 과정이 아기자기하게 그려져 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이나 자신의 일상만으로 스스로를 그려낼 수도 있었겠지만, 이렇게 자신이 포기하고 버리는 것들로 그 어떤 것보다 자신에 대해 가장 잘 이야기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 책을 다 읽고나면 그래서 저자와 정이 푹 들어버린다. 탭댄스와 요가를 배우고 남편,딸과 함께 예전의 신혼지로 다시 리마인드 허니문을 가고 마당에 꽃모종을 심고 고양이를 돌보며 책을 쓰는 사십 대 중반의 그녀의 삶이 참 잔잔하고 행복하고 따사로워 보인다. 원래는 따라 버리려고 동행했는데 이쯤 되면 나도 빨리 아이들이 커서 내가 하고 싶은 일도 하고 조그만 강아지도 키우고 여행도 좀 가고 하는 꿈을 꾸며 행복해져 버린다.

 

물론 돌아오면 다시 아들은 화장실 변기를 휘젓고 있지만...그게 마침표는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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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5-02-01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 필요한 책들인데_ 이론에만 강하고 실천에 약한 제가 과연 제대로 된 정리를 할 수 있을지가;;; 그냥 솔직한 마음으로는 읽고만 싶어요_ :)

blanca 2015-02-02 08:34   좋아요 0 | URL
야나님, 저는 그래요. ㅋㅋ 정리를 잘 하면 정리 관련 책에 관심이 없었을 텐데, 그 만큼 못하니까 자꾸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아이디어도 막 샘솟고 노하우도 장착했는데 현실은 체력 미달과 귀찮음, 공간 한계 구실 등을 대며 미적거리는 중이랍니다.

마녀고양이 2015-02-01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미니크 로로의 책으로, 버리는 것 관련한 책은 충분하므로 더 이상 구매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날마다 하나씩 버리기˝라는 제목은 정말 사랑스럽네요. ^^

화장실 변기를 휘젓는 아들이라니, 매번 걸레통을 향해 가열차게 걸어가던 코알라만큼 귀엽네요.
요즘 저희 집은 책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늘어져 있는데, 뭐 그냥 삽니다. ㅋㅋ.
점점 말이죠, 통제란 가능한 것이 아니다 라는 마음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

blanca 2015-02-02 08:35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코알라가 그런 시절도 있었군요! 하긴 저도 분홍공주 커서 따박따박 말대꾸 하는 것 보면 --;; 정말 시간의 흐름이란 이런 것인가, 하고 아쉬워요. ㅋ 분명 저희 둘째도 시간이 흐름과 더불어서 나중에 `정말 그랬었지.`하는 순간이 오겠지요? 통제란 가능한 것이 아니다, 아, 귀에 쏙 들어오는 말이에요.

cyrus 2015-02-01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너무 지저분하지 않다면 정리를 하지 않은 편이에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정리를 말끔하게 해요. 약간 지저분한 상태여도 필요한 물건을 찾는데 어려움이 없었어요. 그런데 정리된 상태에서 물건을 못 찾아요. 카오스 상태가 편합니다. ^^

blanca 2015-02-02 08:36   좋아요 0 | URL
ㅋㅋ cyrus님 여기는 애당초 카오스를 넘어선 단계랍니다. 회사 다닐 때 책상 더럽게 하고 자리 비웠다 사수한테 엄청 혼났던 기억이 나요. 애들 구실을 댈 건 아닌가 봐요.--;;

Nussbaum 2015-02-02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신 글 곳곳에 물건과 아이들과의 작은 전쟁을 위해 애쓰시는 모습이 묻어납니다. 요즘 중학생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애들은 뭔가 좀 지저분한상태가 편한가 봅니다. 근데 문제는 치울줄도 모른다는 사실이에요 ㅠㅠ

저는 1월에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를 사두고 거기에 필요 없는 걸 버리려고 했는데 아직 1/3밖에 못채웠습니다. 좀 더 힘내야겠습니다!

blanca 2015-02-02 08:38   좋아요 0 | URL
중학생들을 자주 보게 된다, 아, nussbaum님의 이야기에는 곳곳에 궁금증을 자극하는 단서가 보이네요. ㅋㅋ 제일 더러울 때 아닌가요? 아, 아니다, 고등학교 가면 더했던 기억이 나네요. 제 딸 고등학생 되면 그 때 어떻게 견디죠? 엄마는 세상 깨끗했었다,는 식으로 또 눙을 쳐야 할 텐데 말이에요. 아, 저에게 필요한 게 바로 백리터 쓰레기 봉투였군요. 오늘 사러가야겠어요.

라로 2015-02-07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미리보기를 보니 이 분 버리는 게 대부분 양말로 보여요~~~~.ㅋ

blanca 2015-02-07 11:45   좋아요 0 | URL
맞아요 ㅋㅋ 양말 엄청 나더라고요. 오히려 그거 보니 양말이 사고 싶어지는 부작용이 ㅋㅋㅋ
 

선생님은 젊어?

아니요, 나이들었어요.

몇 살인데?

마흔여덟.

젊네.

 

사십대 초반의 s언니의 '젊다'는 표현에 솔직히 조금 당황했다. 아직 그 영역에 들어가지 않은 나로서는 마흔여덟이라는 나이를 젊다고 표현할 생각은 못해봤는데. 아마도 내가 언니의 나이가 되어 바라보는 마흔여덟은 더이상 늙음으로 보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그 나이가 되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하고 지각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정작 마음을 빼앗긴 소설은 대상 수상작 대신 말미에 실린 이장욱의 <크리스마스캐럴>. 외견상으로 성공한 중년의 사내를 어느 날 찾아온 어린 아내의 전남자친구. 그와 함께 앉아 의미 없는 얘기들을 나누는 순간 주점에 우연히 들어온 노인. 그 날은 하필 크리스마스이브, 게다가 하얀 눈발까지 흩날렸다. 셋 사이에 의미심장한 대화가 오고가는 것도 아니다. 그저 껌을 팔러 온 듯한 초라한 행색의 할아버지와 사랑 운운하는 서투른 애송이와 알 것 다 알고 체념할 것도 다 수긍하는 중년의 사내가 어떤 '순간' 우연히 함께 하는 정경을 그렸을 뿐이다. 그리고 아무도 그를 붙잡지 않고 그는 술에 취해 추적추적 자신의 번듯한 집으로 돌아와 어린 아내 곁으로 간다. 그런데 그 아름답고 젊은 부인의 얼굴은 그 새 노파로 변해 있다.  청년, 노인은 모두 '나'의 모습이 단지 시공간의 흐름 속에 투영되어 나타난 모습일런 지도 모른다. '나'는 꿈을 꾸었을 수도 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하필 주인공이 다녔던 대학교 앞의 허름했던 주점 안에서 조우한 '젊음'과 '늙음'이 응시하는 '현재'가 바로 나다. 내가 진짜라고 여기며 향유했던 것의 추악한 실재를 목도하며 <크리스마스캐럴>이 울려 퍼진다.

 

조경란의 <기도에 가까운>에도 전성태의 <소풍>에도 이러한 '늙음'이 있다. 작가들의 연배는 대체로 중년이다. 우리가 더이상 젊지 않다는 기준이 되기도 하는 삼십대 중반을 넘어서면 어느덧 파도처럼 다가오는 '늙음'과 '죽음'을 원하든 원치 않든 응시하게 되는 순간이 많아진다. 그러니 많은 작가들이 이에 천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런 지도 모른다. 과거는 나의 소년, 소녀 시절로 대치될 수 있지만 나의 '늙음'은 대부분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으로 대치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의 마르셀도 소년 시절 회고의 시점을 취하고 있지만 그에게 홍차에 마들렌을 적셔 주던 레오니 아주머니의 늙은 모습에서 그것을 찾는다. 나는 이미 늙어버렸는데도 나의 늙음은 외부에 있다는 이 모순의 중심에는 어쩌면 '늙음' 그 자체를 직시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늙음'은 이렇게 끊임없이 타자화된다.

 

과연 정말 그렇기만 한 걸까? 이제 우체국의 아리따운 아가씨를 몰래 훔쳐본다고 아내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는 여든두 살의 커트 보니것에게 물어보고 싶다. 아쉬운 점은 이미 이 유쾌한 독설가 할아버지는 이 지구상에 없다.

 

 

 

 

 

 

 

 

 

 

 

 

 

 

 

이 노작가는 더 이상 눈치를 보지 않고 기득권과 정부를 욕할 수 있다. 솔직하게 조소할 것들이 널려 있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더없이 냉소적이지만 왠지 따뜻하다. 분명 다 욕인데 불쾌하지 않다. 그것은 분명 그가 제대로 늙는다는 것이 뭔지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떠나고 남을 지구를 제발 지켜달라고 보호해달라고 진심어린 호소를 어떻게 하면 가장 호소력 있게 할 수 있는지 그는 알 만큼 늙었다. <크리스마스캐럴>에서 사내가 목도한 끔찍하고 초라한 늙음은 그 앞에서 뻥 하고 지구 밖으로 꺼져 버린다. 그 사내처럼, 보이는 것들과 가질 수 있는 것들에만 끄달리다 이내 손안에 남는 그 '늙음'에의 경고의 또다른 방식을 커트 보니것은 알고 있다.

 

댈러웨이 부인은 아직 많이 늙지는 않았다고 느낀 쉰둘의 나이. "이 아침 속에, 모든 지난 아침들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고 이야기한 그 반세기의 시간을 지날 쯔음을 기대해 본다. 그때의 삶의 풍경은 또다른 깊이와 넓이로 다가오기를...마흔여덟은 젊은 나이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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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1-29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장욱 어떤 소설도 다시 찾아간 대학 호프집이었는데, 뭔가 이장욱 소설은 거기가 타임리프 지점인 듯....
이장욱, 보네거트 ...소설이 자칫하면 후일담 소설이 되기 쉬운데 그 SF 장치들을 정말 잘 쓴다는 공통점도^^

blanca 2015-01-29 17:20   좋아요 0 | URL
아. 그런 공통점이 있군요! 저는 이장욱이라는 소설가는 아직 잘 몰라서 신선하게 느꼈는데 대학교 앞 주점이 단골이군요 ^^;;

stella.K 2015-01-29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 나이를 아직 지나오지 않으면 늙은 거고
그 나이를 지났으면 젊은 거고 그런 거 아닐까요?
전 50대까지는 그래도 아직은 젊다고 봐야할 것 같아요.
옛날의 50대랑 요즘의 50대랑은 다르거든요.
곧 50을 바라보는 연예인 보면 그런 생각이 들죠.
그리고 평균 수명이 늘어났기 때문에 4, 50대는 젊다고 봐야죠.
적어도 아직 늙지는 않았다. 정도.
옛날 저 10대 때는 25이 넘으면 어떻게 사나 막 그랬어요.ㅋㅋㅋ

blanca 2015-01-29 17:2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스무 살엔 서른이 과연 올까, 했는데 벌써 마흔이 저기니까요. 그러고 보니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네요. ㅋ

Jeanne_Hebuterne 2015-01-29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들 부시와 아버지 부시, 사라 페일린 반대편 시소에 커트 보네거트와 데이비드 시다리스, 필립 로스가 있어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용케 균형을 유지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blanca 2015-01-29 17:24   좋아요 0 | URL
쟌느님. 저는 이렇게 노골적으로 비판을 할 수 있는 그 분위기도 미국의 근저에 있는 힘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하지만 요즘의 미국은 무언가 온건주의를 표방하고 있긴 하지만 과연 다른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긴 해요.

순오기 2015-01-29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고 늙음은 주관적 기준일 거 같아요. 쉰 중반이 넘어서 바라보니 숫자로 젊고 늙음을 나눌 수 없다는 개념정리에 손들어주고 싶더라는...^^

blanca 2015-01-29 17:25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은 충분히 젊으세요. 저보다요. 나이만으로 재단할 수 없는 점이 분명 있어요.

마태우스 2015-01-29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참 자기중심적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제가 박지훈한테 이런 말을 해요. ˝마흔, 젊네. 내가 너 정도 나이면 정말 다 때려치우고 방송에 올인하는데, 내 나이엔 해봤자 얼마나 하겠냐. 그래서 관두는 거야.˝ 근데 제가 박지훈의 나이인 마흔살 땐 어땠냐면, 스스로 늙었다고 생각했던 거죠. 마흔여덟이 젊을 때가 저한테도 오겠죠ㅠㅠ

마태우스 2015-01-29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델라웨이 부인, 언젠가 흥국생명 아래서 영화로 봤어요. 보고나서 그거 보자고 한 여자분한테 무지 뭐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blanca 2015-01-29 17:26   좋아요 0 | URL
영화로도 나왔군요. 뭐라 하실 만하네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영화화하기에는 너무 모호하고 난해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세실 2015-01-31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습관적으로 구입만 해놓았어요.
나이는 주관적이죠.
저를 시점으로 젊다, 늙었다.ㅎ
나이를 의식하는, 이제 중심이 아니라는 생각은 확실히 합니다.

blanca 2015-02-01 11:5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세실님. 정말 주관적이 되는 게 대학생 때는 복학생들이 그렇게 늙어보였는데 저번에 동기 결혼식 갔을 때 복학생들을 보고 다들 아기라고 부르더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