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런드는 한숨지었다. 신중해야 했다. 언쟁을 중단해야 했다. 지금 반대하면 로런스의 반항심만 커질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좋아, 네가 원하는 건 뭔데?"

이건 질문이었다. 로런스는 대답하기 전에 시선을 피했다. "모르겠어요......"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끔찍한 계획이 있는 게 분명했다.

"어서 털어놔봐."

"연기를 해볼 생각이에요."

롤런드는 아들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럼 그렇지.

-이언 매큐언 <레슨>


롤런드의 아들 로런스는 공부를 특히 수학을 탁월하게 잘했다. 그러니 대학에 가지 않은, 가기 전에 학교에서 도망쳐버린 롤런드에게 로런스를 수학에 특화된 칼리지에 보내는 건 일종의 평행우주에서 실현된 자신의 또 다른 대리자아의 환상적인 삶이었다. 심지어 로런스는 이미 입학허가까지 받아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역시 아들은 그의 기대를 배반한다. 


이 한 장면에서 나는 딸을 떠올렸다. 나와 사춘기 딸은 자주 부딪혔다. 나는 질문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질문은 이미 내가 규정한 이상적인 답안을 전제한 것이었다. 아이가 뭔가 다른 생각이 있다고 이야기할 때 나는 이미 그게 내가 정한 그 경로를 이탈한 것이라 틀렸다고 여기곤 했다. 


오늘 아이는 수능을 보러 갔다. 교문 앞에서 아이를 들여보내며 내가 잘못한 일들과 내가 잘한다고 생각하며 딸에게 했던 행동과 말들이 한꺼번에 격랑이 되어 몰아쳤다. 어쩌면 그렇게도 미숙했나.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 이제 나에게 김붕년 선생님 말처럼 잠시 머물다 떠날 손님이 되어 온 아이는 인생의 한 장을 닫고 연다. 나는 아이에게 이제 "그럼 그렇지" 같은 말을 하지 않기로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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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5-11-13 19: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아이가 오늘 수능을 봤군요. 복잡하고 답답한 심정이야 말할 것이 없지요. 뒤에 있는 사람 같아요, 부모는... 저도 오늘 미숙했던 제 사랑을 많이도 반성했구요.

블랑카님도, 아이도 일년 내내 수고 많으셨어요. 편안한 저녁 되시길 바래요~~

blanca 2025-11-14 09:56   좋아요 0 | URL
아, 오늘부터 또 다른 의미의 시작인 것 같아요. 단발머리님, 감사합니다.

파란놀 2025-11-14 04: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말에는 ‘사춘기’가 없고, 우리나라에는 ‘사춘기’라 이를 만한 때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푸른별 온나라가 마찬가지인데, “아이에서 어른으로 건너가는 즈음”은 “철드는 나이”요, 철드는 때란 따로 ‘봄나이(봄빛을 바라볼 줄 알고 품는 나이)’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비롯한 숱한 나라는 ‘봄나이’로 무르익을 아이를 굴레(제도권입시지옥)에 가두느라 웬만한 아이는 몸앓이랑 마음앓이가 겹쳐서 지치고 앓아요.

스스로 철들며 스스로 바라보며 스스로 해보려는 무렵에 스스로 여기저기 부딪히면서 넘어지고 다치기에 비로소 봄나이를 이루면서 어른이라는 길에 접어들어요. 셈겨룸(입시)이란 아주 조그만 디딤돌이니, 이 디딤돌 건너에서 삶과 살림과 사람을 함께 바라보는 보금자리를 이루시기를 바라요.

blanca 2025-11-14 09:58   좋아요 0 | URL
생각해 보면 최근까지도 우리가 사춘기라 이르는 나이에 이미 우리 선조들은 성인으로 가는 길목에서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어쩌면 사랑과 보호라는 명분 하에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기회를 빼앗고 그 시간을 지연 시키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처럼 생각해보게 하는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페크pek0501 2025-11-14 12: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식에게 덜 관심을 갖는 것, 이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도 잘 되지 않는다는..ㅋㅋ

blanca 2025-11-15 08:49   좋아요 1 | URL
페크님, 이게 무한루프인 것 같아요. 저도 초연한 척해도 결국 또 실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