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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0
에밀 졸라 지음, 김치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평점 :
소설의 첫 장면
나나가 등장한다.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으로. 그런데 뭔가 심상찮다. 박자도 맞지 않고 나팔을 불듯 삑삑거리는 소리로 노래 하는 나나. 그러나 소리는 우렁차고 그녀의 육감적인 몸매를 과시하며 춤추는 모습은 인간의 저 깊은 원초적인 욕망을 자극한다. 이런 등장신은 나나의 운명을 예측하는 것일까?
19세기 말 파리의 부유층에서 정숙함의 기준은 남자나 여자나 한번에 한 명만 애인으로 삼는 것인듯하다. 1860년대의 프랑스는 산업혁명으로 계급구조가 본격적으로 바뀌어 가고, 기존의 도덕 기준은 무너지고 아직 새로운 기준은 자리잡지 않아 모든 것이 허용되는, 또는 그게 뭐 어때라는 말이 무엇이든 대체할 수 있는 시대다. 새로운 시대의 기준은 당연히 돈이 될 것이며 어쩌면 이 시대는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의 끝이 어딘가를 실험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책의 전반부에서는 상류층의 사교 모임과 나나를 중심으로 한 극장 사람들의 파티가 번갈아 묘사되는데 둘 다 대책 없는 대환장파티라는게 공통점이다. 상류층의 모임에서는 그럴듯한 말들로 덮어씌우지만 그 속에는 은밀하고 음험한 욕망들이 부딪히고, 무엇으로 치장하든 결국 결론은 누가 더 먼저 극장의 여자들을 차지하느냐이다. 나나의 파티에서는 그들을 비웃고 냉소하지만 결국 돈에 대한 욕망이 노골적으로 펼쳐지는건 다르지 않다.
나나의 생각을 쫒아가다보면 현재의 삶과 되고 싶은 삶 사이에서의 끊임없는 충돌이 보인다. 자연에서 사랑하는 애인과 아이를 키우며 사는 삶을 동경하는듯 하지만 화려한 무대에서의 열광과 찬미자들속에서의 삶 역시 그녀가 원하는 삶이다. 어찌보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그녀가 그때 그때의 변덕으로 이 생활 저 생활을 왔다갔다하고, 또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함께 하는 남자도 달라지면서 자신이 진정 원하는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성찰할 능력도 의지도 시간도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을 에밀 졸라는 나나의 마카르집안에서 유래한 정신병의 영향으로 본 것일까? 그렇다면 사실 동의하기 힘들다. 사실상 자신의 삶의 중심을 세운다는 것은 자존감을 중심으로 자신에 대해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인데, 나나의 성장과정을 보면 그런 자존감을 채워준 이는 아무도 없다. 알콜중독자에 욕설과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먹고 살려고 미친듯이 노력하다 결국 자포자기에 빠지고 알콜의 유혹에 빠져 결국 같은 알콜중독자가 된 엄마, 거기다 겉으로는 근엄한 도덕을 강조하는듯하지만 위선적인 모습을 여지없이 보이는 나나를 키워준 고모 등 어디에도 나나가 제대로 된 자존감을 채울수 있는 곳은 없었다. 당대 프랑스의 가난한 사회와 여성에 대한 폭력 속에서 살아남고 탈출하기 위해 나나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사실상 부자 남자들에게 기대는 것 하나밖에 없었다고 하겠다. 그것이 어디로 귀결될지 알 수 있는 안목이 나나에게 있을 리 없다. 주변을 모두 둘러봐도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밖에 없으니 말이다. 따라서 나나의 삶의 방식과 몰락의 원인을 그녀의 집안의 정신병력에서 찾는 것은 부당하다.
나나의 삶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다. 나나가 은행가 스폰서가 마련해준 시골집에서 스폰서인 늙은 은행가 스타이너, 새 스폰서가 되기를 갈망히는 뮈파백작, 그리고 젊은이의 거침없는 욕망에 푹 빠진 귀족 소년 조루주가 각자 모르는척 한 공간에 있는 장면은 그야말로 코미디다. 이들 모두 비극적으로 끝나는 삶을 살지만 그 무엇도 나나의 책임은 아니다. 각자가 각자의 욕망에 책임을 져야 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에밀 졸라가 당대의 사회상과 인간 비극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자 했다면 이 소설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날의 독자인 나로서는 목로주점과의 차이를 생각해볼 수 밖에 없다.
즉 작가가 목로주점의 제르베즈는 연민과 애정을 가지고 창조해낸 캐릭터였다면, 나나에 대해서는 끝없는 혐오와 적대를 가지고 캐릭터를 만들지 않았나 하는 혐의를 가지게된다. 제르베즈에 대해서는 그녀의 마음속에 들어간듯 그녀의 행동에 대한 연민을 깊게 깔고 있던 에밀 졸라가 나나에 대해서는 그녀의 영혼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이 없는듯하다. 오로지 나나의 대책없는 변덕과 문란한 생활만을 따라갈 뿐인듯.... 그렇다면 에밀 졸라는 나나를 쓰지 말아야 했던것이 아닐까. 작가조차도 자신의 인물을 혐오한다면 소설을 쓰는 의미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가 하는 당대 사회에 대한 고발이란 어떤 의미가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