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에 관하여 수전 손택 더 텍스트
수전 손택 지음, 김하현 옮김 / 윌북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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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전 손택의 글은 항상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그가 글에서 든 사례들은 오늘날에는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은 것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그의 글이 낡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그의 글들이 포착하고 있는 세계의 본질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전적인 의미의 식민지는 사라졌지만 예전 식민지의 피억압 민중이 차지하던 자리는 더 넓고 더 세밀하게 확대되었다.  피억압자로서의 여성의 많은 문제가 해결되어가고 있지만 그 자리에는 더 교묘하고 새로운 억압들이 들어섰다. 늘 존재했으나 자연적이고 정의롭다고 은폐 되고 무시 당해서 보이지 않던 수많은 억압들이 이제 표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세계는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수전 손택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변하지 않았는지를 확인하는 데서 그치지 않아야 한다. 변하지 않은 본질이 무엇인지 그 중심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수전 손택의 글을 읽는 것은 너무도 불편하고 어려운 일이다.


  인간의 노화는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모두에게 공평한 이 노화에 대해서 조차 남녀가 이중적 잣대를 적용받아왔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 날에 와서는 이 문제는 좀 더 복잡해졌다. 현대 사회에서 노화는 자기관리 못한 추함으로 규정지어지고, 이것은 남녀 모두에게 마찬가지로 적용되는듯하다. 굳이 정도를 따진다면 여성에게 좀 더 가혹한 건 사실이지만 아마 앞으로 남녀간의 차이는 줄어들고 젊은 육체와 늙은 육체에 대한 차별은 더 커질 것이다. 이런 나이의 차별이 오직 육체에 대해서만 적용된다는 것은 사실 참 웃긴 일이다. 나는 사실 나이 들어가는 내가 좋다.

 육체는 비루해지지만 세상을 좀 더 넓게 명확하고 관대하게 볼수 있어졌고, 나쁜 놈은 더 미워하지만 사소한 일들에 대해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어진 나의 나이가 맘에 든다.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 중에서는 나이 들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도 분명 있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것에 관심가지지 않는다. 오로지 주름의 갯수를 줄이고 몸무게를 줄이고 근육의 양을 늘리는 것에만 매진할 뿐이다. 물론 건강을 지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지금의 외모 편향이 오로지 건강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나?


수전 손택의 시대에 여성에게만 가혹했던 늙음에 대한 처우는 오늘 날에 있어서는 남녀 인간 모두에 대한 폭력으로 전화했고 앞으로는 더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수전 손택의 의견은 역사 속으로 폐기되어야 하는 것인가?


  수전 손택은 말한다. 

  성에 대한 금기는 인종적 금기와 유사한 역할을 한다고. 지금은? 나이 듦에 대한 금기와 차별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70년대에도 그것은 인종과 계급 차별과 함께 작동했고 지금 역시 마찬가지다. 남녀 모두가 젊은 몸을 가지기 위해 자기 몸을 학대하고 과시하는 것은 결코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이 사라졌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표현되는 방식이 훨씬 계급적이 되었다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가장 나쁜 몸의 맨 밑바닥에 가난한 늙은 여성, 그 위에 가난한 늙은 남성이 있다. 억압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식민지와 제국주의 본국의 해방은 같은 것인가? 누구도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당연히 피억압자인 식민지의 해방이 우선이다. 제국주의 본국의 인권문제나 정치개혁이 식민지에서의 억압과 등치되지 않는다. 이 둘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그런데 왜 여성의 해방은 남성의 해방과 같다고 말해지는가? 그것은 피억압자로서의 여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전 손택은 여성을 식민지로서의 제3세계로 비유하는 것이다. 어떤 문제든 해결하고자 한다면 문제 자체를 정확하게 인지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피억압자로서의 여성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여성 해방과 평등을 얘기하는 것은 누군가가 뜬금없이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라고 외칠 때처럼 공허하고도 공허하다.


  또한 수전 손택은 여성 해방을 위한 모든 진지한 계획은 해방아 그저 평등의 문제가 아니라는 전제하에서 시작해야만 한다. 해방은 권략의 문제다(63쪽)라고 선언한다. 권력은 양보받아 오는 것이 아니다. 역사상 누구도 순순히 자신의 권력을 내놓았던 적이 없다. 일상 가정에서 가사 일의 분담을 이야기할 때 많은 남자들이 자신은 가사 일을 많이 돕는다고 페미니스트라고 자랑했다. 그러나 돕는다는 표현에는 이미 가사 일이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전제가 포함되어 있다. 생각을 바꾸려면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 빨래를 하는 것이 모든 가족 구성원 자신의 일이라는 것을 주지해야 한다. 그리고 어머니 또는 아내로서의 여성이 식사를 챙겨주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떨쳐야 한다. 적어도 어린이를 벗어난 가족에 대해서는 자기 밥은 자기가 챙기고 자기 빨래, 청소는 자기가 하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이것을 누군가 도와준다면 그건 고마운 것이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이것을 위해 여성은 자기 자신과도 싸워야 하고 가족들, 어떤 경우에는 부모 세대와도 싸워야 한다. 가정이 남성이 권력을 가지고 남성의 자애로운 보살핌에 의존하는 한 가족 내에서 조차도 평등은 쉽지 않다.


  심지어 식민지에서 함께 민족해방운동에 투신한 여성에게도 해방이라는 목표가 달성되었을 때 이제 가정으로 돌아가기를 강요한다. 제국주의 국가에서 계급 투쟁의 성과가 여성의 해방으로 이어지지 않았던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연대와 여성의 해방은 구분되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대등한 연대조차 가능하다. 대의라는 명분 하에 행해지는 모든 은폐나 뭉뜽거림은 결국 폭력의 또 다른 얼굴일 뿐이다.


  그러니 남성이 권력을 틀어 쥐고 내놓지 않는 국가나 사회에서 여성이 자기 몫의 정당한 권력을 갖겠다고 할 때의 과정이 얼마나 지난 할지는 예상되는 바이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지위와 권리가 향상되어 오는 과정은 새로운 저항과 억압이 맞닿는 과정이기도 하다. 최근의 우리 사회에서 여성 혐오가 증가하는 것은 더 이상 남성 권력이 유지될 수 없는 추세에 대한 극단적인 저항이기도 하다. 내걸(남성의 배타적 권력) 왜 너네들이 가져가느냐라는 단말마적인 비명인 것이다. 심지어는 남성이 오히려 역차별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남녀가 평등해야 하는 것이 왜 역차별인지에 대해서는 사실상 인정해주고 싶은 언사가 없는 것도 안타깝다. 결국 권력은 쉽게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남성이 내주는 것도 아니다. 언어와 일상, 관습 모든 면에서 싸우고 여성 자신이 먼저 변해야만 한다는 수전 손택의 말은 그래서 오늘 날에도 유효하다.


  책의 83쪽에서 수전 손택은 의식은 오로지 대립을 통해서만, 회유 불가능한 상황에서만 변화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여성은 전투적으로 의식적으로 그 회유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전원이 여성으로 이루어진 단체를 만들거나 가라테 수업을 듣고, 화장 중단을 돕는 센터를 세우고, 여성을 모욕하는 옥외광고를 훼손하고 등등등...... 여성이 우아하고 기품있게 싸워야 한다는 허위 의식을 박살내고 의도적으로 논쟁을 불러일으켜야 생각은 변하고 세상도 변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모든 방법이 오늘날에 유효한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결국 원칙이다. 대립하지 않으면, 회유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지 않으면 어떤 경우에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그의 주장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오늘날 리펜슈탈을 탈나치화하며 그가 굳건히 아름다움을 추구해온 사제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 안의 파시즘적 갈망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한다는 징조다  - 154쪽



 리펜슈탈의 다큐 <의지의 승리>나 <올림피아>를 볼 때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은 전율이다. 이는 두 가지 점에서 그러한데 첫번째는 리펜슈탈이 만들어내는 모든 장면의 완벽한 아름다움이다. 다큐에서 찍힌 장면, 음악, 대사 모든 것이 극도로 통제되고 정형화된 미를 드러낸다. 특히 많은 장면의 스틸컷들은 아무 설명 없이 내놓는다면 멋지다라는 탄성 외에 할 수 있는 말이 없을 정도다. 두 번째의 전율은 다큐의 모든 장면들이 정확한 목표하에 얼마나 완벽하게 조직되었나가 너무 분명하게 보여지는데서 느끼는 두려움에 의한 전율이다. 리펜슈탈의 <의지의 승리>에 의해서 히틀러와  나치당의 뉘른베르크 집회는 독일 정신이자 독일의 구원자가 될수 있었다. <올림피아>에 의해서 독일인들은 나치에 복무하는 자신들이 게르만족의 오래된 고귀한 야만을 회복했음을 천명하고 유대인들의 지성에 반박하고 그들을 추방할 수 있는 정신적 정당성을 얻을 수 있었다. 겨우 영화 2편이 그런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냐고 묻는다면, 나치의 모든 선전 선동의 정점에 위치한 것이 이 두 작품이었기에 가능했다고 답하겠다.


  그런데 레니 리펜슈탈이 전후 전범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오늘 날 우리가 생각하는 독일의 나치에 대한 자세는 68혁명 이후의 일임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다. 우리나라에서 해방 후 친일파의 단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처럼 독일 역시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물론 옆 나라인 프랑스와 영국의 눈치를 봐야했으니 그래도 한국보다 낫긴 했다)


  어쨌든 전후 레니 리펜슈탈이 전범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면서 아프리카 누바족을 대상으로 한 사진집까지 낼 수 있었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본 그의 사진들은 피사체가 독일인에서 누바족 남성으로 옮겨갔을 뿐 그의 근본적인 미학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통제된 낭만적 이상과 그 이상을 향한 인간들의 일치된 갈망과 전진, 결국 나치 시대의 미학관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않은 그녀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리펜슈탈이 보여주는 스틸컷에 감탄하기 전에 우리 안의 파시즘적 갈망을 감지해야 한다는 수전 손택의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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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25-08-16 2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전 손택에 대해 많이 들었는데, 정작 읽은책이 없어서 이번에 이 책을 구입했어요. 아직 읽지 않았는데, 바람돌이님의 글을 읽으니 읽어보고 싶네요.

바람돌이 2025-08-16 22:39   좋아요 0 | URL
저도 타인의 고통과 희곡 앨리스, 깨어나지 않는 영혼 2권만 읽었고 이번 책이 3번째입니다
다 분량이 많지 않아요. 하지만 타인의 고통이 워낙 강렬해서 늘 읽고싶은 작가였네요. 다행히 앞으로 이 출판사에서 수전 손택의 책을 계속 출판할 예정인듯 합니다. 나올 때마다 하나씩 읽어나간다면 그리 어렵지 않을듯해요.

페넬로페 2025-08-17 0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직 수전 손택의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어요. 기회되면 읽어 보려고 해요.
세상이 많이 변한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아요.
이런 책 읽어도 가족 내에서 제 역할은 그대로일 것 같아 조금 씁쓸하기도 해요^^

바람돌이 2025-08-17 16:31   좋아요 0 | URL
제 생각에 이 책이 수전 손택을 시작하기에 괜찮은거 같아요. 우리가 잘 아는 소재를 통해 수전 손택의 날카로움을 좀 편하게 접근할 수 있어서요. 이런 책 읽어도 가족 내에서의 역할이 바뀌지 않는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제 마음이 바뀌는거 같아요. 바쁘거나 귀찮으면 남편이든 아이 밥이든 다르게 해결하거나 안 챙겨주거나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예전에는 제가 그런 행위에 대해서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꼈다면 이제는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거 밥 챙겨주는건 니들이 고마워 할일이고 안 챙겨주면 알아서 먹는건 당연한거고요. ㅎㅎ

잉크냄새 2025-08-17 1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전 손택의 책은 <타인의 고통>만 읽었어요. 근데 요즘 오프라인에도 알고리즘이 작동했는지 황석영의 <수인>속에서 미국 팬클럽 회장으로 그의 사면을 줄기차게 주도한 장면, 김경만의 사진 유튜브에서 소개된 <사진에 관하여>를 보고 느낀 ‘아니 이 분의 분야는 어디까지? ‘ 라는 존경심, 그리고 오늘 이 리뷰까지 쭉 이어지네요. 다시 읽어보라는 계시인 듯 합니다.

바람돌이 2025-08-17 16:38   좋아요 0 | URL
온라인도 아닌 오프라인에서도 알고리즘이라니 너무 강력한데요
ㅎㅎ 저도 타인의 고통만 읽었는데 내용이 너무 강력해서 깜짝 놀랐어요. 고통 포르노라는 말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어 제 시야를 넓혀준 책이었거든요
이 책은 70년대 글이라 좀 올드하긴 하지만 손택의 날카로움은 그 때도 마찬가지였음을 보여주네요
잉크냄새님의 리뷰를 기다리겠습니다

망고 2025-08-17 15: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래전 <타인의 고통> 읽을때 번역 때문에 힘들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이 책은 괜찮겠지요? 바람돌이님의 강렬한 리뷰를 읽고나니 이 책 읽고싶어 집니다😄

바람돌이 2025-08-17 16:39   좋아요 1 | URL
타인의 고통 저도 참 힘들게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번역도 좀 힘들었는지 매끄럽게 읽히지 않았고요. 이 책은 읽기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더 마음에 와닿는게 많았던거 같네요

희선 2025-08-17 1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전 손택 이름만 알고 읽은 책은 없는 듯합니다 여러 사람을 말한 데서 본 건 있군요 그건 수전 손택 글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말한 수전 손택이네요 집안 일을 돕는 페미니스트다 하는 건 맞는 게 아니군요 정말 집안 일을 자기 일이 아니다 생각하는 사람 많겠지요 혼자 산다면 그러지 않겠지만... 집안에서도 자기 일은 자신이 하기를...


희선

바람돌이 2025-08-17 18:23   좋아요 0 | URL
수전 손택은 워낙 유명하다보니 여기저기서 인용이 많이 되는듯요. 그래서 안 읽어도 읽은듯한 느낌? 저는 그런 작가 엄청 많아요. ㅎㅎ

페크pek0501 2025-08-18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전 손택의 책을 두 권 가지고 있는데 중요한 부분은 제가 다 읽은 것 같아요.
이 책이 요즘 인기인 것 같은데 이 책은 읽지 못했어요. 깨어 있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바람돌이 2025-08-18 21:06   좋아요 0 | URL
역시 페크님. 저는 수전 손택의 가장 뛰어난 점은 뻔뻔서러울 정도의 과감함이라는 생각을 해요. 타인의 고통에서는 자선적인 자세나 다른 사람의 고통을 전시하는 것을 인류애라고 믿는 것에 대해 요즘 말로 팩폭을 날리잖아요
그런 과감함이 이 책에서도 보여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