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다른 세상으로 나를 데려가 준다. 책을 통한 여행은 제약이 없다는 것이 가장 환상적으로 좋은 점이다. 약간의 책값과 약간의 불편한 자세, 음 그리고 눈알이 좀 뻑뻑해지는거? 책을 통한 여행에서 내가 지불할 대가는 사실 매우 사소하다. 이 사소한 대가를 지불한 책은 나를 과거로도 먼 사막으로도 때로는 일어나지 않은 우주 전쟁 한 복판으로도 데려다 준다. 그저 뭘 읽을 것인가 선택만 하면 된다.


아민 말루프라는 내게는 생소한 이 작가는 <레오 아프리카누스>란 책을 통해 15세기 와 16세기 아프리카와 오스만 제국, 로마 교황청으로 여행을 시켜주더니 <사마르칸트>에서는 12세기 셀주크 튀르크의 땅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셀주크 튀르크에 대해서 아는게 뭐 있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성지 순례 온 기독교들을 박해함으로써 십자군 전쟁의 빌미를 준 이들 정도가 세계사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의 모두이다. 철저하게 유럽과의 관련이 있을 때 잠시 스치듯 서술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샐주크 튀르크 제국은 11세기에서 12세기 100여년간 서아시아의 광대한 땅을 다스렸다. 이 지역이 워낙에 인종과 민족, 국가 구성이 복잡하다보니 이곳을 살아간 사람들의 감성이나 생각도 참 다양하다, 그 온갖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제 펼쳐진다. 



  때는 이슬람 세계제국이었던 아바스왕조 말 제국의 쇠퇴를 맞아 제국 내 온갖 민족이 제국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흥망성쇠를 거듭하고 그 중에 셀주크 튀르크족이 가장 큰 주도권을 잡게 된다. 이 때 이슬람종교와 세속 왕권을 모두 쥐고 있던 바그다드의 칼리프로부터 세속 왕권을 빼앗아 와 셀주크 티르크의 지배자들은 자신을 술탄이라 칭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시기 우리의 주인공 오마르 하이얌이 등장한다. 페르시아계 인물이지만 이슬람교도이고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이자 시인이다. 수학자로서 오마르 하이얌은 현대에 엄청난 유산을 남기는데 바로 미지수 x의 사용, 3차 방정식의 풀이 발견이란다. 우리를 수학의 지옥으로 밀어 넣은 분 되시겠다. 어쨌든 엄청 똑똑한 건 맞는데 이 책에서 주목하는 오마르는 천문학자 수학자가 아니라 시인으로서의 오마르다. 평생 학문을 닦고 하늘의 별을 관찰하고 그러다가 별점으로 운세도 봐주고 하면서 사랑하는 여인과 포도주를 마시며 유유자적하게 사는게 꿈인 이분의 삶이 그렇게 흘러갔으면 좋겠지만, 때는 우리가 잘 아는 시대로 말하면 춘추전국시대쯤 되겠다. 


  밀려오는 셀주크 튀르크의 힘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쨌든 권력에 납작 업드려야 하는데 그게 싫고 관여하고싶지도 않고, 마이 라이프를 구가하고 싶은 오마르에게는 어떤 것도 쉽지 않다. 또한 오마르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핵심 인물들 중 니잠 알무크는 셀주크 튀르크의 재상으로서 무능한 술탄들 틈에서 고군분투하며 정치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일세를 풍미한다. 또 하나의 중요 인물로 등장하는 하산 사바흐는 현실의 정치에 분개하며 알라무트라는 곳을 점령하고 이슬람 공동체를 만들어 신앙의 순결을 강조하는데 오늘날 이슬람 극단주의의 원조다. 하산은 자신의 적대세력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암살단을 조직하는데 암살자를 뜻하는 단어 어새신이 이들에게서 유래한다고도 한다. 


  이렇게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전혀 다른 삶의 길을 선택했던 이들이 서로 교차하면서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작가인 아민 말루프의 필력에 의해 마치 당대 한가운데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며 독자에게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작품의 주요 무대는 실크로드 서아시아쪽 입구 사마르칸트에서 시작해 부하라, 니사푸르, 이스파한, 알라무트의 낯선 땅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 중 사마르칸트는 모든 일이 시작된 땅이다. 마치 중국과 인도의 상인들이 사마르칸트에서 본격적인 이슬람땅으로 진입하듯이 페르시아 출신의 오마르의 본격적인 삶도 여기서 시작한다. 또한 그의 유일한 사랑인 시인 자한과의 사랑이 시작되는 곳도 이곳이다. 이 소설 속에서 또 하나 아름다운 캐릭터가 오마르의 아내이자 시인인 여성 자한이다. 자한은 오마르를 사랑하지만 사랑으로 자신의 삶의 방식을 바꾸지도 않고 신념을 바꾸지도 읺는다. 비록 파멸로 나아가는 길일지라도 끝까지 자신이 믿는 삶의 길을 선택하는 독특하고 멋진 캐릭터이다.


  이 소설이 독자를 사로잡는 것은 누구의 선택도 정답이라 말할 수 없는 우리 세상속에서 각자의 신념대로 살아갔던 이들의 장렬한 파멸이 결국 파멸이 아님을 알려주기 때문인듯 하다. 그 모든 파멸을 파멸이 아니라 삶의 빛나는 순간들로 만들어 주는 것은 오마르 하이얌의 시들이다. 


  불현듯 오마르의 시가 궁금해졌다. 책 속에 몇 편이 나오지만 충분하지 않다. 경건한 이슬람에 아직 물들지 않은 자유로운 삶을 노래하는 페르시아의 시가 간절히 읽고싶은거다. 설마 있을까 했는데 우와 있다. 그것도 2가지 버전씩이나...


















시집 <루바이야트>는 오마르 하이얌의 시를 미국인 에드워드 피츠제럴드가 재창작하다시피 한 것. <로버이여트>는 페르시아 원어를 그대로 번역한 것. 우리나라 번역계 정말 굉장하구나. 안타깝게도 로버이여트는 절판인데 우리 동네 도서관에 없어서 루바이야트를 선택해 읽었다.



여기 나무 그늘 아래 빵 한 덩어리,

포도주 한 병, 시집 한 권 - 그리고 황야에서도

내 곁에서 노래하는 그대가 있으니-

황야도 낙원이나 다름없구나. -  루바이야트 22쪽



아, 아직 쓸 수 있는 것은 한껏 써라.

우리 또한 흙으로 돌아가기 전에,

흙에서 흙으로, 흙속에 눕게 될 테니,

술도 없이, 노래도 없이, 또 끝도 없이!   -루바이야트 46쪽



아 시들어가는 내 생명에 포도주 한잔 먹여주고,

생명이 떠나버린 내 몸을 포도주로 씻어,

포도잎 수의로 잘 감싸서,

어느 향기로운 정원 구석에 묻어 주오! --루바이야트 134쪽



  시를 읽다 보면 사마르칸트에서 시작해 얽히게 된 모든 인물들의 삶이 덧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하나하나가 아름답게 빛나는 우주의 한 순간 별이 되는 느낌이다. 이 세상 쓸모 없는 건 없으며  나의 선택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아니듯이 너의 삶 또한 틀린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다르게 살아갈 뿐... 


 오마르가 살던 시대의 사마르칸트는 모래 아래 묻혀버렸듯 영원한 것은 없지만 그의 시가 남긴 세상은 이렇게 오늘의 작가를 길잡이 삼아 우리를 오래 전 낯선 세계로 이끌어내는 걸 보면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문학인가?


  사족 - 소설 사마르칸트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와 2부가 과거 셀주크 튀르크 시대의 오마르 하이얌의 이야기라면 3부와 4부는 오마르 하이얌의 유일한 필사본 시집을 찾는 19세기 제국주의 시대 미국인의 이야기이다. 시를 짓는 오마르에 시를 찾는 미국인 벤저민의 삶이, 오마르의 아내 자한과 페르시아의 공주 시린의 삶이 오버랩되면서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는 이란의 입헌혁명과 실패가 스펙터클하게 펼쳐진다. 어쩌면 이 부분도 독립된 소설로  나쁘지 않을 수 있었을텐데 문제는 1부와 2부에서 압도적인 이야기의 늪에 빠져 버리다보니 3부와 4부는 사족같은 느낌이 들어버린다는 것. 인타깝긴 하지만 한 작가의 소설 안에서  걸작과 평작을 같이 보는 것도 참 희한한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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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5-08-12 14: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다른 분 리뷰에서도 봤는데 후반부의 힘이 약한가 보네요~ 시는 완전 좋습니다 ㅋ 사막의 낭만이 느껴집니다 ~!!

바람돌이 2025-08-12 17:53   좋아요 0 | URL
작가의 욕심이었던듯요. 긴장감이 좀 떨어지더군요. 하지만 1부 2부는 정말 좋았습니다
그리고 레오 아프리카누스는 아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매혹적입니다. 저는 아민 말루프의 다른 책도 더 읽어 보려구요. 어떤 세상으로 데려가 줄지 기대 가득입니다.

페넬로페 2025-08-12 1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은 다른 세상으로 나를 데려가 준다˝
완전 공감 공감 합니다.
도서관에서 레오아프리카누스
빌려놨는데 어렵지는 않을까요?

허리와 어깨 아픔, 눈 뻑뻑함은 독서의 필수인데 고통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럴 때, 책만 읽어주는 아바타가 있으면 좋겠어요^^

바람돌이 2025-08-12 17:56   좋아요 1 | URL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책은 벽돌책이지만 내도럭 흥미진진했어요
페넬로페님이라면 맘에 드실거예요. 취향이 저랑 비슷한듯해서요. 호

저는 읽어주는 아바타 말고 제 앞에서 딱 적당한 간격으로 페이지 넘겨주는 페이지터너가 있으면합니다
왜 클래식 연주회때 악보 넘겨 주는 분 있잖아요. ㅎㅎ

단발머리 2025-08-12 2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신 시 중에 두 번째 시..... 가 너무 마음에 드네요. 써라~ 를 먹어라, 놀아라, 즐겨라로 읽어도 될까요? ㅎㅎㅎ
좋은 책도 독자를 다른 세상으로 데려다 주지만 좋은 리뷰도 그렇네요. 바람돌이님 따라서 사마르칸트 다녀왔습니다^^

바람돌이 2025-08-12 20:23   좋아요 1 | URL
오마르 하이얌의 시가 대체로 이 생의 즐거움을 누려라예요. 당시 경건한 이슬람이 음주를 금지하고 신에 대한 찬미를 주장하는 것과는 다르죠. 그 다른 점이 그의 시를 오늘의 우리에게도 와닿는거 같아요. 대체로 그의 시들은 즐겁게 읽을 수 있어 좋았어요.
저를 따라 사마르칸트 다녀오신 단발머리님 레오 아프리카누스의 드넓은 세계도 재미나답니다.

꼬마요정 2025-08-13 0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밌단 말이죠? 1,2부가 압도적이라구요? ㅎㅎㅎ 읽을 책이 쌓여있는데 큰일이군요. ㅎㅎㅎ

바람돌이 2025-08-13 12:59   좋아요 1 | URL
넵 1,2부는 정말 그 시대로 들어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재밌어요. 어쩌면 3부 4부는 안 읽는게 더 이 책이 좋아질듯도 합니다. 근데 이 책보다 더 재밌었던건 레오 아프리카누스였어요.

페크pek0501 2025-08-13 16: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책이 데려다 주는 세상으로 가고 싶네요. 물론 책 덕분에 가 본 적이 있지 말입니다. 즐거운 경험이죠.^^

바람돌이 2025-08-13 18:39   좋아요 1 | URL
책읽는 사람은 모두 공감하는 즐거움이겠죠. ㅎㅎ

희선 2025-08-14 0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재미있게 만나시고 오마르의 시도 찾아보셨군요 책 한권이 다른 책도 불렀네요 그렇게 책을 보는 게 좋은 것일 텐데, 게으른 저는 한권만 보고 맙니다 아주 가끔 보고 싶은 게 있으면 보기도 합니다 그런 일은 거의 없는 듯해요


희선

바람돌이 2025-08-14 15:27   좋아요 1 | URL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잖아요. ㅎㅎ 저는 궁금한걸 잘 못참아서 이런식으로 찾아 읽는 일이 좀 있어요. 다 자기 스타일이 있는거죠.

곰돌이 2025-08-16 0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도 좋은데요, 바람돌이님 글이 전 더 좋네요. 따뜻해요.

바람돌이 2025-08-16 13:2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책은 비극적인데 제가 이 책이 좋았던 마음이 너무 과하게 표현한 거 같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