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고인돌은 크고 작은 다양한 규모의 고인돌이 밀집되어 있다. 실현 가능한 모든 형식이 공존할 정도로 고유양식도 없으며, 1인 1기로 조성되어 합장 흔적 역시 거의 없다. 심지어 무덤이 아닌 단순한 기념물로 세워진 것들도 있다. 요컨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한반도의 고인돌이다. - P13

정신적으로 성숙한 공동체만 죽음을 묵상하고 기념할 수 있다.
그리고 풍요로운 생산물을 평등하게 누리는 사회만 많은 실용적 기념물을 만들 수 있다. 즉 한반도 고인돌 사회는 묵상하고 기념하는 정신공동체였고, 평등하고 협업하는 경제공동체였다. - P17

새 모양 토기와 배 모양 토기가 혼을 실어 피안의 세계로 보내는 도구였다면, 집 모양 토기는영혼의 영원한 안식처로써 껴묻었을 것이다. 고상형 집토기들은 모두무덤에서 발굴한 껴묻거리였다. 부장용 집토기들은 상징적 건축물이다. 고상 건물은 만들기 어렵고, 난방과 취사를 해결할 수 없는 데다 생활에 필요한 여러 공간을 조성할 곳도 없다. 하지만 가장 귀하고 안전한 집이기에 귀중품 창고나 제사 의례용으로 쓰였을 것이다. 무덤에 껴묻을 최고의 집을 선택하라면 당연히 고상형 집토기일 수밖에 없다. - P39

하늘을 향한 가야인들의 사후 세계관은 무덤의 위치에서도 잘 나타난다. 낮은 평지에 무덤을 둔 신라나 고구려와 달리 마을 앞의 높은구릉 위에 무덤을 만들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높은 아크로폴리스에신전을, 낮은 네크로폴리스에 무덤을 조성했다. 그러나 가야의 아크로폴리스는 곧 네크로폴리스였다. 존귀한 영혼은 높은 곳에 묻혀 높은집에서 살며 높은 그릇으로 식사를 해야 한다고 믿었다. 지상의 낮은것들이 일상이라면 높은 것들은 존귀한 영원의 세계에 속한다. - P39

2009년 미륵사지석탑 해체 과정에서 금제사리봉안기를 발견했다.
그동안 삼국유사』의 기록을 토대로 미륵사는 서동과 선화공주가 세웠다고 추정했는데, 금제사리봉안기」에는 전혀 다른 사실이 기록되어있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여기에는 "사태적덕의 따님인 사택왕후가선한 인연으로 정재를 희사하여 가람을 세우고 기해년 639년 정월 29일사리를 봉안했다"라고 새겨져 있다. 즉 미륵사의 주인공이 선화공주가아니라 백제의 사택왕후라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 P50

현재 각황전은 2층이지만, 장육전은 3층이었다. 장육전 내부에는화엄경을 새겨넣은 거대한 석경벽을 세웠는데, 화엄석경은 임진왜란때 불타 지금은 1만 9,000여 조각으로 남아 있다. 추정하면 600여 매의 돌판에 총 55만여 자를 새긴 대규모 경관이었다. 내부 고주가 서있는 5칸 3칸 기둥 사이 사방으로 석경벽을 두르고, 이를 순회하며 화엄경 전편을 읽을 수 있는 구조였다. 이른바 장육전은 건축으로 쓴 화엄경이었고, 화엄사가 화엄종의 종찰이 되는 종교적 근거였다. - P68

몸체의 목조 기둥들은 무거운 지붕 무게 때문에 길이가 줄어들게된다. 특히 모퉁이에 지붕 하중이 집중되기 때문에 모퉁이 기둥은 안쪽 기둥보다 조금 더 줄어든다.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네 모퉁이 기둥을 조금 높게 하는 ‘귀솟음‘이라는 건축 기법이 발전했다. 경사진 지붕은 아래 기둥을 바깥쪽으로 밀어내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안쏠림‘이라 하여 수직선보다 약간 안쪽으로 기둥을 기울인다. 중국 송나라 때 출간된 건축 기술서 『영조법식』에는 귀솟음과 안쏠림의 기준수치를 계산하여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고려의 건축은 기계적인 중국식 기술보다는 전체의 조화를 우선하여 유연한 기술을 발달시켰다. 즉창작자로서 목수의 판단과 안목이 건축의 격을 좌우하게 된 것이다. - P92

이러한 세부 기법들의 개발은 물리적 변형을 보완하기 위함이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심리적 불안을 제거하고 시각적 안정을 얻기 위한 방편이 되었다. 지붕 처마를 수평으로 맞추면 처마 선이 처져 불안해 보이므로 아예 추녀 부분을 들어 올린다. 지붕 끝의 추녀가 무게 때문에처지더라도 수평선보다 올라가 있어 안정된 모습을 보이게 된다. 또 기둥의 가운데를 볼록하게 배흘림하면 원통형 기둥보다 더 견고해 보인다. 두 점을 지나는 직선은 단 하나지만, 곡선은 무수히 많다. 직선이 휘어지면 곡선이 되지만, 곡선은 휘어도 곡선이다. 귀솟음도 안쏠림도 배흘림도 물리적 변형을 막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수평, 수직,
직선으로 변하지 않는다. 변형되더라도 여전히 솟은 채로 쏠린 채로,
배흘린 채로 안정되어 있다. - P92

 텅빈 누각을 통해 낙동강 물줄기가 들어오고 지붕 위로병산이 펼쳐진다. 누각 아래로는 입구가 있어 사람들의 출입을 알 수있다. 누각의 존재는 자연경관을 산, 강, 사람의 천지인 경관을 수직으로 나눈다. 이는 성리학자들이 자연을 이해하는 태도이고, 이를 바라볼 수 있는 자리는 서원의 주인인 원장이 앉는 자리다.  - P159

자연을 선택해 인공적환경으로 치환시키는 이러한 수법을 ‘차경‘이라 한다. 경제적이고 생태적인 차경 수법은 한국의 대표적인 조경법이었다. 건축물은 자연을담아내는 액자 역할을 한다. 액자가 크고 화려하면 그림이 죽는다. 건물이 화려하면 자연이 초라해진다. 만대루는 기둥과 지붕밖에 없는 매우 간단한 건물이며, 화려한 단청도 장식도 일절 없다. 건물은 자연을학문을, 정신을 담는 그릇에 불과하며, 그 담기는 내용물이 건축의 실체다. 성리학자들은 이러한 생각으로 서원을 건축했다. - P160

곡운구곡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었다. 김수증의 이상이 응축된 소우주였고 시와 그림으로 추상화한 거대한 건축이었다. 그는 화음동 삼일정의 세 추녀에 각각 음양, 강유인의라고 썼다. "인간사는음양의 굴곡이 있으니 때로 단단하고 때로 유연해야 하나, 늘 어질고의로움은 잊지 말라"는 일생의 깨달음을 남긴 것이다. - P193

그러나 한국의 기독교도들은 오히려 한옥 교회를 배척했다. 유교적 체제의 봉건적 모순에 질식했던 그들에게 전통이란 버려야 할 적폐있고 서구의 것이 유일한 구원이었다. 또한 가톨릭이나 개신교가 선교모국의 건축과 문화를 이식했던 것처럼 서양식 고딕 교회를 더 이상적이고 현대적인 것으로 인식했다. 하지만 성공회는 토착 건축과 전통문화를 존중했다. 비록 그것이 시대를 너무 앞선 것이었다 할지라도 그시대 성공회의 건축은 높게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 P230

20세기 후반 유럽의 철학계는 2,500 년 동안 견고하게 쌓아온 저구 사유의 전통을 부정하고 분해하는 디컨스트럭션, 즉 해체주의적 파고가 높았다. 해체적 사고는 이성과 남성과 직선 중심의 전통을 감성,
여성, 곡선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는 다시 이분법적 서구 사상의 전동으로 회귀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크 데리다 등이 주창한해체적 사고는 달이성, 탈남성, 탈직선의 세계를 지향하여 다양하고자유로운 세계를 열고자 했다. - P295

1990년 탈냉전 이후 지구촌을 신자유주의라는 이념 아래 급속한세계화가 진행되었다. 금융 자본은 세계화의 동력이며 디지털 기술은대단한 수단이었다. 건축의 소중한 가치였던 역사적 지역적 맥락이란세계화 속에서는 구태의 껍질이 되었다. 새로운 건축적 가치란 얼마나많은 자본을 투여하고, 얼마나 빨리 첨단 기술을 도입하느냐로 바뀌었다. DDP는 일시적으로 불시착한 외계의 우주선인가, 아니면 새롭게열린 영원한 우주인가? DDP를 둘러싼 상반된 평가들은 건축 시장의세계화 속에 혼재하는 혼란과 갈등이다. - P298

 역사의 질곡과 진실을 알아야 역사적 건축에 도전할 수 있다. 그래서 건축은 기초적인 인문학에 속하며, 지식인 건축가는 포괄적인 인문학자로서 성찰하고 사유하며 깨닫고 실행해야 한다. 승효상은 자신의 사유를 명확한 언어로 표현하는 지식인 건축가이며, 10여 권의 깊이 있는 저서를 쓴 인문학자이다. - P309

사유원은 자연 속의 단독자로서 인간의 의미를 묻고 고독을 공유하며 어울려 생각하는 건축적 장소다. 여기에서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앞서 실존적 생명체로 존재하며, 자신의 내면을 응시해 근원과 영혼을 맞닥뜨릴 것이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영원히 안 올지도 모르는 미래를 예측한 건축이라면, 사유원은 태초로 돌아가 변치 않을 본질을 담은 건축이다. 과거가 오래된 미래라면, 미래는 새로운 과거일수 있다. 근원과 본질은 여전히 중요하다. - P309

 그러나 삶과 일체화된 시간은 진동하는 추처럼 왕복적이다. 숨과삶을 품는 건축은 영겁을 지나도 근본과 현재 사이에서 또 묻고 또 대답한다. 과거가 영원한 현재라면 미래 또한 늘 현재일 수 있다. 근원을묻고 현재의 물음에 충실히 답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미래다. - P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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