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 - 이어령의 서원시
이어령 지음 / 성안당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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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2022년 2월 26일,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인이셨던 이어령 선생님께서 별세하셨다.

【하나의책장】을 열어 이어령 선생님의 책이 책장에 몇 권이나 있는지 검색해 보았다.

적지 않은 권수를 보니, 그의 작품을 꽤 읽었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한때, YES24이었는지 알라딘이었는지 기억은 나질 않지만 한 해의 키워드 중 하나가 '이어령'이었으니깐.

2월 말, 이어령 선생님의 별세 소식을 듣고선 그와 그의 작품들을 기억하기 위해 3월에 새로운 책을 집어들었는데, 바로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이다.


저자, 이어령은 1933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 재학 시절 《문리대학보》의 창간을 주도 ‘이상론’으로 문단의 주목을 끌었으며, 《한국일보》에 당시 문단의 거장들을 비판하는 「우상의 파괴」를 발표, 새로운 ‘개성의 탄생’을 알렸다.

20대부터 《서울신문》, 《한국일보》, 《중앙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의 논설위원을 두루 맡으면서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논객으로 활약했다.

《새벽》 주간으로 최인훈의 『광장』 전작을 게재했고, 월간 《문학사상》의 주간을 맡아 ‘문학의 상상력’과 ‘문화의 신바람’을 역설했다.

1966년 이화여자대학교 강단에 선 후 30여 년간 교수로 재직하여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 총괄 기획자로 ‘벽을 넘어서’라는 슬로건과 ‘굴렁쇠 소년’ ‘천지인’ 등의 행사로 전 세계에 한국인의 문화적 역량을 각인시켰다.

1990년 초대 문화부장관으로 취임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 설립과 국립국어원 발족의 굳건한 터를 닦았다.

2021년 금관문화 훈장을 받았다.

마르지 않는 지적 호기심과 창조적 상상력, 쉼 없는 말과 글의 노동으로 분열과 이분법의 낡은 벽을 넘어 통합의 문화와 소통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끝없이 열어 보인 ‘시대의 지성’ 이어령은 2022년 2월 향년 89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Ⅰ 흙과 디지털이 하나되는 세상


서구의 두 모험가가 에티오피아를 구석구석 다니며 지도를 만들었었다. 금과 은을 구하기 위해 돌까지 조사했을 정도로 세밀하게 살펴보았으니 황제는 그런 그들에게 선물까지 내렸었다.

그렇게 그들이 에피오피아를 떠나기 위해 배에 타려고 하자 근위병들이 조심스레 그들의 구두를 벗기고 깨끗하게 닦아 황제의 말을 전했다.


그대들을 멀리 떨어진 강한 나라에서 왔다. 그대들은 에티오피아가 모든 나라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그대들의 눈으로 보았을 것이다. 이 땅의 흙은 우리에게 소중하다. 우리는 그 흙에 씨앗을 심고 우리의 죽은 자들을 묻는다. …… 에티오피아의 흙은 우리의 아버지, 우리의 어머니, 우리의 형제다. 우리는 그대들을 환대했으며 귀한 선물을 주었다. 그러나 흙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값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흙을 단 한 알갱이도 줄 수 없다.


모험가들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한 알갱이의 흙에서 나오는 힘이 에티오피아인들을 지켜준 것이었는데, 흙의 감동과 아름다움때문에 3000년의 긴 역사를 읽고 서구인의 지배를 받았으니 말이다.

서양인들은 에티오피아를 침략해 먹지도 않는 땅콩을 대지에 잔뜩 심었었지만 이는 토양에 맞지 않았고 결국 심었던 땅콩이 아프리카 땅을 황폐화시키고 말았다.

결국 흙의 시대, 그 지혜와 생명의 시대는 끝이 난 것이었다.

단순히 보이는 흙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었다.

모험가의 구두에는 나라를 구석구석 다니며 얻었던 보이는 흙이 아닌, 보이지 않는 흙의 정보가 잔뜩 묻어 있었다.

이는 결국 흙과 디지털이 하나되는 세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디지털 정보는 흙의 지혜를 압도한다.

지금은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지식을 검색해 습득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스마트폰이 활성화되기 이전에는 모두가 사전을 이용했었다.

모든 면에서 방대하니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으며 심지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기까지 한다.

일론머스크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발발하자 우크라이나를 위해 스타링크를 전격 지원하지 않았는가.

과거 아프간 전쟁도 모두가 10년은 걸릴 것이라 했지만 불과 석 달 만에 끝났으니 디지털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 수 있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비행사들에게 수직 폭격의 기술을 가르쳐 수평 폭격의 적중률을 높였었던 반면에 스마트탄은 날렵하고 지능을 가진 폭탄이라 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교량 하나를 파괴하려면 200톤 이상의 폭탄을 투하했어야 했는데 레이저 유도 폭탄이 생겨나면서 12.5톤으로 줄었고 이후 이라크전에서는 4톤이면 충분히 폭발시킬 수 있었다.

GPS 유도탄처럼 위성으로 받은 위치 정보로 목표물을 향해 정확히 가격하여 적중률을 높일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스마트탄이 마냥 스마트하지는 않다.

걸프전 때, 후세인을 제거하기 위해 대통령궁을 폭격한 일이 있었다.

물론 스마트탄은 완벽하게 투하되었지만 후세인은 죽지 않았었다.

이슬람교도들은 심각한 문제가 일어날 때, 밖에서 천막을 치고 자는 풍습이 있었는데 미군이 이를 포착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즉, 목표물을 파괴하는 정보기술은 뛰어났으나 문화에 대한 정보는 백지나 다름없었던 것이었다.


정보기술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유도탄같이 기계를 다루는 하드웨어의 정보기술이며 또 하나는 상대방의 문화나 인간의 마음을 읽는 소프트 콘텐츠에 관한 것이다.

전자를 기계 기술, 후자를 지식 기술이라고 구별하기도 한다.


정보기술은 부국과 강병의 수단이자 도구이다.

지식이나 문화를 목적으로 정보기술이 사용되는 경우는 미미한 편이었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하드 파워에서 소프트 파워로 옮겨지는 추세로 바뀌었다.

교육, 학문, 예술, 과학, 기술 등 인간의 이성과 감성적 능력이 빚어내는 창조적 산물과 연관되어 있으며 외교와 국방에서도 커맨드 파워 command power 가 아닌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 cooperative power 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는 더 나아가 하드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어떠한 방식으로 활용할지 결정하는 기술인 스마트 파워를 강조하는 추세이다.




Ⅱ 벽을 넘는 두 가지 방법


허허벌판에서 살 수 없기에 인간은 벽을 만들었다.

그림은 벽에 뚫어놓은 마음의 창인 듯하다.

창을 벽의 상처라고 말하듯, 그림 또한 피가 흐르는 벽의 상처인 것이다.

벽은 태양보다, 구름보다, 바람보다 강하며 오직 날카로운 설치류 쥐만이 구멍을 뚫을 수 있다.


벽은 바람을 막고 풍경을 도살한다.

자유로워지기 위해선 구멍을 뚫어야 하는데 이 때 날카롭고 빨리 자라는 송곳니가 필요하다.

한밤의 어둠 속에서 갉고 갉은 색채와 선 그리고 회화의 구도가 탄생한다.

이것이 바로 그림의 탄생이다.


희랍의 전설에는 회화와 조각이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한 청년을 마음에 품은 소녀가 그와의 이별을 앞두고 상심하여 앓게 되자 소녀의 아버지가 그 마음을 알고 그 청년의 옆얼굴이 벽에 비치는 그림자를 따라 윤곽의 선을 그리고 색을 칠했다.

곧 청년과 꼭 닮은 릴리프, 즉 그림과 조각의 중간인 부조가 생겨났는데 딸의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그림자를 그림으로, 조각으로 옮긴 이야기는 상징적이라기보다 사실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벽을 긁는 것, 벽에 어리는 그림자, 그리고 벽 너머로 사라질 연인에 대한 그리움.

긁는 것, 그림자, 그림, 그리움은 결국 같은 뿌리에서 나온 말이다.


따로 떨어져 불리던 그 말들이 하나의 초점으로 합쳐지면서 떼어낸 달력의 벽면 윙는 글과 그림과 그리움 같은 것들이 하나의 관자놀이처럼 뛴다.


세계에서 가장 가벼운 벽은 무엇일까?

저자는 올림픽 개폐회식을 기획할 때 그 주제를 '벽을 넘어서'라고 했다.

그 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도 철의 장막이 무너졌으니 서구 문화는 즉 벽의 문화라고도 할 수 있다.

도시든 개인의 삶이든 무엇이든 간에 두꺼운 벽을 기본으로 이루어지니깐.

성벽 안에 세워졌던 도시들로 이루어진 서양만 봐도 그렇다.

유럽은 섬이 아닌 대륙인데도 성벽이라는 제한된 도시 안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일찍이 고층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도시가 커져도 옆으로 퍼지지 못하고 위로 치솟아 올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동양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 두께의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옛말에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가 있는데, 그만큼 벽이 얇고 허술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서양 집은 대개 적조식으로, 돌이나 벽돌로 벾을 쌓아 만든 것이다.

거기에 비해 한국 집은 가구식이라고 하여 기둥을 세워놓고 집을 지은 비내력벽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전통적인 한옥은 벽을 터도 무너지지 않지만 양옥은 집 전체가 무너지고 만다.




Ⅲ 전통 물건에 담긴 한국인 생각


전통적인 물건들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다 뜻이 담겨져 있다.

문풍지와 한복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일본은 정밀함에서 문화의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는 적당히 문을 짜서 단 후에 틈이 생기면 문풍지로 막는 융통성을 발휘하는 반면에, 일본은 융통성보다는 정확성에 중점을 두어 문을 닫으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꼭 들어맞도록 만들기에 문풍지라는 것이 없다.

바지, 버선 그리고 되질, 말질 등도 치수를 무시하곤 한다.

즉, 한국의 멋은 약간의 비규격이 있는 멋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서양의 양복 바지는 기능주의, 합리주의를 지향해서 허리춤에 꼭 맞도록 만들었었다.

반면, 한복 바지는 인체의 허리 부분은 밥 먹을 때와 굶었을 때가 다르고 건강할 때와 병을 앓고 있을 때가 다르기 때문에 정확하게 치수를 재서 만들었기 보다는 풀어 입을 수도 있고 조여 입을 수도 있게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저자는 전통 물건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바로'융통성'이다.


치수가 잘못되면 사람이 옷에 몸을 맞추어야 하는 주객전도의 양복 문화, 그것이 인간 소외 현상을 낳는 것이라면, 넉넉한 한국의 허리춤은 끝없이 인간을 감싸주는 융통성 있는 문화의 상징이다.


서양은 자아를 중심으로 개인주의에 토대를 두고 있어 그들의 문화는 벽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즉, 자아의 문화란 너와 나를 구별하는 방벽과 도시와 도시를 분리하는 성벽의 문화라 할 수 있다.

한국은 물론 동양권 시인들은 두꺼운 벽이 아닌 병풍을 둘러치고 작업을 하였다.

병풍은 가볍고 신축성 있는 벽으로, 펴면 벽이 되고 접으면 한 공간이 된다.


병풍은 인류가 발견한 가장 아름답고 밝고 가동적인 벽이라고 할 수 있다.

병풍의 가동성과 신축성은 한국을 비롯한 동양적 기술의 원형이며 서구 문화와 동양 문화를 나누는 가장 상징적인 경계다.

즉, 병풍의 공간은 하나이면서 전체인 것이다.


(지금은 없지만) 어릴 적에 외가집에 가면 큰 병풍 하나를 볼 수 있었다.

그저 보기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 일종의 나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는 벽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병풍에 그려져 있는 그림 또한 누군가의 작품이었다고 하니 그때 봤던 병풍 기억을 되살려보고 싶다.

병풍이 다락방 옆에 있었기에 더 쭉 피면 조그마한 공간이 새로 만들어져 그 안에서 동생과 함께 놀기도 했다.

8살과 6살이 뭘 알겠냐마는 이미 그때 느꼈던 것이었다.

병풍의 공간은 하나이면서 전체라는 것을.




2022년 2월 26일.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인이셨던 이어령 선생님께서 별세하셨다.


이어령 선생님께서 쓰셨던 작품 중 마지막으로 읽었던 책이 무엇이었는지 책결산을 살펴보니 『너 어디에서 왔니』였다.

생각해보면 선생님의 작품들을 적지 않게 읽었었고 책장에 있는 그의 책들을 살펴보니 80년대에 출간된 책도 가지고 있었다.

오래 전에 출간된 책은 다름아닌 엄마의 책이었다. 20살이 되고서부턴 책을 더 읽었다는 엄마도 선생님의 작품을 좋아했었다고 한다.

외가집에 가면 오래된 LP부터 핑글핑글 돌려서 거는 전화기 그리고 책이 다락방에 가득해 병풍을 친 뒤 다락방으로 올라가 동생과 함께 탐험 놀이를 했었다.

그러다 다락방에서 엄마 이름을 새겨놓은 책 한 권을 보게 되었고 오래된 책이 신기해 그 책을 들고 다락방에 내려왔었다.

아, 그러고보니 내가 이어령 작가님의 책을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에 집으로 데리고 왔으니, 그 책을 중학교 1학년 되는 시기에 읽었었다.

참 신기하다. 책 한 권으로도 나의 과거의 흔적들이 생각난다는 사실이.


어떻게 보면 별것 아닌 소재로 생각될 수 있는데 소재 하나로도 이렇게까지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그 생각이 이어진다.

국문학과도 가고 싶었던 학과 중 하나였는데, 그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자 비슷한 과목이 교양으로 나와 한 번 들은 적이 있었었다.

그 수업에서 교수님이 이어령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었는데, 그 때 다시금 느꼈었다.

'역시 지성인이 맞구나. 지성인이구나!'


2월 말, 이어령 선생님의 별세 소식을 듣고선 그와 그의 작품들을 기억하기 위해 3월에 새로운 책을 집어들었는데 그 책이 바로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이다.

14년 전, 「날게 하소서」란 제목의 시에 구술 해설을 입혀 서문을 완성한 책으로 열 세가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메시지를 꼭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 소개해 보았다.

앞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고 표현하였었다.

틀에 박힌 생각은 결국 제자리 걸음하는 것과 다름없어 우물 안 개구리 신세가 될 수 있다.

틀에서 걷히는 순간, 그 때 창의적 사고가 발휘되는 것이다.

에세이지만 사고에 대한 메시지가 분명해 인문서와 다름없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책은 3월에 읽었는데 3개월만에 올리게 되었다.

쓰다 말다를 반복하다가 이제야 재독하고 제대로 올리게 되었다.

책을 읽고선 글쓰기 노트에 정리를 마친 후에야 글을 쓰는 것인데, 지금까지 쭉 해왔던 방법이지만 바꿔야 하나 생각중이다.

아날로그적인 방식은 느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요새는 노트북 앞에 앉다가도 아프면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니 속도가 좀처럼 나지 않아 더 느려지고 더 느려진다.

그럼에도 쭉 고수해 왔기에 쉽게 바뀌어지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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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6-16 00: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어령님 마지막 병실에서도 스케치를 하고 채색을 하셨다고 합니다
육체의 고통과 쇠락의 끝자락에서도 글과 그림을 그리며 삶의 끈을 놓지 않았던 정신력에 탐복했습니다

하나님의 책장 스케치 멋져요
알라딘 이달의 굿즈로 줬으면 ㅎㅎㅎ

하나의책장 2022-07-17 18:26   좋아요 0 | URL
역시 시대의 지성이셨던 분이네요.
마지막 병실에서도 스케치하고 채색하셨다니.. 저 또한 그 정신력에 탐복했습니다!

오늘도 역시나 꽤 덥네요.
한여름인 8월에는 얼마나 더울지;
scott님은 주말 시원하게 잘 보내셨나요?^^
 
우리는 이미 여행자다 - 일상이 여행이 되는 습관 좋은 습관 시리즈 13
섬북동 외 지음 / 좋은습관연구소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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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해외여행 수요가 급증한 것을 보니 이제야 조금씩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움직이는 것만 같다.

그렇다면 코로나가 온 세상을 지배하고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여행의 욕구를 해소시키고 있었을까?


저자, 섬북동은 2011년 11월 서울 출생으로 양손잡이다. 실제로 만난 사람들은 이십 대로도 보고, 오십 대로도 보는 신기한 외모다.

사정상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전국을 떠돌며 자라 딱히 서울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힘들다.

카피라이터, 드라마 작가, 영화 마케터, 번역가, 디자이너 등의 직업으로 밥벌이를 한다. 책을 좋아한다. 아니, 그보다는 책을 읽고 나서 떠드는 걸 더 좋아한다. 그렇게 10년째 격주 토요일마다 떠들어댄 결과물은 브런치 ‘뒷book’에 기록하고 있다.

애인과 나란히 캠핑 의자에 앉아 책 읽는 시간을 제일 좋아하지만, 까뽀에이라로 몸을 만들고 시장이나 온라인에서 구입한 식재료로 요리하는 것도 즐긴다. 주말에는 따릉이를 타고 한강을 달리며 노을 지는 하늘을 구경하기도 한다.

다양한 부캐를 품고 살아가는 나를 사람들은 이렇게 부른다.

'섬북동 씨~'

참고로, 섬북동씨 안에는 7인의 여행자가 있다.




Ⅰ 방구석 생존 여행


뉴욕의 봄. 드디어 뉴욕에도 봄이 오나 보다. 두꺼운 파카를 벗고 올해 처음으로 코트를 입고 출근했다. …… 퇴근길, 강 너머로 보이는 뉴욕 도심 풍경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 친구와 헤어져 돌아가는 귀갓길, 강 너머로 내다보이는 불 켜진 뉴욕 풍경. 매일 아침저녁으로 마주하는 풍경이지만, 볼 때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깨닫게 되는 장면이다.

주말 아침. 오늘은 전철을 타지 않고 걸어서 골목 구석구석을 걷다, 다리 건너 루즈젤트섬으로 가본다.


후쿠오카의 여름.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여름 더위가 시작됐다. 커피에 얼음을 잔뜩 넣어 냉동실에 잠시 넣어뒀다. 그 사이 빵을 한 장 꺼내 굽는다. 밤새 더위에 잠을 설친 뒤 조금은 멍한 여름날 아침에는 역시 믹스 커피가 좋다. …… 오늘은 아침부터 미용실에 가기로 했다. 마스크에 양산까지, 요즘은 나가려면 챙겨야 할 짐이 너무 많다. 이 더위에 마스크까지 쓰고 있으려니 괴롭다. 언제쯤 마스크를 벗게 될까? 이러다 친구들 얼굴도 잊을 것 같다. 커피를 마시며 세계 여행지가 담긴 책을 읽고 있으려니 얼른 여행을 떠나고 싶다. 사우나 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푹푹 찐다. 그래도 이제 8월 말이니 이 여름도 어느새 끝나겠지.


에든버러의 가을. 스코틀랜드에 오고 난 이후에는 모든 계절을 사랑하게 됐다. 특히 햇볕이 귀한 나라에 오니 가을 햇살은 더 귀하고 사랑스럽다. …… 토요일이라 외출을 감행했다. …… 제일 자주 사고 또 좋아하는 기념품은 에코백과 책갈피다. 흔해 빠진 것 같아도 오래 그곳을 기억할 수 있는 부담 없는 선물이다. 폐장 시간이 다 되었다. 바깥은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이제 더 해가 짧아지는 계절로 들어서고 있다.


스톡홀름의 겨울. 아침을 먹은 다음 든든히 껴입고 딸, 남편과 함께 산책을 나왔다. 남편은 딸의 썰매에 줄을 매달아 끌고 눈 쌓인 길을 앞서간다. …… 겨울이 길어서 힘들지만 날씨가 좋은 날은 지상의 풍경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평온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눈 쌓인 꽁꽁 언 호수 위로 우리처럼 해를 보러 나온 사람들의 발자국이 길게 찍혀 있다. …… 거의 한 달 만에 해가 뜨는 날, 이런 날을 놓칠 수 없어 온 가족이 근처에서 썰매를 타기로 했다. 도시가 온통 눈 천지다. 양옆으로 늘어선 삼나무 위에도 하얗게 눈이 쌓였다. …… 요즘은 오후 한 시가 넘으면 해가 진다. 그러니 더욱 부지런히 움직여 해가 떠 있는 시간을 즐겨야 한다. 다시 어둠이 찾아오기 전에.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3년 전까지만 해도 스코틀랜드에 살고 있던 <HEYJOO>

남편과 딸과 함께 스웨덴에 사는 <펩선PEPSUN>

뉴욕에서 회사에 다니는 <배배 뉴욕BaeBae NY>

남편과 후쿠오카에 살며 일상을 공유하는 <윗시 wish>

옷도 음악도 취향도 감각적인 뉴욕의 <정윤 UniAvenue>

영국 런던에서 회사에 다니며 집안과 출퇴근 생활을 담아 올리는 <Yookyung's Day유경데이>

앞서 각 나라의 계절을 묘사했던 일상이 바로 위와 같이 나열한 유튜버들의 일상이다.


코로나로 인해 국내는 커녕 집에만 갇혀 있다보니 여행을 '낙'으로 살았던 이들에게 특히 유튜브는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낙이었을 것이다.

유튜브 외에도 패션을 통해 현지를 느낄 수 있는 브랜드, 가고 싶은 나라의 특색있는 음식을 먹으며 느끼는 맛 그리고 화면으로 만나는 영화와 드라마, 글로 만나는 책 등을 통해 방구석에서 여행을 떠났으리라.

나는 여행이 너무 고플 때 어떻게 하더라?

책 중에서도 특히 여행 에세이를 보고 외국 영화 중에서도 「Midnight in Paris」 등을 보고 굳이 드라마나 예능으로 여행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꽃보다 누나」, 「꽃보다 할배」를 보곤 한다.

여행 에세이는 일반 여행서와 달리 저자의 관점에서 재미있게 풀어쓴 글이기에 읽다보면 같이 여행하는 느낌이 절로 들게 된다.

글과 그림이 동시에 같이 움직이면서 당시 저자가 느꼈던 느낌들도 함께 느낄 수 있기에 여행 에세이는 특히나 함께 하는 재미가 있다.

영화를 많이 보고 드라마, 예능은 거의 보지 않는 편인데, 여행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는 꼭 「꽃보다 누나」, 「꽃보다 할배」를 본다.

꽤 오래 전에 방영했었던 아임 리얼 시리즈나 잇시티도 어렸을 때 보던 기억이 선명해 가끔 보곤 하지만 그래도 나의 픽은 현지 느낌을 잘 느낄 수 있는 영화인 것 같다.

더 추가하자면, 바로 유튜브이다!

몸이 좋질 않아 어쩔 수 없이 집에 콕 박혀 있을 때 유튜브를 보곤 했는데, 유튜브는 새로운 것을 터득하고 습득할 수 있는 공간으론 최고인 것 같다.

온갖 학습의 장인지라 전문가들의 교육이 담긴 영상과 다큐멘터리 위주로 보는 것을 좋아했었는데 어느 순간 RECIPE나 DAILYLIFE에 빠져 (해외) 일상, 여행 브이로그를 보다보면 순식간에 1-20분이 훅 지나간다.

책에서 나온 채널 영상을 한 번씩 쭉 봤었는데 저자가 이렇게까지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단박에 알 것만 같았다.




Ⅱ 집 밖 일상 여행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프리랜서 생활로 돌아오면서는 조바심이 났는지 일을 무리하게 받았다가 결국 탈이 나고 말았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 정도로 깊이 가라앉았지만, 어떻게든 일어났다. 그러고 무작정 걸었다. 언덕을 넘어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옆 동네 마트라도 갔다.


2만 4,905걸음. 제주에서 돌아온 문언니의 소환에 금요일 밤 공덕역으로 향했다. …… 공덕 꽃길을 걸어 어느새 홍대입구역까지 왔다. 헤어지기 전, 홍대입구역 7번 출구 앞 노점에서 문언니는 한 다발에 5,000원 하는 '옥시'라는 꽃을 하나씩 사서 안기고는 사라졌다. 옥시의 영어 이름은 'starflower'. 별을 꼭 닮아 붙은 이름이란다. 밤 11시에 퇴근하면서도 벚꽃을 보면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는 옥 언니, 제주가 너무 좋다면서도 서울에 오면 외국이라도 온 것처럼 탄성을 질러대는 문 언니. 나와 봄밤을 같이 걸어 주는 별처럼 따뜻한 친구들. 휴대폰을 보니 2년 전에 갔던 부다페스트 여행에서 비틀거리며 걷고 또 걸었던 그 날의 걸음 수가 나왔다.


1만 3,219걸음. 7시에 일어나 30분 정도 걷고 돌아와 아침 글쓰기를 한 뒤 30분 정도 요가를 했다. 달걀 두 개를 꺼내 삶고, 그 사이에 머리를 감았다. 오늘은 연남동까지 걸어가서 일할 계획이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좋은 점 한 가지는 평일 오전 시간에 카페를 한적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날 저녁에는 합정역에 살다가 얼마 전 우리 동네로 이사 온 친구를 만났다. ……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팔을 휘적대며 꽃잎을 잡느라 분주했다. …… "저기저기, 저거 잡아!" "와앗! 2021년 대애박!" 용케도 내 손 안에 꽃잎이 들어왔다. 우리는 부적이라도 되는 듯 휴대폰 케이스 안에 꽃잎을 조심스럽게 집어넣었다. 그리고 내년 이맘때에는 꼭 다시 떠날 수 있게 해달라는 소망도 함께 넣었다.


2만 2,327걸음. 윤문 일을 같이하기로 한 선배와 일을 준 회사의 대표와 광화문에서 점심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 집에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동네 친구에게 맥주 한잔하자는 연락이 왔다. 오늘은 어차피 일하긴 글렀다. …… 친구와 나는 어느새 만석이 된 가게를 나와 배도 꺼뜨릴 겸 연남동 카페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아직 밤공기는 쌀쌀하다. 그래도 이 시간에 걸어 다닐 수 있는 계절이 왔다는 게 믿을 수 없이 좋다. 하루 건너 하루 보는 사이인데도 도통 마르지 않는 수다를 떨고 횡단보도에서 헤어져 각자의 집으로 돌아섰다. 걸음 수를 확인한다. 또 해외여행 다녀온 기분.


1만 9,878걸음. 다음 날 점심엔 효창공원까지 걸어가 친구와 각자 싸 온 도시락을 나눠 먹었다. …… 카피라이터 생활을 접기로 한 12년 전, 친구가 살고 있던 미국 버클리에 작은 집을 빌려 3개월간 영어 수업과 도서관, 마트만 오가며 한가롭게 지냈던 시간이 가끔 그립다. ……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나이와 시간, 지금 이 시간도 몇 년 뒤에 뒤돌아보면 또 다른 추억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 언제나 지금이 내 인생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1만 6,379걸음. 거의 3년 만에 알고 지내던 편집자에게 연락이 왔다. 마지막에 만났을 때 나는 잡지사에 들어가기 전이었고, 편집자는 출판사를 막 그만둔 뒤였다. …… 새로 작업할 책이 든 가방이 든든하다. 새 책을 번역하는 기분은 새로운 도시에 처음 발을 내딛는 기분처럼 언제나 두근거린다. 이 도시에 내가 모르는 즐거운 이야기가 더 많기를 바랄 뿐.


1만 3,895걸음. 작년에 번역가 작업실에서 나온 뒤부터는 작업하는 공간이 늘 고민이었다. 카페를 가자니 밥 먹기도 애매하고 오후가 되면 사람이 많아졌다. 도서관은 좀 답답하기도 하고 방역 시간이 있어 자리를 비워야 할 때도 있었다. 물론 집은 그보다 더 답답하고 침대가 너무 가까이 있다는 문제가 있었다. …… 여름처럼 더운 날이다. 날씨가 더워지니 2년 전 가을, 언니네가 사는 캄보디아로 떠났던 날이 떠오른다.


1만 9,883걸음. 작업료가 입금된 기념으로 함께 일한 선배가 밥을 사고 내가 커피를 사기로 했다. 오랜만의 이태원 약속. …… 오후에는 동네 친구의 생일 축하 겸 집들이 모임을 다녀왔다. 이사 당사자이자 생일자인 친구는 어제 미리 봐 둔 장으로 화려한 손님상을 차려냈다. 실컷 배부르게 먹고, 배도 꺼뜨릴 겸 불광천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나는 걸으며 여행의 감각을 기억해내려 한다. 새로운 골목과 나무와 풍경을, 친구와 함께 와야지 어느새 다짐하고 있는 식당과 카페를, 그리고 잊은 줄 알았던 여행자의 기분을.


반복적인 루틴에서 조금의 산뜻한 순간을 더한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준다.

이것 또한 여행이 아닐까 싶다. 집 밖으로의 여행!

누군가는 플랭크를 통해, 다른 누군가는 만 보 걷기를 통해, 또다른 누군가는 자전거를 통해, 달리기를 통해 집 밖으로의 여행을 떠난다.


나는 '산책'을 통해 즐기는 편이다.

어느 한 곳에 탁 내려놓으면, 그 순간부터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는 적당한 걸음을 유지하며 걷고 있는 그 곳들을 눈에 담는다.

언제부터 이렇게 걷는 것을 좋아하게 된 것일까?

생각이 많을 때, 여유로움을 느껴보고 싶을 때, 새로운 것을 담고 싶을 때, 그럴 때면 나는 무작정 걷곤 한다.




Ⅲ 기억에 기댄 여행


여행을 통해 남기는 모든 것은 곧 추억이 된다.

추억을 상기시킬 수 있는 좋은 기념품은 역시 사진이다.

휴대폰으로, 카메라로 곳곳을 담아내면, 이후 사진을 통해 그곳에서 있었던 일부터 감정까지 순식간에 되새길 수 있으니깐.


그 외에 꼭 챙기는 것이 있다면 엽서와 마그넷 그리고 영수증이다.

엽서와 마그넷은 그렇다치지만 누군가에게 영수증이라고 말하면 갸우뚱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영수증은 최고의 기념품 중 하나이다.

어차피 버리기에 대부분 영수증을 받지 않지만, 나는 다녀온 곳의 영수증을 테이핑처리하여 일기장에 붙여놓고 그 때의 기록을 한다.

기억을 상기시킬 때 영수증은 사진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주는 것 같아 모으고 있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진부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말이 아닐까. 다음 여행을 다 같이 기다린다. 반드시 찾아올 여행을.




나의 활동은 코로나가 딱 터지자마자 멈추었었다.

코로나에 호되게 당했었던 그 날들이 조금은 두렵게 느껴져 아직도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코로나도 잠잠해지는 추세이긴 하지만 아프기도 정말 아팠었고 지금도 후유증이 심한 편이라 아직은 무섭게 느껴지나 보다.


코로나 터지기 두어 달 전에 갔던 제주도 여행이 마지막 여행이었으니 반년 이상을 집과 병원에서만 맴돌았다.

한 두달에 한 번씩 갔던 미술관이나 전시회 그리고 꾸준히 VIP이었을 정도로 자주 갔던 영화관도 코로나 터지자마자 발길을 뚝 끊었으니깐.


그러다 6월 첫째주부터 조금씩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외식을 하고, 외출다운 외출을 하고, 여행을 하고, 극장을 가고.

원래의 일상인데 이 모든 것들이 올해 처음으로 한 일이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나 어디에 감금되어 있었던건가 싶을 정도로 헛웃음이 난다.

그런데 갇혀있었다는 느낌을 크게 받지는 않았다.

저자들처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나만의 방법들을 통해 답답하고 지친 마음을 나름 위로해줬었으니깐.


일상을 여행처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 습관을 잘 습득한다면 단순히 코로나때문만이 아니고 지친 일상 속에서 한 줌의 위로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오히려 코로나가 끝나는 시점에서, 온라인으로 이루어졌던 것들이 오프라인으로 다시 전환되면서 이전에 빡빡하게 느껴졌던 삶을 다시금 느껴야 할 수도 있으니깐 말이다.

생각해보라. 이전의 삶이 평범한 우리네 일상이긴 했지만 단점도 있지 않았던가!

오히려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면서 본인에게 정신적으로 이로웠던 점도 있었을 테니깐.


책상에 잔뜩 쌓아놓고 공부할 수 있었고,

책도 잔뜩 읽을 수 있었고,

그간 봤던 영화와 미드들을 다시 볼 수 있었고,

피아노, 가야금 외에 하프와 기타를 시작할 수 있었고,

마스크 꼭 쓰고 늦은 저녁 산책을 할 수 있었고,

마당 한 켠에 나만의 조그마한 텃밭이자 식물원을 만들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사진으로도, 글로도 남겼으니

나는 이미 여행자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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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6-16 00: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나님 지금은 괜찮으신가요?
코로나 후유증으로 고통 받으셨다니 ㅠ.ㅠ
유월 맑은 공기로 심신의 휴식과 평온을! 가득 채우시길 바랍니다.

여행은 이제(비행기 타고) 목숨을 걸어 야 하는 시대가 된것 같습니다 ㅎㅎㅎ

하나의책장 2022-07-13 21:27   좋아요 0 | URL
코로나 걸렸을 때도 정말 아팠었는데 이제는 후유증으로 고생중이니.. 참 답답해요ㅠ
몸이 아프다보니 잠수 아닌 잠수를 타게 되네요ㅎㅎ
저는 미각, 후각 돌아오는 것만 해도 6개월이 걸렸었는데 완벽하게 돌아오지는 못하고 후각 신경에 조금 이상이 있는 것 같아 시간이 약이라 생각하고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어요. 사실 후유증이라고 해도 별 것 없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ㅠ
정말, 건강이 최고임을 절실하게 느꼈던...^^

요새 정말 미국으로, 유럽으로 여행다녀오기 시작하더라고요.
많이 부럽긴 하지만 전 아예 백신을 안 맞은 상태인지라 해외여행은 지금도 여전히 꿈도 못 꿀 일이에요>.<

요새 코로나 확진자가 알게 모르게 더 늘어난 상태라 병원에서도 조심하라고 했으니 여름 휴가는 생략하고 추석 연휴가 끝난 이후에 상황 봐서 국내 어디라도 다녀오려고요ㅎ
scott님은 여름 휴가계획 있으신가요?
 
디지털 신세계 메타버스를 선점하라 - 앞으로 인류가 살아갈 가상 세계를 위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
자오궈둥.이환환.쉬위엔중 지음, 정주은 옮김, 김정이 감수 / 미디어숲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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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한 번쯤은 메타버스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지금에서야 엄청난 화제가 된 메타버스인데, 메타버스라는 개념이 시작된 것은 1992년이다.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우 크래쉬」는 현실세계를 떠나 온라인 속의 평행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이 두 세계에 대해 느낀 바와 깨달은 바를 묘사한 소설로 메타버스라는 개념을 처음 제기하였다.

그렇게 30년이 지난 지금, 메타버스가 엄청난 충격파를 줄 지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저자, 자오궈둥은 중관춘 빅데이터산업연맹 사무총장으로 국가발전 개발위원회 디지털 경제 신인프라 프로젝트팀 리더, 중국 인민대학교 디지털 경제 및 디지털전환연구센터 공동주임, 중국 컴퓨터학회 빅데이터 전문가위원회 위원, 민간 싱크탱크인 판구츠쿠의 발기인이자 학술위원을 맡고 있다.

저자, 이환환은 이구텐샤 대표이사 겸 화젠 사모펀드 CEO이다. 선완훙웬 증권연구소의 임원 및 궈진 증권사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중국 증권업계 과학기술 분석에서 손꼽히는 인물로 중국 금융기술 분야에서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바 있다.

저자, 쉬위엔중은 다산셩 그룹 대표이사이자 ZHIS-MAGS 창업 파트너로 중국의 비즈니스 네트워크 플랫폼 정허다오의 부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중국 청년기업가클럽 및 글로벌 인공지능 블록체인 30인 포럼의 발기인이다.




Ⅰ 다차원 가상 세계, 메타버스가 온다


하늘을 나는 새를 볼 때마다 '아, 나도 날개가 있었으면 좋겠다.'하고 부러워하며 하늘 끝까지 날아오르는 상상을 하곤 했다.

<아바타>에서 하늘을 나는 새 '이크란'을 부리며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장면을 본 관객들은 아마 '이게 바로 인생이지, 한없이 자유로운 인생!'하며 감탄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이런 경험은 메타버스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여가와 일상생활 및 업무를 영위하는 가상세계를 우리는 메타버스라고 부른다.

가상 상품의 생산부터 소비까지 플랫폼 안에서 이루어지는 순환적 산업 체인을 갖춰 가상 상품이 주거래 대상이 되는 독자적인 경제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메타버스의 기본 가치관은 이렇다. 모든 이용자가 함께 만들고, 함께 누리고, 함께 관리하는 것이다.

현재 전문가들은 15년 뒤에 인터넷이 일대 변혁을 겪을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즉, 전혀 다른 인터넷 시대를 맞이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메타버스는 현실사회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어 전통 문화와 융합하는 과정에서 인류 문명이 재창조될 수도 있다.


나는 게임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한때 남동생이 하는 스타크래프트에 맛들려서 잠깐 한 것이 전부였으니깐.

혹시 엔더 드래곤이 무엇인지 아는가? 크리퍼는?

모두 마인크래프트에 나오는 캐릭터들이다.

몰랐어도 한 번쯤은 나처럼 들어봤을 것이다. 나도 들어는 봤지, 어떤 게임인지는 잘 모른다.

마인크래프트는 게임 속 캐릭터들이 게임에서 생존하는 게임이라고 한다.

플레이어가 방심하는 틈을 타 공격을 시도하는 게임으로, 특이하다면 이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물체와 생물은 네모 블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심지어 태양까지도!

플레이어는 이 블록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며 플레이어들이 모여 이벤트를 열 수도 있다.

간결하기보다는 복잡해보이는데도 다들 이 게임에 열광한다고 한다.


게임은 단순히 게임이 아닌 경험이다?

로블록스는 설립 17년만에 지난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었다.

여기는 게임뿐만 아니라 게임을 제작할 수 있는 툴까지 제공하며 활발한 소셜 활동까지 지원하고 있다.

덕분에 플레이어는 자체적인 콘텐츠를 생성할 수 있게 되었고 로블록스는 독립적이고 폐순환적인 경제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

그래서 로블록스 내 콘텐츠 대부분은 아마추어 게임개발자가 만든 것이라고 한다.

게임을 하다가 플레이어들이 다양한 요구를 하면 또 그에 맞춰 크리에이터들이 신속하게 업그레이드를 시킨다.

이렇듯 끈힝멍ㅄ이 구축되고 변화하고 확장되기 때문에 플레이어들은 열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로블록스 경제 시스템의 방식에 대해 살짝 살펴보자.

이용자는 로벅스를 구매해 소비하고 개발자와 크리에이터는 게임을 만들어 로벅스를 획득한다.

여기서 로벅스는 게임에서 다시 사용할 수도 있고 재투자를 하거나 현실 세계의 통화로도 바꿀 수 있다.

이용자가 의상, 액세서리 등을 구입할 때 지불하는 로벅스는 그 아이템의 개발자에게 주어지고 이 과정에서 로블록스는 소정의 수수료를 받게 되는 것이다.

실제 통계를 보니 2020년 한 해에만 120만 명 이상의 개발자가 로벅스를 벌었고 이 중에서 1250명 이상의 개발자가 1만 달러 이상의 수입을 획득했다고 한다.

10만 달러 이상의 고소득을 올린 개발자도 300명에 달했다고 한다.

다만 로벅스로 의상 등을 구매한 후에야 수입을 확인할 수 있어 회사가 로벅스를 판매하는 것돠 매출을 확인하는 데에는 시차가 존재한다.

로블록스는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 순이익을 실현하진 못했다.

이는 플랫폼과 커뮤니티 정비를 위한 투자, 즉 크리에이터와 개발자에 대한 보상에서 비롯된 손실이다.

비용 구조에서는 이미 플라이휠 효과를 내고 있으니 더 많은 개발자가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내면 결국 플랫폼은 더 많은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로블록스에 대한 설명이 꽤 길었지만 이유가 있다.

바로 로블록스가 '메타버스'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자사의 증권 신고서에 써넣은 회사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우리를 메타버스의 범주 안에 넣는다. 이는 가상 우주 속에 지속적으로 공유하는 3차원 가상 공간을 묘사하는 용어다."

메타버스는 매번 향상되는 성능의 컴퓨터 설비, 클라우드 컴퓨팅,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이 출현하면서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로블록스는 이미 초기 형태를 갖춘 셈이다.

또한 로블록스는 Identity(신분), Friends(친구), Immersive(몰입), Low Friction(저마찰), Variery(다양성), Anywhere(어디서나), Economy(경제), Civility(문명) 등 메타버스로 향하는 8가지 핵심 특정을 밝혔다.


경험의 다양성 측면에서 가상 세계는 현실의 물질세계를 넘나들고 있다.

즉, 메타버스의 특성 중 하나는 물질세계를 초월한 경험이 진실하다는 것이다.




Ⅱ 메타버스 경제학


'마음이 있으면 꿈도 있는 법, 세상에는 아직 진실한 사랑이 있어. 성공과 실패로 자신을 판단하다니, 인생 꿋꿋하게 살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

이게 바로 메타버스다.


전통 경제학은 실물 상품을 다루고 메타버스 경제학은 가상 상품을 다룬다.

디지털 경제는 실물 상품의 디지털화 과정을 포함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메타버스 경제학은 디지털 경제의 유기적 구성 성분으로 가장 역동적이면서도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메타버스 경제의 4대 요소는 디지털 창조, 디지털 자산, 디지털 시장, 디지털 화폐다. 메타버스 경제는 계획과 시장의 통일, 생산과 소비의 통일, 규제와 자유의 통일, 행위와 신용의 통일을 실현한다.


영화 「아바타」에서 인간들은 아름다운 판도라 행성을 차지하려고 한다.

판도라 행성에는 거대한 체구의 나비족을 길러내고 있었다.

인류 발전 단계에 따라 분류하면, 나비족은 말그대로 원시시대에서 살아가는 이들이다.

중요한 것은, 판도라 행성에서 나비족은 사냥과 채집만으로도 '안락하고 풍족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책에서 말하는 전통 경제학의 의미는 이렇다.

일상생활에서의 수요와 상품을 거래하는 시장, 화폐 그리고 이를 위해 마련된 제도적 장치인 재산권, 법률 등과 같은 경제 질서를 의미한다.

디지털 기술을 빌려 만든 제품을 우리는 디지털 제품이라 일컬으며, 디지털 제품의 창조, 교환, 소비 등 디지털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경제 활동을 메타버스 경제라 부른다.

즉, 메타버스 경제의 규칙을 연구하는 학문이 메타버스 경제학이다.

메타버스 경제학은 논할 때는 전통 경제학의 제약 조건은 무시해도 된다.

메타버스 내 사람과 제품은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쳐 특정 관념을 만들었고 이것이 현실 세계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여 더 나아가 실제 사람들의 행동까지 바꾸는 결과를 낳았으니, 결국 메타버스 경제학도 더 큰 사회적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Ⅲ 메타버스의 초대륙을 선점하라


대규모 디지털 시장을 창설해 아름답고 환상적인 메타버스 세계로 진입하려면 단순하고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창조 툴을 마련해 사람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 줘야 한다.

통일된 공동 플랫폼을 마련해, 한 번 창조되면 범우주적으로 통용되게 해야 한다.

이렇게 생산된 디지털 제품을 실제 가치를 지닌 디지털 자산으로 만들어야 한다.

메타버스의 번영은 무엇보다 디지털 기반시설 구축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인해 유럽의 세력 확장을 위한 공간을 마련했듯이 메타버스 시대에는 새로운 초대륙이 탄생할 것이다.

메타버스에서의 초대륙은 디지털 창조, 디지털 자산, 디지털 거래, 디지털 소비 등 기본 요소를 제공함 플랫폼을 말한다.

예로서, 게임에서는 로블록스 플랫폼을 초대륙으로 꼽을 수 있겠다.


초대륙은 메타버스의 기반시설로 물리층, 소프트웨어층, 데이터층, 규칙층, 애플리케이션층을 포괄하는데, 이는 서로 영향을 미치고 발전을 촉진하며 함께 진화하게 된다.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이렇다.

메타버스에서 한발 물러나, 전통 산업의 업그레이드와 디지털 전환을 살펴보면 모두 자체적으로 초대륙을 건설해야 하며 산업의 측면에서 기업을 생각해야 한다.



2021년 3월 10일, 샌드박스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가 메타버스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증권신고서에 써넣었었는데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성공적으로 상장된 것이다.

상장 첫날부터 시가총액 400억 달러를 돌파하여 그야말로 과학기술계와 자본시장을 뒤흔들게 된다.


사실 이렇게까지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고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100년도 아니고 불과 몇 십년 전만 해도 우리의 생각을 담는 것은 2차원 형실이었다.

지금은? 3차원이다.

우리가 생활하는 이 모든 공간이 3차원이다.

문자메시지와 통화만 가능했던 휴대폰을 시작으로 지금은 휴대폰으로 신용카드 결제까지 할 수 있으니 웬만한 모든 것은 다 할 수 있다.

가짜를 진짜로 여길 때, 진짜는 가짜와 같아진다.

있는 것을 없는 것으로 여길 때, 있는 것은 없는 것과 같아진다.

세계는 이미 융합발전의 시기로 접어들은 지 오래이다.

뛰어난 제품으로 시장을 휩쓸던 시대는 이미 지났으니 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생태계를 창조해야 하는 것이다.

메타버스에 대한 나의 인식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봐야할 것 같다.


콜럼버스가 말했다. 우리가 마음속에 희망의 대륙을 굳게 담고 있기만 한다면 틀림없이 폭풍우를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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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오브제 - 사물의 이면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궁리가 있다
이재경 지음 / 갈매나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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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당신은 무엇을 수집하시나요?

수집에 취미가 없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남들처럼 평범하게 모으는 무언가 혹은 상상치도 못한 특별한 무언가를 모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오브제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용품이나 예술과 무관한 물건을 본래의 용도에서 분리한 후 작품에서 사용해 새로운 느낌을 일으키는 물체를 일컫는다.

즉, 사물 하나에도 사연을 가지게 된다.


어쩌면, 막연히 평범해보이는 오브제지만 번역가인 저자에게 사물 하나도 이야기로 보이는 것만 같다.

그 이야기를 읽다보면 마치 고전부터 현대를 배경으로 타임슬립하며 영화 한 편 보는 기분이 들 것이다.


저자, 이재경은 서강대학교 불어불문과를 졸업했다.

경영컨설턴트와 출판 편집자를 거친 월급쟁이 생활을 뒤로하고, 2010년 전업 번역가가 됐다. 번역가는 생각한 만큼, 겪은 만큼, 느낀 만큼 번역한다.

자기객관화와 감정이입에 동시에 능해야 한다. 그간의 내 이력이 밑천이요, 비전공자로 산 세월이 저력이었다.

어느덧 번역이 가장 오래 몸담은 직업이 됐다. 밑천이 바닥날까봐 번역가의 참호 안팎에서 틈틈이 소소한 모험을 추구한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거기서 얻은 발상과 연상을 기록한다.

산문집 『젤다』, 시집 『고양이』, 고전명언집 『다시 일어서는 것이 중요해』를 엮고 옮겼고, 『편견의 이유』 『쓴다면 재미있게』 『깨어난 장미 인형들』 『민주주의는 없다』 『바이 디자인』 『소고기를 위한 변론』 『가치관의 탄생』 『셜로키언』 『뮬, 마약 운반 이야기』 등 50권 넘는 책을 번역했다.




Ⅰ 소소한 모두스 오페란디


지난 시대의 실용, 장식이 되다! 【뱅커스 램프】

"특정한 분위기가 있지만 놀랍게도 어느 공간에나 어울린다. 묵직한 마호가니 책상 위에 올라앉아 있어도 멋스럽고, 차가운 철제 가구 사이에서도 멋진 포인트가 된다. 어둠 속에서는 고양이 눈처럼 빛나고, 데이지 화분 옆에서는 더없이 정겹다."

초록색 유리 갓과 황동 받침대 그리고 쇠줄 스위치가 달린 탁상용 전등!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영미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아이템으로 일명 뱅커스 램프이다.

뱅커스 램프는 영롱한 초록색 유리 갓이 포인트로 안쪽은 오팔처럼 유백색이고 바깥쪽은 에메랄드빛이라 불을 켜면 아늑하게 밀도감 있는 빛이 생긴다.

그렇다면 왜 뱅커스 램프라 불리우는 것일까? 은행보다는 법정과 도서관에 더 많이 등장하는 느낌이던데 말이다.

분명한 것은 녹색이 피로를 덜어주는 색이기에 아마 장시간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애용했을 것이고 은행업 종사자를 비롯해 장시간 장부를 보며 계산하는 사람들이 녹색 바이저를 쓰고 일했다는 것이다.

초록색 갓이 달린 전등을 뱅커스 램프라고 부르게 된 데에는 이렇게 시력 보호용 바이저라는 꽤 실용적인 연결고리가 있다. 아니, 있다고 추정한다.



참을 수 없는 수집의 가벼움! 【페이퍼백】


책을 정리했다. 눈 딱 같고 정말 많이 버렸다. …… 20대부터 가방에 늘 한 권씩 넣고 다니며 출퇴근길에, 카페에서 누구 기다릴 때, 짬짬이 버릇처럼 읽던 작은 책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쓰인 텍스트와 '먹고사니즘'과 상관없는 내용은 뇌의 정보처리 프로세스가 평소 닿지 않던 구석들을 은밀하게 자극하는 쾌감을 주었다.


페이퍼백은 대중적 수요가 있는 책을 값싼 종이로 다시 찍어낸 보급판 종이커버 책을 말한다. 즉, 하드커버, 페이퍼백 두 가지로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양장본 아니면 반양장본 식이라 외국과는 조금 다르다.

나 또한 외서를 구입할 때 소장가치가 있는 것은 하드커버로 구매하고 단순히 읽기만 할 책들은 페이퍼백으로 구매한다.


나는 페이퍼백 책들을 한참 버리다가 문득 미련이 생겼다. 그래서 마지막 몇 권은 충동적으로 표지를 뜯어내고 버렸다. 표지만 남겨서 뭐할 건데? 나중에 메모장 만들 때 표지로 쓰자. 아니면 북마크로 활용? 아니면 카드 대용으로? 껍데기의 용도 변경. 껍데기의 재해석.


저자의 말처럼 참 동감하는 것이 사람의 수집욕이란 참 묘한데서 황당한 핑계로 발동한다.

사실 나도 이렇게 책을 수집할 줄은 몰랐다. 지금은 북카페를 차릴 정도의 책을 가지고 있으니 10년, 20년 후에는 도서관을 세워야 할 지도 모르겠다.

책장으로 데려온 만큼 선물하고 버리고 팔고 있는데도 금세 채워지는 건, 내 책장에 꼬마 마법사가 숨어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페이퍼백들의 표지만 남겨둔 것도 한때 읽은 것에 대한 일종의 목록화다. 하지만 거기에는 가치의 고백(의지)도 선혐의 발현(운명)도 없었다. 그저 충동적 미련이 남긴 경험의 조각들이었다.


책을 읽고 수집하기도 하지만 책에 있어서 꼭 수집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책을 찍은 사진이다.

사람도 프로필이나 증명사진을 찍듯이, 나 또한 새롭게 들어오는 책들의 사진을 꼭 남겨준다.

예전에는 책표지를 인쇄하여 독후감을 쓴 후에 붙여넣는 식으로 글쓰기 노트를 채워갔었는데 나의 실수로 인해 글쓰기 노트 절반 이상이 쓰레기통 신세가 되어 그 때 이후로 방식을 바꾸게 되었다.

남기다 보면, 쌓여가는 기록물이 되고 이는 추억을 가지고 있으며 결국 '나'를 표현하기도 하니깐.



Ⅱ 일상의 궤도 밖에서


지구 서식자의 행복! 【에스프레소】

1996년 7월, 나는 브장송을 떠나며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들이켰다. 프랑스에서는 그냥 "커피 주세요." 하면 우리가 아는 에스프레소가 나온다. 커피가 곧 에스프레소다.


우리나라에서 밥을 깨작거리는 것만큼 프랑스에서는 커피 한 잔을 오랫동안 홀짝 거리는 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에스프레소와 에스프레소 음료, 그 중 카푸치노를 수없이 마셨다는 저자는 특히나 20대의 어느 여름 브장송 기차역에서 3.8프랑 내고 햇빛에 하얗게 빛나는 플랫폼을 바라보며 선 채로 마셨던 그 에스프레소가 최고였다고 찬사한다.

그 때만 해도 번역가가 되어 처음 번역하는 책이 커피의 역사에 관한 책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하니 인상깊었던 첫 경험은 평생 가는 것 같다.


에스프레소는 원두를 곱게 갈아 다져 넣고 뜨거운 물을 고압으로 통과시켜 빠르게 추출하는 커피로 열대 원시림의 축축한 바닥에서 자라던 작은 나무가 커피 전용 추출 기계의 발명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16세기 말, 커피콩이 유럽 대륙에 처음 상륙했지만 커피머신은 파리 만국박람회에 처음 등장하였으며 이후 이탈리아 장인들의 손을 거치며 발전되었다고 한다.

espresso는 이탈리아어로 '특급'을 의미하는데, 십여 초만에 커피가 완성되는 추출 속도를 반영한 이름이다.

또한 '특별히'라는 뜻도 가지고 있는데, 주문 순서대로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한 잔씩 뽑는 것이니 이 의미도 들어맞다.


저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에스프레소는 지구 서식자의 행복이라고.

삶의 애착을 일으키고 무위에 짜릿함을 주고 집중의 고통을 덜어주는 각성의 영약이라고.



도시 산책자의 자의식! 【트래블러 태그】

트래블러 태그는 여행자의 신분을 부여함으로써 능동적 자기 보고라 할 수 있다.

초현실의 경험을 제공해주는 여행자의 신분을 제대로 누린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소설가 스콧&젤다 피츠제럴드 부부이다.

집 없이 유럽과 미국의 호텔들을 전전하며 살았다고 하는데, 젤다는 호텔을 "세상사에 포위된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렇다. 여행자의 신분이 되면 생활에서 분리되어 관찰자의 자의식을 얻게 된다.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어질수록 여행이 더 간절해진다.

그래서 여행은 언제나 설레고 참 좋을 수밖에 없다.



Ⅲ 욕망의 부득이함


시간을 밀봉하다! 【차통】

땅이 넓고 생산물이 다양해 자국 생산만으로도 충분했던 중국은 아쉬울 게 없었다.

17세기 중반, 중국 차는 포르투갈에서 시집온 왕비를 통해 영국 왕실에 처음 소개되었다.

그 이후로 차 문화가 왕실에서 귀족층으로 퍼졌고 산업혁명 이후에는 중산층, 서민층에게까지 퍼지면서 차 수입량이 크게 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차' 문화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중국이 아닌 영국부터 떠올리게 된다.

중국과 맞교역할 수 있는 아이템이 없었던 영국은 그 금액을 은으로 지불하면서 심한 국부 유출을 겪었는데 이를 뒤집기 위해 수를 쓰게 된다.

바로 인도에서 생산한 아편을 중국에 밀수로 유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 인해 중국은 영국의 차 열풍보다 더 빠른 속도로 아편에 중독되었고 이를 눈뜨고 볼 수 없었던 청나라의 선종이 아편 반입 금지령을 내리게 되면서 특단의 조치를 취하게 된다.

이를 영국이 그냥 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빅토리아 왕은 곧장 전쟁을 일으켰고 1842년 아편전쟁에서 패한 중국은 반식민지 상태로 떨어지게 된다.

전쟁이 나도 티타임은 꼭 해야 할 만큼 영국인의 차 사랑은 매우 대단했다고 전해진다.

저자는 이 차보다 티캐디로 불리는 차통에 더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사치품이었던 차는 주인이 차통 뚜껑에 자물쇠를 달아두고 안주인이 직접 보관하면서 차를 냈다고 알려져있다.

그래서 부엌이 아닌 응접실에 어울려야 했기에 차통은 매우 화려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저자는 차는 꼭 향수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원래의 용도를 다한 후에도 녹을 훈장처럼 달고 추억과 앞날을 모아두는 용도로 쓰이니 담아둘 수 없는 것들을 담아두려는 인간의 노력 가운데 꽤 성공한 케이스라고.


대학교 때, 예쁜 카페에 가서 먹었던 홍차가 나의 첫 홍차라 할 수 있겠다.

밀크티는 먹어봤지만 순수하게 우린 홍차를 처음 마셨을 때의 느낌은 딱 이랬다.

'이게 무슨 맛이지?'

절로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면서 순간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커피만큼이나 차를 좋아하고 차에 대해 이해도가 높았던 언니에게 홍차를 배웠고 차츰 그 맛과 향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그 때, 한창 틴케이스도 모으면서 커피보단 차를 많이 마셨었었다.

특히 버찌 그림이 있는 카렐 티를 참 많이 마셨는데, 마지막으로 언제 마셨었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4-5년 전에 시즌티를 직구해 마셨던 것이 마지막인 것 같다.

차통은 브랜드별로 특색있게 예쁘다보니 모으는 재미가 있긴 하다.

집에 있는 차통도 꽤 오래되었는데 시즌 틴케이스는 창고에 보관하고 나머지는 연필꽂이로 활용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저자의 마지막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차통은 원래의 용도를 다한 후에도 녹을 훈장처럼 달고 추억과 앞날을 모아두는 용도로 쓰인다. 담아둘 수 없는 것들을 담아두려는 인간의 노력 가운데 차통은 꽤 성공한 케이스다.




'검색'을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을 꼽자면, 번역가인 저자를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직업적인 이유때문에도 검색하는 것이지만 이를 통해 수많은 정보를 이해하고 터득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사물 하나하나에 이야기가 담겨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그녀는 사물이 지닌 물성을 넘어 감성을 소유하기까지에 이르게 된다.

갖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수집 이야기가 이렇게 시작된다.


당신은 무엇을 수집하시나요?

수집에 취미가 없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남들처럼 평범하게 모으는 무언가 혹은 상상치도 못한 특별한 무언가를 모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오브제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용품이나 예술과 무관한 물건을 본래의 용도에서 분리한 후 작품에서 사용해 새로운 느낌을 일으키는 물체를 일컫는다.

즉, 사물 하나에도 사연을 가지게 된다.


“매일 언어의 국경에서 텍스트가 건널 다리를 짓고 그림자처럼 참호 속에 숨습니다.”

사물 뒤에는 문화적 맥락이 쌓여 있을 때가 많다. 사물에 붙은 이름과 그것이 일으키는 심상도 그 맥락들과 무관하지 않다.

…… 우리가 읽는 텍스트는 거기 등장하는 사물들 뒤의 사연들까지 모두 합쳐서 완성된다.


엄마도, 동생들도 내 방에만 오면 꼭 하는 말이 있다. 바로 신기하다는 것이다.

뭐 하나만 톡 건들이면 보물이 쏟아져 나오듯이 볼거리가 많아 이것저것 헤쳐보면서 구경하고 싶다는 것이다.

외할머니께서 그리고 엄마가 물려준 오브제도 물려받아 잘 보관하고 있을 정도로 희한한 것도 참 많다.

이 외에도 물건으로 보관하기 힘든 것들은 꼭 사진으로 남겨 보관한다.

그 사진이 곧 그 물건이리라.

앨범 속 사진 하나하나를 짚어내면 그것과 나의 추억을 저절로 읊게 되는 것이다.

수집가는 꼭 온전하게 사물의 모양을 유지시키며 보관할 필요는 없다.

저자의 말처럼 단순히 사물을 소유하는 것을 넘어 사물이 지니고 있는 이야기 그리고 감성까지 수집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물의 뒤를 캐다 보면 고전부터 대중문화까지 인문의 다양한 분야가 두루 소환된다. 사물을 매개로 현실과 환상이 만나고, 지식과 감상이 얽힌다. 범주화가 없는 대신 교차점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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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역사산책 : 한국사편 골목길 역사산책
최석호 지음 / 가디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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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나를 찾아 역사를 걷는다.

한반도를 걷는다.

한국인의 혼을 걷는다.


기생충과 봉준호 감독님, K-POP, BTS 그리고 오징어 게임 - 전세계인들은 대한민국을 이렇게 기억할 것이다.

지금은 전세계인들에게 문화적으로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각인시켰지만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를 모르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미국에서 잠깐 아카데미에 다닐 때 선생님께 일대일 수업을 받을 때였다.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대해 들어봤어요. 다만 김치 정도밖에 모른다는 게 참 아쉬워요.'

'대한민국에도 유명한 명소가 있나요?'


만약 이런 질문을 실제로 받는다면 어디를 소개시켜 줄 것인가?

물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현대적인 명소도 좋지만, 역사를 흠뻑 느낄 수 있는 명소 몇 군데는 제대로 알아둬야 하지 않을까?


저자, 최석호는 고려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레저관광사회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영국 노팅엄 트렌트 대학교에서 유산관광을 전공하고 문화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레저경영연구소 소장과 서울신학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관광세계화·문명화과정·엔터테인먼트산업 등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UN 여가 관련 자문을 맡고 있는 World Leisure Organization의 학술지『World Leisure Journal』국제편집자문위원, 중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World Hotel Association 부회장, 한국문화사회학회 부회장 등을 맡고 있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장을 역임했다.




Ⅰ 남촌 대한민국길 산책


계획적으로 만들었다기보다는 한 걸음씩 발로 밟아서 다진 동네다. 그래서 한양은 남촌 사람 동네고 조선은 남촌이다. 외세가 쳐들어와서 나라를 빼앗는다면 되찾을 때까지 다툴 것이다. 남촌 사람들은 독립 전쟁 선봉에 선다. 되찾은 나라를 독재로 얼룩지게 한다면 민주주의를 회복할 때까지 싸울 것이다. 남촌길은 민주주의로 가는 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길이다.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제국주의 도시체제로 변화하게 된다.

일제는 구리를 황금으로 바꾸고 동을 정으로 바꿔 중심으로 삼아 수도를 뜻하는 글자 경과 마찬가지로 중심에서 여섯 방향으로 길을 낸다.

남산 예장자락에 통감부를 짓고 남산 회현 자락에 조선신궁을 짓는다.

'신성하게 높이 솟은 울' 서울은 빼앗기고 이내 경성이 되어, 남촌은 식민통치의 수도가 되고 만다.

이후 광복을 되찾고도 1년이 지난 뒤에야 경성은 다시 서울이 된다.

덧붙이자면, 당시 서울시를 우남시로 하자는 사람들의 압박이 있었다고 한다.

우남시? 뜬금없이 왜 우남시가 나온 것일까? 바로 우남은 이승만의 호이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서울역에는 역사가 두 개나 있다.

서울종합민자역사는 KTX개통과 함께 만들어졌고 구 서울역사는 경성역이라는 이름으로 1925년에 지어졌다.

이때, 일제는 일본 시모노세키와 조선 부산을 부관페리로 연결하고 부산에서 만주까지 철도를 부설한다.


서울역의 생김새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일본 중앙역인 동경역으로, 경성역은 조선과 만주의 중앙역이다.

동경역사는 암스테르담 중앙역사를 본떠 만들었는데 서울역사는 동경역사를 본뜨게 되었다.

르네상스풍 절충주의 양식으로 근대와 전통이 섞어져 있다.

자세하게 말하자면, 철골과 벽돌 쌓은 것은 근대적이고 돔과 첨탑은 고전적이다.

즉, 서구적 기준으로 표현한 것이다.

사실 서울역 앞에서 버스를 타거나 서울역에서 열차를 탔기에 딱히 둘러볼 생각은 전혀 하질 못했었다.

서울역에는 동상 하나가 있다고 한다.

바로 강우규 의사의 동상이다.

가난한 농가에서 네 남매 중 남매로 태어나 친형에게 한학과 한의학을 배웠다고 한다.

애국운동에 관여하면서 신변에 문제가 생기자 송원 중심가 남문거리에서 잡화상을 운영했다고 한다.

다른 상인들에게 돈을 꿔 주기도 하고 예컨대 이동휘 선생이 함경도를 순회할 때면 그의 집에서 종종 머물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 경술국치를 당하자 독립운동에 헌신하셨다고 전해진다.

북간도 근방으로 이주하여 한약방을 운영하면서 교회를 세웠고 이후 북만주로 이주하여 동포마을인 신흥동을 개척하여 러시아에 있는 우리 독립운동 단체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또한 광동학교를 세우고 직접 교장을 맡아 조선인 자제를 교육하는데 전념했다고 한다.

이후 일제에게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 갇히게 되었는데 일제는 오히려 강우규 의사의 사형을 집행한 뒤 불어 닥칠 후폭풍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판사마저 처음에는 피고라고 부르다 선생님 또는 영감님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지니깐.

이후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짤막한 시를 남기고 유명을 달리하셨다고 한다.




Ⅱ 운주사 고려길 산책


운주사 하늘에 별은 빛나고 그 아래 땅은 아름답다. 누구든 운주사에 들어가면 고려 신선이 된다. 고려 하늘을 날아 빛나는 별과 아름다운 땅을 내려다보며 노닌다. 서울에 북악 스카이웨이(하늘길)가 있다. 화순에는 고려 스카이웨이가 있다. 오직 우리나라에만 있는 고려길을 걷는다.


광주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을 달리면 운주사라는 곳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한다.

운주사는 아마 생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불교와 아무 관련 없는 이름이다.

운주사 앞 주차장에 내려 경내로 들어서면 일주문이 사람을 맞이한다. 희한한 것은 불이문도, 사천왕문도 없다고 한다.

본래 사찰이라면 일주문 뒤에 불이문이나 사천왕문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애초에 운주사는 불교 사원으로 기획된 것이 아니다. 중앙정권과 지방토호 간에 정치적 이해를 공유하면서 빚어낸 도관(도교사원) 중 하나이다.


"운주사 : 천불산에 있다. 사찰의 오른쪽 왼쪽 산등성이에 석불과 석탑이 각각 천 개가 있다. 또한 석실에 석불 두 개가 서로 등지고 앉았다." _《신증동국여지승람》


"운주사 : 천불산 서쪽에 있는데 사찰이 오래전에 폐해졌다. 그 왼쪽 오른쪽 산기슭에 석불과 석탑이 크고 작은 것이 심히 많아 이를 천불천탑이라 부르며, 또한 한 석실이 있는데 그 안에 두 개의 석불이 벽을 격하여 서로 등을 대고 앉아 있다. 백성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신라 시대 때 조영한 것이라 한다. 혹은 고려 승려 혜명이 따르는 이들 수천 명으로 하여금 만들었다고 한다." _《동국여지지》




Ⅲ 강릉 조선길 산책


…… 변치 않는 것도 많다. 오죽헌·율곡기념관·선교장·경포대……. 신사임당 그림 그리던 곳이다. 율곡 선생 나신 곳이다. 허초희 시를 짓던 곳이다. 허균 젊은 시절 기억이 서린 곳이다. 효령대군 후손들이 정착한 곳이다. 강릉에서 변치 않는 것은 한결같이 역사와 관련된 것들이다. 모두 조선 시대와 관련이 있다. 그래서 강릉에서 걷는 길은 조선길이다.


강릉은 본래 예국 땅으로 고구려는 하서량 또는 하슬라주라고 불렀다.

신라 지증왕때, 하슬라주 군주가 된 내물왕 4대손 이사부가 꾀를 내어 우산국을 합쳤다.

우산국 사람들은 쉽게 항복받기 어려울 정도로 사나워 계략으로 복속시키기 위해 나무로 가짜 사자를 많이 만들었었다고 전해진다.


강릉에서 사는 사람들은 좀상날 달과 좀생이별 사이 거리를 보고 한 해 농사를 점쳤다고 한다.

좀생이별이 달을 바짝 따라가면 흉년이 들고 떨어져서 따라가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었던 것이다.

(여기서 달은 밥통이고 좀생이는 밥을 얻어먹으려고 따라다니는 아이들을 뜻한다.)

"강릉 사람이 이처럼 별자리에 밝았던 것은 하늘 자손이기 때문이리라."


'강릉'하면 역시 '오죽헌'이 대표적으로 떠오른다.

신사임당의 셋째 아들이 율곡은 어머니 신사임당이 오죽헌에서 용꿈을 태몽으로 꿨었다고 한다.

효심이 지극했던 율곡은 어머니인 신사임당이 세상을 떠나자 3년간 여묘살이를 하고선 금강산으로 들어가 승려가 된다.

이후 21살 되던 해에 율곡은 한성시에 급제하고 다음해에 정3품 성주목사 노경린의 딸인 곡산 노씨와 결혼하게 된다.

그 이후 장인을 찾았다가 예안 도산서원에 들려 퇴계를 만나게 된다.

퇴계는 율곡의 사람됨과 똑똑함에 만힝 놀랐다고 한다.

"노력하고 공부하여 날로 새로워지자"라고 당부할 정도였으니깐.

율곡은 을사삭훈을 통해 왜곡된 정치를 바로잡고 개혁을 통해 백성을 편안케 하고 동서분당을 조제보합함으로써 그 폐해를 막고 변방을 튼튼하게 지켜 오랑캐가 넘볼 수 없는 나라를 만들고자 했다.


서울시에서 친일매국 조각가 김경승이 만든 안중구 의사 동상을 철거했었다.

이어 서울특별시 강남구에서 설치된 도산 안창호 선생 동상, 국회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 그리고 정읍시에서 전봉준 장군 동상 등 김경승이 만든 동상 철거 및 교체가 줄을 잇고 있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강릉시에서는 친일매국노가 그린 영정을 교체했으면 하는 저자의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 율곡 선생께서 살아계신다면 친일매국 화가에게 당신을 그리라고 하지 않았을 테니깐.




Ⅳ 경주 신라길 산책


알타이 적석목곽분으로 웅대한 역사를 말한다. 한혈마를 타고 드넓은 스텝루트를 달린다. 동아시아 바다를 장악한다.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를 두루 잇는다. 당나라에 신라마을을 경영한다. 페르시아 사람이 춤을 춘다. 박트리아 황금비도가 빛을 발한다. 로마와 시리아 유리로 아름답게 장식한다. 경주가 아니라 신라 왕경이다. 가장 약한 나라가 아니라 삼한일통 대업을 달성한 동아시아 최강국이다. 신라는 왕도에서 세계를 경영한다. 신라에서 우리는 세계를 걷는다. 세계로 가는 신라길!


태종무열왕인 김춘추는 곧장 왕위에 오를 생각은 없었다. 인맥을 두텁게 하여 신뢰를 쌓고 적국인 고구려로 가 친구를 사귀었다.

이후 선덕왕과 진덕왕을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도운 후에야 왕위에 올랐으니 그 기간이 무려 43년이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도 문화도 군사력도 오래 갈고 닦은 것만 같았다.

로마 유리와 페르시아 유리를 응용하여 신라 유리를 만들었으니 신라황금과 합금강철은 신라가 어떤 나라인지 신라인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중국에서 난리를 피해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을 살게 해주기도 했다.

서역 사람이 원성왕 괘릉을 지켰고 아랍 사람이 왕 앞에서 나와 노래하고 춤추기도 했으니 그야말로 세계 문화인들이 함께 했던 것이다.

신라는 승리에 도취되지 않고 또 다른 내일을 준비했었다.

온 세상을 한 곳에 모아 놓았으니 경주는 세계 문화도시이며, 세계 문화도시 중에서도 최고여서 황금도시라 할 수 있겠다.

즉, 경주는 세계 문화인이 만든 황금도시이다.


대릉원은 신라 최대 무덤군으로 천마도를 발굴한 제155호 천마총과 남분 및 북분으로 쌍북을 이룬 제98호분 황남대총은 단연 으뜸이라 할 수 있다.

1973년 4월부터 12월까지 진행했던 발굴조사가 온 나라를 발칵 뒤집는다.

일제가 천마총 꼭대기에 대공초소를 설치했었는데 1971년까지 그대로 있었기에 이를 제거하고 나니 자갈층이 드러나게 된다.

신라 고분은 고구려나 백제 고분보다 도굴이 덜 됐었다.

그렇게 파고 보니 자갈층 밑으로 굳게 다진 점토층이 나온 것이다.

그리고 무덤방이 나타나게 된다.

유리구슬, 큰고리귀걸이, 작은고리귀걸이, 나비모양금관꾸미개 등을 발굴하게 되면서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게 된다.

우리 역사를 다시 써야 할 만큼 국보급 부장품들이 끝도 없이 쏟아졌고 그렇게 끝인가 싶었는데, 끝이 아니었다.

세상을 더욱 놀라게 만든 것은 부장품 상자 안에서 나오게 된다.

아열대 고동 껍질로 만든 말띠 꾸미개, 대나무로 장식한 금동판 말다래, 코발트색 유리잔 및 녹색 유리잔, 청동 다리미 등과 함께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천마도 말다래와 새그림판을 발굴한 것이다.

그리고 대미를 장식한 것이 바로 '천마도'이다.

사실 금동판 말다래를 보존 처리하기 위해 뿌린 약품 때문에 하마터면 천마도를 못 볼 뻔했다고 전해진다.

다행히 천마도 말다래가 두 장이어서 아래쪽에 있는 말다래 천마도를 무사히 수습했던 것이다.

제128분에서 금관이 나왔으므로 금관총, 제129호분에서 봉황으로 장식한 금관이 나왔으므로 서봉총이라 하였고 천마도가 나왔으니 제155호분은 천마총이다.

천마총에서 발굴한 천마도의 시원형은 고구려 덕흥리 벽화고분 북쪽 천장 천마도이다.

천마총 천마도는 갈기와 꼬리털이 수평을 이루며 날리고 있기 때문에 무용총 천마도와 가장 비슷하다고 전해진다.




마치 내가 걷고있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이렇게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는 책이 있었던가.


산책과 드라이브를 좋아해 장소 하나 딱 정해놓고 그 근방을 천천히 걸으며 눈에 담곤 한다.

코로나 터지기 전 그 해 여름날, 엄마와 함께 강릉에 갔다왔었다.

가족들과 함께 지난 해에 강릉에 다녀온 기억이 선해 엄마와 함께 시간을 맞춰 단둘이 KTX를 타고 조금 먼 산책에 나섰었다.

바다 한 번 보다가 신선한 해산물로 요기하고, 바다 한 번 보다가 커피 한 잔씩 시켜놓고……

그렇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걷고 또 걸었다.

하루를 꼬박 선선한 바람, 따스한 햇살 그리고 바다 내음과 함께 보냈었다.


미국에서 잠깐 아카데미에 다닐 때 선생님께 일대일 수업을 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내게 말하셨다.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대해 들어봤어요. 다만 김치 정도밖에 모른다는 게 참 아쉬워요.'

'대한민국에도 유명한 명소가 있나요?'


만약 이런 질문을 실제로 받는다면 어디를 소개시켜 줄 것인가?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는 현대적인 명소도 물론 좋지만 대한민국의 역사를 흠뻑 느낄 수 있는 명소도 절대 빠뜨려선 안 된다.


그 때, 나는 여러 장소 중 가장 처음 입을 열었던 장소가 바로 '고궁'이었다.

국어, 영어, 한국사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었기에, 고궁 곳곳에 대해 짤막하게 설명하며 사진도 보여줬었는데 다채로운 색감은 물론 미국에선 볼 수 없는 문화재에 선생님이 감탄하셨던 기억이 선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버릴 것 없는 내용이라 꼭 읽어봤으면 한다.

요새 멀리 나가지도 못하고 있는데, 고궁 나들이는 물론 강릉과 경주에도 한 번 다녀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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