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유전자 - 풍요가 만들어낸 새로운 인간
에드윈 게일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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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과거 로봇이나 인공지능에 관한 영화에서 던지는 메시지를 잘 생각해보자.

인간이 만들었으나 인간이 굴복당한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는 것도 결국은 인간이다.

찰스 다윈은 말했다.

"살아남는 것은 가장 힘센 종도, 가장 영리한 종도 아니요, 변화에 가장 잘 대처하는 종이다."


빠르게, 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이다.

문명이 시작된 지 고작 1만 년 정도 지났을 뿐인데,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고 진화하다 보니 예전에는 상상할 수 조차 없던 존재론적 위기에 생각하게 된다.

『창조적 유전자』는 인류가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이를 이용하여 문명을 어떻게 개척해왔는지 과학자의 관점에서 숨겨진 비밀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저자, 에드윈 게일은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던 중 의학으로 전공을 바꿔 케임브리지, 노팅엄, 코펜하겐의 병원에서 의사로 일했으며 런던 세인트바설러뮤 병원에서 교수로 지냈다. 이후 1997년 연구진과 함께 브리스틀대학교로 자리를 옮겼으며 2011년 은퇴했다.

현대사회에서 당뇨병이 점차 증가하는 현상을 연구하던 중 우리의 몸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간 유전자의 표현형 변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Ⅰ 대탈주


표현형은 시간을 통과하는 여정의 이야기다.

당뇨병이 빠르게 증가하는 이유를 두고 볼 때, 당뇨병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우리가 달라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우리는 변화중인 종이라는 것이다.


플라톤의 책에 따르면 신들은 필멸의 존재를 창조하다 싫증이 나 미완성으로 내버려두었고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가 이를 마무리하는 작업을 맡게 된다.

처음엔 에피메테우스가 직접 나서 사냥하는 짐승은 굶어서도 안 되지만 먹잇감을 멸종시켜도 안 된다는 원칙에 따라 자연의 균형에 주의하는 능력을 갖춰주었는데 주어진 임무에 몰두한 나머지 인류 차례가 되었을 때 능력과 소질이 하나도 남질 않았었다.

"다른 짐승들은 모든 것이 풍족하나 인간은 벌거벗고 신발도 신지 않고 이부자리도 없고 무기도 없었다. 그리고 인간이 흙 속에서 낮의 빛으로 나오기로 한 날이 이미 찾아왔다."

뒤늦게 이를 인지한 프로메테우스가 하늘에서 불을 훔쳐 사람들에게 문명의 기술을 가르쳐주었다. 다만, 그는 빼먹은 것이 있으니 바로 정치의 기술이었다.

플라톤은 그가 빼먹은 정치의 기술을 출발점 삼아 소크라테스와 프로타고라스의 대화를 풀어간다.

플라톤이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며 강조한 이유는 바로 이렇다.

우리가 불 없이 무력한 것은 불에 의존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8만 년 전쯤,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는 아시아와 유럽에 널리 퍼져 공존하다 지구상에서 사라졌고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를 떠났다.

우리 조상들이 능력이 출중해 끝까지 살아남아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지만 약 4-5만 년 전 고고학 기록에서 그 증거를 찾아볼 수 있었다.

그 증거란, 바로 행동 측면의 현대성이다.

기술 혁신, 예술적 표현, 약자에 대한 돌봄 그리고 망자에 대한 존경 등을 예시로 들 수 있겠다.

인류학자 리처드 클라인이 말하길, "5만 년 전에 일어난 행동 변화는 고고학자들이 지금껏 찾아낸 것 중에서 가장 극적인 행동 변화이며 설명을 필요로 한다."라고 했다.

진화론자들에게도 뇌의 대변화는 수수께끼 그 자체였다.

우리가 뛰어난 뇌를 가지게 된 것은 굴절적응에 의한 것이다.

특정 목적을 위해 진화한 형질이 알고 보니 다른 목적에도 유용했던 것이다.

굴절적응 가설에 따르면 뇌의 대변화와 관련된 양자 도약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연산 능력을 이미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종 내에서 벌어진 사회적 상호작용과 경쟁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조금 더 시간을 앞서가 보려 한다.

제1차세계대전 이후, 여성이 투표권을 얻고 대중영합주의 정당들이 득세하는 등 많은 변화가 이루어졌다.

산업국가 노동자들은 물질적 빈곤 수준에서 연명했지만 소비사회가 처음으로 짧게 꽃핀 곳이 바로 미국에서였다.

「소비의 경제 원리」를 출간했던 컬럼비아대 마케팅학 교수 폴 나이스트럼은 일가족 소득의 50퍼센트 이상을 식비 지출로 사용하는지 여부를 빈곤의 기준으로 삼았다.

예컨대 1796년 영국 가계 예산에서는 73퍼센트를 차지했던 1919년 미국 가계 예산에서는 38.2%를 차지했다.


소비사회는 '사람들이 돈을 필요한 것보다 많이 가졌지만 원하는 것만큼 많이 가지지는 못한 사회'로 정의할 수 있다.

부는 열망을 낳고 열망은 욕망을 낳았다. 소비의 에스컬레이터는 올라가고 또 올라갔다.

노동일이 짧아져 여가라는 현상이 등장했다.


"우리 시대의 가장 두드러진 발전상이다. …… 기계와 기계 생산 과정이 노동 시간뿐 아니라 여가 시간까지 지배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무기력과 게으름이 남녀 모두에게서 뚜렷이 드러나며, 걷기보다는 차를 타려는 성향, 선수로서보다는 관중으로서 스포츠에 참여하려는 성향, 모든 형태의 책임과 노력을 회피하려는 성향이 커지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이스트럼은 자신의 정의에 따라 1929년을 기준으로 미국의 200만 가정이 빈곤 속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1933년 시카고 길거리에서는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쓰러졌으며 1941년에는 미국인 4500만 명이 양호한 건강을 위한 필수적인 식품을 섭취할 형편이 되지 못한다고 추산하였다.

제2차세계대전때, 불황에서 건져진 미국은 제1차세계대전 때의 독일처럼 조직화되고 간소화되고 통제된 경제체제를 이루었다.

이는 산업화, 농업 둘 다 혜택을 입었고 밀 생산에 극적인 영향을 미쳤다.


과거 경작 면적이 한계에 이르렀을 때 인류는 인구 과잉과 기근의 위협을 맞닥뜨렸으나 식량 생산의 혁명이 해결사로 나서주었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맬서스 휴일을 만끽하였고 소비자 표현형이 전 세계에 퍼질 수 있었다.

미래를 전망하자면, 지금의 맬서스 휴일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고정된 질소를 생산할 수 있어도 처리하는 문제를 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은 유한한 자원이며 채굴해야 하지만 훗날 인 정점이 찾아올 것이라 대부분이 예측하고 있다.



Ⅱ 공존


다윈은 자연에서 작용하는 자연선택과 육종가들이 실시하는 인위선택을 구별했었다.

무의식적 선택은 강인하거나 온순한, 포획 상태에서 번식할 수 있는 개체가 나머지 개체보다 많아진다는 뜻이며 인위선택(체계적 선택)은 초기 가축화 과정에 작용한 무의식적 선택과 대조되었다.


가축화에 이르는 첫번째 큰길은 식구이다.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 한다.

과거 고양이가 함께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쥐잡기 능력 덕분이었다. 물론 고양이는 독거성 동물인지라 위치를 반대로 생각해도 무방하긴 하다.

개는 서열을 받아들이고 무리 행동과 비언어 신호 수용 능력이 있어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가축화에 이르는 두번째 큰길은 솥단지를 통해 이어져 양, 염소, 젖소, 돼지가 우리에게 도달한 것이다.

최초 식용 동물은 밤에는 우리에 갇혔을 테지만 낮에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유목과 방목이 나뉜 것은 일부 무리 동물이 더 많이 이동하기 때문이다.

가축화에 이르는 세 번째 큰길은 젖 이외의 이유로 가축화된 짐승이 포함된다.

예컨대 소는 수레를 끌고 말과 낙타는 짐을 날랐다.

처음 양이 가축화되었을 때 털이 짧았지만 곧 긴 털로 진화하게 된다.


사회적 동물은 공격성을 다스릴 수 있어야만 한다.

영장류학자 리처드 랭엄은 선제 공격과 대응 공격을 구분한다.

선제 공격은 집단이 다른 집단을 공격하거나 개인적 경쟁자를 괴롭힐 때 계획적이고 의도적인데, 대응 공격은 위협적 상황에 애해 무계획적이고 비의도적인 반응을 보인다.

우리의 법체계에서도 대응 공격과 선제 공격을 비슷하게 구분한다.

공격성은 일부 영장류 사회의 특징이기도 하는데, 인간의 행동은 당연히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선제적이고 목표 지향적인 공격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지만 대응 공격의 대부분은 비생산적이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로서 진화하였다.

그렇기에 조화롭게 살아가고 공동의 위협에 맞서 함께 행동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이로 인해 사회 안에서 제 역할을 하는 능력이 무의식적으로 선택되는데 어쩌면 우리가 더 길들여진 변종을 향해 진화하고 있음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또한 반대로 생각해 보면 남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든, 사회적 계층 사다리 위로 올라가는 것이든 자신이 처한 사회적 상황을 스스로에게 유리하도록 만들려는 성향 또한 누구나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모순된 행동은 유전적 다양성에서 비롯된다.

한 방향을 가리키는 유전자 변이가 일부 구성원들에게 우세하긴 하지만 널리 퍼지면 결국 자멸의 계기가 된다.

그렇기에 인구집단 내에 불관용이나 복종으로 이어지는 특징들 사이에는 균형이 존재하며 이는 평형다형성이라는 동적 평형이 생겨난다.


우리는 사회적 삶의 제약들을 토대로 서열을 받아들이면서도 다양성을 통해 사회적 삶을 영위해간다.

다양성이 존중받으면서도 협력하는 사회, 이것이야말로 이상적인 사회이다.

하지만 구현될 확률이 매우 드문 것이 바로 지금의 현실이다.




이야기가 길어져 맬서스에 대한 언급은 생략했는데 짤막하게 얘기해보려고 한다.

"도덕적 미덕을 낳으려면 도덕적 악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맬서스의 인구론은 생각보다 암울해 보이는데, 이는 우리가 결코 출산율을 통제하지 못하리라는 것과 식량 생산이 인구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거 서구의 이점은 기술에 있었다. 소총, 포탄, 증기기관, 제조업 등에 맞설 수 있는 사람 나아가 나라는 드물었다.

또한 생물학적 우위도 이유인데 과거 어느 때보다 덩치가 크고 건강했다.

제1차세계대전 당시 영국 빈민가 주민들에게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병사들은 거인처럼 보일 정도였으니깐.

이렇게 우위를 점하고 있음에도 부유한 백인 남성들은 노동자 계급의 열망과 정치 권력, 여성의 발언권 확대, 비유럽 민족의 부흥 등을 이유로 자신들의 미래를 걱정하였다. 당장의 근심거리, 출생률 하락도 있었다.

1929년 워런 톰프슨은 러시아가 풍부한 토지 덕분에 20세기 말이면 중국과 인도의 인구를 따라잡을 것이라 예측했다.

또한 나머지 세게에서는 맬서스 요인이 세계 인구의 성장을 좌우할 것이라 생각했다.

서구의 부상에 일조한 것은 두 번의 맬서스 휴일이었다.

첫번째 휴일은 14세기 인구 감소에서 비롯했으며 농업 생산이 새롭게 발전할 수 있도록 숨쉴 공간을 마련해주었고 두번째 휴일은 해외 이주와 식량 수입으로 인구 압박을 해소했을 때 도래하게 되었다.



유전자의 뜻 ▶ https://blog.naver.com/hanainbook/223208593457


유전자가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식은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덴마크의 식물학자인 빌헬름 요한센이 유전자가 표현되는 각각의 형태를 표현형이라고 제안했다.

유전적으로 똑같은 콩이라도 토양과 빛의 조건이 다르면 다르게 자라지만 그 후손들을 같은 조건에서 심으면 크기와 형태가 다시 같아진다는 사실을 그가 밝혀낸 것이다.

부모가 얻은 형질이 자식에게 전달될 거라 믿은 유전학자들과는 달리 요한센은 유전 단위가 밀봉되어 전달되며 부모의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멘델의 믿음을 입증하였는데, 당시 이에 대한 단위 이름이 없었기에 요한센은 유전자라고 부르게 된다.

유전자는 집단이 되어 유전형을 형성하는데, 특정 환경에서 유전형이 표출된 것을 표현형이라 불렀다.

여기서 표현형의 의미는 방금 만난 사람의 모든 특징을 뜻한다.

즉, 환경의 체에 걸러지고 인생 역정의 손에 빚어진 유전자의 표현이다.

눈동자 색 등 표현형의 일부 요소는 고정되어 있으며 이를 단순 형질이라 부른다. 눈동자 색은 파란색이거나 파란색이 아닌 둘 중 하나이기에 범주적이다.

이외에 성격, 지성 등은 복합 형질이라 표현하며 여러 유전자의 상호작용에서 생겨나기 때문에 사람들과 비교할 수 있으므로 계측적이다.

표현형은 시간을 통과하는 여정의 이야기다.


우리는 길들었을까?

교배되진 않아도 여러 세대를 거친 무의식적 선택은 결국 교배와 같은 결과를 달성하기에 충분했다.

사회적 압박에 대한 순응, 서열의 수용 등을 근거로 들 수 있는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구성원의 내면에서 갈등은 끊임없이 지속된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옳지 않음이 분명한데도 자기주장을 끝까지 관철시키기도 한다.

또한 다양성을 우대하지만 다양성이 삶을 위협한다면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가 짓고 우리 스스로가 무너뜨리는 결론이다.

우리는 길들어지지 않았다.


인문책이기도 하지만 과학책이기에, 가볍게 읽기에는 내용이 묵직하다.

전체적으로 읽은 뒤, 글쓰기 노트에 적은 내용을 바탕으로 다시 돌아가 훑어 읽고나니 그제야 이해가 되었을 정도로 쉬운 책은 아니었다.

그만큼 '아, 좀 읽었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내용을 매우 알차고 좋았다.

인류의 역사를 깊이있게 돌아보며 수많은 예시를 통해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P.S. 「창조적 유전자」와 「인류의 여정」 또한 겹치는 부분이 많으니 함께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다!

인류의 여정 ▶ https://blog.naver.com/hanainbook/223065988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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