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묻고 생명과학이 답하다 - 호모사피엔스에서 트랜스휴먼까지,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찾는 열 가지 키워드 묻고 답하다 5
전주홍 지음 / 지상의책(갈매나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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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지난 달, 국제학술지에서 100일간 냉동 보관했던 쥐의 신장을 다른 쥐에 이식하는 데 성공한 실험 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었다.

과거 이러한 소재들을 통해 만들었던 영화를 보면 당시에는 먼 미래의 이야기같았겠지만 지금은 곧 다가올 이야기로 느껴진다.

특히 생명공학의 기술 발달은 그 끝이 어딜지 몰라 한편으로 불안해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저자는 생명공학 기술이 불러올 충격에 대비하여 과학의 발전사를 더 넓게 인문적 시선에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혜안은 과연 어떤 것이 있을까?


저자, 전주홍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생리학교실 교수로 분자생리학 연구실을 운영한다.

호기심과 교차적 아이디어가 혁신적 과학연구의 밑거름이며, 패러다임을 전환하거나 새로운 경로를 개척하는 핵심 요소라고 생각한다. 대전환의 시대를 맞이한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은 인문학적, 예술적 소양이 풍부한 과학자를 양성하는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저자’로서 논문을 쓰고 ‘독자’로서 논문을 검토하고 ‘실험자’로서 가설을 세우며 실험하고 ‘예술가’로서 데이터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토론자’로서 자료와 해석을 두고 열띤 토론을 펼치는 과학자를 희망한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평가전문위원회 위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제도혁신기획단 위원,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연구위원, 제4차 생명공학육성기본계획 기획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보건복지부 연구윤리심의위원회 위원, 서울대학교 의학연구원 부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마음 HEART


스페인 한 동굴에 남겨진 후기 구석기 시대의 벽화를 보면 고대인들이 심장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벽에 그려진 매머드의 모습을 살펴보면 겉모습뿐만 아니라 몸 안에 있는 심장까지 그린 것을 볼 수 있는데 희한한 것이 몸속 장기 중 오직 심장만 그렸다는 것이다.

「길가메시 서사시」에서도 심장에 관한 생각을 살펴볼 수 있다.

사랑과 전쟁의 여신 이슈타르가 길가메시에게 구애하지만 그는 거절했고 이에 화가 난 이슈타르는 하늘의 황소를 보내 응징하게 된다.

길가메시와 친구 엔키두는 날뛰는 황소를 죽여 배를 갈라 심장을 꺼내 태양의 신 샤미쉬에게 제물로 바친다.

하늘의 황소가 죽었다는 사실에 신들은 엔키두를 죽이는데, 이때 길가메시는 엔키두의 가슴에 손을 얹어 심장이 뛰는지 확인부터 한다.

엔키두의 죽음에 충격 받은 길가메시는 영생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길을 나선다.

여기서 나오는 심장은 신과 연결되는 통로이자 길가메시와 엔키두를 하나로 묶어주는 매개물이라 볼 수 있으며 동시에 삶과 죽음의 경계를 구분 짓고 영혼과 마음을 담고 있는 장기였다.


이집트는 바다와 사막에 둘러싸여 있어 외세를 막기에 유리한 지리 조건을 갖춘 덕분에 통일국가를 유지하면서 내세의 삶과 영혼의 영원함에 관한 고유한 사상 체계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예컨대 부유층이 사망하면 <사자의 서>라는 파피루스 책을 미라와 함께 석관에 넣었다.

이집트 사람들은 영생의 신인 오시리스 앞에서 죽은 자의 영혼이 심판을 받는다고 믿었으며 그 심판이란 심장의 무게를 재는 것이었다.

이러한 내용들은 무덤의 벽화를 통해 확인해볼 수 있다.

자칼의 머리를 가진 죽음의 신 아누비스가 죽은 자를 안내하고 따오기 머리를 가진 지혜와 정의의 신 토트가 서기를 본다.

저울 위에는 토트의 아내이자 정의의 여신인 마트를 상징하는 깃털이 올려져 있는데 이 저울이 심장의 무게와 평형을 이루면 죽은 자의 영혼은 내세인 두아트로 갈 수 있다.

반대로 심장이 깃털보다 무거우면 죽은 자는 사자, 하마, 악어가 합쳐진 모습을 한 괴물 암무트에게 잡아먹힌다.

이렇듯 살아생전의 마음과 행실이 고스란히 담긴 심장은 심판을 받는다고 생각했기에 사후에도 심장이 그들에게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카밀로 골지는 우연히 발견한 염색법으로 뇌 조직을 염색하여 신경세포가 그물망 모양으로 연결된 체계를 이룬다는 신경그물설을 제안했다.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은 골지가 개발한 염색법을 개선해 신경그물설의 오류를 밝혀, 신경세포가 서로 분리되어 있으며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신경세포설을 주장했다.

서로 다른 이론이지만 이들은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하게 된다.

실제 증명하기 어려운 부분이기에, 염색법을 개발한 공로와 모든 신경 연구의 근간이 된 센경세포 이론을 밝힌 공로를 모두 인정해 준 것이었다.

이후 신경전달물질과 신경전달물질 수용체가 발견됨으로써 신경세포의 활성이 스냅스라는 신경세포 사이의 접합부에서 일어나는 생화학적 반응으로 나타난 것을 알게 된다.

"신경세포는 시냅스를 통해 여러 신경전달물질을 주고받는데, 이것이 우리의 마음과 감각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즉, 이러한 생물학적 발견은 마음도 생화학적 작용의 일부임을 증명하는 셈이다.




통증 PAIN


통증이란, 자극이나 손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아픈 느낌을 의미한다.

통증은 몸의 이상을 알려주기도 하고 회피반응을 일으키기도 하는 등 경고 장치, 보호 장치로서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2006년, 한 소년의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나트륨 이온 채널의 기능이 사라져 통증에 무감각해지고 만다.

그 소년은 어떻게 되었을까?

통증이 무감각해진 소년은 지붕에서 뛰어내릴 때 입은 부상으로 14살 생일을 맞이하기도 전에 사망하게 된다.

이렇듯 통증에 대한 경험과 연상은 위험을 회피하고 자신을 보호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늘날 의료 서비스를 찾는 주된 이유가 바로 통증으로 인한 것이다.

이때 통증을 완화하거나 차단하기 위해 진통제와 마취제를 주로 사용한다.

진통제는 마약성 진통제와 비마약성 진통제로 구분되는데, 마약성 진통제는 중추신경계에 자극하며 통증 자극을 전달하는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억제해 진통 효과를 나타낸다. 다만, 효과는 크지만 오남용의 위험이 있다. 비마약성 진통제는 중추 억제 작용이 약하고 흔히 염증을 억제하여 진통 효과를 낸다.

마취제는 진통제와 달리 감각의 소실을 유도하여 통증을 못 느끼도록 하는 약으로 수술이나 시술 전에 통증을 차단하기 위해 사용되는데 전신마취의 경우 한시적으로 의식과 움직임이 없는 상태로 만든다.

그렇다면 과거 진통제와 마취제가 없는 삶은 어땠을까?

19세기 전까지만 해도 출혈과 감염도 심각한 문제였지만 수술은 엄청난 통증을 동반해 말그대로 잔혹 그 자체였다.

16세기 파라켈수스의 <외과 수술>에 나오는 그림을 보면 외과의사가 톱으로 무릎 아래 부위를 절단하는 모습이 나온다.

조수는 환자가 움직이지 않도록 꽉 붙잡고 있고 환자는 엄청난 통증에 몸부림치며 뒤로 넘어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마취제조차 없으니 당시 사람들에게 수술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보스턴에 가면 에테르의 마취 효과를 발견한 업적을 기리는 에테르 기념비를 볼 수 있다.

"에테르 흡입이 통증을 무감각하게 만드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보스턴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처음으로 입증되다."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1846년, 에테르 돔이라는 이름이 붙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수술 극장에서 모턴이 에테르 마취에 성공을 거두게 되어 지금까지 10월 16일을 '에테르의 날' 혹은 '세계 마취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모턴은 화학자 찰스 잭슨의 조언에 힘입어 아산화질소 대신 에테르의 마취 효과를 연구하는 데 매진하였고 1846년 9월 30일 에베네저 프로스트를 에테르로 마취한 후 무통 발치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어 에테르의 날에 열린 공개시연에서 존 워렌은 모턴이 마취한 20세 환자 애벗의 목에 난 혈관종을 성공적으로 제거했는데 수술이 끝난 뒤 의식을 찾은 애벗은 어떤 통증도 느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1846년 11월, 헨리 비글로는 이 공개 시연 결과를 《보스턴 의학 및 외과 학술지》에 발표하는데, 그 덕분에 모턴의 발견은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보면 에테르 마취를 발견한 공적은 모턴에게 돌아가는 것이 마땅해 보이나 얽히고설켜 있다.

16세기 파라켈수스는 에테르를 닭에게 주입해 마취 효과를 확인하기도 했다.

다만 수술에 활용할 생각을 하진 못했지만 모턴은 에테르를 마취제로 사용하기 위해 연구를 진행했고 임상적 가치를 증명해냈다.

여기서 에테르에 대한 경제적 가치가 높아지자 명성과 금전적 보상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에테르 마취 연구를 조언한 찰스 잭슨은 특히 욕심을 드러낸 인물 중 한 명인데, 1846년 모턴과 잭슨이 공동명의로 특허를 발급받았지만 잭슨의 금전적 욕심이 과해지면서 둘의 관계는 틀어지게 된다.

조지아주 출신의 의사 크로포드 롱은 펜실베니아 의과대학을 다니던 중 에테르를 흡입하고 유흥을 즐기게 되는데, 그때 고통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을 주목해 마취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려 에테르를 이용해 한 환자의 목에 있는 낭종을 고통 없이 없애게 된다.

시기 상 2년 앞선 것인데,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지 않아 우선권과 공적을 인정받을 순 없었다.

그렇다면 최초 발견이라는 우선권과 공적은 누가 가지게 되었을까?

현대 의학의 아버지인 윌리엄 오슬러는 "과학에서 공적은 아이디어를 처음 낸 사람이 아니라 세계를 최초로 납득시킨 사람에게 돌아간다."라는 프랜시스 다윈의 말을 인용해 모턴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모턴은 금전적 이익에 골몰해 상당 기간 에테르의 정체를 밝히지 않아 과한 모턴의 행동에 대해 미국의사협회는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게 된다.

잭슨 또한 유럽 의학계에 호소해 프랑스 과학원으로부터 마취제 발견의 공로를 인정받긴 했으나 정치적 술수가 깊이 개입된 결과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에 롱은 술책도 쓰지 않고 상업적 욕심을 부리지도 않았다. 또한 현대 산부인과의 아버지인 제임스 마리온 심스가 롱의 성과를 자세히 조사한 논문을 발표에 큰 찬사를 보냈고 결국 역사적 평가를 거쳐 사후 빛나는 명성을 얻게 된다.

또한 조지아주를 대표하는 인물로 뽑혀 국회의사당 스태추어리 홀에 그의 조각상이 전시되었으며 1990년 조지 부시 대통령은 롱이 처음 에테르 마취에 성공한 3월 30일을 국가 의사의 날로 지정하게 된다.




역사적 흐름 속에서 생물학은 여러 학문과 만나 독특하고 복잡한 과학으로 발전하였다.

무엇보다 그 중요성이 커지면서 이제는 질병을 생물학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치료제 개발에도 속도를 낼 수 없을 정도이다.


"역사적, 철학적 배경에 관한 지식은 과학자 대부분이 겪고 있는 당대의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준다." _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과학과 역사를 놓고 보면 뭔가 상이한 느낌이 든다고 생각했는데, 과학과 역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이다.

특히 책을 통해 과학자에게 역사적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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