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기가 아니라 읽기가 얼마나 가능한지를 알 수 있을듯 하여, <씨네 21> 기사 긁어왔습니다. 나의 무의식적 행동도 그 저변에 깔린 양식이 숨어져 있으며, 그것을 해석하는 능력이 바로 평론가와 같은 집단이라는 것, 그리고 그 해석이 행동의 변화, 또는 사고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 그 소기의 목적을 다한 것이라고도 보여집니다. 인상비평에 그치지 않고, 그 속사정까지 파헤치는 작업이 갖는 재미를 이 글이 잘 보여주고 있는것 같아 재미있었습니다.

 

<씨네21> 549호 이종도 기자의 반론 덕분에 지면관계상 충분히 설명치 못한 내용을, 재반론의 기회를 통해 설명할 수 있게 된 데 감사한다. 아울러 도스토예프스키와 니체의 이름을 신성시하는 지식인 남성의 반론으로 말미암아, <달콤, 살벌한 연인>과 나의 ‘읽기’가 얼마나 남성 중심주의와 지식인의 자의식을 건드리는지 저절로 입증된 듯하여 기쁘다.

1.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의 어린 그녀는 “남성 중심 성관계를 역이용하는 영리한 여자”가 아니다. 남자친구는 그녀를 놓고, “한번 하게 해주겠다”며, 가방모찌와 동생을 싸움 붙이고, 동생이 우세하자 “1학년한테도 지냐?”라 한다. 남자친구는 그녀의 포주 역할을 하면서, 남자들을 줄세우기한다. 그녀도 그것을 알면서 은근히 즐긴다. “네가 이겼다며?”란 말은, 슬쩍 상대의 우위를 승인해주며 ‘사실 난 너랑 하고 싶다’는 말을 건네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관계 속에서 꼬리를 치든 말든, 그건 ‘이미 분배된 뒤 교환되는’ 정도의 문제이다. 남자친구의 묵인하에 이루어지는 동침은 언제나 그의 권력의 장 안에서 훤하게 드러난다(“했냐?”). 영리한 여자는 그런 관계를 즐기지 않는다.

2. <달콤, 살벌한 연인>의 그녀는 연애에 바람직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 어렵게 데이트를 청하는 소심남에게 아무렇지 않은 듯 흔쾌히 수락하고, 연락처를 주고받는다. 자신의 말에 집중하지 않는 것과 반말하는 것, 혼자서 즐거웠다 선언하는 것에 단호하게 “노”라 말한다. 남자가 자신을 무시하고 의심하는 것 같자, 과단성있게 철수한다. 그녀가 살인자로 도피하는 것이 ‘자기 긍정’이 아니라, 살인자로 도피 중임에도 적극적으로 행복해지고자 하며, 내숭과 집착이 없는 솔직담백한 연애의 태도를 지닌 것을 ‘자기 긍정’으로 보았다.

3. 이종도가 “본명도 사연도 다 숨기고 오로지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며, “책임감이 없다”고 평한 그녀를 영화와 황대우는 ‘용서’한다. 왜? 사랑하니까. 이 영화의 재밌는 점은 로맨틱코미디의 외피 속에 연애의 ‘살벌’함을 담아냈다는 것이다. 연애의 시작은 언제나 달콤하다. 그러나 상대를 알아갈수록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상처받는다. 감당할 수 없는 진실에 몸서리치기도 한다. 그 진실이 영화에선 강도 높게 살인이다(“사람만 안 죽였으면 돼”). 그러나 이는 정도의 문제일 뿐 투명한 연애는 없다. 하지만 사랑이 시험대에 오르는 고비들을 넘어 상대를 어렵게 이해하게 되면서, 기존의 잣대와는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달콤…>은 소심한 지식인 남자가 살인자 여자를 만나 엄청나게 자아가 부서지는 영화이다. ‘혈액형 설’의 계보학을 읊던 그가 “A형이라서 그래”라 말할 때, 그는 이전의 그와 같다고 볼 수 없다. 사랑은 그의 인식체계와 가치관을 (부분적이나마) 바꾼다. 본명과 사연을 몰라도 그들이 사랑한 게 모두 거짓이었을까?

4. 살인자가 되는 전 과정을 보여주지 않으면 ‘그렸다’고 말할 수 없고, 대사로 처리되는 사연들은 영화적 사실이 아니며, <달콤…>에서 살인자 설정은 “미미한 맥거핀”에 불과하다는 이종도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그녀의 네번의 살인이 “짤막한 전언과 누가 현장에 있더라도 똑같은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정당방위의 순간이 전부”라는 말로 요약되지 않는다. 왜 행간을 읽지 않는가? 첫 번째 ‘가정폭력에 의한 정당방위’도 적극적인 법정투쟁을 거쳐야만 인정될 수 있는 유의미한 ‘사건’이다(현재 수감 중인 133명의 남편살해범 중 82.9%가 가정폭력을 경험했지만 정당방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두 번째 노인의 죽음도 혐의점을 남기지 않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세 번째, 맥주캔을 던지는 옛 애인(옛 애인이 행패 부리는 장면들은 많다. <파란 대문> <너는 내 운명> 등. 여자는 불행을 내면화하며 항거하지 못하고, 자해를 하거나 도망친다)을 그녀는 죽여버린다. 이 역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누가 현장에 있더라도 똑같은 실수”에 비슷하게라도 맞는 사건은 네 번째인데, 그것도 “누구나”는 아니다. 어찌나 굉장했던지, 그녀를 질시하던 장미도 단번에 꼬리를 내려버린다(“말로 들을 땐 몰랐는데… 어쩜 그렇게 빨라?”). 네번의 살인 중 만만한 것은 한건도 없었다. 그녀가 운이 나빠서 “실수로” 살인을 하게 된 게 아니라, 그녀가 강하기 때문에 넷을 죽이고도 사법체계와 계동이, 장미, 변호사 등 앞길을 방해하는 이들을 제압하고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녀는 살인의 과정에서 점점 능력이 많아진다. 첫 번째는 우발적인 살인을 하고 사체유기도 하지 않은 채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다. 두 번째는 살인을 위장하고 기소받지 않는다. 세 번째는 남의 차와 힘을 빌려 사체유기도 감행한다. 네 번째는 부하를 만들고,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여 사체를 유기한다. 그녀의 실력이 점점 느는 이유는 누구를 만나든 꼭 뭔가를 배우기 때문이다. “책을 읽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말하는 그녀에게 책은 책만이 아니라, 사람도 포함된다. 계동에게선 땅파는 법을, ‘가방끈’에게선 <죄와 벌>을 배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주목하고픈 ‘자기 긍정’이다. 이종도가 그녀의 살인이 풍문이거나 정당방위 혹은 실수에 불과하다며 애써 그녀의 죄목을 축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녀가 넘어선 금기를 차마 인정할 수 없기 때문 아닌가?

5. “성적 자기결정권 행사나 죄의식없는 살인은 트렌디한 장르적 실천으로 보는 게 온당하다”는 말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과연 성적 자기결정권 행사나 죄의식없는 살인이 트렌드가 되느냐’에 주목해야 한다. 나는 마초이즘과 순결이데올로기가 아닌, 성적 자기결정권 행사가 트렌드가 되는 것이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이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창작자와 관객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각성으로 성취되는 것이다. 이를 우리 시대의 트렌드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성적 자기결정권이 잘 드러난 작품에 의미부여를 하는 것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죄의식없는 살인’이 아직 트렌드인지는 모르겠다. <친절한 금자씨> <오로라 공주> <6월의 일기> 모두 죄의식이 넘치는 살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장차 트렌드를 선도하는 영화가 되리란 예감은 든다.

6. <몬스터>가 “그녀를 하소연이나 늘어놓는 멍청하고 추한 몬스터로 그렸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에일린 워노스의 실제 사건을 다룬 이 영화는 공판기록만큼도 그녀를 변호하지 못한다. 김경욱의 지적처럼(<씨네21> 460호 ‘멜로드라마의 틀로 포획된 괴물’) 그녀는 현실적인 판단능력을 상실한 여자로 그려져 있다. 연쇄살인범을 옹호하려니 살인을 정당화해야 하는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멜로드라마로 도망친 결과 (착취-피착취의) 기괴한 레즈비언 커플만 남았다. 대사로는 그녀를 이해해달라 말하면서도, 화면으로는 그녀를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상태로 내모는 역설의 영화가 된 것이다. 성판매여성으로 7명의 남자를 죽이고, 남자들의 성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킨 정당방위였다는 주장을 펴는 그녀에게 법정은 ‘그녀가 창녀이기 때문에 성폭행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녀의 무죄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는 법적 논리는 ‘그녀가 성판매여성이기 때문에 오히려 성구매남성들의 폭력에 노출될 가능성이 많았다’가 되어야 한다. 성판매자의 영업행위와 성폭력을 구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녀가 영업행위를 빌미로 남자들을 유인해서 죽였다는 혐의를 씌우는 것의 부당함을 고발했어야 옳다. 그러나 영화는 쟁점을 놓치고, 신파와 멜로 사이를 헤맸다.

7. <망종>은 아주 훌륭한 영화라 생각한다. ‘너무 유별나다’는 말도 맞다. 몇년에 하나 나올까 한 걸작이기 때문이다. <복수의 립스틱> <성냥공장 소녀>는 과문한 탓에 보지 못했지만, 이종도의 식견으로 보건대 필적할 만한 걸작일 것이다(나도 걸작 여성살인자 영화 한편을 추천한다면, <시리얼 맘>을 꼽고 싶다). 그러나 언급한 영화들이 ‘주류’ 상업영화는 아닐 것이다. 내가 여성살인자를 그리는 방식을 유형화한 것은 “트렌디한 장르적 실천”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대중 상업영화에 한한 것이다.

8. “그녀가 살인을 하게 되는 배경도 라스콜리니코프적 상황과 전혀 연관이 없다”는 말이 왜 중요한지 모를 일이다. 영화 속 <죄와 벌>의 인용이 적확하다는 나의 말은, 그녀의 상황이 라스콜라니프적 상황에 합치된다는 뜻이 아니라, ‘관념과 실천의 차이’를 절묘하게 보여준다는 뜻이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이 굉장히 위험한 도덕관념을 지녔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대단할 것도 위험할 것도 없는 인물이다. 19세기엔 그것이 신의 율법에 도전하는 금기의 상상이었지만, 20세기엔 실제로 떡 벌어진 역사이다. 생각이 무서운 게 아니라, 힘, 의지, 조직이 무서운 것이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살인 뒤후 신열에 시달리다가 죄의식에 자수한다. 그러나 그녀는 죄의식에 사로잡히지 않고, ‘무가치한 자’의 ‘유가치한 유산’을 잘 쓸 생각이다. 누가 그 관념을 끝까지 실천(체현)했는가? 그녀는 <죄와 벌>을 읽은 사람보다 <죄와 벌>이 제기한 문제의식에 더 가깝다.

9. “그녀가 남성 중심 이데올로기를 해체하고 어지럽히기 위해 다 알고서 저지른 일처럼 과도한 사후 해석”을 하다니,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다. 그녀는 ‘남성 중심 이데올로기의 해체’라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다 알고서 저지른 일”이 당연히 아니다. 그녀에게 앎은 사후적이다(반면 황대우에겐 행동이 사후적이다. 데이트 뒤에 “아까… 라 말하려 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통해 행동할 뿐이고,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관객(평론가)의 몫이다. <죄와 벌>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니체 역시 알지 못하지만, 니체 책도 꽤나 읽었을 법한 황대우보다 니체적인 정신과 태도에 훨씬 근접해 있다.

10. <달콤…>에서 “신경질적이고 괴팍하고 고고하며 허약한 남자에 주목”해야 한다는 이종도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이른바 ‘정상적인’ 독법이요, 특히 지식인 남성관객이라면 자연스럽게 그에게 눈이 갈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유일한 영화읽기의 정답은 아니다. 누군가는 장미나 계동이 캐릭터에 열광할 수도 있다. ‘소수적 읽기’가 가능한 것이다.

언제나 대중 상업영화들 속에서 사회적인 의미를 발견하고 발언하려는 나의 노력이 어쩌면 “줄없는 줄넘기”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줄이 있어도 보고자 하지 않는 이에겐 안 보이는 법이요, 설사 줄없는 줄넘기라 할지라도 운동의 효과는 거의 같다(그리고 “니코틴 없는 담배” 등 지젝의 비유는 ‘위험성을 제거한 수용’의 의미로, 그 용법이 틀렸다).

글 황진미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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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의바람꽃

 

꿩의바람꽃이라...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그냥 바람도 아니고 꿩의바람이라니. 꿩이 사람소리에 놀라 후다닥 도망친 자리, 그곳을 쳐다보니 알처럼 하얀 꽃이 바람결에 놀라 뒤척이고 있었을까? 꿩의날갯짓바람에 태어난 꽃이었던 것일까? 눈 부신 새하얀 자태가 바람결에 날라가 버리려나. 하얗게 겁먹지 말거라, 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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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5-05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꿩 알꽃...^^

하루살이 2006-05-05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해에 또 태어날 터이니 알처럼...
 


꽃다지

 

천마산에서 찍은 꽃다지.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그 생김새를 알지 못했다. 왜 시인들이 꽃다지를 노래하고, 노래패 이름 중에 꽃다지가 있었을까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단지 이름만 익숙했던 것. 도감을 통해 겨우 이미지와 이름을 연결시켰다. 그리고 그 도감을 통해 꽃다지가 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는지도 알 수 있을듯 했다.

마치 노자나 장자 속에 드러나는 휘어진 소나무 마냥 쓸모없음의 쓸모있음을 가르쳐 준다고나 할까? 흔하디 흔한 잡초라 신경쓰지 않는 덕에 이렇게도 많은 꽃들을 한 줄기 안에 품어낸다. 험하게 자라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도 묵묵히 샛노란 꽃을 피워냄으로써 봄을 말하는 꽃. 유채화처럼 또는 산수유처럼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고 스스로 꽃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삶. 꽃다지의 질긴 생명력을 카메라가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훨씬 더 사랑해주었을텐데... 꽃다지는 나의 이 마음조차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생명을 다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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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5-05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들판에 꽃다지 쫘악 피어 있으면 얼마나 장관인데요.
유채나 산수유처럼 주목을 못 받는 꽃이지만 사랑스럽고 다정한 꽃무리입니다.

하루살이 2006-05-05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쫘악 피어있는 것은 아직 못봤지요. 정말 장관일듯 싶네요.
언제 눈에 담을 그런 기회가 오겠죠.
 
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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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대체로 비주류다. 아니, 세상이 양극화되어가고 있다고 하니, 머지않아 대부분 하류인생으로 전락할 것이므로 오히려 주류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주류란 힘의 역할에서 주류가 아니라, 다수라는 입장에서  껍데기만 주류인 주류다.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체제로부터 완전히 빗겨가 있는 것은 아니다. 혹 빗겨가고 싶어하더라도 책 속의 단편 <코리안 스텐더즈>의 KS크롭서클 마냥 자신의 처지를 비아냥 거리게 되는 상황으로 몰리게 될지도 모른다.

현실이 행복하지 않은 이들이 그 자리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순응과 전복, 양자택일만을 강요했던 사회가 다양성을 확보함으로써 소설 속 인물들, 또는 현실 속 인물들의 삶의 방식도 가지각색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행복해보이는 것은 주인공들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이다. 이들은 체제에 순응함으로써 부를 얻는다. 자본주의에서 부는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이들이 행복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행복할 것처럼 보인다. 그럼 그 부의 길에서 한발짝 벗어나 있는 주인공들은 어떤가?

푸쉬맨,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겨우 꾸려가는 고딩, 관같은 고시원에서 숨죽이며 살아야하는 대학생, 너구리 오락을 알게 됨으로써 현실과 멀어진 인턴사원, 시외 유원지에서 오리 보트 아르바이트를 하는 취업 재수생 등등은 삶의 행복을 어떻게 획득할 수 있을까? 그간의 장편과 달리 압축되어진 단편을 읽으면서는 그 답을 쉽게 찾을 수 없어 당혹스럽다. 아직도 소설 읽는 법을 제대로 알지 못한 탓이리라. 느닷없이 만나게 되는 황당한 상황들,. 지하철 역의 기린이나, 사방에서 나타나는 왕오징어, 헤드락을 거는 헐크 호건 등등은 물론이거니와 갑작스레 끝을 맺는 소설의 전개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채지 못하겠다.

다만 엉뚱한 사건들로 인해 현실이라고 하는 것이 누구인지도 모를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고정된 길로만 걸어간 것은 아니었는가 돌아보게 만든다. 당혹스러움은 평상과 어긋나면서 생긴다. 그리고 그 당혹은 현실에 의문을 품게 만든다. 이대로의 삶을 지양하게 만듬으로써 당혹은 자신의 역할을 해낸다. 지양된 삶이 더 나은 삶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평상이 그대로 진행된다면 결코 행복은 맛볼 수 없으리라는 것은 안다. 따라서 당혹은 불행이라는 늪을 자각하게 만듬으로써 행동의 변화를 가져온다. 그 당혹은 소설 속에선 외부로부터 주어지지만, 그것을 읽는 독자는 소설이 주는  당혹감과 함께 현실에서 당혹을 만들어보고 싶은 유혹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당혹은 혹시 사고를 일으키고 싶은 일탈의 강렬한 욕망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사고 한번 쳐보자.(라고 생각하면서도 말만 그렇다. 언제쯤 질러 보련지...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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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2006-05-05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글쎄... 왜 소심한걸까요. 저도...
 
 전출처 : 물만두 > [퍼온글] 아름다운 순 우리말

아름다운 순우리말

 

마루 : 하늘의 우리말

아라 : 바다의 우리말

희나리 : 마른장작 의 우리말

벗 : 친구의 순수 우리말

숯 : 신선한 힘

한울 : 한은 바른, 진실한, 가득하다는 뜻이고 울은 울타리 우리 터전의 의미

볼우물 : 보조개를 뜻함

여우별 : 궂은 날 잠깐 났다가 사라지는 별

매지구름 : 비를 머금은 검은 조각구름

아람 : 탐스러운 가을 햇살을 받아서 저절로 충분히 익어 벌어진 그 과실

아람치 : 자기의 차지가 된것.

느루 : 한번에 몰아치지 않고 시간을 길게 늦추어 잡아서

가시버시 : 부부를 낮추어 이르는 말

애오라지 : 마음에 부족하나마, 그저 그런 대로 넉넉히, 넉넉하지는 못하지만 좀

닻별 : 카시오페아 자리


가람 : 강

미리내 : 은하수

뫼 : 산

도투락 : 어린아이의 머리댕기

다솜 : 사랑

알범 : 주인

가우리 : 고구려(중앙)

구다라 : 백제(큰 나라)

시나브로 : 모르는 새 조금씩 조금씩

타래 : 실이나 노끈 등을 사려 뭉친 것

단미 : 달콤한 여자, 사랑스러운 여자

그린비 : 그리운 선비, 그리운 남자

산마루 : 정상(산의)

아미 : 눈썹과 눈썹사이(=미간)

언저리 : 부근, 둘레

이든 : 착한, 어진

 

아띠 : 사랑

소담하다 : 생김새가 탐스럽다

오릇하다 : 모자람이 없이 완전하다

성금 : 말한 것이나 일한 것의 보람

미르 : 용

더기 : 고원의 평평한 땅

아라 : 바다

너울 : 바다의 사나운 큰 물결

희나리 : 마른 장작  

너비 : 널리

벗 : 친구

미쁘다 : 진실하다

노루막이 : 산의 막다른 꼭대기

샛별 : 금성

소젖 : 우유

바오 : 보기 좋게

 

볼우물 : 보조개

아람 : 탐스러운 가을 햇살을 받아서 저절로 충분히 익어 벌어 진 그 ? 享?

아람치 : 자기의 차지가 된 것.

새암 : 샘

느루 ! : 한번에 몰아치지 않고 시간을 길게 늦추어 잡아서

마수걸이 : 첫번째로 물건을 파는 일

애오라지 : 마음에 부족하나마, 그저 그런 대로 넉넉히, 넉넉하

지는 못하지만 좀

내 : 처음부터 끝까지

닻별 : 카시오페아 자리

베리, 벼리: 벼루

나룻 : 수염

노고지리 : 종달새

 

노녘 : 북쪽

높새바람 : 북동풍

높바람 : 북풍. 된바람

달소수 : 한 달이 좀 지나는 동안

닷곱 : 다섯 홉. 곧 한 되의 반

덧두리 : 정한 값보다 더 받은 돈 (비슷한말 ; 웃돈)

덧물 : 얼음위에 괸 물

도래샘 : 빙 돌아서 흐르는 샘물

마녘 : 남쪽. 남쪽편

마장 : 십리가 못되는 거리를 이를 때 "리"대신 쓰는 말

마파람 : 남풍.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하늬바람: 서풍

메 : 산. 옛말의 "뫼"가 변한 말

몽구리 : 바짝 깎은 머리

묏채 : 산덩이

버금 : 다음가는 차례

부룩소 : 작은 수소

살밑 : 화살촉

새녘 : 동쪽. 동편

새벽동자 : 새벽밥 짓는! 일

샛바람 : "동풍"을 뱃사람들이 이르는 말

서리담다 : 서리가 내린 이른 아침

 

혜윰 : 생각

도투락 : 리본

햇귀 : 해가 떠오르기전에 나타나는 노을 같은 분위기

나르샤 : 날다

벌 : 아주넓은 들판, 벌판

한 : 아주 큰

온누리 : 온세상

아사 : 아침

달 : 땅,대지,벌판

시밝 : 새벽

샛별 : 새벽에 동쪽 하능에서 반짝이는 금성 어둠별

꼬리별, 살별 : 혜성

별똥별 : 유성

붙박이별 : 북극성

닻별 : 카시오페아 별

여우별 : 궂은날에 잠깐 떴다가 숨는 별

잔별 : 작은별

 

가늠 : 목표나 기준에 맞고 안 맞음을 헤아리는 기준, 일이 되어 가는 형편

가래톳 : 허벅다리의 임파선이 부어 아프게 된 멍울

노량 : 천천히, 느릿느릿

가라사니 : 사물을 판단할 수 있는 지각이나 실마리

갈무리 : 물건을 잘 정돈하여 간수함, 일을 끝맺음

개골창 : 수챗물이 흐르는 작은 도랑

개구멍받이 : 남이 밖에 버리고 간 것을 거두어 기른 아이(=업둥이)

개맹이 : 똘똘한 기운이나 정신

개어귀 : 강물이나 냇물이! 바다로 들어가는 어귀

나릿물 : 냇물

고샅 : 마을의 좁은 골목길. 좁은 골짜기의 사이

고수련 : 병자에게 불편이 없도록 시중을 들어줌

 

골갱이 : 물질 속에 있는 단단한 부분

눈꽃 : 나뭇가지에 얹힌 눈

곰살궂다 : 성질이 부드럽고 다정하다

곰비임비 : 물건이 거듭 쌓이거나 일이 겹치는 모양

구성지다 : 천연덕스럽고 구수하다

구순하다 : 말썽 없이 의좋게 잘 지내다

구완 : 아픈 사람이나 해산한 사람의 시중을 드는 일

굽바자 : 작은 나뭇가지로 엮어 만든 얕은 울타리

그느르다 : 보호하여 보살펴 주다

그루잠 : 깨었다가 다시 든 잠

그루터기 : 나무나 풀 따위를 베어 낸 뒤의 남은 뿌리 쪽의 부분

기이다 : 드러나지 않도록 숨기다

기를 : 일의 가장 중요한 고비

 

길라잡이 : 앞에서 길을 인도하는 사람

길섶 : 길의 가장자리

길제 :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구석진자리, 한모퉁이

길품 : 남이 갈 길을 대신 가 주고 삯을 받는 일

겨끔내기 : 서로 번갈아 하기

고빗사위 : 고비 중에서도 가장 아슬아슬한 순간

까막까치 : 까마귀와 까치

깔죽없다 : 조금도 축내거나 버릴 것이 없다

깜냥 : 어름 가늠해 보아 해낼 ? 맨?능력

깨단하다 : 오래 생각나지 않다가 어떤 실마리로 말미암아 환하게 깨닫다

꺼병이 : 꿩의 어린 새끼

꼲다 : 잘잘못이나 좋고 나쁨을 살피어 정하다

꽃샘 : 봄철 꽃이 필 무렵의 추위

꿰미 : 구멍 뚫린 물건을 꿰어 묶는 노끈

끄나풀 : 끈의 길지 않은 토막

끌끌하다 : 마음이 맑고 바르며 깨끗하다

 

 

나린 : 하늘에서 내려온 아이
깜냥 : 지니고 있는 힘의 정도. 일을 해낼 만한 능력
다솜 :예틋한사랑.
가탈 :일을 방해하는것..
맘매김: 약속하는것..
녈비: 지나가는비
라온: 즐거운

 

라온후제 ; '즐거운 내일'

뉘누리:소용돌이
토로레:땅강아지

 

출처 - 엽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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