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샤의 정원 - 버몬트 숲속에서 만난 비밀의 화원 타샤 튜더 캐주얼 에디션 2
타샤 튜더.토바 마틴 지음, 공경희 옮김 / 윌북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타샤 할머니를 만나는 것은 이번이 두번째다. 그림같은 사진때문에라도 다시 만나고픈 할머니. 이번 책은 타샤 튜더 할머니의 육성보다는 친구이자(물론 나이가 한참 어린) 원예가인 작가의 눈을 통해 보여진 할머니의 정원이 소개되어져 있다.

솔직히 말하건대 책 속에 나오는 식물들의 이름을 반이라도 알았으면 다행이다. 혹 이름은 어디선가 들었을지 몰라도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 수가 없기에 매 한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장을 넘길 수 있었던 것은 할머니의 생활을 대충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생활 뿐만 아니라 그 삶의 과정, 대부분 나무와 꽃, 열매 등을 심고 가꾸고 따고 옮기고 등등의 과정들이지만 그 속에서 드러나는 따뜻한 마음을 그대로 전달받을 수 있었던 덕분인지도 모른다.

지금 할머니 정원에 가면 어떤 꽃이 활짝 폈을지, 무엇을 대접받을 수 있을지, 반대로 할머니의 일손을 덜어줄 수 있을련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게 만든다. 정말로 할머니의 정원은 마법의 정원인 것이다. 정말 나에게 아무 의미없는 단어들의 나열로만 보이는 글들이 이토록 따뜻함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전부 할머니의 삶 그 자체때문임을 깨닫는다.

한그루의 나무, 한떨기의 꽃송이, 한톨의 열매는 물론이거니와 들쥐와 코기, 비둘기, 염소 등등, 또 옆집 사람들, 자신을 찾는 지인들 까지, 손자손녀는 물론이거니와 가족들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그냥 지나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모두를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 사랑의 능력은 정원이 키워준 것이며, 또 그 사랑으로 정원은 한층 아름다워진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여우 2006-11-09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구입합니다^^

하루살이 2006-11-10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책으로서도 괜찮을것 같아요
 
도플갱어
주제 사라마구 지음, 김승욱 옮김 / 해냄 / 200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등학교 역사교사인 테르툴리아노 막시모 아폰소는 어느날 동료교사로부터 비디오 한편을 소개받는다. 그 비디오를 보면서 테르툴리아노는 깜짝 놀라게 된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등장한 것이다. 5년전 콧수염까지. 단순히 닮았다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똑같다니... 그래서 교사는 이 배우가 나온 영화를 모두 섭렵한다. 그리고 영화사에 거짓 편지를 써서 주소를 알아낸 후 이 배우를 만나고자 한다. 그리고 만나게 된 두 사람. 말 그대로 도플갱어. 실제로 DNA가 똑같을 확률이 50억분의 1이라니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으란 법은 없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 닥친 인생의 격동... 반전이라고 할 수 있는 결말에 이르면 정말로 나를 나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든다.

소설을 읽으면서 납득하지 못했던 점은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해서 왜 꼭 만나봐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였다. 그저 놀라고 신기해하며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일까? 이것을 그럭저럭 무시하고 읽어간다면 소설은 종반부로 접어들수록 흥미진진해진다. 원본과 복사본에 대한 개념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 속 인물들이 누가 먼저 태어났는가에 집착하는 이유는 자신이 원본이고 싶어하는 욕망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삶이 원본과 복사본이 차이가 없는 디지털 시대다. 어느새 디지털 마인드로 무장되어져 있다. 내가 복사본이라고 해서 달라질 건 또 무엇일까? 지금까지 SF 영화들이 집착했던 자아 정체성의 문제에서 나의 기원에 대한 접근은 이제 더이상 중요한 문제는 아닐성 싶다. 재패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의문이 여전히 유효한 것은 정체성을 기억에서 찾기 때문일 것이다. 어쨋든 복사본이 복사본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그의 삶이 꼭 복사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삶 자체는 그에게 있어 원본이지 않을까?

소설은 이 부분보다 오히려 정체성의 문제를 외관으로 돌린다. 두 주인공이 왕과 거지처럼 서로 모습을 뒤바꾸기 위해서 한 것은 옷을 바꿔입는 것이다. 옷을 바꿔입는 것만으로 둘은 완벽하게 서로의 자리를 차지한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극적 반전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완벽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추었다. 그리고 그 옷을 바꿔입은 행위 하나만으로 자신의 과거 삶을 통째로 바꾸기도 한다. 이것은 옷이 날개라는 말로써도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군복을 입고 예비군이 됐을때의 행동변화나 과감한 옷차림으로 변했을때의 자신감 등등 외관이 자신의 성격도 바꿔주는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렇다고 옷을 바꿔입는 것만으로 정체성이 완전히 흔들릴 수 있을까

소설은 정체성이라는 문제보다 오히려 마지막 부분의 극적인 사건 전개때문에 흥미로울 뿐이다. 정체성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로 문제를 옮겨가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의 해답이 정체성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면 삶은 보다 다양해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으로 책장을 덮었다. 나는 나를 무엇 또는 어떤 사람이라고 단정짓지 말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여우 2006-10-20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얼굴이 지극히 평범한 이유때문인지 "어디서 본 것 같다"는 말을
수없이 듣습니다. 개성적이지 못한 외모때문에 화딱지가 났던 시절도 있지만
외모에 거의 신경을 끄고 사는 지금은 평범한 얼굴에 만족해요
그런데 정말, 누군가 저와 똑같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 땐 어쩔까..난감합니다.
정체성에 관한 괴로운 일에 시달릴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나는 나죠!^^

하루살이 2006-10-20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나는 그냥 나일뿐이죠. 무엇이라 정의되는 어떤 것이 아니라 그냥 나!!!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 타샤 튜더 캐주얼 에디션 2
타샤 튜더 지음, 공경희 옮김 / 윌북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타사 튜더라는 할머니는 동화작가다. 100권이 넘는 동화책을 냈고, 마리오네트 인형을 만들어 인형극을 공연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30만 평의 땅에 정원을 만들어 꽃들을 가꾸고, 염소를 키우며 19세기적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골동품에 가까운 요리기구며 옷들을 서슴지 않고 쓰는 모습에 골동품을 사고파는 사람들은 기겁할테지만 이렇게 예쁘고 좋은 것을 왜 그냥 놔두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할머니의 말 속에 삶의 가치관이 모두 담겨있는듯하다.

돈을 벌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는 할머니의 독백은 그야말로 너무 진실되 아름답다.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그림들은 모두 자신의 주위로부터 영감을 얻은 것들이다. 이 책은 할머니의 스케치를 간간히 보여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책이 주는 매력은 사진들에 있다. 할머니의 귀중한 말씀 한마디도 소중하지만 사진 속에서 보여지는 할머니의 모습만큼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없는듯하다. 마치 그림처럼 보이는 사진들은 정말 동화처럼 보여진다. 시골에서의 삶이 꼭 낭만적이지는 않을텐데도 그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당장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다. 튜더 할머니에게 어리광이라도 부리면서 시골에서 장작을 나르고 염소 젖을 먹으며 살고싶어지는 마음이 굴뚝 같다. 시골에서의 삶이 주는 불편함은 할머니의 낙관적 삶 속에 녹아들어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난 고독을 만끽한다. 이기적일지는 모르지만, 그게 뭐 어때서. 오스카 와일드의 말마따나 인생이란 워낙 중요한 것이니 심각하게 맘에 담아둘 필요가 없다. ... 상실감이 느껴지긴 하겠지만, 어떤 신나는 일들을 할 수 있는지 둘러보기를. 인생은 보람을 느낄 일을 다 할 수 없을만큼 짧다. 그러니 홀로 지내는 것마저도 얼마나 큰 특권인가.(64쪽)

인생은 짓눌릴 게 아니라 즐겨야 한다....  세상의 우울함은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뒤, 우리의 손이 닿는 곳에 기쁨이 있습니다. 기쁨을 누리십시오... 기쁨은 누리라고 있는 것이다.(92쪽)

할머니의 집에 초대받지 못하더라도, 그 할머니의 집을 내가 스스로 가꾸어보겠다는 꿈을 꾸어본다. 그 꿈 속에 기쁨이 자리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그 기쁨의 곳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을 초대하리라.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를 살리는 숲, 숲으로 가자 - 어머니 약손처럼 찌든 삶과 아픈 몸을 어루만진다
윤동혁 지음 / 거름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책은 숲이 얼마나 인간에게 유용한가를 경험적, 과학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꽃과 나무로 대변되는 식물들이 생존을 위해 내뿜는 화학성분, 즉 동물과 벌레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화학성분이 인간의 건강에 유용한 피톤치드가 된다는 사실에서부터, 실제적으로 숲을 통해 어떤 치료가 가능했는가를 일본과 한국의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토피와 관련된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것은 나의 지대한 관심사이기에 솔깃한 부분이기도 하다.

아토피를 고치면 노벨의학상은 떼논당상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저자가 말하는 숲이 의학상을 받아야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강력추천하고 싶어졌다. 물론 모든 환자들이 숲으로 향해들어가 치유될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그 가능성을 충분할 것이라고 여겨진다.

아토피 치료에 대한 공부는 크게 물, 먹거리, 공기로 나눌 수 있겠다. 좋은 물과 먹거리에 대한 관심으로 육류를 멀리해야 한다거나, 밀가루 음식, 달걀 등을 멀리해야 한다는 등 금기식품에 대한 정보는 물밀듯 쏟아진다. 하지만 정작 금기식품을 먹지않고 권장식품만을 먹더라도 차도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이런 음식조절만으로도 어느 정도 회복은 가능하지만, 완치와는 제법 거리가 있다. 물론 건강한 물도 마찬가지다.

원칙은 간단하다. 면역체계의 과다한 작용이든(이것이 알러지이다) 환경의 오염이든 면역체계의 이상 때문에 아토피를 비롯한 천식, 비염등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면역체계를 바로잡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물이나 먹거리를 바꾸는 것은 우리 몸의 면역체계의 기능에 과다한 작용을 억제, 즉 면역체계가 피곤하지 않도록 하는데 그 취지가 있다. 면역체계가 오버하지 않도록 애시당초 면역체계를 최소한으로 기능하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따라서 소식도 가장 좋은 방법중의 하나가 된다. 물론 그렇기때문에 방부제나 인공식품첨가물이 잔뜩 들어간 정크푸드를 경계하는 것이다.

이와는 다르게 면역체계 자체를 건강하게 바꾸자는 시도도 있다. 그것은 바로 자세 바로잡기나 꾸준한 운동이 이에 속한다. 운동이나 바른 자세를 통해 면역의 힘을 기르자는 것이다. 병을 갖지 않는 보통사람들처럼 과장된 반응을 보이지 않도록 면역의 힘을 기르자는 것이다.

숲으로 들어가자는 이 책은 아토피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숲이 주는 건강함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것을 잘 보여주는 예로써 아토피가 등장한다. 숲은 위 두가지 방법을 모두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숲으로 들어가면 면역의 힘이 강해진다. 피톤치드가 바로 몸을 해치는 여러가지 곰팡이나 병균을 죽이는데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숲을 걷는다는 것은 바로 면역의 힘을 키우는 것이 된다. 또한 숲 속에선 오염된 공기와 멀어지기 때문에 면역의 과도한 작동을 막을 수 있다. 일상 생활 속에서 우리는 무한히 많은 인공적인 화학물과 접하고 있다. 그곳으로부터의 탈출이 불가능하다면 그 공간을 자연친화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만드는데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숲에서 나오는 피톤치드인 것이다.

어쨋든, 숲은 건강의 보증수표다. 또한 생명을 키우는 성장제다. 맨발로 숲 속을 걷는 행위 자체로 우리는 건강뿐만 아니라 행복감도 얻을 수 있다. 책은 그것의 과학적 근거와 경험적 사례로 강요하지 않고 긍정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당장 신발과 양말을 벗어던지고 가까운 공원을 찾아 나무를 쓰다듬으며 흙을 밟고 싶도록 만든다.

숲이 없다면 숲을 만들자. 사무실에 집안에 화분을 들이자. 공기가 사람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근 스포츠클라이밍 기초교육을 받았다. 월수금 일주일에 3일 2시간씩 한달간 진행된 교육은 결석이 4번 이상 되면 수료증을 받을 수 없다. 정확하게 3번 결석하고 수강을 끝낸 덕분에 다행히도 수료증을 받았다. 교육은 상당히 힘들어 다음날이면 으례 몸이 찌뿌등했다. 2시간 내내 암벽을 오른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15분 정도, 잘 하면 2번 15미터의 벽을 오르는 정도인데도 말이다.

옆길로 새고 말았는데 하고 싶은 말은 클라이밍이 힘들다는 것이 아니라, 죽는다는 것의 공포감에 대해서다. 벌써 3년 가까이 되는 교통사고의 기억은 죽음이라기 보다는 그저 잠깐의 망각 정도로 기억된다. 살아남았기 때문에 돌이켜보면 죽음의 그림자보다는 해프닝의 햇살만 보인다는 것이다.

클라이밍을 할 때는 자일을 허리에 걸고 오른다. 안정장비를 다 갖추고서 오른다는 말이다. 마지막주 월요일 수업때는 추락실습도 있는데 12미터 쯤에서 8미터가량을 떨어져 혼쭐났다. 하지만 죽음의 냄새보다는 그저 아찔하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다고 죽음에 대해 겁을 내지 않는 강심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혹시나 매듭을 잘못 매서, 또는 확보자가 하강기를 실수로 다루어서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항상 갖고 벽을 오른다. 떨어지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난 적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암벽을 대할때면 이런 생각은 사라지고, 한번에 끝까지 올라서겠다는 의지만 불타오른다. 물론 팔에 힘이 떨어져 추락할때는 긴장하지만 말이다.

몇일 전 꿈을 꿨다. 소총을 든 사내들이 나를 트럭 뒤칸에 실으려한다. 나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트럭에 오른다. 가슴이 두근두근. 어느덧 널따란 평원에서 차는 멈추고 다들 트럭에서 내린다. 그런데 갑자기 나 혼자 줄에서 이탈해 다른 쪽으로 끌려간다. 그리고 찾아오는 죽음의 그림자. 총을 든 사내들이 거총을 한 것도 아닌데 끌려가는 내내 죽음에의 공포감이 밀려왔다. 이대로 죽는건가 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자 온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꿈 속인데도 말이다. 너무 무서웠다. 살고싶었다. 이토록 내가 강렬하게 삶을 원했었나 하는 생각이 머리에 스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을 떴다. 그래 이렇게 살아있구나. 난 이토록 살고싶었구나.

최근 읽었던 일본 소설 <종말의 바보>가 생각났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악착같이 살아라. 삶은 이렇게도 고귀한 것이었음을 꿈을 통해 느낀다. 왜 이런 꿈을 꾸었을까 생각해보다 사는게 사는 것 답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으로 이불을 걷어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프레이야 2006-10-03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보고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하루살이님, 정말 악몽이었지만 깨달음을 얻었네요 ^^ 스포츠클라이밍을 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

하루살이 2006-10-03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영화 <우행시> 꼭 보고싶었는데...
클라이밍은 기초 교육만 받았어요. 제가 써 놓은 글 읽어보니 굉장히 어려운 것처럼 느껴지네요. 그런데 실제론 만만하답니다. 몸매 바르게 잡아주는데 최고일듯하니 혹 시간이 나신다면 도전해보세요. 안전장비만 유의한다면 정말 괜찮은 운동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