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분짜리 동물의 왕국이라고 하면 제격인 다큐멘터리 영화 <지구>는 서럽도록 아름답다는 말을 넘어 서글프기까지 하다.

  

북극에서 남극까지 지구의 생명과 자연을 훑고 지나가는 카메라는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의 관계가 때론 잔인하게도 비치지만 처절한 아름다움을 선물한다. 상어가 물개를 잡아채며 하늘로 붕 떠오르는 모습이라거나 표범.치타의 먹이를 쫓는 질주장면은 그야말로 예술이다. 잡아먹혀야만 하는 동물들의 서글픔도 잡아먹어야 살 수 있는 동물들의 치열함도 과장되지 않고 담담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주는 파장은 생각보다 크다.

   


어쨋든 이 다큐영화는 북극곰이 주인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첫 장면에 등장하는 동면에서 깨어난 북극곰은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나타나 가슴을 싸늘하게 만드는 장면을 연출한다. 몸뚱아리가 절반이나 줄어들어 자신보다 덩치가 큰 바다사자를 잡아먹기 위해 목숨을 건 <도박>을 하는 장면은 눈물을 떨구게 만든다.

누가 저 북극곰을 도박으로 몰게 했을까. 

영화는 우리가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행동하라고 말한다. 무엇무엇을 하면 지구를 살릴 수 있다고 말하기 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을 찾아보라는 말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거창한 무엇을 찾기 보다  물한방울 아껴쓰고 전기를 허투로 쓰지 않는 것 하나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육식을 줄인다는 행위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멸종 위기에 처한 생명들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바다사자들 사이에서 잠자듯 조용히 드러누운 북극곰의 모습이 눈동자에 아련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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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서는 아이가 떼를 쓰면 엄마가 다가가서 손을 펼쳐보인다. 그리고 아이에게 손바닥을 깨물어보라고 한다. 손바닥을 깨물면 떼쓰는 것을 들어주겠다면서. 그러면 아이는 열심히 입을 벌려 손바닥을 깨물려 한다. 그러나 손바닥은 쉽게 깨물어지지 않는다.

눈앞에서 바로 이루어질 것 같지만 잘 안되는 것들이 있다. 아이에게 손바닥 깨물기를 시키는 것은 바로 그런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다. 원한다고 해서 다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럼 어른들은 뭘 해봐야 이런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을까. 팔꿈치를 혀로 핥기 같은 아예 불가능한 것을 해보는 것도 자신의 욕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어쩃든 내가 지금 바라고 있는 것이 손바닥 깨물기와 같은 것은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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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선택의 기준은 다양할 것이다. 이 영화 바빌론 AD가 보고 싶었던 이유는 뇌까지 근육질로 꽉 차 있을 것 같은 배우 빈 디젤의 액션에 대한 기대감이 제일 컸다. 다음으론 마티유 카소비츠라는 감독에 대한 믿음이랄까. <증오>와 같은 현실감 넘치는 영화에서 SF로의 이동은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4개의 스턴트팀을 동원했다는 액션 장면은 소문난 잔칫집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재미있는냐 하면 뻔한 구성에 뻔한 줄거리인지라 그닥 흥미를 끌지 못한다.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도 명확하지가 않다.

미래를 구할 오로라라는 소녀를 몽골의 수도원에서 뉴욕으로 데려가야 하는 사명을 띤 투롭(빈 디젤)이 마지막에 임무를 거부하고 소녀를 구하기 위해 나선다는 내용이다. 궂이 영화의 특이한 점을 말하고자 한다면 가족에 대한 시선이라고나 할까. 첨단 컴퓨터를 모체로 한 아이와 동정녀 신화로 태어난 쌍둥이와 가족을 이루는 투롭은 피나 DNA와 상관없는 가족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진정한 가족이란 혈연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그러나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지금 현실에서도 가족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1인 가족이 늘어나면서 이들끼리 실험적인 가족도 탄생하고 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가족에 대한 영화는 아니기에 비난의 화살을 쏠 필요도 없다. 그리고 바로 그런 점에서 영화는 할 말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그냥 입을 다물고 끝내 버린다.(아이고, 아까워라 내 돈~~ ㅜㅜ)

어정쩡한 것은 역시 군대에서 줄 설 때나 필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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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 1 밀리언셀러 클럽 64
기리노 나쓰오 지음 / 황금가지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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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힘겨워질때 우리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렀다고 말하곤 한다. 이 막다른 골목의 다른 말로는 벼랑끝과 늪이 있다. 하지만 벼랑끝과 늪은 닮은듯 하나 다르다.

벼랑끝에 몰린 사람은 선택해야 한다. 스스로 뛰어내리든가 그곳을 탈출하든가. 벼랑끝에 몰린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 몸을 떨어뜨린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말은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그 끝을 보게 된다. 하지만 늪은 어떻던가. 늪이라는 것을 알고서 빠지는 경우는 없다. 빠지고 나서야 비로소 늪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하지만 거기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치면 발버둥칠수록 더욱 빠져들게 되는 것 또한 늪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어쩔 수 없이 가라앉을 수밖에 없는 곳이다.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 <아웃>에서는 네 명의 주인공이 나온다. 이들은 도시락공장에서 야간에 일을 한다. 그러던 중 야요이가 자신의 남편을 살해하는 일이 발생한다. 벼랑끝에 몰렸던 야요이는 마사코에게 도움을 청하고 결국 네명의 여자들은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서 야요이를 돕게 된다. 남편의 시체를 토막내 유기함으로써 벼랑끝에서 탈출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이내 시체의 일부가 발견되고 이 사건을 계기로 사타케라는 남자가 접급해 온다. 신분도 모르는 시체들을 토막내 유기하는 일로 돈을 벌자고 접근해 온것이다. 이 일은 네 명의 여자들을 늪으로 몰고간다. 소설은 이 과정에서 네 여인의 연대감과 질시, 두려움과 절망 등등 심리적 과정을 세심하게 묘사한다. 즉 벼랑끝에서 늪으로 내몰린 여인들의 심리가 흥미진진한 소설인 것이다.

속으로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너무 괴롭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기때문이다. 그 대신 프라이드가 가혹한 노동을 견디게 해 준다. 그녀는 모든 문제의 본질을 덮어 두고 마음속 깊은 곳에 걸어 잠근 채, 부지런함을 철칙으로 삼았다. 현실을 보지 않는 것이 삶의 기술이다. -요시에 46쪽

빨래없이 돌아가던 세탁기를 보며 헛돌고 있던 신용금고 시절의 자신을 겹쳐봤던 적이 있었다. 분명 집에서도 같은 짓을 하고 있었던 거다. 그렇다면 자신의 인생은 대체 뭐였던 걸까. 무엇을 위해 일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것인가. 마모되어 갈 곳을 잃은 자신을 생각하자니 눈물이 넘쳐흘렀다. -마사코 367쪽

분노는 자신을 해방시킨다. 그날 아침, 자신은 확실히 변한 것이다. -마사코 402쪽

그러는 사이 다름 아닌 겐지가 자신들의 생활의 나침판 그 자체였나 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편의 건강, 남편의 기분, 남편이 버는 돈. 그것들에 일희일비하는 생활을 해 온 것이다. 야요이는 웃음이 나올 뻔했다. 자신이 남편을 죽인 거니까. -222쪽

과연 소설 속 이 네 명의 여자 주인공들은 인생의 벼랑끝에서 탈출하고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만약 탈출이 가능하다면 그 비결은 무엇일까. 소설이 흥미진진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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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루이비통을 불태웠는가? - 한 명품 중독자의 브랜드 결별기
닐 부어맨 지음, 최기철.윤성호 옮김 / 미래의창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저자 닐 부어맨은 한때 명품중독증에 걸렸다. 사람을 대할 때면 그 사람이 무슨 옷과 신발, 가방 등을 걸치고 있는지로 캐릭터를 판단했다. 자신 또한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서 브랜드의 종류를 바꿔가며 스타일을 연출했다.

그러나 어느날 이런 자신이 허망하다고 생각되는 순간에 접하게 됐다. 행복해지기 위해 명품을 구입했지만 행복해지기는 커녕 오히려 자꾸 더 불안해지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결심하게 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브랜드 제품을 다 불태워버리기로 말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블로그로 옮기기로 했다. 그러자 수많은 네티즌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유명해지기 위해 별의별 짓거리를 꾸민다라거나 왜 태우느냐 그대신 기증해라 라거나... 비판을 넘어선 모욕적인 언사도 많았다. 물론 그의 행동을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자 저자는 망설이기 시작했다.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이라도 다시 명품과의 이별을 철회하고 친하게 지내볼까. 그래서 공부하기 시작한다. 나는 왜 허망함을 느꼈을까 하고.

그 과정에서 광고라는 것의 속성을 접하게 된다. 광고는 자본주의의 꽃이라 했으니 어찌보면 자본주의의 한 단면을 알게 됐다고도 할 수 있다. 사람들이 현재 처한 자신의 상황을 불행하다고 느끼게 만들고, 이상적인 모델이니 이미지를 통해 상품을 구입했을 때 자신도 그들처럼, 또는 그 이미지처럼 행복해질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주는 것이 바로 광고라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 내가 필요하기 때문에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이라는 환상을 쫓아 소비를 하게 된다. 그러나 그 소비는 행복의 그림자일뿐 행복 그 자체는 아니였다. 쫓아가면 다시 달아나고 또 쫓아가면 한발자국 멀어져가버린다.

그래서 저자는 명품 브랜드를 다 불태워버리고 꼭 필요한 물건만을 구입해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과정 또한 결코 만만치않다. 브랜드 없는 상품을 구입하기란 하늘의 별따기가 되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품을 사기 위해 벌어야 하고 벌기 위해선 일해야 하고, 그 스트레스는 명품으로 푸는 악순환에서 벗어나보니 세상을 달라져 보였다. 덜 쓰고 덜 일하고 늘어난 시간은 가족과 보내거나 자기계발에 쓴다.

그런데 욕망을 자극하는 소비라고 뭉뚱그려 말할 수 있을까. 소위 미래 산업의 하나인 디자인 시대를 거부하는듯한 인상을 풍기는 이 말은 미래가 어떤 모습이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나아간다. 디자인이라는 것 또한 인간의 필요인가 아니면 헛된 욕망인가. 그러나 책을 잘 읽어보면 이 질문은 다르게 바뀌어야 한다. 디자인 또한 우리가 살아가며 필요로 하는 소중한 것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그것에 브랜드가 붙으면서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바로 그 과정에서 허영이 깃들고 욕망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허영과 욕망이 자본주의를 힘차게 돌아가도록 만드는 영양분이 된다. 누구나 갖고 싶은 펜트하우스, 또는 보트에의 욕망말이다. 희귀하면 희귀할 수록 더욱 더 갖고 싶은 욕망이 현재 우리 사회를 이끌어간다.

과연 우리는 그 욕망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러 날려버릴 수 있을까. 저자의 퍼포먼스가 부싯돌의 작은 불꽃이라도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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