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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 1 ㅣ 밀리언셀러 클럽 64
기리노 나쓰오 지음 / 황금가지 / 2007년 5월
평점 :
삶이 힘겨워질때 우리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렀다고 말하곤 한다. 이 막다른 골목의 다른 말로는 벼랑끝과 늪이 있다. 하지만 벼랑끝과 늪은 닮은듯 하나 다르다.
벼랑끝에 몰린 사람은 선택해야 한다. 스스로 뛰어내리든가 그곳을 탈출하든가. 벼랑끝에 몰린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 몸을 떨어뜨린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말은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그 끝을 보게 된다. 하지만 늪은 어떻던가. 늪이라는 것을 알고서 빠지는 경우는 없다. 빠지고 나서야 비로소 늪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하지만 거기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치면 발버둥칠수록 더욱 빠져들게 되는 것 또한 늪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어쩔 수 없이 가라앉을 수밖에 없는 곳이다.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 <아웃>에서는 네 명의 주인공이 나온다. 이들은 도시락공장에서 야간에 일을 한다. 그러던 중 야요이가 자신의 남편을 살해하는 일이 발생한다. 벼랑끝에 몰렸던 야요이는 마사코에게 도움을 청하고 결국 네명의 여자들은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서 야요이를 돕게 된다. 남편의 시체를 토막내 유기함으로써 벼랑끝에서 탈출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이내 시체의 일부가 발견되고 이 사건을 계기로 사타케라는 남자가 접급해 온다. 신분도 모르는 시체들을 토막내 유기하는 일로 돈을 벌자고 접근해 온것이다. 이 일은 네 명의 여자들을 늪으로 몰고간다. 소설은 이 과정에서 네 여인의 연대감과 질시, 두려움과 절망 등등 심리적 과정을 세심하게 묘사한다. 즉 벼랑끝에서 늪으로 내몰린 여인들의 심리가 흥미진진한 소설인 것이다.
속으로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너무 괴롭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기때문이다. 그 대신 프라이드가 가혹한 노동을 견디게 해 준다. 그녀는 모든 문제의 본질을 덮어 두고 마음속 깊은 곳에 걸어 잠근 채, 부지런함을 철칙으로 삼았다. 현실을 보지 않는 것이 삶의 기술이다. -요시에 46쪽
빨래없이 돌아가던 세탁기를 보며 헛돌고 있던 신용금고 시절의 자신을 겹쳐봤던 적이 있었다. 분명 집에서도 같은 짓을 하고 있었던 거다. 그렇다면 자신의 인생은 대체 뭐였던 걸까. 무엇을 위해 일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것인가. 마모되어 갈 곳을 잃은 자신을 생각하자니 눈물이 넘쳐흘렀다. -마사코 367쪽
분노는 자신을 해방시킨다. 그날 아침, 자신은 확실히 변한 것이다. -마사코 402쪽
그러는 사이 다름 아닌 겐지가 자신들의 생활의 나침판 그 자체였나 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편의 건강, 남편의 기분, 남편이 버는 돈. 그것들에 일희일비하는 생활을 해 온 것이다. 야요이는 웃음이 나올 뻔했다. 자신이 남편을 죽인 거니까. -222쪽
과연 소설 속 이 네 명의 여자 주인공들은 인생의 벼랑끝에서 탈출하고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만약 탈출이 가능하다면 그 비결은 무엇일까. 소설이 흥미진진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