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길을 자동차로 달리다보면 움찔움찔할 때가 있다. 왕복 2차선 도로에서 중앙선을 넘어 달려오는 반대편 차 때문이다. 인도가 없어 도로 가장자리를 걸어가는 어르신들을 피하기 위해서, 또는 자전거나 경운기, 오토바이를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중앙선을 넘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가장자리가 패이거나 울퉁불퉁해 이걸 피하려 할 때도 중앙선을 넘어서기 일쑤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아니라 무작정 중앙선을 넘어서 달려오는 차들도 있다. 중앙선을 넘었다 차선을 지켰다하며 왔다 갔다 하는 것이 귀찮아서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런 차들이 다가오면 이쪽에선 도로 끝자락까지 피해야 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내 차선을 지키겠다고, 내가 옳다고 고집하고 나아가다간 충돌할 게 뻔하다.

 

도로에서뿐만이 아니다. 직장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가족 관계에서조차 나는 올바르게, 정당하게 내 차선을 지키며 끝까지 내 길을 고집하겠다고 주장하다가는 필시 사고가 난다. 상대방이 중앙선을 넘어오는 경우 피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잠시 피해간다고 내 길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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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UN이 정한 '콩의 해'이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영양가 높은 곡물'이 슬로건이다. 다 시우바(José Graziano da Silva) FAO 사무총장은 "콩은 세계 많은 사람들의 식량안보에 중요한 곡물이다. 특히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에서 영양 곡물로 널리 이용되고 있으며, 소작농에게 커다란 희망이 되고 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반기문 UN사무총장도 "콩은 여전히 인류에게 중요한 작물이며 특히 질소를 고정해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콩과 함께 풍요로운 미래를 열어 가자"고 말했다.

 

우리나라 콩의 자급률은 11.3%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과잉생산이라고 난리다. 농식품부가 포장두부를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면서 대기업이 국산콩을 사지 않으면서 벌어진 일이라고도 한다. 더 이상 사업을 확장할 수 없는 대기업이 판매가격이 낮고 수익성도 좋은 수입 콩 두부시장에 치중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일부 콩 생산농가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해제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과잉생산(?)된 콩 탓에 수매가는 점점 떨어지고 있다. 아예 수매 자체를 꺼리기도 한다. 재고가 쌓여있기 때문이란다. 소작농의 희망이라고 말하는 콩도 자본주의의 시장 안에서는 절망이다. 질소를 고정하는 성질 덕분에 친환경농사를 짓는데도 큰 도움을 주는 콩이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 땅에서는 자라지 못할지도 모른다. 콩의 원산지이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콩을 먹던 한반도가 알콩달콩 맛있는 콩맛을 잃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수입되는 콩의 대부분은 사료용으로 개량된 것들이다. 콩에서 기름을 짜고 남은 비지를 사료로 쓰기 위해 키운 것들이라 기존 콩에 비해 지방 성분이 3% 정도 많다고 한다. 이 콩으로 된장을 담그면 우리가 갖고 있던 그 깊은 맛을 담아낼 수 있을까. 우리가 키우든 말든 싼 가격으로 먹을 수만 있다면 괜찮은 일일까. 만약 기후변화로 콩값이 천정부지가 된다면 고기 값도 덩달아 뛸 것이다. 그러면 값싸게 충족시킬 수 있었던 단백질을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땅짐승과 날짐승, 사람이 나누어 먹자고 콩 세 알을 심던 농부의 마음이 사라져가는 팍팍한 세상이다. 콩이 희망이자 풍요로운 미래가 되기 위해선 콩만으로는 안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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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를 돌리다 물이 끊겼다. 느닷없는 단수다. 세탁기는 물을 토해내고 그 빈 공간에 다시 물을 담아내지 못해 멈춰 섰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선 후 문을 닫으면 세상과 멀어지는 느낌이다. 갑작스런 단절이다. 바깥 세상의 공기를 다 뱉어내고 방 안에 홀로 누우면 나만의 세상이다. 고립이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거나 생존하기 위해서 관계를 맺어야만 하는 스트레스로부터의 탈출이다. 즉 자발적 고립이자 기꺼운 고립이다.

하지만 돌지 못하는 세탁기가 알려준다. 고립이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도 우리는 어딘가에 잇닿아 있다는 것을. 예고되지 않은 단수는 어디에선가 상수관이 파손되면서 긴급 복구를 위해 급수관을 잠가 벌어진 일이다. 문 밖의 갑작스런 사태 하나가 집 안의 세탁기를 멈춰 세운 것이다. 절대 고립은 없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 다시 물을 채운 세탁기가 돌기 시작한다. 세상은 그 어느 순간에도 서로 이어져 있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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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물통에서 작은 물통으로 물을 옮길 때면 살짝 긴장한다. 혹시나 물을 흘릴까봐 조심스럽다. 너무 조심스러워서 살짝 물통을 기울이면 물이 힘없이 흘러나온다. 작은 물통의 입구로 들어가지 못하고 물통을 적셔버린다. 그렇다고 벌컥 쏟으면 물은 입구로 들어가지 못하고 흘러넘친다. 적절한 힘의 분배가 필요하다.

작은 물통이 투명하지 못할 때는 언제 물이 찼는지를 알지 못한다. 대충 가득 찰 거라 예상되는 부분에서는 점차 물을 따르는 속도를 줄였다가 넘치기 직전 멈춰야 한다. 즉 예의주시하고 있지 않으면 물은 넘쳐버리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애정을 쏟아붓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 아닐까. 너무 조심스러우면 애정이 담기지 못하고 너무 과하면 마음에 담기지 못하고 넘쳐흘러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눈에 보이지 않아 항상 예의주시해야 한다. 마음을 읽으려 노력하지 않고 애정만 쏟아붓다가는 넘쳐흘러버린 애정 탓에 눈살만 찌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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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다보니 미워하는 사람이 생기더라. 싸워 물리쳐야 하는 적과는 조금 다른 미운 사람. 적 보다도 더 증오할 때도 있지만.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이방원은 화사단의 초영을 향해 이런 말을 한다. “적을 누구로 삼을 것인가? 인생에 있어서 적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일종의 협박같은 협상을 제안한다. 삼한 제일검을 적으로 두지 말라고 말이다.

웹툰 <송곳>에서는 구고신 소장이 “세상에 아군이랑 적군만 있는게 아뇨.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이 우리 편이 아닌 건 문제 없지만 적이 되면 힘들어져.”

 

누구를 적으로 둘 것인가가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미워하는 사람이 생겨 마치 죽일 듯이 미워해보니 알겠더라. 누구를 미워하는냐 보다는 그저 미워하는 그 마음이 괴로움이 된다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예의를 다하고,

많은 사람에게 붙임성 있게 대하고,

몇 사람에게 친밀하고,

한 사람에게 벗이 되고,

아무에게도 적이 되지 말라"

-도종환의《사람은 누구나 꽃이다》중에서

 

 

‘미움받을 용기’를 말하지만, 누군가의 적이 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미워하고 미움받는 거.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라 지나가는 바람으로 여길 꾳같은 마음이 필요한 일이 아닐까. 미워하는 마음이 옅어질수록 괴로운 마음도 희미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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