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시간의 흐름을 알아챈다. 주위를 둘러보면 어느새 가을이 찾아왔다. 생명을 갖은 것들은 모두 수확을 준비하고 있다. 된서리와 무더위를 이겨내고 주렁주렁 열매를 맺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다. 한해가 다 가기 전에 말이다.

그래 한 해가 다 가고 있다. 난 어디서 꽃을 피우고 어디서 열매를 맺고 있을까. 서늘해진 바람에 마음도 시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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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간에서 낮잠을 청하고 있는 이 검둥이를 보면서 맨 처음 떠오른 말은 개 팔자가 상팔자였다.

마음대로 돌아다니다가 잠이 오면 잠을 청하고, 때 되면 주어지는 밥을 설렁설렁 먹을 수 있으니 상팔자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더군다나 살생을 금지하는 절간에서 살다보니 복날 걱정 할 필요도 없다. 다만 이렇게 사진을 찍듯 절 구경 오는 사람들의 호기심어린 눈초리 정도 귀찮을 뿐일 것이다.

한때 사람이 먹지않고 자지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세상의 웬만한 갈등은 다 사라지지 않을까 상상해본 적이 있다. 즉 상팔자라고 할 수 있는 기 전제조건조차 사라져버린다면 모두가 상팔자가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세상살이 힘든 것의 대부분은 먹는 문제가 아니던가. 자유가 아니던가.



그런데 최근 재패니메이션 '최후의 여전사 벡실'을 보면서 이런 상상이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2067년 안드로이드 개발에 열중하던 일본이 유엔연합에서 떨어져나와 10년간 쇄국정치를 하다 미국의 첩보원들이 일본에 침투하면서 그 비밀의 베일이 벗겨진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을 안드로이드화하는 것을 인간 진화의 최종목표로 바라보는 일본 내 한 집단의 광기를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의 참뜻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다. 여기서 자칭 자신을 신이라 부르는 박사는 먹지도 자지도 않고 살 수 있는 불사의 존재가 됐으니 행복한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감정의 격랑에 휘둘리지 않고 평정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니 불행으로부터 벗어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안드로이드 마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며 그것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상팔자는 사람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재미를 느끼면서도 사람의 기본적 생활을 위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애써야 하는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움을 뜻할 것이다. 그러니 상팔자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도대체 누가 이런 상팔자를 타고 태어날 수 있을까.

그냥 꿈 깨고 낮잠이나 실컷 청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인생의 낮잠을 즐기는데는 허허로운 마음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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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주는 풍경은 계절과 시간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한다. 한겨울 보름달이 눈에 반사되는 풍경이나, 이곳저곳에 오색빛깔 야생화가 피는 봄, 억새와 단풍이 어우러지는 가을, 녹음과 시원한 계곡이 뿜어내는 여름의 풍경...

또 시간에 따라서는 어떤가. 특히 아침풍경은 안개와 구름이 빚어내는 모습이 장관이다. 구름바다에 빠져 수영을 하고 싶거나 손오공처럼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과는 다른 모습. 무릉도원 또는 선계.

내가 먹고 자고 마시는 일상의 공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마저도 산의 아침풍경을 대하면 그 그림자조차 사라지고 만다. 욕망 마저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 그래서 새벽녘 오르기 시작한 산은 그냥 산이 아니게 된다. 나를 잊어버리게 하는 곳. 때론 그렇게 사라져버리는 것이 무한한 충만감을 안겨준다.

비움의 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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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찬송 2018-02-09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이번에 홍천군청에서 산에대해 게시물을 올리려고하는데 공작산 사진을 너무 멋지게 찍으셔서요! 괜찮으시면 사진 한장 게시글에 함께 올릴수있을까요? 출처남기고 사용하겠습니다 ^*^ 답변 부탁드립니다! ㅎㅎ

하루살이 2018-02-10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출처만 꼭 남겨주세요.
 

야생 리얼리티 버라이어티 쇼가 인기다. 1박 2일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야생이란 무얼 말하는 걸까.

최근 여름 휴가라고 하기에는 조금 늦은 휴가를 보냈다. 강원도 홍천의 공작산 자연휴양림 펜션에서의 하룻밤. 통나무와 황토로 지은 집에서 하루를 보내는 기분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보일러가 아닌 장작을 때는 구들장과 함께 과수원에서 자라난 과수가 아닌 야생에서 농약없이 마음대로 자란 사과와 복숭아를 맛보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주인장 또한 이윤과 별 상관없이 생활하다 보니 모든게 자유로웠다.



 

특히 통나무집 주변에서 자라는 복숭아나무에서 잘 익은 복숭아를 따 먹는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 향기는 일반 복숭아와 사뭇 달랐다. 그 진한 향기에 행복감을 느낄 뿐이다. 야생의 향기란 이런 것일까.

보호받지 못한다는 조건에서 생존을 향한 몸부림은 경쟁이다. 죽는냐 사는냐의 문제다. 그 생존의 갈림길이 맛과 향기를 돋보이게 만든 걸까.

항상 탈출을 꿈꾸는 도시인으로서 살아가는 나란 존재에게 있어 야생의 삶은 로망이다. 이번 휴가에서 맛본 복숭아와 사과는 그 로망을 강하게 자극했다. 정돈되지 않은 삶. 자연에 휩쓸려 상황에 따라 대응해야 하는 삶. 그런 삶이 도시에서 정해진 길을 따라 속도를 높이는 삶보다 행복할 수 있을까.

대형마트에서 사 먹는 복숭아보다 훨씬 달콤하고 향긋한 야생의 복숭아가 그 대답을 대신 해준건 아닐까.



 

내 몸에서 야생의 향기가 날 수 있기를 바란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그만의 향기를 남기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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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볼 1
키리노 나츠오 지음, 권남희 옮김 / 산성미디어 / 200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기적인 것은 백번 알고 있다. 그러나 이기적이 되는 데 이렇게 용기가 필요할 줄이야. 다른 것들을 모두 버리더라도 자기 자신으로 있고 싶다. 지금까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만약 자신으로 있지 못한다면, 남은 생은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 42쪽

주인공 카스미는 불륜에 빠졌다. 자신의 가족은 물론 불륜 남자의 가족과 함께 별장에 휴가와서 남몰래 사랑을 나눌 정도로 열정에 빠졌다. 하지만 갑자기 자신의 큰 딸이 사라졌다. 고등학교 시절 어촌에서 부모님 몰래 가출해 도쿄로 온 이후 한번도 연락하지 않은 대가일 수도 있다. 또는 불륜과 거짓이라는 죄의 대가일지도 모른다. 카스미는 아이가 사라지고 나서 4년이 지났지만 아이를 잊지 못하고 계속 찾아다닌다. 그 와중에 상대방 가족도 무참히 깨졌고, 자신의 가족도 와해됐다.

소설은 중간중간 아이가 없어진 상황을 꿈을 통해 드러낸다. 그 범인은 다양한 주위 인물로 구성된다. 처음 꿈을 접했을 땐 깜짝 놀란다. 아니, 이런 이유로 아이를 유괴하고 죽였단 말인가. 하지만 이내 이것이 꿈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른 가정들. 마치 일본영화 나생문을 떠올리듯 관점에 따라 사건이 달라진 것처럼, 주변 인물을 범인으로 내세울 때마다 사건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질투, 시기, 욕망, 복수 등등 인간의 감정이 저질러내는 끔찍한 일들에 비통해지는 심정이 된다. 그리고 단단하게 매여있을 것 같던 가족이라는 울타리도 힘없이 무녀져 내린다. 심지어 모성이라는 것조차 욕망에 휩싸인 순간 저버릴 수 있는 한낱 감정에 불과할 뿐이다.

부족함이 없는 날들에 매력이 있을까. 54쪽

라고 말하지만 그런 부족함이 이런 사건을 만들어낸다면 매력없이 살아도 좋을듯 하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항상 부족함을 느끼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살아간다. 그 부족함과 허기는 감정의 허기다. 사람을 향한... 그래서 불교에선 그토록 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연은 결국 업을 쌓게 되는 것일테다.

난 그걸로 좋다고 생각해요. 아니, 어쩌면 그게 전부가 아닐까 싶어요. 사람이 사람을 동경하거나, 욕심내는 것 말이죠.162쪽

할 수 없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다. 연과 업을 쌓아가는 수밖에. 그러나 떄론

사람이란 모든 것에 익숙해가는 법이다. 카스미는 슬픔이라고도 체념이라고도 할 수 없는 감정으로 타인의 무관심을 바라보는 것이다. 123쪽

그 격한 감정의 흐름이 무디어지는 순간도 있다. 그것이 바로 매력이 사라진 순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순간은 고요한 순간이기도 하다.

병이 인간에게 고독을 강요하는 것은 육체의 아픔과 괴로움을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육체는 지극히 개인적이어서 그것을 말로 전하려는 노력은 너무나 무력한 것이었다 하물며 우츠미는 말에 의지해 타인에게 뭔가를 전하고자 노력해온 인간도 아니다. 아니, 타인과 서로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환상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185쪽

당사자를 대신할 수 없는 이상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공감 따위는 그저 상대를 더 초조하게만 할 뿐이다. 2권 141쪽

이것이 바로 인간을 고독하게 만든다. 욕망의 대상과 내가 합일되지 못한다는 사실의 자각. 그 감정도 결국 흘러가서 변화된다는 것.

이제 더 이상 할 이야기도 없어요. 서로에 대한 흥미도 없어졌고 공유하는 것도 없어요. 그때의 열병은 대체 뭐였나, 하는 씁슬한 기분이 들더군요. 그런 걸까요, 사는 게 다...

누군가와 산다는 것은 타협의 연속이죠. 아닙니까. 난 혼자 있을 겁니다. 끝까지.

고집쟁이든 뭐든 카스미를 대신할 사람이 어디에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의 운명을 대신할 자도 없다. 온세상 어디를 뒤져도 없다. 너는 너 이외의 사람은 모두 너와는 다르다는 당연한 진실을 경험해본 적 있는가. 내 배의 통증이 네게 전해지는가. 우츠미는 쿠미코에게 분노를 느끼면서, 묵묵히 다다미만 바라보고 있었다. 142쪽

그래서 사람은 혼자서 살아가게 된다.

그럼, 뭐가 목적이야. 목적은 없어요. 그저 꿋꿋이 살아가는 거죠. 210쪽
라는 자세로.

삿포로에 가자. 이시야마처럼 흐르는 대로 살다 보면 언젠가는 마음을 충족시켜 주는 것도 나타날는지 모른다. 자신은 꿋꿋이 살아갈 것이다.255쪽

나도 상대도 휩쓸어가버리는 감정의 격랑에서 벗어나 살아가기를 희망하지만 그러다보면 생겨나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또 그 격랑속으로 온몸을 맡기는 인생. 격랑의 소용돌이 그 자체를 만들고 거부하는 것을 인위적이지 않고 흘러가는대로 내맡긴다는 것은 또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러니 꿋꿋하게 살아가자고 말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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