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쓰는 모든 책의 주제는 하나입니다. 제 평생의 화두, '인간은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라는 물음이에요. 그 물음 앞에서 제가 유일하게 발견했던 것은, 낯선 존재, 모르는 존재, 두려운 존재, 즉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서만 인간의 성장은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그 타자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과 정성입니다. 이건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렇게 시간과 정성을 들여 '곁'을 만들어냈을 때에만, 이 망해버린 세상을 그나마 저버리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단속사회> 엄기호 강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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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사람이 중국집에 배달시켜먹으려면
다 못먹더라도 2인분을 시킨다.
1인분 배달은 그야말로 배달값도 안나오는 장사이니
주문은 거절당하기 일쑤다.
손님이 왕 대접받으려면 돈 좀 있고 봐야 한다.
안먹을 음식까지 시켜야하니까.

 

딸내미와 밥을 먹으러 식당엘 가면
비슷한 처지가 된다.
궂이 딸내미 먹을 것까지 시킬 필요는 없다.
그냥 공기밥 한 그릇만 추가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뭔가 뒤통수가 간지럽다.
그래서 그냥 메뉴 두 가지를 시켜버린다.
2인분 값을 치르고 나오면 개운하다.
물론 배터지게 먹고 힘들어하고 돈도 좀 아깝기도 하지만...

 

한 식당엘 들어갔다.
부부가 운영하는 시골의 식당.
딸내미 귀엽다고 호들갑이다.
자연스레 주문을 받는데 당연스레 한그릇이란 말투다.
뒤통수 간지러운 느낌없이 1인분만 시켰다.
그런데 밥은 두 그릇이 나온다.
아이 먹으라고 반찬도 특별히 두 가지가 더 나왔다.
계산 할때 밥 한 그릇 값은 빠졌다.
아이 밥은 그냥 주는 거라며.

 

이런 온정이 그립고 감사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
역시 부담스럽다.
먹은 만큼 제값 치르고 나오면 뒷 일은 없다.
그냥 가게에 들러서 돈 내고 밥 먹고 그 뿐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 부담이 얹어졌다.
그래서 찬찬히 생각해봤다.
이 부담이라는 감정이 어디서 온 것인지를.
그런데 이 부담이 실은 돈의 교환가치를 뒤엎을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담이 부담된다면 친절한 이 식당을 다시 찾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친절을 친절로써 되갚는다면 돈의 교환관계를 떠나 인간적 교환관계가 성립될 수 있지 않을까.
딸기든 토마토든 아주 조금이라도 농장에서 생산된 것을 들고 식당을 찾아본다면 그야말로 단골이 될 것이다. 자주 찾지 않더라도 말이다. 물론 이런 마음은 그야말로 자발적이다. 계산없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샘솟는걸 느낀다.

 

돈의 관계란 개운하다. 뒷끝이 없다.
인간 관계란 부담스럽다. 하지만 그 부담이 행복감을 줄 수 있다. 실은 부담이라는 감정은 돈의 관계에 익숙해진 탓일지도 모르겠다. 부담되는 삶 좀 살아봐야겠다고 얼핏 생각하고 설핏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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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게 귀하던 시절에는 먹을 것과 먹지 못할 것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한 지식이었을게다.
이 지식은 대부분 할머니의 할머니로부터 할머니에게, 다시 어머니에게 직접 몸으로 전달되어져 왔다.
하지만 이 전달된 지식은 점차 전달되어질 곳을 잃어가는듯하다.
봄철 주변에서 쉽게 캐어먹을 수 있는 쑥.
도시에서 살면서 할머니, 어머니로부터 먹을 수 있는 풀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한 여인들(또는 남정네들)은 쑥이라면 다 그냥 캔다.(물론 나 또한 쑥을 구별할 줄 모른다.) 집에 가서 떡으로, 전으로, 찌개로 먹어보지만 향도 없고 맛만 쓰다. 뺑쑥(사진 오른쪽)이기 때문이다. - 전달된 지식이 꼭 정확한 것은 아니다. 뺑쑥을 도감에서 찾아보면 다소 달라보인다.
부드럽고 향도 좋아 먹기 좋은 쑥은 참쑥(사진 왼쪽)이다.
그렇다고 뺑쑥이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모깃불로 쓰인다. 또한 예전엔 이 쑥대를 모아 발처럼 엮어 음식을 말리는 소쿠리처럼 썼다 한다. 그러면 말린 음식에 쑥의 향이 은근히 배어 났을 것이다.
마트에서 사 먹는 쑥, 합성소재로 만들어진 소쿠리.
대대로 내려오던 지식이 지혜가 되지 못한 채 길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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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참 쏜살같이도 왔다.
사방엔 꽃이다.
꽃은 봄의 속도를 따라잡는다.
그런데 이 마음은 아직 봄이 아니다.
화려한 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봄은 아직 내게 오지 않았구나.... 생각 한 순간
봄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걸 깨달았다.
봄은 이미 마음 속에 있었다.
다만 내가 찾아내지 못했을 뿐.
마음 속에 감춰진 봄을 꺼냈다.
세상에 꽃들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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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3일의 산행은 트레킹으로 결정헀다. 한켤레 뿐인 등산화를 빨았는데 아직 덜 마른 탓에 운동화로 갈만한 코스를 선택했다. 제천 청풍호 주변에 형성되어 있는 자드락길. 그 중 괴곡성벽길을 걷기로 했다. 자드락이란 나지막한 산기슭의 비탈진 땅을 의미한다. 일종의 둘레길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또 날씨가 받쳐주질 않는다. 오늘도 미세먼지가 '조금 나쁨'이란다. 아무래도 한국의 봄은 미세먼지와 함께 하는 날이 많아질 모양이다. 쾌청한 날 산에 오른다면 가히 축복이라 할만하다.

 

괴곡성벽길의 출발점은 옥순대교에서부터다.

가은산 맞은편의 옥순봉 쉼터에 주차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코스가 시작하는 길 맞은편에도 주차장이 있다. 옥순봉 쉼터에서 주차하면 옥순대교를 걸어서 건너가야 한다. 하지만 걷는걸 좋아한다면 일부러라도 다리를 건너는 것도 좋을 성 싶다. 옥순봉 쉼터 맞은편에 나 있는 가은산 등산로로 2분만 올라가면 전망대가 있기 때문이다. 이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가히 수묵화라고 할 만하다.

 

동양의 그림이 왜 수묵화가 주가 됐는지는 그 풍경을 보면 이해가 갈법하다.

 

옥순대교를 건너면 바로 자드락길로 접어든다.

잠깐 길을 오르면 그때부터 청풍호를 오른쪽에 끼고 계속 걷게 된다. 방금 지나온 옥순대교도 눈앞에 펼쳐진다.

전망대까지 가는 길은 흙길이다. 봄에 풀어진 흙들이 부드럽다. 맨발로 걷는듯할 정도로 얇은 바닥의 신발을 신은 덕분에 흙의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급경사는 거의 없고 완만한 길이라 마음이 편안하다. 그런데 잠깐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어디에 성벽이 있는걸까. 능선 중간쯤에 가보니 그 궁금증이 풀렸다. 실제로 성을 쌓은 것이 아니라 이 괴곡의 능선이 삼국시대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을 때 성벽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예전 전쟁터가 지금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휴양지가 되다니, 역사도 삶도 정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생각해본다.

 

아무튼 이렇게 흙길로만 50여분을 가면 '사진찍기 좋은 장소'라는 곳에 도달한다.  

솟대들이 환영하는 그곳에 서면 금수산과 청풍호, 가은산, 옥순대교가 한눈에 펼쳐져 있다. 아, 미세먼지만 없다면...

이곳에서 다시 2,3분만 걸으면 전망대가 나타난다. 높이 12미터. 군인들이 레펠훈련을 하는, 인간이 가장 공포심을 느낀다는 11미터와 불과 1미터 차이가 나는 전망대는 조금도 무섭지 않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조금 전의 사진 찍기 좋은 장소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반대편 모습도 한눈에 내려볼 수 있다는 것이 좋다.

 

왔던 길을 10분 정도 다시 돌아가 앞으로 가야할 다불암으로 향하는 길이 푸근하게 다가온다.

다불암으로 향하는 길은 아쉽게도 시멘트다. 이 길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농로로 이용하는 길이다. 간혹 찾는 사람들이야 흙길이 좋겠지만 이곳이 삶의 터전인 사람들에겐 시멘트는 아마도 오랜 숙원이었을게다.

이길로 접어든지 10분이 채 되지않았을때 주막이 나타났다. 동동주와 파전 등을 파는 이 주막에서 한 잔 하고 싶지만 사람이 많아 지나친다.

주막 옆에선 아저씨가 장작을 팬다.

사진을 찍어서일까. 낯선 사람을 많이 봤을법한데 개가 요란하게도 짖어댄다. 주인의 호통에도 멈출줄 모른다. 이노~옴. 그만 짖어라.

주막을 뒤로하고 30여분쯤 걸으면 다불암 입구에 다다른다.

다불암엔 작은 불상들이 놓여있다. 그런데 이게 많다고 다불암이라고 한다면 좀 과장된 느낌이다. 역시나, 알고보니 이곳 두무산에 불상처럼 보이는 돌들이 많아서 붙여진 다불리에 암자가 뒤늦게 들어선 것이었다.

사람들의 염원, 소망도 이렇게 한가득일 것이다. 암자 위쪽으론 산신각이 있다. 그 안에 놓여진 공물이 대부분 술이다. 오다가다 지나치는 등산객들이 가져다 놓은 것들일 것이다. 바람없이 왔다가 수중에 있는 것을 내놓다보니 술이었을게다. 부처님도 곡주는 마다하지 않으실터다.

술병엔 바람없는 소망이 가득하다. 이런 소망들이 좋다.

 

산신각을 뒤로하고 오르면 이제서야 산에 오르는가 싶은 마음이 든다. 물론 아주 잠깐이지만. 독수리봉과 형제봉을 끼고 왼쪽으로 돌아가면 또한번 사진찍기 좋은 장소가 나타난다. 이곳은 월전 장우성이라는 동양화가와 얽힌 풍수이야기가 있다. 화필봉이 보이는 이 자리로 묘를 이전한 덕에 유명한 화가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풍수지리 때문일까. 두무산을 내려가는 길목에서 묘들을 본다. 우리의 자생 풍수는 음택이 아닌 양택을 중시했다는데... 아무리 좋은 묘자리라 해도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은 이유다. 음택은 현세 후손의 위세를 뽐내는 모양새로 변모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길을 돌아내려오면 미륵부처를 만난다. 왼쪽과 정면, 오른쪽에서 보는 모양이 다르다고 하는데 별 차이를 못 느끼겠다.

두무산을 10분 정도 내려오면 아직 지어지지 않은 다불암의 대웅보전 현판을 마주친다. 하필 이 현판이 놓인 곳이 통신전파기다. 전파가 삼라만상이요, 세상을 주재하는 것이 전파이니 이것이 불상을 모셔놓은 것이 아니고 무엇일까 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이곳에서 잠깐 망설인다.

지곡리 고수골로 내려가 유람선을 타고 옥순봉 쉼터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왔던 길로 회귀할 것인지... 걷는걸 좋아하니 그냥 회귀하기로 했다. 똑같은 길을 걷더라도 가는 길과 오는 길의 풍경은 사뭇 다르지 않던가. 늘 한결같으면서도 항상 대하는 대상에게서 다른 걸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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