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서생의 한 포인트는 지식인들의 허세라고 보여진다. 문장으로 이름을 날린 선비가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작가가 따로 있음을 알고, 질투심에 불타 야설을 쓰기 시작한다. 가문의 위기에는 오히려 눈을 감고, 공명정대함이라는 미명하에 자신의 겁많음을 숨기려들던 인물이 위험을 무릎쓰고 말이다. 점차 인기를 얻어가자, 색안경을 쓰며 작가인채 폼을 잡고, 자신을 꼬드기던 상인과 똑같은 수법으로 화가를 유혹한다. 최고가 되고자 하는 갈망은 사랑까지도 판다. 그러나 자신이 팔아넘긴 사랑이 진실이었다며 왕비에게 말하는 장면은 이것이 위선인지 참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허세로 가득 차 있던 주인공이 끝까지 의리를 지키겠다며 침묵을 지키는 장면에선 한 캐릭터의 양분된 모습을 지켜보는 것 같다. 지식인들의 허세를 조롱하는듯 하던 영화는 이제 마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머리가 지시하는대로 따라가야 자신의 안위를 지킬 수 있다는 내시의 말. 그것은 현대인에 대한 비판이다. 생존을 위해선 머리를 써라. 사랑도 명예도 권력도 머리에서 나온다. 하지만 추월색의 유배도 내시의 죽음도 모두 마음이 지시한 길을 따르다 일어난 일이다. 정말로 어리석게 보이는 한편으로 가슴을 울리는 것은 그것이 현대인의 죽어가는 마음의 길을 살며시 보여주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마음은 아닌데'라는 후회마저 사라져가는 요즘, 음란서생은 전혀 음란하지 않게 마음을 살짝 내비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