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 이야기 품은 광덕고개
-처음이구나, 반갑다, 광덕산아. 그런데 널 만나러 오는 길이 왜 이리 구불구불하니. 구절양장(九折羊腸)이란 말이 꼭 이걸 두고 하는 말 같얘.
-그렇지, 아마 아찔했을 거야. 한국전 때도 이 길이 워낙 위험해 사령관의 특별 명령이 있었대. 한 굽이 돌때마다 운전병에게 캐러멜을 줘 졸음을 막으라고 말이야. 그래서 캐러멜 고개로도 불린단다.
-그러고 보니, 넌(광덕산) 분단이라는 현실을 온 몸으로 느껴온 거구나.
-맞아. 광덕고개서 조금 내려와 민박, 식당이 모여 있는 곳 왼쪽에 광덕식당이 있지. 여기에 이정표가 서 있는데, 그 길을 따라 2km 죽 올라가면 상해봉 갈림길까지 갈 수 있어. 실은 이 길도 군사도로란다. 내 몸에 난 생채기가 갈라져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의 찢긴 가슴같아 마음이 아파.
-난, 너의 황톳빛 속살위에 중간중간 덧칠해 놓은 시멘트가 너의 숨을 막는것 같아 너무 미안해.
# 바다를 꿈꾸는 상해봉
- 1시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상해봉 갈림길이네. 상해봉까진 400m 남았군.
-어서와, 상해봉을 지나치지 않고 들려줘 고마워. 힘들었지.
-그래, 90도 가까운 바위라니. 그나마 로프가 있으니 다행이야. 그래도 조심하지 않으면 큰 일 나겠더라. 물론 그만큼 스릴도 있지만.
- 그렇게 생각해주니 다행이다. 1000m가 넘으니 전망이 참 좋지.
- 정말. 북동쪽으론 대성산에서 내려온 한북정맥이 복계산-복주산-회목봉을 거쳐 광덕산으로, 남쪽으로 다시 백운산-국망봉-운악산으로 뻗은 정맥 마루금이 한눈에 보이네. 서쪽으론 각흘산, 명성산, 철원평야가 펼쳐져 있고.
- 자, 이젠 잠깐 전망을 잊고 눈을 한번 감아봐, 어떤 느낌이니
-글쎄, 음 뭐랄까. 어~ 바람소리가 파도소리 같애. 파도에 실려 몸이 두둥실 떠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마, 그럴거야. 실은 이곳이 예전엔 망망대해에 떠 있던 암초였을지도 몰라. 전설에 의하면 이곳에 조각배를 매워뒀다고도 해. 참 이상하지. 왜 이 깊은 첩첩산중에서 하필 바다를 꿈꾸었던걸까? 이별의 눈물마냥 말라붙은 소금기마저도 남겨놓지 않았으면서...
# 우쭐대지 않는 정상
- 자, 기운을 내고 새로운 만남을 기대해보자. 20분 거리 광덕산기상레이더관측소까진 여전히 군사도로. 거기서부턴 오솔길을 10분만 더 걸으면 바로 정상이구나.
-그런데 정상이라고 해봤자, 실은 별로 보여줄 게 없어서 미안해. 나무로 만든 조그만 하얀 표지판이 없다면 어디가 정상인지도 잘 모를거야, 그치.
-괜찮아. 꼭 정상이 어디라고 알 필욘없어. 또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고 서운해 할 필요도 없고 말이야. 노래가사처럼 지금 오른 이곳이 그저 고갯마루였을뿐이라도 괜찮아. 사람들 요즘 한 방에 모든 게 바뀌길 바라지만, 넌 우리에게 말없이 가르쳐주잖아. 한발 한발 땀흘려 걸어야지만 진정한 너와 마주칠 수 있다는 것을
-이제, 내려가야지? 정상에서 바로 왼쪽으로 가면 처음 올라온 곳으로 돌아갈 수 있어. 오른쪽으로 가면 큰 골과 박달골로 가지. 박달골 쪽으로 가면 백운계곡으로 가게돼.
- 40여분 내려가면 너와 작별을 해야 하구나, 마지막 이별 선물은 없니?
-20분만 내려가면 광덕고개와 국망봉, 운악산 등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 좋은 바위를 만알 수 있을거야. 거기서 5분만 발품을 팔면 소나무 사이로도 멋진 풍경을 맛볼 수 있지.
- 고마워. 거기서 잠깐 쉬었다 갈게. 너무 아름답구나. 이러다 내려가는걸 잊어버리겠다. 아름답다는 건 이렇게 마음을 뺏기는 것, 시간을 잊어버리는 것인가 봐. 이대로 돌아가야 하는 길이 아쉽지만 우리 다음에 또 만나자. 봄이라지만 아직 차가운 겨울같은 너의 몸뚱아리, 하지만 봄보다 더 따뜻한 너의 마음을 간직해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