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코타 페닝이 말을 사랑하는 11살 아이로 나오는, 스포츠 영화다. 스포츠 영화라고 말하는 것은 이것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경주마 이야기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시련을 이겨내고 끝내 승리한다는 장르적 습성을 고스란히 가져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3대에 걸친 가족이 '소냐도르'(드리머, 몽상가의 스페인어)라는 말을 통해 화해하는 과정을 그린 가족영화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감동은 언제나 승리로부터 비롯된다. 승리란 꼭 1등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꿈을 완성시키는 것. ('꿈은 이루어진다'가 월드컵에서 등장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스포츠를 움직이는 진짜 힘이다.
소냐도르는 명마의 피를 이어받은 암말이다.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지만 어느날 갑작스레 부상을 당한다. 다리가 부려져 안락사에 처해진 순간, 아버지 벤은 퇴직금 일부로 말을 데려온다. 그리고 종마와의 교배를 통해 새끼를 팔면 수익을 얻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실망에 빠진 가족들. 하지만 소냐도르의 뼈가 다시 붙고 경주에 나설 수 있다는 것에 환호한다. 그리고 참가하는 브리더스 컵...
경주마는 야생마가 아니다. 즉,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그 관계가 어떤 식으로 맺어지는가는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는냐에 달려 있다. 영화 속에서 소냐도르는 가족의 구성원이다. 다코타 페닝이 분한 케일은 말을 사랑한다. 그 사랑은 할아버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말과 대화를 나누는 아버지의 모습 속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 목숨을 구해준 사람과 그 은혜를 갚으리라는 것을 아는 아이. 언어가 전혀 필요없다. 그들은 사랑을 안다.
경제적으로 어렵더라도, 자식의 꿈을 이루게 해주려는 아버지들의 모습은, 그 꿈을 이루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꿈을 이루도록 도와준 이들에게도 크나큰 행복임을 영화는 보여준다. 좌절하더라도 끝내지 않는것. 끝까지 한번 달려보는 것. 꼴찌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영화기에 가능하다라고 말하려는 순간 이것이 실화였다는 것을 다시 떠올려야 한다. 누구나 인생의 반전을 맞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끝까지 걸어보지 않은 사람이 그 반전을 맞이 할 수는 없다.
소냐도르라는 몽상가의 질주. 울타리가 없는 초원을 달리지 못한다고 해서 말이 꼭 슬퍼해야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구와 함께 달리는가, 무엇을 향해 달리는가가 질주하는 말을 아름답게 또는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마치 새옹지마의 우화처럼 끊임없이 뒤바뀌는 상황들이 영화의 재미를 더하기도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 스포츠 영화라는 장르적 습성을 그대로 따라가기 때문에 결말은 쉽게 예상이 된다. 하지만 너무나 귀여운 다코타 페닝을 보는 것 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