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는 도저히 풀리지 않는 매듭일까?

스필버그는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을 절대 감추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도 이런 관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뮌헨>이라는 이번 영화 역시, 그런 관점이 저변에 깔려있다. 이 영화는 1972년 뮌헨 올림픽 기간 중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11명의 이스라엘 선수단이 죽음을 당하고 배후는 아랍의 '검은 9월단'임이 드러난다. 이스라엘은 공적인 보복을 감행하지 못하지만(아니 실제로 감행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절대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얼마나 강한지 이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특수 공작원을 보낸다. 영화의 주인공은 이 특별한 임무를 맡은 인물이 11명의 제거 대상을 찾아 하나하나씩 없애가는 과정을 찬찬히 보여준다.

그 과정 속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은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팀들이 맨 처음 모여 함께 식사를 하는 모습이다. 대화는 들리지 않고 장중한 음악만이 화면을 가득 채우면서 크게 웃는 그네들의 장면은 무엇인가 언발란스하게 느껴진다. 자신들의 임무가 얼마나 막중한지, 그리고 그 임무라는 것이 사람을 죽여야만 한다는 것, 그것이 과연 정의인지 살인인지 가늠하기 힘든 상황을 그 장면은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갈등들은 영화 중간중간 계속해서 튀어나온다. 아이를 죽여서는 안된다는, 오직 타겟만을 죽여야 한다는 휴머니즘을 보여주면서, 이들이 테러집단과 다르다는 인상을 심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점차 이들은 테러 대상과 별도로 자신들의 동료를 죽인 킬러에 대한 복수를 행하기도 하면서, 인간적인 고뇌에 빠진다. 자신들이 행한 임무가 또다른 폭력을 불러온다는 사실에 과연 지금 행하고 있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회의하게 되고, 자기 자신이 살해 대상이 되었다는 생각에 자신이 행한 살인방법을 떠올리며 침대, 전화기, 텔레비젼을 뜯어보고도 잠을 제대로 청하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

스필버그가 나름대로 중립적 입장을 취하려 애쓴 흔적은 중간중간 삽입되는 뮌헨 올림픽 당시의 상황들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이 인질들을 잔인하게 죽인 테러리스트라기 보다는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방아쇠를 당긴 것처럼 묘사된 장면은 격앙된 음악만큼이나 애절하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모두 짠하게 느껴진다. 물론 영화 속 주인공에게 보다 많은 감정이입을 요구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들이 지키려고 했던 것은 가족이다. 그들이 지키려고 했던 것 또한 가족이다. 이들과 그들에게 있어 국가란 가족의 확장이다. 무력으로 문제점을 해결하려 했던 두 집단은 결국 이것이 해결책을 찾아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무력은 보다 더 큰 무력을 불러오는 악순환을 낳을 뿐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스필버그는 평화와 화해의 손을 잡지 않는 이스라엘 정부를 보여준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요르단 장벽 앞에서 팔레스타인 남자들 옷을 다 벗기며 검색을 하는 이스라엘 군인들을 떠올린다. 탁 트인 마을 앞에서, 앞에 여자가 있든, 아이들이 있든 상관없이 말이다. 그 수모를 이들은 어떻게 해결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영화는 어떤 식으로 말하고 있는걸까? 그래서 영화는 따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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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개 2006-02-13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보고 싶은 영화였는데 거기서도 가족이 튀어나오는 군요. 맘이 확 바뀝니다.
미국인들의 그 '가족'타령이 넘 질리는지라....

하루살이 2006-02-13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필버그에겐 가족은 떼어낼 수 없는 분신처럼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