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킹콩>을 보면서 금발 미녀에 대한 환상, 마쵸에 대한 꿈, 또는 자연과 문명의 대립을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피터 잭슨이 리메이크한 <킹콩>이다. 나는 피터 잭슨이 감독을 했다는 이유로 <킹콩>을 보았으니 오직, 그것에 대해서만 말해보고 싶다.

피터 잭슨에게 기대한건 환타지일 것이다. 머릿 속에서 그려진 이야기가 어떻게 화면에 펼쳐질지가 최대 관심사인 것이다. 과연 킹콩은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떤 모험이 화려한 영상 속에 담겨질지가 흥미로웠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변은 찬사와 실망 양 쪽 다이다.

3시간짜리 대작, 그냥 느낀 인상대로 말하자면 1시간은 지루, 1시간은 흥미진진, 1시간은 평범하다고 할까? 누군가는 타이타닉, 쥬라기 공원 등등의 짬뽕이라고도 표현하는데 얼핏 그럴만도 하다고 생각된다. 먼저 흥미진진했던 중간 1시간에 대해 이야기하면, 정말 엄청나다라고 밖에 표현을 못하겠다. 공룡과 킹콩과의 대결은 물론이거니와 사방에서 쏟아지는 원시생물들과의 혈투는 숨을 턱 막히게 만들 정도로 화려하다. 긴장이라는 것은 놓였다 조였다 했을 때 그 극에 도달할 터인데, 이건 계속되는 초긴장 속에서도 극도의 흥분을 감추지 못하게 만들 정도다. 마치 내가 엄청안 액션 게임의 한 현장 속에 들어와 있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하지만 감독은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린게 아닌가 생각된다. 액션의 화려함뿐만 아니라 드라마적 감동도 놓치지 않으려 한 것이 오히려 독이 되지 않았나 싶다. 우린 매스컴을 통해 수많은 죽음을 접한다. 하지만 그 사건 사고 속의 죽음이 나라는 개인에게 슬픔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지도 않았고, 그들의 속사정 또한 아무 것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감독은 결말의 슬픔을 담보하기 위해 초반 너무 많은 설명을 하려한다. 킹콩과의 만남 이전의 영화 속 감독과 배우, 작가가 처한 상황을 그려보이기 위해 헛된 시간을 낭비한 듯이 보인다. 왜냐하면, 그것은 감독의 의도와는 달리 영화 종반 킹콩의 죽음 앞에서도 결코 눈물이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입부의 기나긴 설명은 너무나 지리해져버리고, 뉴욕의 도심 속 난장판은 이미 해골섬의 결투에 놀란 사람들에게 더 이상 자극을 가져오지 못한다. 그리고 굳이 오리지널과 비교할 필요는 없으나, 킹콩의 맥박이 점차 약해지는 소리로 눈물샘을 자극했던 예전 영화에 비해 오락거리로 비쳐진, 거대한 인형이 되어버린 킹콩은 그다지 슬퍼보이지가 않는다. 다만 킹콩의 풍부한 표정만이 조금 위안을 줄 뿐이다.

물론 슬픔보다 그런 오락거리로 치부되어진 킹콩의 모습에서 어떤 아이러니를 느낄 수도 있으나, 너무나 시끌벅적했던 죽음 전의 상황으로 인해 그저 3시간 동안 자리에 처박혀 얼얼해진 엉덩이만 들썩여볼 뿐이다.  물론 영화가 게임과 같을 수는 없다는 점에서 조금 이해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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