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쳐라 - 세상을 치는 경허 스님의 죽비소리!
경허 스님 지음, 한용운 엮음, 석성우 옮김, 김홍희 사진 / 노마드북스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조금 비아냥 거리는 투로 '선문답' 이라는 것은 동문서답의 다른 이름일 터이다. 물론 불교에서 선문답은 깨우침을 일으키는 대화일 터이지만 그것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지극히 어렵다는 점이 일상용어에서 조금 다른 의미로 쓰여지는 이유일 것이다.

<나를 쳐라>는 경허 스님(한 세기 전 고승으로 한용운 스님의 스승이기도 함) 의 게송과 일종의 선문답을 실은 책이다. 그래서 상당히 이해하기가 힘들다. 모든 걸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스스럼없이 읽어본다. 책의 말미에는 경허스님의 일대기가 수록되어져 있다. 중간 중간 <나는 사진이다>라는 책을 쓴 김홍희 씨의 사진이 실려있기도 하다.

먼저 사진부터 이야기 하자면 정결함을 드러냈다고 한마디로 표현하고 싶다. 고즈넉함과 깨끗함이 묻어나는 사진들은 경허스님의 말씀과 잘 어울러진듯 하다. 무엇보다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책의 중간, 다음 페이지 간격으로 놓아둔 절의 기둥을 찍은 사진이다. 몽타쥬 효과라고 할까? 첫 사진은 뼈대만 남은 기둥 사이로 바다가 펼쳐져 보이지만 책장을 넘기면 그와 똑같은(아주 흡사한) 배열의 기둥 사이로 산이 우뚝 서 있다. 이 두 사진이 주는 감흥은 글로 표현하기에는 좀 무리인듯 싶다. 삶의 무상함이 배어나오는 듯한 인상은 독립된 사진을 통해서는 결코 찾을 수 없으리라 여겨진다.

이 책은 경허 스님이 남겨놓은 대부분의 글들을 모아놓은 것인데, 이별에 대한 싯구가 상당히 많이 눈에 띤다. 이별이라는 것의 대상이 삶인지, 속세인지, 연인인지, 가족인지, 국가인지, 욕에 사로잡힌 나인지는 독자가 판단해야 하겠지만 그 쓸쓸함만은 글 사이 사이 가득하다. 이별 이외에도 특별히 마음이 쓰이는 부분은 건강에 대한 이야기다. 마음 공부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건 건강이라는 스님의 말씀은 특별한 선문답이라거나, 게송이라기 보다는 나이드신 어르신께서 젊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삶의 충고로 들린다. 건강을 전제로 마음 공부에 전념하라. 마음 공부는 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요, 제일 먼저 행해야 할 것은 화를 내지 않는 일로 여겨진다. 화를 내지 않는 것의 어려움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쉽게 알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화를 내지 않는 방법은 틱낫한 스님으로부터 한 수 배워도 될 것이다. 왜 내가 이토록 화를 내는지, 그 이유에 대해 곰곰히 들여다봄으로써, 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경지. 그것은 어찌보면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지 가능한 일이기도 할 터이니와,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를 쳐라>는 나에게 새로운 화두를 하나 던졌다. 내가 받아들인 화두는 '일없이 산다는 것'

자신이 얼마나 많은 일에 치여 사는지를 한번 둘러보라. 사랑하는 사람을 자주 만날 수 없는 것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는 것도 모두 무엇 때문인가 돌이켜보자. 또 내가 괴로워하는 것은 무엇때문인지 생각해볼때 일없이 산다는 것은 수많은 의미를 쏟아낸다. 그냥 문자 그대로 일없이 산다는 것의 축복은 물론이려니와 스님이 말씀하신 일없이 산다는 것의 의미를 좇아 천천히 나의 마음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보자.

그런데 과연 우리는 일없이 살 수 있겠는가? 내가 나일 수 있기 전에 우리는 이미 일의 포로가 되어있지는 않았는가 반성해볼 일이다. 가끔은 일없이 살아보자. 일없는 가운데 나의 참모습을 들여다보자. 시계 쳇바퀴 돌아가는 모양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과연 가능한 일일지는 모르겠으나 깊은 숲 속에 홀로 놓여진 나를 상상해보자. 아마 견딜 수 없을지도. 그렇게 놓여진 나를 견딜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나를 쳐라. 내 몸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 하늘과 닮을때까지 나를 쳐라. 그래서 고독도 무상함도 모르는, 푸른 하늘에 점점히 흐르는, 가뭇없이 사라지는 구름이 되라. 일없이 나를 쳐라. 배고픔도 이상도 꿈도 모두 잊고 나를 한번 쳐라. 그 몸뚱아리에 무엇이 남아있는가?

삶의 무상함은 슬픔이 아니다. 항상 그러하지 않으니, 항상 그러한 것에 집착할 필요도 없음이요, 그러니 내가 변해가는 것을 막으려 할 필요도 없음일 터이다. 그러니 무엇인가를 애써 지키려하지 말고, 내가 찬찬히 둘러본 마음이 저절로 흘러가는대로 맡겨둘법도 하다. 나를 치니 마음이 흐른다. 아무 것도 머무르지 않음에 기뻐할 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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